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담 싸부 - Chinese Restaurant From 1984
김자령 지음 / 시월이일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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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교 두위광은 어릴 때 처음 짜장면을 먹어본 이후 중국집에 뼈를 묻었다. 인천 차이나타운의 중국집에서 일하게 해달라며 조르고선 주방에 몰래몰래 드나들며 나중엔 싸부로 모시게 된 요리사의 행동 일거수일투족을 눈에 담았다. 그렇게 열심히 한 결과 위광은 명동의 호텔 중식당을 책임지기도 하고 역대 대통령과 여러 인사들이 드나드는 중국집을 운영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위광이 책임지고 있는 '건담'은 오랜 단골들만 드나드는 곳이 되어버렸다. 한때 위광의 밑에서 일하다가 가게에 불을 지르고 나간 정비소는 곡비소라는 이름으로 화교 행세를 하며 건담 근처에 중식집을 차렸는데, 매일 손님들이 줄을 서고 있다. 위광은 그의 꼴이 영 마뜩잖다.

이렇게 명성은 조금 사그라들긴 했어도 위광의 청요리는 으뜸이었다. 오죽하면 위광을 간귀신, 간신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위광의 요리 간이 엉망이 됐다. 손님에게 나간 음식이 짜거나 싱거워서 주방으로 다시 들어오기 일쑤였다. 함께 일하던 직원들이 위광이 어디 아픈 거 아니냐며 이상하게 여길 때쯤 생전 지각을 하지 않던 그가 늦어서 헐레벌떡 뛰어오기도 하고 웍을 놓치기도 하는 등 여러 실수를 반복한다.



소설은 고희를 훌쩍 넘긴 중식 주방장 두위광이 주인공이었다. 어릴 때부터 주방에서 살다시피한 사람이라 사회성이 조금은 부족하고, 이제는 나이가 들어 누군가와 소통하는 방식 또한 잘 모르는 노인이라고 할 수 있었다. 결혼도 하지 않고 혼자 산 그의 유일한 가족은 요리뿐이었다. 먹는 이에게 기쁨을 주는 게 그가 누군가와 소통하는 유일한 방식이었다.
위광의 혀가 정확해서 요리 또한 너무나 훌륭한 나머지 그를 싸부라고 부르며 따르는 이들이 건담에서 일하고 있었다. 호텔 부주방장까지 거친 주원신은 위광의 요리에 반해 건담에서 일한 지 4년이 되었다. 젊은 강나희와 도본경 역시 손님으로 건담에 왔다가 일을 하게 된 경우였다. 그리고 홀 매니저 고창모도 오랫동안 위광과 함께 일하며 홀 서빙, 손님 접대, 바쁠 땐 설거지까지 하는 만능 직원이었다.

그러던 중 위광이 점점 이상해지다 싶더니 간을 못 보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건담의 이인자 주원신이 몰래 간을 보고 음식을 내보내게 된다. 무슨 일이 있는지 직원들에게는 말하지 않던 위광은 가게를 정리해야겠다고 통보를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미슐랭 가이드에서 별을 주겠다는 연락을 받게 된다. 지난해, 지지난해에도 별을 받는 걸 거절했던 위광은 이번엔 직원들의 성화에 별을 받게 되었고, 그 별로 인해 가게는 문전성시를 이룬다.
하지만 어떤 사건으로 인해 가게에 큰 소동이 일어나 사람들에게 안 좋은 소문이 나고 직원들이 대거 그만두게 되면서 결국 건담은 폐업을 하기에 이르렀다. 소설은 그때부터 요리와 세상을 향한 위광의 변화에 무게를 두고 흘렀다.

