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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뒤흔든 50가지 범죄사건
김형민 지음 / 믹스커피 / 2022년 10월
평점 :

요즘 뉴스를 보면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는다. 특히 범죄 사건이 유난히 많이 들려와서 뉴스를 보지 않고 지나가기 일쑤다.
범죄 사건은 끔찍하지만, 역사와 범죄가 결합되면 제법 재미있는 소재가 된다. 이 책이 바로 그런 재미를 주고 있었다. 세계와 한국의 역사 안에서 일어난 범죄들 중 역사에 획을 그었다고 표현할 수 있는 범죄 사건을 소개하고 있었다.
세계사에 한 획을 긋다 못해 역사에 길이 남을 사건인 제1차 세계대전을 발발시킨 가브릴로 프린치프가 가장 먼저 소개되었다. 보스니아에서 태어난 세르비아계 청년이었던 그가 오스트리아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를 암살하자 격변의 시기를 지나던 유럽에 전쟁이 일어났다. 황태자 암살을 위해 친구들과 계획을 세웠고, 결국 성공해 동료들과 붙잡힌 그는 유일하게 사형을 면했다고 한다. 20살에서 겨우 27일이 모자라는 미성년자였기 때문이란다. 어마어마한 전쟁의 원흉이었음에도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사형되지 않았다는 게 놀라운 일이었지만, 감옥에서 갖은 학대를 받다 전쟁이 끝나기 직전 결핵과 영양실조로 세상을 떠났다고 하니 뿌린 대로 거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찰과 범죄자가 등장하는 영화를 보면 늘 나오는 대사가 '미란다 원칙'이다. 미란다 원칙은 미국의 범죄자 에르네스토 미란다에게서 비롯되었다. 1963년 미국 애리조나주에서 18세 소녀가 납치되어 사막으로 끌려다니며 성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경찰은 여러 단서를 쫓은 끝에 에르네스토 미란다를 체포해 재판에 세웠는데, 그의 변호를 맡은 국선 변호사 앨빈 무어가 그를 무죄로 만들었다. 스스로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는 걸 방지하고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명시한 수정헌법 제5조의 내용을 수사관들이 통보하지 않았다는 명분으로 말이다. 이 부분을 읽으며 국선 변호사인데 무엇 때문에 일을 그렇게 열심히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에르네스토 미란다가 성범죄자였기 때문에 그런 마음이 더욱 강했다. 이렇게 풀려난 미란다로 인해 경찰들은 미란다 원칙을 적은 종이를 들고 다니며 외워야 했다는 해프닝이 있었다.
다행히 미란다는 범죄 사실에 대한 새로운 증언으로 인해 10년 형을 살다가 출소한 후 술집에서 칼에 찔려 사망했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미란다 살해 용의자를 체포한 경찰이 13년 전에 미란다를 체포했으나 피의자 권리를 설명해 주지 않았던 바로 그 경찰이었다고 한다.
과거에는 범죄를 저지르는 이유가 있기 마련이라고 여겼지만, 요즘 들어서는 범죄의 형태가 변하고 있다. 목적과 이유 없는, 사이코패스의 살인 같은 것 말이다. 1893년 시카고 세계 박람회가 개최되었을 때, 헨리 하워드 홈스는 자신의 집을 호텔처럼 개조해 많은 사람을 머물게 만들고선 죽게 만들었다. 가스실과 화장터를 갖춘 홈스의 호텔에서 최대 200여 명의 사람들이 죽었다.
그가 어릴 때 아동학대를 당한 사실로 인해 후천적 영향으로 사이코패스가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가 악마라는 건 변함없는 것이긴 하다.
목격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책임감이 분산되어 개인이 느끼는 책임감이 적어져 도와주지 않고 방관하게 된다는 '제노비스 신드롬'은 1963년 미국 뉴욕주에서 잔혹하게 살해된 키티 제노비스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뉴욕 타임스 1면에 이 사건과 관련된 기사가 게재되자 굉장한 파장이 일었다. 이후 언론들은 자극적인 기사를 써댔다고 하고, 긴급 신고 전화 911이 이 사건 이후로 통일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나중에 키티 제노비스의 동생 빌이 진실을 찾아 헤맨 결과, 사실은 방관자만 있지 않았다고 한다. 최소 두 명이 신고를 했고, 소피아라는 여성은 키티의 곁에서 그녀가 숨을 거둘 때까지 안고 보호했다고 한다. 이때도 기레기가 있었구나 하는 씁쓸함이 남았다.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여러 범죄 사건도 소개하고 있었는데,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우범곤 사건이었다. 1983년 4월 26일 발생한 '의령 총기 난동 사건'이다. 전화 같은 통신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라 전화 교환수가 있을 때였는데, 가장 먼저 교환수를 살해하고 이후 네 개의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90여 명이 살해하고 부상을 입게 만들었다. 이 사건은 2011년 노르웨이 테러가 일어나기 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대량 살인을 저지른 총기난사범으로 기록되었다고 한다. 정말이지 어떻게 이렇게 끔찍한 사건이 일어날 수 있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복잡하고 어지러운 것이긴 하지만, 누군가를 해치는 일, 살인을 어떻게 할 수 있는 건지 평범한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우범곤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선 자살했다고 하는데, 너무 편안히 떠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옥에서나마 죗값을 받고 있으면 싶다.
여러 사건을 소개하는 책을 읽으며 처음에는 몰랐던 사실도 있어서 신기했지만, 나중에는 씁쓸하고 안타깝고 불편한 기분을 느꼈다. 오래된 역사에서 현대로 점점 가까워지면서 사회적인 범죄가 소개된 탓일 것이다. 이런 범죄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만드는 게 최선일 테지만, 방법이 없으니 퍽 난감하다.
그래도 범죄 사건은 차치하고 몰랐던 역사적 사실과 각국의 문화에서 비롯된 범죄들을 소개한 책을 흥미롭게 읽었다.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