균형이라는 삶의 기술 - 어떻게 인생의 중심을 지킬 것인가
이진우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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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을 가르치는 포스텍 이진우 교수가 쓴 이 책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의 명언과 삶의 지혜를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대입해 인생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볼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책을 읽다 보니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보다 자극적인 것을 원하고 욕망한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유튜브 같은 개인 방송을 보면 자극적인 요소로 흥미를 끄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먹는다거나 각종 이슈들, 혹은 사건, 사고 같은 방송을 하며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놀라움을 일으킨다. 이런 방송을 자주 보고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다른 것들은 흥미를 느끼지 못하기 마련이다. 그런가 하면 부자들은 더 많은 돈을 원하고, 자신이 가진 것을 내놓지 않기 위해 탈세를 하기도 한다.

저자는 이런 것들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더 많은 부, 목숨까지도 위협할 수 있는 운동이나 하물며 위험한 곳에서의 셀피까지도 자극적인 것에 길들여져 더 강렬한 인상을 남기려고 하는 행동이기에 주의를 하고 중심을 지켜야 한다고 했다.

 

이 부분에서 관련지어 말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만족을 위해 자극적인 무언가를 찾아다닐 수도 있지만,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목적도 있다는 것이다. 모르는 사람들에게 받을 SNS의 "좋아요" 개수에 연연하는 것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남이 보는 나를 위해서 만들어낸 이미지에 불과하다. 타인의 시선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은 없을 테지만, 그래도 자신의 신념과 의지로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삶을 살아가기보다 누군가가 볼 나를 거짓으로 꾸며내 살아가는 삶은 알맹이가 없는 껍데기에 불과하다. 남들이 어떻게 본다는 말을 자주 하는 가까운 사람이 있는데, 사람들은 생각보다 다른 사람에게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말을 해주고 싶은데 못하고 있어서 이해되는 부분이었다.

 

인상적이었던 건 감정에 충실하라고 말하며 화가 날 때는 참는 게 최선이 아니라 정당하게 화를 내야 감정적으로 건강하다는 부분이었다. 어렸을 때는 감정에 충실해서 기분이 오락가락했다가 나이가 들면서는 무던하게 바뀌었고, 누군가 때문에 화가 날 때는 참거나 무시하거나 아니면 "저렇게 살다 죽겠지"와 같은 그러려니 마음을 가지게 됐다. 결국 화를 내지 않아 내 속에 화가 쌓인 것 같은 느낌이 들어 폭발할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다. 때로는 화가 쌓여 체하기도 하는데 결국 내 몸이 화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고 안 좋아져서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 같다.

하지만 최근 내게 분노를 일으키는 상황은 화를 내기 곤란한 부분이 많아서 아무래도 나는 건강하게 화를 내기엔 글렀다. 안 보는 게 최선인데 그것도 할 수 없으니 참 답답하다.

 

 

 

 

이 책은 죽음에 대해서 말하기도 했고, 일과 생활의 균형인 워라밸도 이야기했다. 그런가 하면 사유(思惟) 하는 삶에 대해서도 말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필수적인 요소들을 열거하며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행복이었다. 우리의 삶은 행복을 향해 가는 것이니 말이다. 개개인이 행복을 느끼는 기준이 다르니 각자의 행복을 위해 목적을 가지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여러 방향에 대해 열거했다.