솔직히 처음 위광이 등장했을 때부터 그리 정이 가던 캐릭터는 아니었다. 나이 많고 소리만 지르는 중식 주방장을 연상하니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참 고되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 요리를 배우고 싶어 들어온 사람들에게는 딱히 뭔가를 가르쳐주지 않고 소리만 버럭버럭 지르니 좋게 보일 리가 없었다. 게다가 고집불통이라는 점 또한 좋게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진짜로 건담을 폐업한 이후 고창모, 강나희, 도본경이 두광을 계속 찾아오며 함께 밥을 먹고 시간을 보내고, 나중엔 집에서 이것저것 함께 하게 되면서 꽉 막힌 노인이었던 그가 스스로 변화하겠다는 마음을 먹게 된다. 그때부터 위광은 여태껏 간을 못 맞추던 비극에서 벗어나 맛과 향의 향연을 느끼게 됐고, 나중엔 그들과 함께 새로운 시도를 하는 모습까지 보인다. 정통 중식만 하던 위광의 변화는 실로 놀라울 지경이었다. 나이가 많은 그가 변화를 받아들이기가 너무나 어려웠을 텐데, 한 번 내디딘 발걸음은 거칠 것이 없었다.
자신을 믿고 따르며 정을 보여준 고창모, 강나희, 도본경과 함께 새로운 도전을 하는 걸 보며 정말 유쾌했고 조금은 뿌듯한 마음도 들었다. 동시에 위광과 그들이 만드는 새로운 요리를 맛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소설을 읽는 내내 중식이 너무나 먹고 싶었다. 고소한 짜장면 냄새, 얼큰한 짬뽕, 달달하고 바삭한 탕수육과 먹어본 적 없는 고급 중식까지 글로 맛볼 수 있었다. 그리고 중반 이후엔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뭉클하고도 유쾌하게 그려져서 재미있게 읽었다.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요리는 먹이는 일이다. 무슨 말인 줄 알아?"
"먹이는 일이요?"
"맛있게 만들어 내는 거, 그걸로 솜씨를 뽐내고 칭찬을 듣는 거… 그런 건 저 아래에 있는 거다. 속이지 않고 좋은 재료를 쓰고, 적당한 값을 받고, 청결하고, 그 마음도 깨끗한 거… 이건 기본 중에 기본이지. 요리는 거기다가 누군가를 먹인다는 마음, 베푼다는 생각이 있어야 한다. 그 진심이 있어야 진짜 요리, 최고의 요리가 나온다." - P291

위광이 먹은 것은 단순한 한 끼의 식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꺼져가던 생명을 되살린 부활의 음식이었다. 양갱을 훔친 소년에게 내밀었던 짜장면처럼, 영혼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은 구원이었다.
(……중략)
그 요리에는 그들의 마음이 담겼다. 먹는 이를 헤아리는 마음, 그 진심이 고스란히 그 안에 있었다. 그것이 바로 요리의 정수이자 비기다. 그렇게 만든 요리는 아픈 이를 낫게 하고 죽어가는 사람도 살린다. 엄마의 요리가 그런 것처럼. - P302

‘바꿔보자. 모든 것을 바꿔보자. 가지 않던 길, 가본 적이 없던 길을 가보는 것이다. 머리에 피가 고여 있었듯, 평생을 주방 안에 머물러 있었다. 밖으로 나가자. 세상을 보자.‘ - P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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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전자
조경아 지음 / 나무옆의자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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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경찰서에 여러 사람이 모여 있다. 김밥집에서 난동을 부리다 잡혀온 기성우, 김밥집 주인 아주머니, 그리고 모든 걸 목격한 학생 보미였다. 그리고 경찰들은 그 상황을 그리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듯했다. 그로 인해 화가 난 건 보미뿐이었다. 이런 상황에 어떤 남자가 기성우의 일로 합의를 하겠다며 경찰서에 급히 들어왔다. 역시 대단한 집 아들이었다고 생각하던 보미는 남자가 제시한 합의 금액에 화들짝 놀란다. 그런데 웃기게도 그 상황에 놀란 건 역시나 보미뿐인 것 같았다.

기성우가 김밥집 아주머니에게 고개를 숙이며 사죄를 하고 떠나는 모습을 본 보미에게 경찰이 말을 걸었다. 기성우는 자신의 아버지가 피해를 입힌 사람들에게 이런 식으로 작은 소란을 떨고 대신 사죄하고 피해 보상금이라도 챙겨주고 싶어서 저런다고 말이다.
경찰서 밖으로 나온 보미는 자신의 어깨를 톡톡 두드리는 기성우와 마주한다. 이후 두 사람은 햄버거를 함께 먹으며 이런저런 대화를 하게 된다. 기성우에 대한 오해가 조금은 풀린 보미는 그에게 '복수전자'의 QR코드가 담긴 간결한 명함을 건네주고 떠난다.



