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
사카모토 유지.구로즈미 히카루 지음, 권남희 옮김 / 아웃사이트(OUTSIGHT)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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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살 대학생 하치야 키누와 야마네 무기는 같은 날, 같은 역에서 막차를 놓치는 바람에 우연히 함께 시간을 때우게 된다. 함께 막차를 놓친 직장인 남녀와 시간을 보내다 얼떨결에 둘만 남은 키누와 무기는 아침까지 영업하는 술집으로 가서 술을 마신다. 어색하게 대화를 나누던 그들은 서로 공통되는 점과 좋아하는 모든 것들이 딱딱 들어맞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후 두 사람은 자주 만나며 가까운 사이가 됐고, 고백을 하고 커플이 되어 동거까지 하는 관계로 이어진다.



내가 본 일본 멜로 영화는 오글거림의 최고봉이거나 시한부 신파가 대부분이었다. 두 가지 경우 외에 다른 내용의 영화는 본 적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어쩌다 보니 그런 영화만 찾아본 것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이런 영화들과는 확연히 달랐던 작품이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이다. 20대 초반 남녀가 우연히 만나 서로 빠져들어 커플이 되는 과정에서부터 오랜 연인이 된 후에 서서히 시들어가는 과정을 너무나 현실적으로 그린 영화라 인상적이었다.
이 영화를 소설로 옮긴 '노벨라이즈'를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영화를 글로 옮겼을 때 어떻게 다른 느낌이 들지 궁금했다.

영화를 비교적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덕분에 글을 읽는 동안 영화 속 장면 대부분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첫 만남, 수많은 공통점을 알게 된 이후 두 사람의 표정에서부터 본격적인 연애와 점점 시들어가는 관계까지 전부 기억이 났다. 책이 영화와 조금 달랐던 건 글자를 읽으며 시간을 들여 상황을 되새길 수 있었다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배우의 표정을 통해 느낄 수 있었던 감정들을 기억하고 있었던 덕분에 미묘한 상황들에서의 심리적 변화를 잡아내 곰곰이 생각을 해볼 수 있었다.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고 해도 키누와 무기의 사랑이 아프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서서히 시들어가는 관계는 여전히 씁쓸하고 안타깝게 다가왔다. 대학생이 나이가 들어 사회인이 되었을 때 타협할 수밖에 없는 많은 상황들이 행복했던 그들을 변하게 만들었다. 둘의 관계가 변해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에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늦어버렸다는 게 너무나 슬펐다.
그럼에도 그들은 서로 사랑하는 동안 꽃처럼 활짝 피었던 시간을 소중하게 간직하며 좋은 이별을 했다. 서로 진심으로 사랑했기에 그렇게 멋진 이별을 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영화 속 무기가 그렸던 그림이 책 속 곳곳에 담겨있었다. 두 사람의 사랑과 일상이 간결하게 그려진 그림이긴 했어도 관계의 변화를 보여주는 느낌이 들어 단순한 그림에서 여운을 느꼈다.

책을 읽고 나니 영화를 다시 보고 싶어지는 기분이 든다.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만남은 언제나 이별을 품고 있고 연애는 언젠가 파티처럼 끝난다. 그래서 연애하는 이들은 각자 좋아하는 것을 갖고 와서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수다를 떨며 그 안타까움을 즐길 수밖에 없다고. - P99