현재의 나에겐 행복의 기준이 물질적인 것이라 저자가 말하는 행복의 가치와 거리감이 있긴 한데, 그래도 그 부분만 조금 충족시켜준다면 행복에 대한 기준치는 그 누구보다 높아질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을 해야 되겠지만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고, 내가 태어난 환경이나 살아온 인생에 대해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과거에서 현재로,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디에 가치를 두고 살아야 되는지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 이 리뷰는 인플루엔셜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의 궁극적인 목적으로서 선이 있다면, 당연히 우리의 삶에도 추구해야 할 최고의 선이 있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최고의 선은 행복이다. 행복은 개개의 실천이 추구하는 모든 선 가운데 최상의 선이다. 행복은 가장 좋고, 가장 고귀하고, 가장 즐거운 것이다. - P6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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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맨스 북클럽 브로맨스 북클럽 1
리사 케이 애덤스 지음, 최설희 옮김 / 황금시간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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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그 선수 개빈은 허름한 호텔에 2주째 처박혀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들이붓고 있다. 3년 동안 결혼 생활을 한 사랑하는 아내 세아가 개빈에게 이혼하자고 했기 때문이었다. 개빈은 세아를 너무나 사랑하고 그녀를 보는 것만으로도 흥분이 되어 어쩔 줄을 모르겠는데, 세아가 어떤 부분에서 연기를 했다는 점이 그에겐 큰 상처가 됐다. 그래서 일단 회피하려고 도망칠 수밖에 없었고, 그 때문에 이혼하자는 통보를 받게 된 것이었다.

 

개빈의 소식을 들은 같은 팀 동료이자 절친인 델이 여러 남자들을 끌고 호텔에 쳐들어 왔다. 다들 이름만 들으면 아는 운동선수, 사업가였고, 개빈도 아는 친구와 동료,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대는 누군가가 있기도 했다. 델은 개빈에게 자신을 포함한 이 사람들 모두 결혼 생활이 한때 위태로웠었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절친 델이 그랬다는 걸 믿기 어려워하는 개빈에게 그는 자신들의 북클럽 덕분에 결혼 생활이 신혼 때처럼 좋아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개빈에게도 북클럽에 들어와 세아와의 관계를 회복하라고 제안했다. 세아와 헤어지지 않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각오가 되어있던 개빈은 당연히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때부터 개빈은 생전 읽어본 적도 없는 로맨스 소설을 읽게 된다.

 

 

 

 

이혼 위기에 처한 개빈과 어렸을 때의 일로 남자를 온전히 믿지 못했던 세아의 결혼 생활을 구제해 주기 위해 남자들만 들어갈 수 있는 소수 정예 북클럽 멤버들이 뭉쳤다. 책으로 어떻게 현실적인 이혼 문제를 해결할 것인지 의아했는데, 남자들은 이게 뭐냐며 읽을 것 같지도 않은 로맨스 소설이 그 타개책이 되었다. 그것도 18세기 영국 로맨스였다.

학생 때 순정 만화는 엄청 많이 읽었고 지금도 로맨스 웹툰을 보는데, 로맨스 소설은 읽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특히나 "할리퀸 로맨스"라는 유명한 시리즈는 들어서 알고는 있지만 읽어본 적은 없다. 그래서 이 소설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집에서 도망치듯 나온 개빈은 아내와 딸들이 사는 자신의 집으로 다시 돌아가는 게 너무나 어려웠다. 아빠가 당연히 원정 경기 혹은 훈련에 갔을 거라고 생각한 딸들은 개빈을 반겨줬으나 세아와 세아의 여동생 리브는 왜 돌아왔냐는 눈빛으로 싸늘하게 대해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개빈은 꿋꿋하게 세아와 협상을 하고 서로 조건을 내세우며 정해진 기간까지는 같은 집에서 얼굴을 마주하기로 했다.

덩치는 산만 하지만 아내에게는 꼼짝 못 하는 남편의 모습이라 톰과 제리를 보는 듯했다. 함께 산 지 3년이나 되었는데 세아에게 쩔쩔 매는 개빈이 안쓰러웠지만 귀엽기도 했다.