요즘에도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전파사라는 명칭으로 불리는 복수전자는 평범한 곳이 아니었다. QR코드만 달랑 있는 명함부터 독특했기에 관심을 가지는 게 당연했다. 기성우는 QR코드를 통해 복수전자 게임을 다운로드 받았고, 50단계에 이르는 게임을 마스터했다. 그렇게 엔딩에 이르자 복수전자 미션을 완료했다며 분이 풀리지 않으면 연락하라는 전화번호가 떴다. 기성우는 전화를 걸기보다 직접 찾아가기로 결심하고 복수전자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뛰어난 기억력을 가진 도팔과 의뢰자 응대 및 관리를 하고 있는 요셉, 그리고 이 모든 걸 설계한 테오 신부님을 만나게 된다.

복수라는 감정에는 억울함이 있었다. 상대를 향한 원망 또한 존재했다. 하지만 소소한 일로 복수를 하고 싶다는 마음은 생기지 않는 게 당연했다. 정말 악한 인간이 아니고서야 말이다. 평범한 사람이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그 억울함을 법이 해소해 주지 않을 때 복수심이라는 마음이 생겨나게 된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은 복수를 할 수가 없었다. 기껏해야 상대에게 신체적 위해를 가하는 게 전부일 텐데, 그렇게 하고 나면 마음은 편하겠지만 복수를 한 당사자는 법적 제재를 피할 수가 없다. 그로 인해 복수를 한 당사자의 인생 또한 망가진다.
그런 사적인 복수를 복수전자가 대신해 준다고 했다. 의뢰인의 복수심 검증을 위해 게임 50단계를 완료해야 하고, 전화 연락과 직접 면담을 거친 후에는 수십 페이지에 이르는 설문지를 작성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까지 완료한 뒤에는 복수전자에 복수를 일임하는 서류와 비밀 유지 각서 또한 써야 했다.
이렇게 복잡하고 힘든 복수의 단계를 거쳐야 함에도 불구하고 기성우는 255번째 의뢰인이 되었다. 재미있는 건 복수전자에서 복수를 할 때 기존 의뢰자들이 재능기부 형식으로 도와준다는 것이었다. 기존 의뢰자들에는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포진해 있었고, 심지어는 밝힐 수는 없지만 높으신 분도 있다고 했다. 그래서 복수전자의 복수는 전문적이었다.

복수전자에 몸을 담은 세 사람과 기성우가 장기적인 복수를 계획하게 되면서 여러 의뢰자들이 등장했다. 부당한 청탁을 거절했다는 이유로 정직 3개월, 보수 삭감 처분을 받은 9급 공무원 옥선정, 수학여행에 간 딸이 버스 운전자의 졸음으로 목숨을 잃자 분노한 아버지 한상현, 여섯 살 딸을 살해한 10대들에게 복수를 하고 싶은 엄마 정혜영 등이 있었다. 그리고 자신을 감옥에 보낸 목격자에게 보복을 하려고 가짜 의뢰를 한 윤두성과 테오 신부와의 원한이 있는 마우석 또한 의뢰자로 등장했다.
중반까지는 복수를 하고 싶은 의뢰자들의 사연이 주를 이루는 사이사이에 기성우가 자발적으로 복수전자의 인턴으로 일하게 되면서 내부 사정을 조금씩 보여줬다. 그러다 중반을 넘어간 이후에는 요셉과 테오 신부의 사연을 중심으로 흐르며 그들이 복수전자를 만들게 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안타까운 사연 없는 사람 하나 없었다. 특히 어린 딸을 잃은 엄마의 사연은 실제로 일어난 어떤 사건을 떠올리게 해서 나도 모르게 화가 절로 솟구쳤다. 아마 모든 이가 공분할 사연일 것이다. 그리고 그 복수의 결말은 복수전자가 원하는 방향은 아니었지만 내가 보기엔 최고라고 할 수 있는 끝을 맺어서 속이 후련했다.