저 젊은 두 사람은 지금 피고 있는 꽃이다. 꽃은 언젠가 시든다. 하지만 시든다 해도 그곳에 아름다운 꽃이 피었던 사실은 잊히지 않는다. - P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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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터 케이스릴러
이두온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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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을 보던 윤선이는 면접관들의 주목을 받자 경직됐고 말을 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심지어는 어지럼증이 일어 쓰러지고 말았다. 선이가 눈을 뜬 곳은 병원이었는데, 곁에는 중년의 여자가 있었다. 선이는 그녀가 면접관인 줄 알고 이것저것 물었으나 그녀는 면접관이 아니었다. 김경희 형사는 선이의 동생 장이가 사라졌다며, 서윤재라는 남학생을 살해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장이를 빨리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선이와 장이는 유명하지 않은 연예인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두 사람은 스타성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고 가진 것도 없었으며 부모 노릇 또한 제대로 하지 않았다. 그러다 아빠가 연예인 부모와 자식의 리얼리티 프로그램인 '밀리언달러 키즈'에 섭외되면서 부모는 재기의 희망을 품었다. 11살 선이가 녹화를 망치는 바람에 잘릴 뻔했으나 5살 장이가 대신 출연해 프로그램의 시청률은 승승장구했다. 덕분에 장이는 모든 국민의 사랑을 받는 아이가 되었다.
하지만 어떤 사건으로 인해 모든 걸 망쳐버린 결과, 엄마는 부부 싸움 도중 나가 운전을 하다 교통사고로 사망했고 아빠는 알코올중독에 빠져 두 아이를 돌보지 않았다. 결국 외조부모가 찾아와 선이를 데리고 간 이후 자매는 10년 넘게 연락이 끊기고 말았다.



선이가 10년가량 함께 살지 않았고 연락도 하지 않았었던 동생을 찾는 일은 막막하기만 했다. 아직 고등학생인 아이가 지금 어떤 상태일지도 모르는데, 살인사건 용의자일지도 모른다는 것 또한 끔찍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선이는 장이를 찾는 일에 주저함이 없었다. 일단 마지막으로 함께 살았던 집에 가 봤는데, 다행히 이사를 가지는 않았기에 열쇠 수리공을 불러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선이는 집을 보며 장이가 어떤 생활을 했을지 예상해 보게 된다. 그러면서 아빠는 오랫동안 함께 살지 않은 듯 흔적이 별로 없다는 것 또한 알게 된다. 우선 아빠를 찾다가 7년 전부터 강원도의 요양원에 머물렀다는 걸 알게 된다. 아빠는 정신이 완전히 나가버렸기에 그에게서 장이를 찾을 수 있는 단서는 얻지 못했다.
그러다 집에 돌아온 선이는 집안 곳곳에 몰래카메라가 14대나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알고 경악한다. 그와 동시에 장이와 죽은 윤재 학생이 찍힌 비디오를 보게 되면서 그 비디오를 찍었을 거라 추정되는 학생을 쫓아 자백을 받아낸다. 윤재 학생의 아빠 해순과 함께 말이다.

어릴 적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사랑을 받던 장이가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진 사건 이후 가정은 급격히 망가져 버렸다. 더불어 장이 역시 어딘가 망가진 듯했다. 선이가 장이의 흔적을 추적하면서 발견한 것들, 초등학교 담임 등에게서 들은 말들로 인해 완전히 낯선 모습의 동생과 마주하게 된다. 그 부분을 읽으면서 아이를 그렇게 만든 건 어른들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착하고 천진한 사랑스러운 모습만을 강요하는 방송 시스템이 어렸던 장이를 속물적인 아이로 만들어버렸다. 백지 같은 아이들은 주변의 영향을 심하게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장이가 그렇게 된 건 어른들의 잘못이 컸다. 거기다 아이들을 방치하는 부모로 인해 그 영향은 더욱 크게 미쳤을 것이다.
선이가 장이의 삶에 점점 깊이 다가가면서 안타까움을 느꼈고, 나중엔 분노가 일었다. 장이를 무력하게 만든 이들의 시작은 자본주의였지만 나중엔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어린아이를 이용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선이가 장이를 찾는 와중에 윤재와 관련된 사건 역시 조금씩 풀어지고 있었다. 윤재와 장이를 괴롭히던 고정권이라는 학생의 존재를 알아내 추적했지만, 그는 어느 순간 호수에서 시체로 발견되고 말았다. 그와 동시에 김경희 형사는 선이에게 윤재 아빠 해순을 너무 믿지 말라는 말까지 꺼내 혼란스러워졌다.

