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뒤흔든 50가지 범죄사건
김형민 지음 / 믹스커피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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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뉴스를 보면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는다. 특히 범죄 사건이 유난히 많이 들려와서 뉴스를 보지 않고 지나가기 일쑤다.
범죄 사건은 끔찍하지만, 역사와 범죄가 결합되면 제법 재미있는 소재가 된다. 이 책이 바로 그런 재미를 주고 있었다. 세계와 한국의 역사 안에서 일어난 범죄들 중 역사에 획을 그었다고 표현할 수 있는 범죄 사건을 소개하고 있었다.




세계사에 한 획을 긋다 못해 역사에 길이 남을 사건인 제1차 세계대전을 발발시킨 가브릴로 프린치프가 가장 먼저 소개되었다. 보스니아에서 태어난 세르비아계 청년이었던 그가 오스트리아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를 암살하자 격변의 시기를 지나던 유럽에 전쟁이 일어났다. 황태자 암살을 위해 친구들과 계획을 세웠고, 결국 성공해 동료들과 붙잡힌 그는 유일하게 사형을 면했다고 한다. 20살에서 겨우 27일이 모자라는 미성년자였기 때문이란다. 어마어마한 전쟁의 원흉이었음에도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사형되지 않았다는 게 놀라운 일이었지만, 감옥에서 갖은 학대를 받다 전쟁이 끝나기 직전 결핵과 영양실조로 세상을 떠났다고 하니 뿌린 대로 거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찰과 범죄자가 등장하는 영화를 보면 늘 나오는 대사가 '미란다 원칙'이다. 미란다 원칙은 미국의 범죄자 에르네스토 미란다에게서 비롯되었다. 1963년 미국 애리조나주에서 18세 소녀가 납치되어 사막으로 끌려다니며 성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경찰은 여러 단서를 쫓은 끝에 에르네스토 미란다를 체포해 재판에 세웠는데, 그의 변호를 맡은 국선 변호사 앨빈 무어가 그를 무죄로 만들었다. 스스로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는 걸 방지하고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명시한 수정헌법 제5조의 내용을 수사관들이 통보하지 않았다는 명분으로 말이다. 이 부분을 읽으며 국선 변호사인데 무엇 때문에 일을 그렇게 열심히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에르네스토 미란다가 성범죄자였기 때문에 그런 마음이 더욱 강했다. 이렇게 풀려난 미란다로 인해 경찰들은 미란다 원칙을 적은 종이를 들고 다니며 외워야 했다는 해프닝이 있었다.
다행히 미란다는 범죄 사실에 대한 새로운 증언으로 인해 10년 형을 살다가 출소한 후 술집에서 칼에 찔려 사망했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미란다 살해 용의자를 체포한 경찰이 13년 전에 미란다를 체포했으나 피의자 권리를 설명해 주지 않았던 바로 그 경찰이었다고 한다.

과거에는 범죄를 저지르는 이유가 있기 마련이라고 여겼지만, 요즘 들어서는 범죄의 형태가 변하고 있다. 목적과 이유 없는, 사이코패스의 살인 같은 것 말이다. 1893년 시카고 세계 박람회가 개최되었을 때, 헨리 하워드 홈스는 자신의 집을 호텔처럼 개조해 많은 사람을 머물게 만들고선 죽게 만들었다. 가스실과 화장터를 갖춘 홈스의 호텔에서 최대 200여 명의 사람들이 죽었다.
그가 어릴 때 아동학대를 당한 사실로 인해 후천적 영향으로 사이코패스가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가 악마라는 건 변함없는 것이긴 하다.