책을 읽으면서 대신 통쾌함을 느꼈던 건 복수라는 감정이 생겨날 수밖에 없는 사회적 현실 때문이었다. 법은 가해자에게 합당한 처벌을 내리지 않으니 말이다. 그 때문에 피해자와 유가족들은 복수심이 생겨나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복수전자가 현실에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다시는 그런 짓을 못하도록 만드는 것이야말로 또 다른 복수심을 가지게 될 피해자가 생겨나지 않게 만드는 방법일 것 같아서 말이다.



​​​​​​​

"복수라는 것이 또 다른 피해자가 발생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면 해볼 만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우리는 복수심으로 인생을 망칠 수 있는 사람들을 대신해서 복수를 해주고 있는 겁니다. 비교적 영리하게." - P62

"복수를 한다고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이렇게 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죠.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듯 고통의 통점도 다른 법이니까. 내겐 고통이지만 상대방에겐 그게 행복일 수도 있다는 겁니다.
(……중략)
진짜 복수는 내가 아닌 그 사람이 가장 끔찍하게 여기는 무언가를 던져주는 겁니다. 그게 당신한테는 달콤한 꿀처럼 여겨지더라도." - P96

내게 닥친 불행이 어디선가 누군가에게 다시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어쩌면 그 마음이 복수전자 사람들이 바라던 진정한 복수일지도 모르겠다. - P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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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마름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11
요 네스뵈 지음, 문희경 옮김 / 비채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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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홀레는 라켈과 결혼해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무시무시한 사건들에서 떨어져 경찰대학의 교수로 평범하게 지내고 있다. 아들 올레그는 무사히 경찰대학에 입학해 종종 그의 강의를 듣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오슬로에 기이한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성폭행 전담 변호사 엘리세 헤르만센이 집에서 살해당한 채 발견됐다. 범인은 억지로 침입한 흔적이 없었고, 그녀가 집 안에서 범인의 공격을 받은 뒤 안전 체인을 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특이하게도 그녀의 목 부위에 물린 흔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물린 부위에는 녹이 검출됐고, 피해자가 흘린 피와 시신에 남은 피를 조사한 결과 혈액이 한참 모자라다는 검시 결과를 받았다.

사람의 신체를 물고 피를 마셨을지도 모르는 이 사건은 '뱀파이어병'에 걸린 이가 범죄를 저질렀을 거라 추정하고 사건을 수사하기 시작하는데, 안타깝게도 이 사건은 끝이 아닌 시작일 뿐이었다. 연쇄살인으로 보이는 사건이 계속해서 일어나면서 경찰은 데이팅 앱을 예의주시하지만, 사건의 주기가 점점 짧아지는 데다가 나중엔 해리가 단골로 다니던 레스토랑에 새로 온 직원까지 사라지고 만다. 결국 해리는 다시 사건으로 뛰어들 수밖에 없게 된다.



시리즈가 10권까지 이어지는 동안 내내 불행했던 해리가 드디어 행복의 길에 접어들었다. 라켈과 결혼해 단란한 삶을 살며, 그를 괴롭히며 놔주지 않을 것 같던 살인사건에서도 멀어져 있었다. 해리 역시 이 현실이 꿈은 아닌지 조금은 불안한 듯 보였지만, 그는 평범한 생활을 만끽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작가는 해리를 괴롭히는 걸 여전히 멈추지 않았다. 경찰대학에서 학생들을 잘 가르치고 있던 그를 다시금 사건 속으로 발을 들여놓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심지어 중반 이후에는 라켈에게도 문제가 생기는 바람에 그의 행복이 이대로 깨져버리는 건가 걱정이 되기도 했다.