사건을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드러나는 진실들은 괴로움에 몸부림치게 만들었다. 어떻게 어른이 아이를 그렇게 이용할 수 있을까 도무지 믿기 어려웠다. 악마들이 따로 없다는 생각을 했다. 오랫동안 가스라이팅을 당한 장이가 살아있는 게 기적이라고 여겨질 만큼 말이다. 이런 상황에 선이가 과연 장이를 만날 수 있을지, 만난다면 구할 수 있을지 희망을 가지기 어려웠다.
다행히 소설은 좋은 방향으로 끝이 났지만, 그게 진정한 해피엔딩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가혹하고 끔찍한 현실에서 이제 막 벗어난 장이의 삶이 정상 궤도를 찾아가려면 험난할 것 같기 때문이다.

소설에 등장한 대부분의 어른들은 정말 악마였다. 이기적이고 무자비한 파렴치한들이 그래도 참혹한 끝을 맞이해 다행일 정도였다.
이 소설이 영상화될 예정이라고 하는데 너무 잔혹해서 과연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계속 함께 살았다 하더라도 우리는, 크게 말이 통하는 사이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고등학생과 초등학생이 공유할 수 있는 대화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함께했을 수도 있는 작은 시간들이 있었다. 그 시간들을 나는 전부 놓쳤다. 아니 버렸다. - P138.139

그녀는 혼자였고 살아남기 위해 그녀 나름의 질서와 방식들을 구축해왔을 것이다. 그것은 누군가가 그녀에게 불어넣은 것일 수도 있었고, 그녀가 편의에 의해 만들어낸 것일 수도 있으며, 어디에서 온 것인지 알 수 없게 그녀 안에서 재조직된 무언가일 수도 있었다. 그것이 어떻게 생긴 것인지, 어떤 논리로 움직이는 것인지 알고 싶었다. - P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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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있던 자리에
니나 라쿠르 지음, 임슬애 옮김 / 든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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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친한 친구 잉그리드가 자살을 했다. 케이틀린은 갑작스러운 상실감에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방학을 보냈다. 엄마와 아빠가 케이틀린의 기분을 조금이라도 풀어주고자 여기저기 데리고 다녔는데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다 개학해 학교에 갔을 땐 별로 친하지도 않았던 아이들이 케이틀린의 눈치를 봤고, 어떤 아이들은 말을 걸며 어쭙잖은 위로를 했다. 케이틀린은 그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방에서 스테레오 리모컨을 찾다가 침대 아래에서 무언가를 발견한다. 잉그리드가 늘 가지고 다니며 썼던 일기장이었다. 케이틀린은 자기 몰래 잉그리드가 넣어놨을 거라 생각하자 심장이 터질 듯이 뛴다. 하지만 차마 일기장을 펼쳐 읽어볼 수가 없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난 후, 케이틀린은 매일 하루에 한 장씩 잉그리드의 일기를 읽기 시작한다. 그러는 동시에 케이틀린의 마음이 이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조금씩 변화한다.




가까운 누군가를 잃는 경험은 늦으면 늦을수록 좋다는 생각을 했다. 가족이든, 친척이든, 아니면 친구든 말이다. 얼굴만 알던 사람, 혹은 전혀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마저도 우리는 안타까움에 괜한 상실감을 느끼게 되니 말이다.
특히나 10대 소녀에게 가장 가까운 친구, 베프라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갑자기 자살을 했다면 그 상실감과 슬픔은 더욱 클 터였다. 전날까지만 해도 잉그리드는 케이틀린이 가고 싶어 하는 대학에 따라가겠다고 말했으니 케이틀린 입장에서는 배신감마저 느껴졌을 것이다.
그러다 잉그리드가 몰래 숨겨놨을 거라고 추측되는 일기장을 발견하면서 케이틀린은 이제는 세상을 떠난 친구에 대해 조금은 더 많이 알게 된다. 그러면서 잉그리드만 차지했던 케이틀린의 옆자리를 전학 온 딜런과 호감을 갖게 된 테일러가 조금씩 자리를 차지하게 되면서 일어나는 케이틀린의 감정 변화를 섬세하게 담고 있었다.