 

그렇게 다시 같은 집, 다른 방에서 살게 되면서 부부 사이의 문제가 뭐였는지 정확하게 밝혀졌다. 세아가 여태껏 침대에서 오르가슴을 느낀 것처럼 연기한 걸 개빈이 알아챈 것이 핵심이었다. 그리고 조금 지나면서 세아 아버지의 일이 자식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개빈이 진짜 불쌍했던 게 아니었나 싶다. 남자로서는 자존심이 엄청나게 상할 일이었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그 문제를 로맨스 소설을 읽으며 풀어가기 시작하는데, 세상에나 이렇게 노골적이고 선정적인 글은 처음이었다. 읽다가 당황해서 책표지가 안 보이게 뒤집어 놓기도 했다.(책표지가 내 취향과 맞지 않기도 함.) 성인이 된 지 오래되어 19금 영화를 마음껏 볼 수 있는 나이임에도 깜짝 놀랄 수위였다. 영상으로 보는 것과 달리 글로 읽은 적이 없어서 그런가 신선한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얼굴도 잘생기고 운동선수라 몸도 엄청 좋은 남편이 자신에게 잘 보이려고 애를 쓰는데 아내가 넘어가지 않을 리가 없었다. 아버지로 인해 신뢰를 갖지 못했던 부분까지 모두 해결하여 당연히 해피엔딩을 맞이한 결말을 보여줬다.

깊이를 기대하지 않고 가볍게 읽으려고 고른 조건에 부합했던 책이었다.

 

 

 

"로맨스 소설은 원래 여자들이 여자들을 위해서 쓰는 거야. 때문에 거기엔 온통 여자들이 어떤 대우를 받길 바라는지, 삶과 관계에서 어떤 걸 원하는지에 관한 것들 천지야. 우리가 이걸 읽는 건 우리 자신을 좀 더 편하게 표현하고 여자들의 관점에서 볼 수 있기 때문이야." - P51

"너희 둘은 서로 다른 언어로 말하고 있는 거야." 그는 책을 가리켰다. "로맨스 소설을 읽으면 네 아내가 쓰는 말을 배우게 될 거야." -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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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센트 와이프
에이미 로이드 지음, 김지선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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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영국에 사는 샘(서맨사)은 남자친구 마크가 보여준 다큐멘터리로 감옥에 수감된 미국인 데니스를 알게 됐다. 마크는 샘이 이런 것에 관심이 없다는 걸 알지만 보면 좋아할 거라고 했는데, 그의 예상대로 샘은 데니스에게 푹 빠져버렸다. 아주 오래전, 18살쯤 되었을 데니스가 어린 소녀들을 살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사형수 감방에 갇힌 모습을 본 샘은 연약한 아름다움을 느꼈다. 그래서 온라인 모임에 가입해 사건을 되짚어 보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데니스가 무죄라고 생각하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그에게 편지를 보내기까지 했다.

답장은 기대조차 하지 않았는데 막상 데니스에게 편지를 받자 자신이 그에게 특별한 존재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데니스를 만나기 위해 무작정 미국으로 향했다.

 

​샘이 자신을 만나기 위해 미국으로 온다는 사실을 편지로 알게 된 데니스는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다 친해진 감독 캐리에게 그녀를 부탁했다. 낯설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미국에서 샘은 캐리 덕분에 조금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감옥에서 투명한 유리를 사이에 두고 만난 데니스는 샘이 봤던 다큐멘터리의 소년과는 조금 달랐지만 여전히 잘생겼고 아름다웠다. 샘은 이내 그를 사랑하게 되었고, 데니스 역시 자신을 사랑하는 것 같다. 그리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감옥에서 결혼을 해 부부가 된다.

 

 

 

 

자신은 소녀들을 죽이지 않았다며 억울하다고 말하는 아름다운 열여덟 살 소년 데니스의 사연은 18년이 지난 후 다큐멘터리로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미국에서 멀리 떨어진 나라에 사는 샘 역시 그 다큐멘터리로 데니스를 알게 됐고, 억울하다고 호소하는 그의 말이 진실이라 굳건히 믿었다.