목격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책임감이 분산되어 개인이 느끼는 책임감이 적어져 도와주지 않고 방관하게 된다는 '제노비스 신드롬'은 1963년 미국 뉴욕주에서 잔혹하게 살해된 키티 제노비스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뉴욕 타임스 1면에 이 사건과 관련된 기사가 게재되자 굉장한 파장이 일었다. 이후 언론들은 자극적인 기사를 써댔다고 하고, 긴급 신고 전화 911이 이 사건 이후로 통일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나중에 키티 제노비스의 동생 빌이 진실을 찾아 헤맨 결과, 사실은 방관자만 있지 않았다고 한다. 최소 두 명이 신고를 했고, 소피아라는 여성은 키티의 곁에서 그녀가 숨을 거둘 때까지 안고 보호했다고 한다. 이때도 기레기가 있었구나 하는 씁쓸함이 남았다.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여러 범죄 사건도 소개하고 있었는데,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우범곤 사건이었다. 1983년 4월 26일 발생한 '의령 총기 난동 사건'이다. 전화 같은 통신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라 전화 교환수가 있을 때였는데, 가장 먼저 교환수를 살해하고 이후 네 개의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90여 명이 살해하고 부상을 입게 만들었다. 이 사건은 2011년 노르웨이 테러가 일어나기 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대량 살인을 저지른 총기난사범으로 기록되었다고 한다. 정말이지 어떻게 이렇게 끔찍한 사건이 일어날 수 있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복잡하고 어지러운 것이긴 하지만, 누군가를 해치는 일, 살인을 어떻게 할 수 있는 건지 평범한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우범곤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선 자살했다고 하는데, 너무 편안히 떠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옥에서나마 죗값을 받고 있으면 싶다.




여러 사건을 소개하는 책을 읽으며 처음에는 몰랐던 사실도 있어서 신기했지만, 나중에는 씁쓸하고 안타깝고 불편한 기분을 느꼈다. 오래된 역사에서 현대로 점점 가까워지면서 사회적인 범죄가 소개된 탓일 것이다. 이런 범죄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만드는 게 최선일 테지만, 방법이 없으니 퍽 난감하다.

그래도 범죄 사건은 차치하고 몰랐던 역사적 사실과 각국의 문화에서 비롯된 범죄들을 소개한 책을 흥미롭게 읽었다.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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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괴의 날 정해연의 날 3부작
정해연 지음 / 시공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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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준은 소아혈액암을 앓고 있는 딸 희애의 수술비를 마련하고자 3년 전 떠난 전 부인 서혜은의 지시를 따르기로 한다. 혜은은 부잣집 딸 최로희를 납치해 부모에게서 희애의 수술비를 받아내고 아이를 돌려보내면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명준에게 대포폰과 대포차를 주며 유괴할 날짜를 정해줬다.
달리 수술비를 마련할 방법이 없었던 명준은 혜은이 정해준 날에 차를 몰고 로희의 집골목으로 들어갔다가 대문 밖으로 튀어나온 누군가를 차로 치게 된다. 놀란 명준이 확인한 결과 차에 치인 사람은 자신이 납치해야 했던 로희였다. 아이의 머리에서 피가 나고 있었기에 명준은 로희를 차에 태우고선 인적 드문 자신의 허름한 집으로 향했다.

로희가 깨어났을 때 명준은 깜짝 놀라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는 상황이 됐다. 로희가 기억을 잃고선 자신이 누구냐고 명준에게 물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아빠이며 이름은 희애라고 둘러댄 명준은 빨리 로희의 부모에게 돈을 받고 아이를 돌려보내고 싶었다. 그런데 아무리 전화를 해도 로희의 부모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래서 밤에 몰래 로희의 집에 간 명준은 골목에 나와있는 동네 사람들과 분주하게 움직이는 경찰들 사이에서 시신 두 구가 로희의 집에서 나오는 걸 보게 된다.



