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조 하늘 부서진 대지 3부작
N. K. 제미신 지음, 박슬라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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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나니스 군대가 카스트리마를 공격하자, 에쑨은 오벨리스크의 문을 열어 레나니스를 파괴했다. 그 여파로 에쑨은 얼마 동안 식물인간 상태로 있다가 이제 막 깨어났다. 카스트리마 향마저 파괴되어 이카는 향민들을 이끌고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고, 에쑨은 들것에 실려 옮겨지고 있었다. 깨어난 그녀는 알라배스터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한쪽 팔 역시 돌로 변해버려 스톤이터 호아에게 먹인다. 그리고 그녀는 어딘가에 살아있을 딸 나쑨을 만나려고 한다.

 

아버지 지자를 죽인 나쑨은 수호자 샤파와 함께 제키티를 떠난다. 샤파는 다른 수호자 둘을 죽이고 오는 길에 어린 오로진들도 떼어뒀다. 나쑨은 스톤이터 스틸의 조언에 따라 계절을 끝내기 위해 달을 대지로 끌어오기로 한다. 하지만 길을 떠난 이후 샤파의 상태가 계속 안 좋아지자, 나쑨은 샤파를 살리기 위해 오벨리스크들을 끌어모아 공명한다. 샤파 한 사람의 생존으로 아버지 대지의 모든 사람들이 돌로 변해 죽는다고 해도 나쑨은 개의치 않는다.

 

오래전, 고요 대륙이 "실 아나기스트"로 불렸을 무렵, 그곳에는 조율기로 만들어진 아이들이 수호자들의 관리하에 교육을 받으며 살고 있었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임무를 잘 알고 있었고 그것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걸 이해했다.

그러나 수호자들보다 자신들과 훨씬 비슷한 존재인 켈렌리가 나타나면서 아이들은 꽁꽁 묶어두었던 감정을 드러내고 자아에 대해 인식하게 된다.

 

 

 

 

엄청난 상상력으로 놀라게 한 "부서진 대지" 3부작의 마지막 이야기인 <석조 하늘>을 읽었다. 전편 <오벨리스크의 문>에서 에쑨을 향한 불길한 암시가 많아서 걱정하면서 읽기 시작했다.

 

1편에서부터 에쑨과 여러모로 깊은 관계였던 알라배스터가 돌로 변해 스톤이터에게 먹힌 충격적인 끝을 보여줬었는데, 마지막 시리즈에서 에쑨에게도 그 일이 발생했다. 전편의 암시 때문인지 에쑨이 아프지 않고 한 번에 사망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터라, 이런 자잘한 병(?)은 일어나지 않을 줄 알았다. 한쪽 팔이 돌로 변해서 무겁게 질질 끌고 다녀야 했고, 조산술도 쓸 수가 없었다. 호아가 팔을 먹은 뒤에 시간이 좀 지나고 나자 다른 신체 부위까지 돌로 변해 안타까움을 느끼게 했다.

아마도 오로진의 숙명인 것 같았다. 멀쩡했던 몸이 어떤 원리로 돌로 변하게 되는지 초반엔 알 수가 없었지만, 열 반지라 엄청나게 강했던 알라배스터마저도 생의 말미에는 점점 돌로 변해가는 몸뚱이로 침대에만 누워지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았다.

그래도 다행히 에쑨에게는 그녀에 대한 깊은 애정이 있는 호아가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에쑨만큼은 지켜주고 마지막까지 보살펴 줄 든든한 존재였다.

 

그런 호아의 비밀이 마지막이 되어서야 드러났다. 실 아나기스트에서 조율기로 만들어진 존재였다는 게 충격이었다. 그것도 호아(호와)뿐만이 아니라 다른 많은 아이들이 수단을 위해 만들어졌다. 그것도 모르고 살았다는 게 가여웠다. 감정을 강제로 거세당한 순종적인 그들의 모습은 살아있다고 볼 수가 없었다. 다행히 켈렌리가 있었던 덕분에 자신들이 어떤 존재인지 깨닫고 감정을 올곧이 드러내기도 했지만, 아버지 대지에게서 달을 떼어놓은 사건과 연결되어 또다시 안타까움을 느끼게 했다. 그리고 아주 오랜 세월 동안 그렇게 살았다는 것에서 가늠할 수가 없는 외로움이 느껴졌다.

하지만 호아에게는 에쑨이 있었다. 그리고 다른 스톤이터들에게도 삶이 끝날 때까지 지켜야 하는 존재들이 있었다. 다른 존재에게 애정을 느끼고 삶이 끝날 때까지 곁을 떠나지 않는 유구한 삶이었다. 다마야로 살았을 때부터 버려지는 것에 익숙했던 에쑨에게 호아의 존재가 얼마나 든든했을지 알 수 있었다.