사춘기 고등학생이라 원래 심경 변화가 심할 시기인데 갑작스럽게 가장 친한 친구를 잃은 케이틀린의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위로를 하기 위해 다가온 아이들이 못마땅했고 그저 시선이 마주쳤을 뿐인데도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추측하며 질색했다. 그만큼 케이틀린은 그 누구에게도 기대지 못한 채 홀로 슬픔의 우물을 더 깊이 파고 있었다.
그런 케이틀린을 보며 공감할 수밖에 없는 과거가 내게도 있었다. 갑작스럽게, 어떤 조짐도 없이 친구를 떠나보냈을 때의 상실감과 죄책감은 경험해 보지 않으면 전혀 알 수 없는 것이었다. 그나마 케이틀린에겐 잉그리드의 일기장이 있었으니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남은 사람들에게 잉그리드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었지만, 내게는 그런 게 전혀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케이틀린이 조금은 부럽기도 했다.
잉그리드가 남긴 일기장을 읽으며 울컥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정말 가까운 친구에게조차 말할 수 없는 이야기들, 가족을 원망하면서도 미안한 마음, 그리고 좋아하는 아이를 떠올리며 그래도 행복했던 시간들이 파도가 치듯 감정의 물결을 일으켰다. 그래서 케이틀린이 잉그리드의 일기를 읽으면 읽을수록 괴로워하는 마음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케이틀린에게 딜런과 테일러라는 존재가 조금씩 자리를 차지하게 되면서 일어나는 감정 변화 또한 공감했다. 가장 친한 친구를 떠나보내놓고 웃었다는 것에 자괴감을 느끼는 케이틀린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그로 인해 새로 사귄 친구들과 멀어지려고 하는 노력들을 보며 제발 그러지 말았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 들었다. 다행히 딜런과 테일러는 케이틀린을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화해 후에 금세 가까워지며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게 됐지만 말이다.
그러면서 케이틀린은 상실을 안고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된 것 같았다. 케이틀린보다 딜런이 먼저 경험했을 상실, 좋아하는 여자애에게 고백도 해보지 못하고 잃어버리고선 슬퍼할 자격이 없다고 여긴 제이슨, 잉그리드의 부모와 오빠를 보면서 케이틀린은 슬픔을 감내하며 잉그리드를 마음에 담고 사는 법을 배웠다. 어떻게 보면 상실에 대한 이야기지만 한편으로는 성장 소설 같기도 했다.

주인공의 감정에 오롯이 공감할 수밖에 없었던 소설이라 오래 마음에 남을 듯싶다.


그토록 쉽게 잉그리드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게 되었고, 그냥 사라져 버렸고, 이제 자기가 얼마나 나를 망쳐놨는지 확인하지 않아도 된다. 잉그리드는 기어이 떠나버렸고 나는 폭발할 것 같다. - P183

잉그리드가 얼마나 두려워하고 있는지 몰랐지만, 사실 몰라서는 안 됐다. 친구란 그런 존재니까. 눈치채고 알아주는 존재. 서로를 위해 자리를 지키는 존재. 가족이 모르는 것도 알아채 주는 존재.
(……중략)
내 가장 친한 친구는 죽었고, 나는 그 애를 살릴 수 있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잘못된 일이다. 너무나도, 고통스러울 정도로 잘못된 일이다, 내가 오늘 밤 대문으로 들어오며 웃고 있었다는 것은. - P145.146