유괴의 시작은 자신의 아이를 위한 것이라 안타까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 명준은 가난하고 배운 것이 별로 없지만 그래도 딸 희애를 잘 키우고자 애를 썼는데 아이가 아프기 시작하면서 좋지 않던 가세는 기울어가기 시작했고, 그런 와중에 아내 혜은은 가진 걸 탈탈 털어 떠나버렸다. 그러고선 명준에게 이혼을 해달라고 서류만 보내왔는데, 바보처럼 착한 명준은 서명을 해주고 아이는 자신이 책임지기로 했다. 그런데 자꾸만 병원비가 밀려 간호사들 몰래 희애 얼굴만 보고 도망치는 생활을 계속 이어갈 때쯤 떠난 혜은에게서 연락이 왔다. 희애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로희를 납치하라는 지시를 하면서 말이다. 이 바보같이 착하기만 한 남자는 다른 집 아이를 납치한다는 죄책감이 일었지만, 희애를 위해 어쩔 수 없다는 마음으로 그 일을 하기로 한다.

하지만 로희가 사고를 당하면서 기억을 잃게 되었는데, 처음엔 그게 조금은 다행이라고 느껴졌다. 명준이 자신을 아빠라고 하면 믿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가지 간과한 점이 있으니 11살 로희는 천재라고 소문이 난 아이였다는 것이다. 홈스쿨링을 하며 영재 학원에 다녔던 로희는 기억을 잃긴 했어도 명준이 자신의 진짜 아빠가 맞는지 의심했다. 그러나 명준의 왠지 쩔쩔매는 태도가 그럴듯하게 느껴진 건지, 로희는 그를 아빠라고 여기며 진짜 딸인 듯 허물 없이, 때로는 막무가내로 대했다.
두 사람의 관계가 유괴범과 유괴된 아동에서 부녀로 바뀌게 되면서부터 유쾌함과 코믹함을 넘나들었다. 나름 납치극인데 이렇게 웃겨도 되나 싶을 정도로 재미있는 장면들이 많았다. 로희가 천재이고 명준이 순박한 아저씨라는 캐릭터 특성이 두드러지기 시작하자 둘의 관계가 정립되었다. 똑똑한 로희가 명준을 이끄는 것으로 말이다. 로희가 기억을 잃었을 때는 그래도 어느 정도까진 명준이 앞장섰는데, 기억이 되돌아온 후에는 로희가 명준에게 지시를 내리며 관계의 우위를 점했다. 그 모순적인 관계에 인간미가 있었기에 즐겁게 느껴졌다.

한편, 로희의 아빠 최진태는 뇌 관련 권위자이면서 병원장이었고, 엄마 소진유는 가정주부였다. 그 집에서 일하는 구옥분 여사가 휴가를 갔다가 돌아왔을 때 두 사람의 시신을 발견해 경찰에 신고를 했다. 최진태는 자신의 서재에서 해동검도 진검으로 복부를 찔려 사망했다. 그리고 소진유는 얇은 슬립을 입은 채로 전기장판에 누워 죽어있었다.
곧이어 경찰은 구옥분 여사에게서 로희가 없어졌다는 말을 듣고 아이를 찾는 일에 집중했다. 허술한 부분이 많은 명준이 이 부분에서 하필이면 CCTV에 찍히는 바람에 수배가 내려졌다. 혜은이 지시한 대로 로희를 납치했을 뿐 살인과는 상관없는 명준이 과연 기억을 잃은 로희를 데리고 잘 도망칠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납치범이 보일 행동의 정석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던 명준은 로희에게 구박을 받을 정도로 허술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잡히지 않기를 바랐다.

이런 모순적인 상황에 최진태와 관련된 여러 비밀이 밝혀졌다. 최진태의 아버지이자 병원을 물려준 최억만과 보안업체 직원 박철원, 그리고 후반엔 깜짝 놀랄 만한 반전의 주인공까지 등장했다. 여기서 진짜 나쁜 사람은 반전의 주인공이었고, 로희의 아빠 최진태 역시 천하의 죽일 놈이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지 너무나 화가 날 지경이었다. 그들을 보며 명준이 좀 바보 같긴 해도 진짜 좋은 아빠라고 새삼 느끼게 됐다.