사실 처음부터 샘이 이해가 되지 않던 부분이었다. 법이 절대적으로 완벽한 게 아니기 때문에 누명을 쓰거나 강압수사에 의해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게 될 수는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런 사건이 있었고 영화로 제작되기까지 했으니 많지는 않아도 때로 일어나는 법의 허술한 점이었다. 그런데 데니스의 경우에는 이전에 보여준 행동에 근거해 충분히 의심을 살만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각본과 설정으로 제작된 다큐멘터리만 보고는 그를 충분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샘은 눈에 콩깍지가 씌었는지 의심스러운 부분은 저 멀리 제쳐두고 데니스가 무고하다고 믿으며 그를 이성으로 보고 더욱 가까워지기를 바랐다. 그래서 데니스를 만나기 위해 휴가를 내고 미국까지 날아가게 된 것이었다. 데니스가 사형수라서 투명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만나야 했지만 샘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그런 모습을 통해 데니스의 결백을 확신했던 것도 같다.

 

캐리가 제작하는 또 다른 다큐멘터리 촬영을 따라다니던 샘은 데니스와 가까웠던 하워드의 아버지이자 경찰 에릭 해리스를 만나고, 데니스와 뭔가 친밀한 관계였던 것 같은 린지도 만나게 된다. 그 이후에 감옥에서 결혼을 하고 우연찮게 진범의 자백 덕분에 데니스가 무죄로 풀려나 마침내 세상에 나오게 됐다.

드디어 진짜 결혼생활을 하게 될 거라는 생각에 마냥 행복해야 마땅했지만 샘의 감정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토록 만지고 싶고 안고 싶었던 데니스가 바로 곁에 있어도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분위기가 있었고, 방탄유리를 사이에 두고 만났을 때와는 달리 위험하다는 경보가 머릿속에서 울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샘은 그 경보를 무시하고 오랫동안 감옥에 있느라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 그를 챙기고 보살폈다. 좋으면서도 불편한 감정으로 샘은 혼란스러웠다. 샘의 내면에서 울리는 경보가 모두 사실이라고, 잘생긴 얼굴에 빠져서 잊어버리지 말고 제발 좀 자각을 하라고 생각하면서 읽었다.

 

계속 등장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린지가 데니스 아버지의 사망 이후 줄곧 샘과 데니스 앞에 나타나면서 뭔가 중요한 키를 쥐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언급만 됐을 뿐 직접 등장하지 않았던 하워드가 그들 앞에 모습을 보인 이후 상황에 속도가 더해졌다. 하지만 그때가 되어서야 샘에게 씐 콩깍지가 벗겨져 보이는 진실을 마주했을 땐 너무 늦어버렸다. 보이는 것을 외면한 덕분에 스스로가 자초한 일이었으니 안타깝지만 샘이 어떻게 돼도 그 누구를 탓할 수 없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샘도 정상으로 보이지 않아서 데니스와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던 것 같다. 전남친 마크와의 사건을 보면 그녀도 범죄자였고, 데니스에게 집착했으며 사고방식도 일반적이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샘의 행동이나 생각이 예측에서 벗어나던 부분이 많아 어이가 없어서 몇 번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그래도 결말은 그들 나름의 해피엔딩이라고 해도 말할 수 있는 방향으로 끝났지만, 개인적으론 정말 안타까운 사람이 한 명 있어서 내게는 씁쓸한 결말이었다.(무슨 죄냐고!!!)

 

사형수를 사랑하게 됐다는 설정부터가 내 상식으론 이해가 되지 않긴 했다. 잘난 얼굴에 빠져 순진함을 넘어 멍청했던 샘을 보며 역시 얼빠는 답이 없고, 잘생긴 사람은 얼굴값을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이곳 사람들이 알고 있는 건 그냥 진실뿐이야. 외부 사람들은 절대 이해하지 못해. 왜냐하면 여기 없었으니까. 그 사람들은 그 당시의 데니스를 몰라. 당신들이 그 녀석을 지금의 모습으로 만들기 전, 맹수가 아니라 사냥감처럼 보이는 법을 배우기 전의 그 녀석을." - P112

마치 샘과 결혼한 남자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고, 자다 깨보니 남의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줄거리를 알지 못하는 이야기 한복판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 P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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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조 하늘 부서진 대지 3부작
N. K. 제미신 지음, 박슬라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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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나니스 군대가 카스트리마를 공격하자, 에쑨은 오벨리스크의 문을 열어 레나니스를 파괴했다. 그 여파로 에쑨은 얼마 동안 식물인간 상태로 있다가 이제 막 깨어났다. 카스트리마 향마저 파괴되어 이카는 향민들을 이끌고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고, 에쑨은 들것에 실려 옮겨지고 있었다. 깨어난 그녀는 알라배스터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한쪽 팔 역시 돌로 변해버려 스톤이터 호아에게 먹인다. 그리고 그녀는 어딘가에 살아있을 딸 나쑨을 만나려고 한다.