이건 잉그리드와 내가 꿈꾸던 해피엔딩은 아니지만 내가 살아내고 있는 인생의 일부다. 삶은 변화한다. 사람들은, 모든 것은 사라진다. 그리고 전혀 예상하지 못할 때 다시 나타나 우리를 꼭 안아준다. - P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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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에마 호턴 지음, 장선하 옮김 / 청미래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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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사고로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은 의사 케이트는 익숙하고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남극 극지 관측소에서 1년간 근무할 담당 의사로 자원한다. 면접을 통과한 케이트는 제네바에서 몇 주 동안 훈련을 받은 뒤, 곧바로 남극으로 향했다. 작은 비행기를 타고 불안하게 남극에 도착한 케이트는 하얗고 넓은, 아무것도 없는 그곳의 첫인상이 두렵게만 느껴졌다.
기지에 도착한 케이트는 1년 동안 함께 일하며 생활하게 될 12명의 대원들을 소개받았다. 세계 각국에서 온 다양한 인종과 성별, 성격을 지닌 그들은 케이트를 대하는 행동이 저마다 달랐기에 조금은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더군다나 기지의 대장 샌드린은 왠지 케이트를 보자마자 싫어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임시 전임자가 인수인계도 없이 떠나버린 뒤, 케이트는 곧바로 업무에 집중해야만 했다. 12명의 대원들에 대한 파악이 조금은 끝났을 무렵, 그녀는 전임자 장-뤼크가 크레바스에 빠지는 사고를 당해 죽었고, 시체를 꺼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전해 듣는다. 그리고 그 사건이 대원들 저마다에게 각기 다른 마음의 짐으로 남았고, 누군가는 그 사고가 의도적인 살해라고 여기며 비밀을 파헤치려 한다는 걸 알게 된다.




남극 기지의 담당 의사로 자원한 주인공 케이트가 등장해 그곳으로 향하는 여정을 먼저 보여줬다. 그리고선 그녀의 뺨에 눈에 확 띄는 상처가 있고, 불안해질 때마다 약을 먹는 걸 보며 주인공인 케이트를 믿어도 되는 건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소설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말이다. 이야기를 끌고 가는 주인공부터 믿을 수가 없는 모습에서 시작된 소설은 점점 의문스러운 사건이 일어나고 나중엔 본격적으로 위험한 상황에 접어들면서 등장한 모든 캐릭터들을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기지 대장 샌드린, 전형적인 미남 드루, 장-뤼크와 가까운 사이였던 알렉스, 아름답고 여린 앨리스, 요리사 라지브, 배관공 카로, 기상학자 소냐, 마리화나를 피우는 루크와 롭, 예민한 톰, 그리고 아크와 아르네 총 12명이 겨울 동안 남극 기지에서 함께 지내야 할 동료였다. 샌드린은 케이트를 도외시했고, 나머지는 그럭저럭 가깝지 않은 사이로 지냈다. 드루와는 좋은 감정을 주고받다가 케이트의 과거 상처로 인해 조금은 어색한 사이가 됐다. 아르네는 왠지 보면 볼수록 호감이 가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얼마 안 되는 여자들 중 카로와는 친밀한 관계가 됐고, 나이가 지긋한 소냐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다 케이트가 진료실 약품 벽장에서 장-뤼크가 남긴 편지를 발견한 뒤에 그의 죽음에 대해 캐기 시작하면서 데면데면했던 알렉스와는 사이가 너무 나빠졌다. 장-뤼크와 가까웠던 알렉스가 그의 죽음에 괴로워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사고와 관련한 장비 문제에 대해 들은 이후에 케이트가 선을 넘는 발언을 하고 말았던 것이 문제가 됐다. 사실 그 부분을 읽으면서 케이트가 너무 성급하고 조심스럽지 못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 역시 과거의 사고로 인해 아직까지 약물에 의존할 만큼 불안정한 상태라서 알렉스에게 감정적으로 조금은 공감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의사의 시선으로 정신적인 문제로 이야기를 이끌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과 의문스럽지만 넘길 수 있는 사소한 사건이 지나간 이후 사망자가 나왔는데, 샌드린은 자살이라고 여기고 넘기려 했다. 케이트는 그렇게 여기지 않아 혼자 사건을 조사하게 된다. 장-뤼크의 죽음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온 후에 일어난 죽음은 사고가 아니었고, 두 사망 사건이 서로 관련이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후반으로 향해 가면서 기지의 동력이 끊어지는 사건이 일어나고 또다시 사망자가 나오면서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 이 와중에 기지 내의 누군가와 사랑에 빠져 임신을 했던 카로가 조산을 하게 되어 케이트는 의사로서의 본분을 지키면서도 기지 내에 있을 살인자를 찾는 일에도 집중해야 했다.
과연 누가 이런 일들을 벌이는 건지 좀처럼 가늠할 수가 없었다. 케이트부터가 의심스러웠던 것도 있었고, 거짓말을 하는 이들도 있었으며, 사망 사건에 대해 조사하는 케이트에게 적대적으로 대하는 사람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누굴 믿어야 하고 누굴 믿지 말아야 하는지 판단할 수 없었기에 긴장하면서 책을 읽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마침내 이 모든 사건의 원흉이 밝혀졌을 때 놀랄 수밖에 없었다. 모두가 의심스럽기는 했지만 그 의심에서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사람이 범인이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굉장한 쓰레기인데 여태껏 본래의 모습을 감추고 있었던 것도 놀라웠다. 역시 사람은 보이는 것과 행동하는 것만 봐서는 판단할 수 없었다. 범인의 정체가 공개되면서 케이트가 위기에 빠졌었는데 다행히 선량하고 강인한 정신력을 가진 이의 도움으로 무사한 결말을 맞이했다.