정해연 작가의 책은 여러 작가들과 함께 낸 앤솔러지만 읽어봤었다. 읽은 책이 단편이었던 터라 이 소설로 본격적으로 접하게 된 거라 말할 수 있는데, 소재와는 다르게 유쾌함과 따뜻함이 묻어나는 책이라 재미있게 읽었다. 물론 어두운 부분도 있어서 마음이 안 좋긴 했지만 그래도 대비되는 캐릭터인 명준과 로희의 호흡이 좋아서 읽는 내내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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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란 말인가. 자신은 아이를 유괴했을 뿐이다. 그런데 아이의 부모가 죽다니. 대체 누가 죽인 걸까. 벌써 경찰의 조사가 시작되었다. 당연히 아이가 사라진 것도 알아낼 것이다. 경찰들이 아이를 유괴한 사람과 살인범이 다른 인물이라고 생각할까? - P86

로희 부모의 사망을 알고 나서 명준은 아주 잠시나마 로희의 생존이 자신 덕분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로희를 유괴하지 않았으면 누군지도 모를 살인마에게 이 작은 생명의 불빛이 꺼졌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저 자기 위안일 뿐이었다. 일이 어떻게 됐든지 간에 로희는 스스로 살아나왔고, 자신의 부모 옆이 아닌 이곳에서 울게 만든 것은 명준이었다. - P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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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가 돌아왔다
C. J. 튜더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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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손은 오래전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옛 탄광 마을 '안힐'을 다시 찾았다. 영어 교사로 재직한 이력 덕분에 조는 자신이 다녔던 학교에서 일할 수 있게 됐다. 물론 그 과정에는 거짓 추천서가 있긴 했지만 말이다.
이곳에 다시는 돌아오고 싶지 않았지만 그에게는 돌아와야 할 이유가 있었다. 두 달 전, 조에게 이메일이 하나 도착했었다. 그의 여동생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알고 있다며, 그 사건이 안힐에서 다시 일어나고 있다는 내용의 메일이었다.

20년 전, 크리스는 갱도로 들어가는 입구를 발견했다며 조와 다른 친구들에게 말했다. 거침없는 성격의 스티븐은 당장 가자고 벼르고 있었고, 스티븐의 충실한 똘마니 닉은 그에게 옹호했다. 조는 가고 싶지 않았지만 스티븐의 뜻을 거스르면 따돌림을 당하게 될까 봐 어쩔 수 없이 따라가게 된다. 스티븐이 데리고 온 여자친구 마리까지 다섯 명이 어두운 갱도로 들어가게 됐고, 조의 어린 여동생 애니가 오빠를 몰래 뒤따라왔다.
어두운 갱도 안에서 어떤 사건이 벌어진 뒤, 밖으로 뛰쳐나온 아이들은 그렇게 흩어졌다. 집으로 돌아오지 않은 애니만 제외하고 말이다. 실종된 애니를 찾기 위해 경찰들과 마을 사람들이 움직였지만 그 어디에서도 애니를 찾을 수가 없었는데, 48시간 뒤에 애니가 나타났다. 조는 그 아이가 자신의 동생이 아니라고 확신했다.