첫 번째 뱀파이어병 사건이 일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미카엘 벨만은 차기 법무부 장관의 내정자가 된다. 그가 경찰청장의 마지막을 잘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해리가 꼭 필요했다. 그래서 뱀파이어병 사건을 위해 임시로 현장에 돌아와 팀을 꾸려 수사를 해 달라고 부탁하는데, 해리가 그걸 받아들일 리가 없었다. 그러자 미카엘은 경찰학교에 다니는 올레그를 들먹이면서 그가 과거에 저지른 사건의 증거를 가지고 있다고 협박한다. 범죄 기록이 남으면 경찰이 될 수 없기에 해리는 올레그를 위해 사건의 중심에 들어가게 된다.
카트리네 브라트가 수사 책임자로 사건을 책임지고 있던 덕분에 해리는 그녀에게서 적극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는 사이 또 다른 사건이 일어나 해리는 자신의 팀을 빨리 꾸려야 했다. 함께 일했었던 과학수사관 비에른 홀름과 이제 막 강력반에 들어온 안데르스 뷜레르, 그리고 뱀파이어병 전문가로 알려진 할스테인 스미스 박사가 한 팀이 되어 그들만의 수사를 시작했다.

범인은 생각보다 일찍 밝혀져 조금은 당황스럽게 했다. 그 자는 이전 시리즈인 <폴리스>의 마지막 부분에 잠깐 등장해 심리학자 스톨레 에우네의 딸 에우로라와 마주치기도 했던 캐릭터였다. 전편이 그렇게 끝나서 조금 불안했지만 이번 시리즈에서 그 사건에 대한 언급이 없어서 별일이 아니었나 보다 했다. 그런데 중반을 넘어 그 사건이 밝혀져 분노하게 만들었다. 그나마 에우로라가 그놈에게 살해당하지 않고 살아있다는 게 다행인지도 몰랐다.
이르게 밝혀진 범인은 놀랍게도 중간에 사망을 하는데, 그때부터 이 사건의 진범이 누구인지 모두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해리와 계속 함께 일했던 동료들을 제외하고 이번 시리즈에서 새롭게 등장한 모든 캐릭터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신입 경찰 안데르스는 물론이고 뱀파이어병 연구자인 할스테인, 혈액 전문 의사 스테펜스까지 모두가 의심스럽기만 했다.
그러다 후반에 이르러 진짜 범인이 밝혀지는데, 해리가 함정을 잘 판 덕분에 모든 걸 설계한 진짜 범인은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기 입으로 술술 실토를 한다. 하지만 이후엔 해리가 범인의 인질이 되어 위기에 빠지지만, 해리는 괴로운 인생을 살고 있긴 해도 절대 죽지 않는 주인공이라 무사히 살아나고 범인도 잡는 결말을 맞이했다.
우려스럽게도 교도소에 수감됐던 범죄자가 출소를 해 쇠이빨을 손에 넣는 엔딩을 보여주며 또 다른 범죄의 시작을 알리긴 했지만 말이다.

이번 시리즈에서는 라켈과 카트리네가 정말 걱정이 됐었다. 라켈은 뭔가 낌새가 있더니 갑자기 코마 상태가 됐고, 카트리네는 동거를 했던 비에른 홀름과의 사이에서 아기를 가졌기 때문이었다. 해리와 사적으로는 물론이고 공적으로도 친했던 여자 캐릭터들에게 모두 안 좋은 일이 생겼었기 때문에 두 사람에게도 큰일이 일어날까 전전긍긍하며 읽었다. 다행히 두 사람은 무사했지만 다음 시리즈는 또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으니 후속편을 읽으면 또 불안할 것 같다.



​​​​​​​

그가 그녀를 죽이지 않은 이유는 그녀에게 말하게 하고 싶어서였다. 무엇을 보았는지 말하게 하려고. 해리가 이미 아는 것을 말하게 하려고. 해리가 나와서 놀아야 한다는 사실을. - P226