 

아버지 지자를 죽인 나쑨은 수호자 샤파와 함께 제키티를 떠난다. 샤파는 다른 수호자 둘을 죽이고 오는 길에 어린 오로진들도 떼어뒀다. 나쑨은 스톤이터 스틸의 조언에 따라 계절을 끝내기 위해 달을 대지로 끌어오기로 한다. 하지만 길을 떠난 이후 샤파의 상태가 계속 안 좋아지자, 나쑨은 샤파를 살리기 위해 오벨리스크들을 끌어모아 공명한다. 샤파 한 사람의 생존으로 아버지 대지의 모든 사람들이 돌로 변해 죽는다고 해도 나쑨은 개의치 않는다.

 

오래전, 고요 대륙이 "실 아나기스트"로 불렸을 무렵, 그곳에는 조율기로 만들어진 아이들이 수호자들의 관리하에 교육을 받으며 살고 있었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임무를 잘 알고 있었고 그것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걸 이해했다.

그러나 수호자들보다 자신들과 훨씬 비슷한 존재인 켈렌리가 나타나면서 아이들은 꽁꽁 묶어두었던 감정을 드러내고 자아에 대해 인식하게 된다.

 

 

 

 

엄청난 상상력으로 놀라게 한 "부서진 대지" 3부작의 마지막 이야기인 <석조 하늘>을 읽었다. 전편 <오벨리스크의 문>에서 에쑨을 향한 불길한 암시가 많아서 걱정하면서 읽기 시작했다.

 

1편에서부터 에쑨과 여러모로 깊은 관계였던 알라배스터가 돌로 변해 스톤이터에게 먹힌 충격적인 끝을 보여줬었는데, 마지막 시리즈에서 에쑨에게도 그 일이 발생했다. 전편의 암시 때문인지 에쑨이 아프지 않고 한 번에 사망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터라, 이런 자잘한 병(?)은 일어나지 않을 줄 알았다. 한쪽 팔이 돌로 변해서 무겁게 질질 끌고 다녀야 했고, 조산술도 쓸 수가 없었다. 호아가 팔을 먹은 뒤에 시간이 좀 지나고 나자 다른 신체 부위까지 돌로 변해 안타까움을 느끼게 했다.

아마도 오로진의 숙명인 것 같았다. 멀쩡했던 몸이 어떤 원리로 돌로 변하게 되는지 초반엔 알 수가 없었지만, 열 반지라 엄청나게 강했던 알라배스터마저도 생의 말미에는 점점 돌로 변해가는 몸뚱이로 침대에만 누워지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았다.

그래도 다행히 에쑨에게는 그녀에 대한 깊은 애정이 있는 호아가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에쑨만큼은 지켜주고 마지막까지 보살펴 줄 든든한 존재였다.

 

그런 호아의 비밀이 마지막이 되어서야 드러났다. 실 아나기스트에서 조율기로 만들어진 존재였다는 게 충격이었다. 그것도 호아(호와)뿐만이 아니라 다른 많은 아이들이 수단을 위해 만들어졌다. 그것도 모르고 살았다는 게 가여웠다. 감정을 강제로 거세당한 순종적인 그들의 모습은 살아있다고 볼 수가 없었다. 다행히 켈렌리가 있었던 덕분에 자신들이 어떤 존재인지 깨닫고 감정을 올곧이 드러내기도 했지만, 아버지 대지에게서 달을 떼어놓은 사건과 연결되어 또다시 안타까움을 느끼게 했다. 그리고 아주 오랜 세월 동안 그렇게 살았다는 것에서 가늠할 수가 없는 외로움이 느껴졌다.