소설은 어느 집에서 일어난 끔찍한 사건으로 시작되었다. 거실에는 엄마가 자기 머리에 산탄총을 쏴 죽어 있었다. 이 사건이 단순한 자살로 아니라고 치부된 건 자신의 방에서 얼굴이 짓이겨진 채 죽은 아들 때문이었다. 분명 엄마가 아들을 이렇게 만들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었다. 의문스러운 건 아들의 방에 피로 '내 아들이 아니야'라고 쓰여 있었다는 것이다. 이 프롤로그가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후 소설은 주인공 조가 안힐로 가는 장면으로 이어졌다. 면접을 위해 학교를 찾은 조를 보며 주인공임에도 믿을 수 없는 구석이 있다고 느꼈다. 추천서를 조작한 것에서부터 조금 의문스러웠는데, 학교에서 일하기로 결정된 후 프롤로그에서 사건이 일어난 그 집을 굳이 임대했다는 점 또한 기이하게만 보였다. 대체 조에게 어떤 사연이 있는 건지 벌써부터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조가 학교에서 일하게 된 후 여러 선생들 중에 베스와 가까워졌다. 그리고 조가 돌아왔다는 소문을 들은 여러 사람들과 마주하게 됐다. 그중에는 만나고 싶지 않았던 스티븐이 있었다. 지금은 지역 의원으로 잘 나가고 있는 그였지만, 조는 그가 학창 시절에 아이들을 심하게 괴롭혔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스티븐의 아들 제러미는 제 아버지와 똑같은 짓을 하고 있었다. 혐오스러운 부전자전이었다.

소설이 어느 정도 진행된 후에는 현재와 과거를 오가면서 진행됐다. 과거 시점에서는 애니가 태어난 후 어느 정도 자라 오빠를 따르기 시작하면서부터 조와 유대감이 쌓여 친밀한 남매 사이라는 걸 보여줬다. 사춘기 소년이 되었더라도 조에게는 애니가 사랑스러운 여동생이었다는 걸 강조했다.
하지만 갱도에서 사건이 일어난 후 애니가 48시간 뒤에 돌아온 순간부터 동생은 더 이상 사랑스러운 그 아이가 아니라는 걸 보여줬다. 마치 악마가 애니의 속 안에 들어차 있는 듯 무시무시하고 섬뜩하게만 느껴졌다. 엄마와 아빠는 집에 돌아온 애니를 반겼지만, 조는 그 괴물을 여동생으로 볼 수가 없었다. 그 부분을 읽으면서 꼬마 애니의 섬뜩함에 절로 몸서리가 쳐졌다. 조가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처절하기만 했다.
놀랍게도 20년이 지난 지금 그때와 비슷한 사건이 안힐에서 다시 일어나고 있었다. 프롤로그에 나왔던 남자아이가 실종됐다가 돌아온 이후 어떻게 달라졌는지 베스가 설명해 준 덕분이었다. 그리고 이 현재 사건에는 스티븐의 아들 제러미가 그 중심에 있었다는 건 묘한 우연인지 더러운 핏줄의 힘인지 알 수 없었다.

소설이 후반으로 가면서 다리를 절게 된 조의 사연과 현재 일어나는 일들, 그리고 반전까지 쉴 새 없이 몰아쳤다. 애니 사건의 원흉이 누구인지 밝혀졌을 때 가장 놀랐었다. 역시 사람은 겉으로만 봐서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고, 더군다나 사랑에 눈이 먼 사람에겐 더욱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현재 시점의 조의 유일한 친구인 브렌던의 정체가 드러났을 때도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이후 보인 행동 또한 의외라 놀라웠고 말이다.

C. J. 튜더의 두 번째 출판작이고, 나는 네 번째로 찾아 읽은 것이었다. 작가의 책을 어느 정도 읽고 나니 공포스러운 상황을 정말 잘 묘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종됐던 애니가 돌아온 부분을 읽을 때 그 상황을 너무나 잘 상상한 덕분에 너무나 무서웠다. 여자 스티븐 킹이라 불릴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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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은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고, 내 본모습을 백 퍼센트 드러낼 수 있는 상대였고, 눈물이 날 때까지 나를 웃길 수 있는 딱 한 명이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다. 내 동생은 여덟 살 때 실종됐다. 그 당시에 나는 그보다 더 끔찍한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그러고 나서 얼마 후에 돌아왔다. - P44