"그가 힘과 통제력을 얻으면 어떤 기분인지 안 이상 이제 누구도 그에게서 힘과 통제력을 빼앗아갈 수 없어요. 해리, 당신 말이 맞아요, 그가 당신을 쫓고 있어요.
(……중략)
그는 해리 당신과 직접 대면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다만 통제력이 자기한테 있다는 걸 당신과 다른 모든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은 겁니다. 당신의 공간으로 쳐들어가서 당신 것 중 하나를 가져갈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는 겁니다." - P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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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 오늘의 젊은 문학 5
문지혁 지음 / 다산책방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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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버 통합세기 219년. 아쿠아플래닛이라 불리는 인공행성의 제4대양 상공에서 여객기가 추락해 기장과 부기장, 승무원과 탑승객 전원이 사망했다. 유가족들이 임시 거처에 모였고, 여행 상품을 판매한 여행사 대표, 관광을 진행한 소규모 여행사 대표 또한 그 자리에 참석했다. 그러나 화가 난 유가족들로 인해 두 대표는 금세 떠나버렸고, 유가족들만이 남아 자체적으로 팀을 꾸려 탐사를 시작했다.
서재 통합세기 33년. 남자는 아내의 임신으로 3인 가구용 집으로 이사를 해야 하는 걱정을 갖고 있다. 그런 그에게 노약자 주거지역으로 이사한 어머니가 오래전 살던 집의 열쇠를 건네줬다. 그 집에 간 남자는 11살 때 아버지가 서재에 수천 권의 책을 쌓아두고 소지하고 있다는 이유로 잡혀갔을 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지구가 끝날 때까지 일곱 페이지
민윤채는 시인인 엄마와 함께 살고 있었다. 아버지는 3살 때까지만 함께 살았다는데, 윤채가 기억할 리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는 바깥에 전쟁이 났다면서 화장실에서 일주일간 숨어 지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엄마는 전쟁을 대비한다며 좁은 화장실에 갖은 통조림들과 생수를 쌓아놨었는데, 기어코 그걸 먹을 일이 생긴 것이었다.
폭수
미국에서 언어학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나'는 지도 교수의 동기이자 모교의 잡지 편집부 교수가 부탁한 일을 하고 있다. 미국에서 성공한 한국인의 인터뷰를 하는 것이었다. 하기 싫은 일을 2년째 하고 있던 나는 드디어 마지막 인터뷰를 하게 된다. 한국인 최초로 필즈상을 수상한 수학과 오상택 교수를 만나는 일이었다.

아일랜드
4달 전 딸이 택배차에 치여 죽었다. 별거 중이던 아내와 남자는 딸의 장례를 치른 후에 정식으로 이혼 절차를 밟았다. 그러고선 아이 방을 정리하던 남자는 딸이 가지고 있던 100여 권의 책 속에서 하나의 책을 발견하게 된다. 그 책을 쓴 이름과 똑같은 이름을 가진 유치원 친구와 결혼하겠다는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책을 펼쳐 읽기 시작한 남자는 책 내용에 담긴 물고기 모양의 섬을 직접 찾아가게 된다.
애틀랜틱 엔딩
카지노호텔에 온 박은 자신을 익숙하게 대하는 매니저의 안내로 스위트룸에 들어갔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던 그는 가방에서 빠져나온 총을 보고 오늘 새벽에 쏴 죽인 아내와 강을 떠올린다.

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사던 '나'는 우연히 아야를 만난다. 그리고 아야에게 얼떨결에 함께 다리를 건너지 않겠냐는 제안을 한다. 나는 제안을 받아들인 아야와 함께 조지 워싱턴 브리지를 걸어서 건너기 시작한다.
어떤 선물
이사한 집 근처에는 약국이 하나 있었다. 두통약과 진통제를 달고 사는 '나'는 약국의 존재를 반겼고, 마침 약이 필요해서 약국에 방문한다. 나이 든 약사가 책을 읽고 있는 걸 보게 됐고, 약국 한쪽에 잔뜩 쌓인 책 무더기 또한 발견하게 된다.




여덟 편의 이야기가 담긴 소설은 제각각 다른 장르와 배경을 중심으로 흘렀다. '통합세기'라는 가상의 미래가 있었고, 그 가상의 미래에는 책을 소유하는 것이 범죄로 분류되는 단편도 있었다. 그리고 현실적인 이야기 또한 존재했다. 그렇게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만, 공통적으로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잃은 사람들이 그 중심에 있었다.