하지만 호아에게는 에쑨이 있었다. 그리고 다른 스톤이터들에게도 삶이 끝날 때까지 지켜야 하는 존재들이 있었다. 다른 존재에게 애정을 느끼고 삶이 끝날 때까지 곁을 떠나지 않는 유구한 삶이었다. 다마야로 살았을 때부터 버려지는 것에 익숙했던 에쑨에게 호아의 존재가 얼마나 든든했을지 알 수 있었다.

 

소설 속에 펼쳐진 미지의 세계를 시리즈 1편에서부터 에쑨의 시선으로 바라본 터라 사실 나쑨에게 그리 애정이 가질 않았다. 에쑨이 오로진으로 살아가며 어떤 일을 겪었는지 뼈에 사무치도록 새겨졌기 때문에 딸 나쑨과 아들 우체를 단단히 교육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샤파가 다마야에게 그랬던 것처럼 두 아이의 손을 제 손으로 부러뜨리는 엄마의 심정이 오죽했을까 싶다. <오벨리스크의 문>에서 에쑨과 나쑨의 시점이 번갈아가며 등장했어도 마음이 기울질 않았었다.

그런데 마지막 시리즈를 읽으니 안쓰러움이 느껴졌다. 자신의 동생을 때려죽인 아버지의 손에 붙들려 오로진을 고치기 위해 끌려간 나쑨이 무슨 짓을 해도 아버지는 딸을 그 자체로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아버지에게 바랐던 애정을 샤파에게 느끼고 또 사랑받게 되면서 그를 살리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하겠다고 하는 건 당연한 행동이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한 사람을 살리겠다고 자신을 포함한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돌로 변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건 이해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동생이 죽고 아버지의 손에 끌려 떠났을 때 여덟 살이었고, 현재 열 살밖에 안 됐으니 나쑨이 부모의 정에 매달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고 본다.

 

전편에서부터 예견했던 에쑨과 나쑨의 대립이 소설 후반에 이어져 어떻게 될지 몰라 긴장하게 만들었다. 부모가 아닌 사람에게 부모의 정을 느끼는 나쑨과 그런 나쑨을 말리기 위해 제 몸을 바칠 각오를 하는 엄마 에쑨의 모습이었다. 역시나 암시했던 대로 끝나긴 했으나 그래도 새드엔딩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결말이었다. 어쩌면 에쑨에게 가장 좋은 결말인지도 모르겠다. 등장했을 때부터 무한한 애정을 줬던 존재와 함께하는 삶을 살게 되었으니 말이다. 물론 그녀는 전부 기억할 수 없겠지만.

 

<다섯 번째 계절>을 읽을 때 낯선 SF 장르에 푹 빠져서 읽었었다. 그리고 <오벨리스크의 문>에서는 더 확장된 세계관을 가늠할 수 없어 질질 끌려가며 읽었다. 그리고 마지막 <석조 하늘>을 읽으면서 어떻게 이런 세계를 생각해냈는지 내내 감탄했다. 더불어 이전 시리즈에서 슬쩍 보여준 설정을 마지막에 다시 풀어놓기도 했다.(가물가물해서 기억나지 않는 부분도 있긴 하지만..)

특정 장르의 영화, 책을 볼 때마다 하는 얘기지만, 나는 상상력이 형편없는 사람이라 이렇게 새롭게 창조된 세계를 보면 경외감을 느낀다. 게다가 "부서진 대지"는 3부작이나 되니 작가의 상상력이 놀랍고 또 대단하기만 하다. 최근에 출판된 작가의 단편집은 읽다가 내 스타일이 아니라서 그만뒀는데, 장편은 또 읽어보고 싶다.