"실종됐다가 돌아온 뒤에는 내가 고개를 돌리면 애가 거기 서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어. 얼마나 소름이 돋았는지 몰라. 그 애가 나를 쳐다보던 눈빛. 몸에서 나던 냄새. 가끔 들릴락 말락 하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릴 때도 있었어. 욕을 그렇게 하는 거야. 말투도 그 애 같지 않았어. 이상했어." - P253.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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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죽어 마땅한 자
마이클 코리타 지음, 허형은 옮김 / 황금시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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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나 모건은 자신을 죽이러 온 두 명의 킬러와 함께 있다. 차 안에 앉아있는 그녀는 킬러들의 처분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들은 니나를 죽이러 왔지만 의뢰를 한 코슨 라워리가 마음에 들지 않아 그녀를 죽인 것처럼 위장하려고 한다. 니나가 스스로 손목을 그어 충분하다고 믿을 만큼 피를 흘리도록 해 웅덩이를 고이게 했고, 헤드레스트에 총을 쏴 구멍을 만들었다. 그리고 더 신뢰가 가도록 니나의 두피를 약간 뜯어내 흔적을 만들었다. 니나는 그들의 처분을 묵묵히 받아들였다. 자신이 죽었다고 라워리가 믿어야만 남편인 더그와 딸 헤일리, 아들 닉이 무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모든 뒤처리가 끝난 후 니나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렇게 10년이 지난 후, 니나는 리아 트렌턴이라는 이름으로 메인주 북부에서 가이드로 살고 있다. 세상과 단절하고 싶은 사람들만 찾아오는, 핸드폰은 터지지 않고 당연히 와이파이도 없는 깊은 산속이었다. 리아는 불안한 과거는 마음 깊은 곳에 담아둔 채 개 한 마리, 다정한 연인 에드와 함께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더그만이 알고 있던 위성 통신기가 시끄럽게 울려댔다. 두려운 마음으로 연락을 한 리아는 자신을 이모라 부르는 헤일리와 통화를 하게 된다. 헤일리는 아빠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며, 아빠가 생전에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이 번호로 꼭 연락하라고 신신당부를 했고, 연습까지 시켰다는 말을 했다. 리아는 남편의 사망 소식에 하늘이 무너질 것 같았지만, 이제 고아가 된 자신의 아이들을 먼저 챙겨야 하는 처지에 있었다. 단 한 번도 찾아온 적 없는 이모라 여기는 자신을 적대하는 두 아이를 말이다.

이후 코슨 라워리는 니나 모건이 살아있다는 걸 알고 그녀를 찾기 위해 교도소에서 두 사람을 탈출시킨다.



자신의 생명을 위협당하는 건 너무나 두려운 상황이다. 죽는 것보다 죽임을 당한다는 것 자체가 공포감을 유발하니 말이다. 하지만 자신의 죽음보다 더 끔찍한 건 사랑하는 가족까지 그 위협을 당한다는 것이다. 내 목숨만을 위협받는다면 그래도 어떻게든 지구 끝까지라도 도망치겠지만, 가족에게 그 화살이 겨눠진다면 내 목숨 따위는 기꺼이 버릴 수 있다. 니나 모건이 바로 그런 상황에 처해 있었다.
그녀는 코슨 라워리가 가지고 있는 거대한 기업의 개인 조종사로 일하며 여러 사람들을 이곳에서 저곳으로 실어 날랐다. 그러다 끔찍한 범행 장면을 목격한 뒤 라워리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려다가 들켜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됐다. 하지만 라워리가 고용한 킬러들이 고용주를 그다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던 덕분에 니나는 죽음을 위장하고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그로 인해 사랑하는 남편과 두 아이를 10년 동안이나 만나지도, 연락도 하지 못하게 됐지만 말이다.