재난에는 어김없이 상실이 따라오기 마련이다. 그래서 <다이버>는 아내와 자식을 잃은 남자의 상실과 공허가 짙게 다가왔다. 그 이야기를 읽으며 자연스레 떠오른 사건이 있었는데, 작가의 후기를 보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서재>, <지구가 끝날 때까지 일곱 페이지>는 국가의 통제로 개개인에게 재난이 들이닥친 거라 여겨졌던 소설이었다. <화씨 451>이 연상되던 이야기는 책의 소유라는 점으로 서로 연결되던 이야기였다. 책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재난이나 마찬가지인 두 이야기는 각각 가장인 남자와 10대 소녀가 주인공이었는데, 묘하게 닮은 듯 다르면서 연결되는 이야기라 흥미로웠다. 결말 또한 다르지만 의미가 있다는 점은 같았다.

표제작인 <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는 한국인 '나'가 겪은 재난인 성수대교 붕괴 사건, 일본인 아야가 겪은 동일본 대지진, 그리고 두 사람이 지금 머물고 있는 미국의 9·11 테러까지 각 개인의 재난과 국가의 재난을 동시에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와 아야가 재난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다리를 건너는 동안 씁쓸한 분위기가 맴돌았지만, 결국엔 조금은 안도할 만한 결말이라 마음을 놓았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분위기의 이야기들은 왠지 모를 여운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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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그래서 책을 읽으려고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겪지 않은 일을 경험할 수 있으니까. 읽는 동안만큼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으니까. <지구가 끝날 때까지 일곱 페이지> - P93

하나의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 모든 종류의 경우의 수. 그러니까 우리는 무한에 가까운 확률을 뚫고 하나의 사건에 이르러 지금 마주 보며 함께 커피를 마시고 있다……. <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 - P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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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받지 못한 밤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놀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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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키히토는 아내 에쓰코, 4살 된 딸 유미와 함께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집에 돌아온 아내가 살 게 있어서 다시 바깥에 나갔을 때, 유키히토 또한 사야 할 요리 재료가 있어서 에쓰코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아내는 지갑만 들고나간 터라 핸드폰은 가방에서 울리고 있었다. 유키히토는 에쓰코가 멀리 가지 않았을 테고, 자신 또한 금방 돌아올 거라는 생각에 베란다에서 놀고 있던 유미를 두고 급히 밖으로 나갔다.
유키히토가 앞서가는 아내를 부르려는 순간 하늘에서 뭔가가 떨어져 지나가던 경차의 앞 유리에 부딪쳤고, 운전자가 놀랐는지 차가 비틀거리다 에쓰코를 들이받았다. 에쓰코의 몸은 기이하게 뒤틀려 죽어가고 있었는데, 유키히토는 차 앞 유리를 박살 낸 게 집에서 키우는 엉겅퀴 화분이라는 걸 순간적으로 알게 된다. 유키히토는 딸 유미가 아내를 죽인 거라는 생각을 가지게 됐고, 집을 정리한 후 아버지의 집으로 들어가 일식 요리점을 함께 운영한다.

15년 후.
유미는 어느새 20살이 다 되어 대학에 다니며 유키히토의 일식 요리점에서 서빙을 돕고 있다. 석 달 전, 유키히토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그가 이어받아 가게를 꾸려나가고 있었다. 15년 전의 사건은 유키히토가 무마한 덕분에 유미는 아무것도 모르고 평범하게 자랐다.
그러던 어느 날, 유키히토에게 딸이 사고를 친 비밀을 알고 있다며, 돈이 필요하다는 어떤 남자의 전화가 걸려온다. 돈을 준비하지 않으면 딸에게 알릴 거라는 말에 유키히토는 불안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심지어 그 남자는 그의 가게에까지 찾아오기도 했다.
어떻게 가게를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장 여기를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던 유키히토는 마침 과제로 제출할 사진을 찍으러 하타가미에 가고 싶다는 유미, 누나 아사미와 함께 그곳으로 떠난다. 이 우연찮은 일로 인해 유키히토와 아사미는 어릴 적 살았던 하타가미에서 일어난 30년 전 사건과 마주하게 된다.