 

 

 

* 이 리뷰는 황금가지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아버지 대지에게는 자식이 있었다. 그 자식을 잃었을 때 대지는 분노했고, 계절을 몰고 왔다.
(……중략)
어느 날 대지의 자식이 돌아온다면……. 그건 언젠가 아버지 대지가 마침내 분노를 가라앉힐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언젠가 때가 되면 계절이 사라지고 세상만사가 올바르게 돌아갈 것이라는 메시지다. - P58

계절에는 모든 것이 변한다. 그리고 너의 일부는 외롭고, 쓸쓸하고, 복수심에 불타는 여성의 목소리를 내는 데 지쳤다. 네가 가족을 만드는 데 필요한 건 나쑨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너 혼자서 세상을 바꾸려 해서도 안 될지도 모른다. - P379

실 아나기스트는 환상 속에 세워졌고, 우리는 거짓말의 산물이다. 그들은 우리의 진정한 모습을 알지 못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운명과 미래는 우리가 결정할 몫이다. - P282

내가 세상을 무너뜨리는 건 내가 틀렸기 때문이다. 다시 시작하렴. 네가 옳았어. 세상을 변화시켜라. 네가 남겨 놓은 아이들을 위해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어. 코런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으로. 우리 같은 사람들, 너와 나, 이논과 우리 사랑스러운 아들, 우리 아름다운 아이가 온전하고 완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곳으로. - P398.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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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아더 피플 - 복수하는 사람들
C. J. 튜더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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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에 오른 게이브는 꽉 막힌 고속도로를 보며 자신을 채근하던 아내 제니의 말이 떠오른다. 일주일 중 하루라도 집에 일찍 들어와 가족과 저녁을 먹고, 딸 이지에게 책을 읽어달라는 협박에 가까운 당부였다. 게이브는 나름대로 한다고 노력했지만 오늘 약속을 제시간에 지키기 어려울 것 같다. 고속도로가 막히는 데다가 제니는 전화를 받지 않고, 핸드폰 배터리도 겨우 1% 남아있어 연락할 방법이 없다.

 

답답한 마음에 앞만 바라보고 있던 그는 굉장한 고물인 앞차에 눈길이 갔다. 오래된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어있었고 보험도 안 들어줄 만한 고물에다가 번호판 숫자도 일부만 남아있어 이상하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런데 그 차 유리창에 웬 여자아이의 얼굴이 갑자기 나타났다. 대여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금발의 여자아이가 왠지 이지처럼 보였다. 그 나이대 아이는 대개 비슷하게 생겼지만, 앞니 하나가 빠져있고 "아빠"라고 말하는 입모양을 보니 틀림없이 자신의 딸이라는 생각이 든다. 게이브는 차를 쫓아가지만 이내 놓치고 말았다.

그래서 휴게소로 들어가 공중전화로 집에 전화를 걸었더니 모르는 사람이 전화를 받았다. 경찰이라고 밝힌 그 여자는 아내와 딸에게 일이 생겼으니 빨리 집으로 와달라고 말했다.

 

 

 

소설은 2016년에 눈앞에서 딸을 놓쳐버린 게이브의 시점으로 시작됐다. 그리고선 곧바로 3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2019년에 고속도로 휴게소를 전전하며 여전히 딸 이지를 찾는 게이브의 모습으로 이어졌다. 이지가 탄 차를 쫓다가 놓치고 집으로 전화를 걸었을 때 경찰에게서 아내와 딸이 집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고, 그의 장인이 직접 시신 확인을 해서 장례까지 치렀으나 게이브는 이지가 죽지 않았다고 믿으며 내내 찾으러 돌아다녔다. 제니와 함께 살던 집은 진작에 팔렸고 회사는 당연히 그만뒀다. 캠핑카를 타고 다니며 이지의 흔적을 찾아 길에서 피폐한 생활을 이어가는 슬픈 아빠의 모습이었다.