해가 떠오르지 않는 시기의 남극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살인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던 소설이다. 기지 내에 누군지 모를 살인자가 무서웠는데, 그 살인자를 피해 바깥으로 나가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의 혹한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또한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다. 도망칠 수 없는 광활한 밀실이라는 표현이 너무나 적절했던 스릴러 소설이었다.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이 기지에 뭔가 잘못된 게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그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였다.
매우 위험한 사람이 여기에 있다. - P300

내가 미쳐가는 건가? 나는 진지하게 생각했다. 내가 정말 있지도 않은 일을 상상하고 있는 걸까? 심지어 사라져버린 내 약들도? 다 먹어버리고 어쩌다 까맣게 잊어버린 건가? - P208

우리 중에 있는 정체불명의 살인자를 어떻게 피할 수 있을까? 과연 제네바 팀이 알려줄 수 있는 대처 방안이 있기는 할까? 그들이 구조 비행기를 보낼 때까지 몇 달 동안 각자 바리케이드를 치고 방 안에 들어앉아 있으라고 할까? 아니면 마치 남극의 황무지로 무대를 옮긴 애거사 크리스티의 작품 속 등장인물들처럼 다 같이 휴게실에 모여서 서로를 의심하며 감시하라고 할까? - P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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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코 지나쳤던 우리동네 독립운동가 이야기
유정호 지음 / 믹스커피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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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좋아하긴 하지만 조선 후기에서 일제강점기로 이어지는 비극의 내용을 담은 역사책은 잘 안 읽게 된다. 우리 조상님들이 얼마나 고통을 받으며 사셨는지, 나라 잃은 슬픔과 일제의 치욕을 버티며 사셨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극의 역사도 우리의 역사이다. 그리고 그 비극을 이겨내기 위해 독립운동으로 저항하고 때로는 격렬한 투쟁을 벌이신 존경스러운 분들이 계셨다는 걸 반드시 알아야만 한다.

이 책은 독립운동가분들의 업적을 담고 있다. 우리가 잘 아는 분들도 계셨고, 존함만 알고 있었을 뿐 업적은 잘 몰랐던 분들도 소개하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이렇게 헌신하신 분들도 계셨구나 하고 처음 알게 된 분들도 있다. 이분들을 소개하게 된 주요 요인은 국내에 세워진 동상의 모델이라는 점이다. 동네에서 오며 가며 볼 수 있는 동상이라 관심을 갖지 않았던 분들의 업적과 생애를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 좋았다.