 

소설 속에 펼쳐진 미지의 세계를 시리즈 1편에서부터 에쑨의 시선으로 바라본 터라 사실 나쑨에게 그리 애정이 가질 않았다. 에쑨이 오로진으로 살아가며 어떤 일을 겪었는지 뼈에 사무치도록 새겨졌기 때문에 딸 나쑨과 아들 우체를 단단히 교육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샤파가 다마야에게 그랬던 것처럼 두 아이의 손을 제 손으로 부러뜨리는 엄마의 심정이 오죽했을까 싶다. <오벨리스크의 문>에서 에쑨과 나쑨의 시점이 번갈아가며 등장했어도 마음이 기울질 않았었다.

그런데 마지막 시리즈를 읽으니 안쓰러움이 느껴졌다. 자신의 동생을 때려죽인 아버지의 손에 붙들려 오로진을 고치기 위해 끌려간 나쑨이 무슨 짓을 해도 아버지는 딸을 그 자체로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아버지에게 바랐던 애정을 샤파에게 느끼고 또 사랑받게 되면서 그를 살리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하겠다고 하는 건 당연한 행동이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한 사람을 살리겠다고 자신을 포함한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돌로 변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건 이해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동생이 죽고 아버지의 손에 끌려 떠났을 때 여덟 살이었고, 현재 열 살밖에 안 됐으니 나쑨이 부모의 정에 매달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고 본다.

 

전편에서부터 예견했던 에쑨과 나쑨의 대립이 소설 후반에 이어져 어떻게 될지 몰라 긴장하게 만들었다. 부모가 아닌 사람에게 부모의 정을 느끼는 나쑨과 그런 나쑨을 말리기 위해 제 몸을 바칠 각오를 하는 엄마 에쑨의 모습이었다. 역시나 암시했던 대로 끝나긴 했으나 그래도 새드엔딩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결말이었다. 어쩌면 에쑨에게 가장 좋은 결말인지도 모르겠다. 등장했을 때부터 무한한 애정을 줬던 존재와 함께하는 삶을 살게 되었으니 말이다. 물론 그녀는 전부 기억할 수 없겠지만.

 

<다섯 번째 계절>을 읽을 때 낯선 SF 장르에 푹 빠져서 읽었었다. 그리고 <오벨리스크의 문>에서는 더 확장된 세계관을 가늠할 수 없어 질질 끌려가며 읽었다. 그리고 마지막 <석조 하늘>을 읽으면서 어떻게 이런 세계를 생각해냈는지 내내 감탄했다. 더불어 이전 시리즈에서 슬쩍 보여준 설정을 마지막에 다시 풀어놓기도 했다.(가물가물해서 기억나지 않는 부분도 있긴 하지만..)

특정 장르의 영화, 책을 볼 때마다 하는 얘기지만, 나는 상상력이 형편없는 사람이라 이렇게 새롭게 창조된 세계를 보면 경외감을 느낀다. 게다가 "부서진 대지"는 3부작이나 되니 작가의 상상력이 놀랍고 또 대단하기만 하다. 최근에 출판된 작가의 단편집은 읽다가 내 스타일이 아니라서 그만뒀는데, 장편은 또 읽어보고 싶다.

 

 

 

* 이 리뷰는 황금가지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아버지 대지에게는 자식이 있었다. 그 자식을 잃었을 때 대지는 분노했고, 계절을 몰고 왔다.
(……중략)
어느 날 대지의 자식이 돌아온다면……. 그건 언젠가 아버지 대지가 마침내 분노를 가라앉힐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언젠가 때가 되면 계절이 사라지고 세상만사가 올바르게 돌아갈 것이라는 메시지다. - P58

계절에는 모든 것이 변한다. 그리고 너의 일부는 외롭고, 쓸쓸하고, 복수심에 불타는 여성의 목소리를 내는 데 지쳤다. 네가 가족을 만드는 데 필요한 건 나쑨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너 혼자서 세상을 바꾸려 해서도 안 될지도 모른다. - P379

실 아나기스트는 환상 속에 세워졌고, 우리는 거짓말의 산물이다. 그들은 우리의 진정한 모습을 알지 못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운명과 미래는 우리가 결정할 몫이다. - P282

내가 세상을 무너뜨리는 건 내가 틀렸기 때문이다. 다시 시작하렴. 네가 옳았어. 세상을 변화시켜라. 네가 남겨 놓은 아이들을 위해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어. 코런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으로. 우리 같은 사람들, 너와 나, 이논과 우리 사랑스러운 아들, 우리 아름다운 아이가 온전하고 완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곳으로. - P398.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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