의도적인 것이 아니긴 했어도 화분을 떨어뜨린 유미의 행동으로 인해 아내가 죽은 건 변함없는 진실이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4살짜리 아이에게 말할 수 없는 게 당연했다.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엄마가 죽게 됐다는 걸 모르게 하기 위해 유키히토는 경찰과 경차 운전자에게 말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부탁했고, 집까지 정리한 후에 아버지의 집으로 이사를 온 것이었다. 유미가 20살이 될 때까지는 무탈한 나날이었다. 유키히토는 에쓰코가 죽은 것에 큰 충격을 받았을 테지만, 그는 딸을 지켜야 하는 의무도 있었기에 정신을 바짝 차리고 살았을 것이다. 덕분에 유미는 아무것도 모른 채 평범한 대학생이 되어 아빠의 가게를 돕기도 하는 등 쾌활한 모습을 보일 수 있었다.
그러나 며칠 전에 온 전화로 인해 유키히토는 혼란에 빠졌고, 급기야 그 남자가 가게에도 찾아오는 바람에 깜짝 놀라 쓰러지기까지 했다. 유키히토는 유미와 누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휴가를 보낼 겸 유미의 과제용 사진을 찍을 겸 해서 여행을 떠나게 된다. 유미가 존경하는 작가의 사진과 비슷한 걸 찍어보고 싶다는 바람으로 인해 하필이면 어릴 적 살던 하타가미로 가게 된 건 우연이 아니라 필연인 듯 보였다.

31년 전, 유키히토 남매의 엄마는 '신울림제'라는 지역 축제 준비를 위해 신사에서 늦게까지 일을 했다. 신사의 신관이 당시 아버지가 운영하던 가게에 전화를 걸어와 엄마가 사라졌다는 걸 알리자, 아버지는 엄마를 찾으러 나갔다. 엄마는 산비탈 아래에 쓰러져 있었고 급히 병원으로 옮겼지만 결국 세상을 떠났다.
엄마가 세상을 떠나고 1년 후인 30년 전, 신울림제에 구경을 온 사람들에게 '버석국'이라 부르는 버섯국을 매년 나눠주는 행사가 있었다. 그리고 그 마을과 신사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갑뿌'라 불리는 네 사람은 언제나처럼 특별한 버석국을 나눠먹으며 술을 마시고 있었다. 유키히토와 아사미가 축제에서 서성거리고 있을 때 벼락이 쳤는데, 누나는 벼락을 정통으로 맞았고 유키히토는 누나에게서 흘러나온 전류에 감전됐다. 두 아이가 병원에 실려가 치료를 받고 있는 동안 갑뿌 중 두 사람이 식중독에 걸려 사망했고 두 명은 중태에 빠졌다는 걸 알게 된다.

15년 전 일어난 에쓰코의 죽음에 관련된 비밀과 31년 전 어머니의 죽음, 그 1년 후에 일어난 벼락 맞은 사건과 또 다른 사건이 대체 어떻게 얽혀 있는 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어머니의 죽음과 관련된 건 어느 정도 짐작이 됐고, 거기서 1년 후의 사건이 일어난 거라는 것 또한 헤아릴 수 있었다. 짐작할 수 있는 단서가 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예상이 가능한 범위 안에서 진행됐음에도 소설은 흥미진진하게 흘러가서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게 만들었다. 몰입도가 엄청나게 좋았다.
그러다 마을에서 일어난 사건의 진실의 중심에 점점 가까이 다가가면서 15년 전의 사건을 알고 협박을 한 남자의 비밀이 밝혀졌고, 또 다른 사건들 또한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건 30년 전의 사건과 연결되어 큰 충격을 안겼다. 너무나 잘 짜인 이야기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부모의 마음이 어떤 건지 가슴이 아플 만큼 헤아릴 수 있었다. 마지막은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잘못한 사람에게 벌을 준 것뿐인데 결국 그렇게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미치오 슈스케 작가의 소설은 처음 읽은 건데 정말 재미있었다. 가독성도 좋고 잘 짜인 이야기 자체에 흠뻑 빠졌다. 다른 책들도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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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가족을 세 번 잃었다. 그래도 닷새 전까지 세상은 그럭저럭 균형을 유지했다. 비틀거리면서도 무너지지 않고 버텼다. 하지만 지금은 뼈대에 금이 가고, 불길하게 삐걱대는 소리가 확실히 들린다. -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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