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 오늘의 젊은 문학 5
문지혁 지음 / 다산책방 / 202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이버 통합세기 219년. 아쿠아플래닛이라 불리는 인공행성의 제4대양 상공에서 여객기가 추락해 기장과 부기장, 승무원과 탑승객 전원이 사망했다. 유가족들이 임시 거처에 모였고, 여행 상품을 판매한 여행사 대표, 관광을 진행한 소규모 여행사 대표 또한 그 자리에 참석했다. 그러나 화가 난 유가족들로 인해 두 대표는 금세 떠나버렸고, 유가족들만이 남아 자체적으로 팀을 꾸려 탐사를 시작했다.
서재 통합세기 33년. 남자는 아내의 임신으로 3인 가구용 집으로 이사를 해야 하는 걱정을 갖고 있다. 그런 그에게 노약자 주거지역으로 이사한 어머니가 오래전 살던 집의 열쇠를 건네줬다. 그 집에 간 남자는 11살 때 아버지가 서재에 수천 권의 책을 쌓아두고 소지하고 있다는 이유로 잡혀갔을 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지구가 끝날 때까지 일곱 페이지
민윤채는 시인인 엄마와 함께 살고 있었다. 아버지는 3살 때까지만 함께 살았다는데, 윤채가 기억할 리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는 바깥에 전쟁이 났다면서 화장실에서 일주일간 숨어 지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엄마는 전쟁을 대비한다며 좁은 화장실에 갖은 통조림들과 생수를 쌓아놨었는데, 기어코 그걸 먹을 일이 생긴 것이었다.
폭수
미국에서 언어학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나'는 지도 교수의 동기이자 모교의 잡지 편집부 교수가 부탁한 일을 하고 있다. 미국에서 성공한 한국인의 인터뷰를 하는 것이었다. 하기 싫은 일을 2년째 하고 있던 나는 드디어 마지막 인터뷰를 하게 된다. 한국인 최초로 필즈상을 수상한 수학과 오상택 교수를 만나는 일이었다.

아일랜드
4달 전 딸이 택배차에 치여 죽었다. 별거 중이던 아내와 남자는 딸의 장례를 치른 후에 정식으로 이혼 절차를 밟았다. 그러고선 아이 방을 정리하던 남자는 딸이 가지고 있던 100여 권의 책 속에서 하나의 책을 발견하게 된다. 그 책을 쓴 이름과 똑같은 이름을 가진 유치원 친구와 결혼하겠다는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책을 펼쳐 읽기 시작한 남자는 책 내용에 담긴 물고기 모양의 섬을 직접 찾아가게 된다.
애틀랜틱 엔딩
카지노호텔에 온 박은 자신을 익숙하게 대하는 매니저의 안내로 스위트룸에 들어갔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던 그는 가방에서 빠져나온 총을 보고 오늘 새벽에 쏴 죽인 아내와 강을 떠올린다.

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사던 '나'는 우연히 아야를 만난다. 그리고 아야에게 얼떨결에 함께 다리를 건너지 않겠냐는 제안을 한다. 나는 제안을 받아들인 아야와 함께 조지 워싱턴 브리지를 걸어서 건너기 시작한다.
어떤 선물
이사한 집 근처에는 약국이 하나 있었다. 두통약과 진통제를 달고 사는 '나'는 약국의 존재를 반겼고, 마침 약이 필요해서 약국에 방문한다. 나이 든 약사가 책을 읽고 있는 걸 보게 됐고, 약국 한쪽에 잔뜩 쌓인 책 무더기 또한 발견하게 된다.




여덟 편의 이야기가 담긴 소설은 제각각 다른 장르와 배경을 중심으로 흘렀다. '통합세기'라는 가상의 미래가 있었고, 그 가상의 미래에는 책을 소유하는 것이 범죄로 분류되는 단편도 있었다. 그리고 현실적인 이야기 또한 존재했다. 그렇게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만, 공통적으로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잃은 사람들이 그 중심에 있었다.

재난에는 어김없이 상실이 따라오기 마련이다. 그래서 <다이버>는 아내와 자식을 잃은 남자의 상실과 공허가 짙게 다가왔다. 그 이야기를 읽으며 자연스레 떠오른 사건이 있었는데, 작가의 후기를 보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서재>, <지구가 끝날 때까지 일곱 페이지>는 국가의 통제로 개개인에게 재난이 들이닥친 거라 여겨졌던 소설이었다. <화씨 451>이 연상되던 이야기는 책의 소유라는 점으로 서로 연결되던 이야기였다. 책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재난이나 마찬가지인 두 이야기는 각각 가장인 남자와 10대 소녀가 주인공이었는데, 묘하게 닮은 듯 다르면서 연결되는 이야기라 흥미로웠다. 결말 또한 다르지만 의미가 있다는 점은 같았다.

표제작인 <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는 한국인 '나'가 겪은 재난인 성수대교 붕괴 사건, 일본인 아야가 겪은 동일본 대지진, 그리고 두 사람이 지금 머물고 있는 미국의 9·11 테러까지 각 개인의 재난과 국가의 재난을 동시에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와 아야가 재난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다리를 건너는 동안 씁쓸한 분위기가 맴돌았지만, 결국엔 조금은 안도할 만한 결말이라 마음을 놓았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분위기의 이야기들은 왠지 모를 여운을 남겼다.



​​​​​​​

사람들은 그래서 책을 읽으려고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겪지 않은 일을 경험할 수 있으니까. 읽는 동안만큼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으니까. <지구가 끝날 때까지 일곱 페이지> - P93

하나의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 모든 종류의 경우의 수. 그러니까 우리는 무한에 가까운 확률을 뚫고 하나의 사건에 이르러 지금 마주 보며 함께 커피를 마시고 있다……. <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 - P18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