 

게이브의 시점 외에 등장한 다른 인물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일하는 케이티였다. 그녀는 두 아이를 홀로 키우고 있었던 탓인지 게이브의 사연을 알고 안타까워했다. 그가 딸을 찾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지며 올 때마다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프랜이라는 여자가 앨리스라 부르는 여자아이를 데리고 여기저기 도망치는 모습도 보여줬다. 표면적으로는 엄마와 딸처럼 보이지만 그 두 사람이 그런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등장했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앨리스가 사실은 게이브의 딸 이지라는 것 역시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앨리스가 된 이지가 프랜을 따라다닐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시체 안치소에 있던 아이의 정체 등 많은 것들이 밝혀지는 과정이 중요했다.

 

게이브가 이지를 찾는 여정, 프랜의 도주와 앨리스의 기면증, 그리고 케이티는 그들과 과연 무슨 관계인지 밝혀지는 과정이 이어지면서 비밀이 하나둘씩 드러났다. 소설이 시작했을 때부터 뭔가 감추고 있었던 게이브의 과거 사건이 그의 현재에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프랜의 과거 역시 그녀의 발목을 붙잡았다.

그들 뒤에 알게 모르게 숨어있던 것은 "디 아더 피플"이라는 어떠한 조직이었다. 억울하게 가족을 잃었거나 범죄의 피해자가 되었는데, 가해자는 버젓이 살아서 돌아다니며 적법한 처벌을 받지 않은 걸 보고 분통하는 사람들을 위한 다크 웹 사이트였다. 자신의 사연을 올리면 디 아더 피플에서 타깃을 처리해 줬다. 그들과 자신의 연결고리를 찾을 수 없는 건 당연했고, 스스로 손에 피를 묻히지 않아도 된다는 이점이 있었다. 대신 그들이 시키는 일을 언젠가는 꼭 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다. 요구 하나에 대가 하나였다.

 

디 아더 피플이 하는 일은 얼마 전에 읽은 소설 <더 체인>과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더 체인>에서는 납치된 자식을 구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아이를 납치해야 된다는 조건이 있었는데, 이 소설의 조직은 개인적인 복수였다. 스스로 범죄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과 아무도 모르게 청부 살인을 할 수 있다는 큰 차이점이 있었다.

그래도 체인보다 디 아더 피플이 좀 나아 보이던 이유는 범죄자를 처단한다는 데에 있었다. 법이라는 게 절대적이지 않고, 인권을 운운하며 가해자 처벌이 미약하기 그지없다 보니 누군가의 손을 빌려서라도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됐다. 특히 우리나라 헌법은 가해자를 위한 법이라는 생각이 들어 이런 조직이 실제로 있다면 미약한 처벌을 받은 몹쓸 인간들이 모두 사라질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후반부를 읽다 보니 사연이 어찌 됐든 다 들어주는 것 같아서 조금 무섭기도 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의도한 게 아닌데도 원한을 사게 될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대신해주는 복수라는 독특한 설정이 흥미로웠던 소설이었다. 납치당한 아이를 찾는 아빠의 부성애와 아이를 향한 여러 종류의 모성애가 있었다. 제 자식이든 아니든 부모가 된 사람들의 마음은 비슷하다는 걸 느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좀 안타깝기도 했다.

 

 

 

이지는 어느 빌어먹을 시체 안치소에 차가운 시신으로 가만히 누워 있지 않았다. 아이는 살아 있었다. 그가 보았다. 그 녹슨 고물차 안에서. - P104

"경찰에서 네 아내를 죽이고 딸을 납치한 범인을 알아냈다고 쳐. 그런데 놈이 교묘하게 빠져나가서 활보하고 다니는 거야. 누가 봐도 죄인인데. 그럼 어떻게 할래?
(……중략)
그런데 누가 와서 그걸 바로잡아주겠다고 해. 그 사람들에게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고, 너와 같은 고통을 안기겠다고. 네 손은 더럽힐 필요 없어. 너는 절대 엮일 일이 없어." - P164.165

"인간이라면 대부분 우울의 늪을 헤매던 순간에 누군가가 죽길 바란 적이 있을 거예요."
"차이점이 있다면 디 아더 피플은 그 소원을 이루어준다는 거죠." - P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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