저항을 강력하게 보여준 분들을 먼저 소개하고 있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안중근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는 데 성공하셨다. 사형 선고를 받으시고도 의연한 모습을 보이셨지만 안타깝게도 끝까지 치졸한 일제의 만행으로 유해가 어디에 묻혔는지 알 수가 없다. 정말이지 분기탱천할 노릇이다.
대한국민노인동맹단 소속이었던 강우규는 새로 부임한 조선 총독 사이토 마코토를 사살하기 위해 환영 자리에 나가 몰래 차고 온 폭탄을 투척했다. 호위하던 일본군 서른일곱 명을 죽거나 다치게 했지만 아쉽게도 사이토 총독은 무사했다고 한다. 그 의거를 실행했을 때 강우규의 나이가 65세였다고 한다. 자리를 피한 강우규는 재거사를 하려다 체포가 되었지만 일제에 비굴하게 굴복하지 않는 당당한 모습을 보이셨다.
일본 외무성의 고용원으로 친일 행각을 펼치던 미국인 스티븐스라는 인간이 있었다. 일본의 입장을 지지하며 한국이 일제의 식민지가 되도록 이끈 그를 노리는 재미한국인이 있었다. 바로 전명운과 장인환이었다. 전명운이 스티븐스를 사살하는 데 실패하자, 뒤이어 나타난 장인환이 총을 쏴 목적을 이루었다. 두 분은 서로 모르는 사이라고 주장했다는 설이 있는데 진실은 알 수 없는 듯하다. 이 사건으로 재판에 서게 된 두 분을 위해 통역을 붙여주고자 하버드에서 공부 중이던 이승만에게 통역을 요청했다고 하는데 기독교인으로서 살인자를 변호할 수 없다고 거절했다고 한다. 역시 이 인간은 싹수부터 알아봐야 했다.
영화 <밀정> 오프닝에 잠깐 등장해 강렬한 인상을 남긴 이의 실제 모델인 김상옥과 일왕에게 폭탄을 투척한 이봉창, 그리고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일제의 고위 인물들을 죽거나 다치게 한 윤봉길 의사 등도 소개하고 있었다.

조선 말 권력을 누리던 명성황후의 민씨 일가가 유명하다. 하지만 그들과는 달리 조카 민영환은 나라의 국운을 걱정하다 을사늑약에 반대하며 자결한 인물이었다. 모든 민씨 일가가 제 욕심만 채우려고 했다고 알고 있었는데, 민영환의 존함만은 꼭 기억해야겠다.
동아일보 3대 사장에 취임한 송진우는 제10회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우승한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를 삭제한 사진을 신문에 게시했다. 이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기에 통쾌함이 가슴 깊은 곳에서 솟구쳐 올랐다. 이 사건 이후 동아일보는 무기 정간되고 송진우는 사장 자리에서 강제로 끌려내려왔지만 저항은 멈추지 않았다.
독립운동의 큰 어른으로 불리던 이상재는 친일파 이완용과 송병준을 공개적인 자리에서 망신을 준 일화가 있었다. 나라가 망하게 하는 데 천재들이니 도쿄로 이사 가서 일본을 망하게 하라는 말을 하셨다고 한다. 어찌나 멋지게 비꼬시는지 속이 후련했다.
이 외에도 손병희, 서재필, 김구, 안창호, 유관순 등 유명하신 분들뿐만 아니라 영국인이지만 조선의 독립을 위해 애를 쓰며 진실을 세계에 알리고자 노력한 베델 등도 소개했다.

뿐만 아니라 잘 알고 있는 을사오적(박제순, 이지용, 이근택, 이완용, 권중현) 외에 친일파 네 명도 소개했다. 동아일보 사장에서 부통령까지 지낸 김성수, 친일을 한 변절자면서 자신은 독립운동을 했다고 말한 소설가 김동인, 친일은 물론 친나치 행위를 하며 평화롭게 음악가로 살았던 안익태(애국가는 나라에서 인정한 정식 국가가 아니라고 한다!!!), 민씨 일가로 일제강점기의 최대 갑부로 살았던 민영휘였다. 절대 잊지 말아야 할 더러운 이름들이다.



존함은 알았지만 업적은 잘 몰랐던 분들이 많았다. 이 책 덕분에 나라를 위해 애쓰신 분들의 업적과 일생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잘 알려진 분들의 일생에 대해 읽으며 몰랐던 부분을 알게 되어 좋은 점도 있었다.

읽는 동안 괜스레 마음이 울컥해질 때가 많았다. 과연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이렇게 목숨 바쳐 나라를 위해 싸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돌아가신 분들의 삶이 더욱 숭고하게 다가왔다.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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