하지만 우연한 교통사고로 남편이 사망한 후, 실제로는 고아가 아니지만 법적으로는 고아가 되어버린 헤일리와 닉을 키우게 된다. 죽었다고 믿는 엄마가 아닌 이모로 말이다.
안타까운 건 라워리가 너무나 끈질긴 인간이라 그녀가 다시 나타나길 기다리고 있었다는 점이다. 라워리는 다른 교도소로 이송될 예정이던 폴라드와 블리크를 탈출시켜 현재 리아로 살고 있는 니나를 찾으라고 지시했다. 그것도 자신이 직접 그녀를 처리하겠다는 듯 살아있는 채로 데리고 오라고 지시했다.
불안에 대한 예감이 극도로 발달한 리아는 오래전 자신이 떠날 수 있게 도와준 램킨 박사에게 연락을 했다. 램킨 박사는 라워리 그룹에 적대적인 블랙웰 가의 댁스에게 연락을 해 자세한 사정을 들려주었다. 라워리에게 받을 보수가 있던 댁스는 리아의 사건에 흥미를 느낀다.

소설은 니나의 죽음을 위장하는 장면으로 시작되어 더그의 사망, 아이들과의 안타까운 재회까지 긴박하게 진행됐다. 등장인물이 어느 정도 추려진 뒤에는 리아와 댁스, 헤일리를 비롯해 리아를 찾으려고 움직이는 두 킬러들의 시점까지 오갔다. 리아나 헤일리 외에 다른 등장인물들의 시점을 읽는 동안 의문스러움이 머리 위를 동동 떠다녔다. 댁스는 당최 속을 모르겠다는 느낌이 들어서 리아에게 득이 될지, 실이 될지 알 수 없는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폴라드와 블리크는 리아를 찾기 위해 흔적을 되짚어가며 여러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는데, 두 사람 중 블리크가 기이할 정도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인물이라 조금 의문스러웠다.
라워리에게서 위협을 받는 상황에 처한 리아는 적대감을 보이는 헤일리를 상대하는 게 버거워 보였다. 아직 어린 닉은 즐거운 무언가를 제시하면 금세 마음이 빼앗겼지만, 사춘기 소녀에 리아와 똑 닮은 딸은 도무지 의심을 지우질 않았다.

리아의 숨통을 조이며 라워리의 킬러들이 턱 밑까지 따라왔을 때 그녀는 아이들을 데리고 간신히 도망을 쳤지만, 돌발 인물로 인해 위치를 들키게 됐고, 헤일리와 닉 또한 돌발 행동을 하고 말았다. 그래서 후반엔 이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덕분에 긴장감을 느끼며 스릴을 만끽하며 소설을 읽었다.
등장했을 때부터 예측하기 어려웠던 캐릭터들이 결말에 의외의 행동을 보인 게 가장 놀라웠다. 마음속에서 믿었다가 의심했다가를 반복했던 캐릭터들 덕분에 마무리가 잘 된 것 같다. 물론 리아가 아이들을 위해 더 이상 도망치지 않겠다고 결심한 점이 극적 결말의 가장 큰 구심점이긴 했지만 말이다.

마이클 코리타의 책은 처음 읽은 건데 너무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었다. 재미있는 소설이라 그런지 당연히 영화화도 확정되었다고 한다. 리아와 댁스, 블리크까지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어떤 배우들이 연기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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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누군가의 총구를 마주할 확률이 높아 보일 때 살아갈 방법은 딱 두 가지였다. 대담하게 살거나, 겁에 질려 살거나. 재미를 보는 쪽은 둘 중 하나뿐이었다. - P212

폴라드와 블리크가 메인주 북부까지 쫓아온다면?
그러면 오히려 폴라드와 블리크가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할 것이다.
자신들이 니나 모건을 쫓고 있다고 믿고 있으니, 리아 트렌턴을 마주할 준비는 안 되어있을 테니까.
리아 트렌턴은 니나 모건과 전혀 다른 사람이니까. - P250

니나 모건이 아이들을 위해 죽었던 날이 떠올랐다. 그때는 아이들을 위해 옳은 일을 했다고 믿었었다.
실수였다.
아이들을 위해 죽는 걸로 충분하지 않다. 그때 알아야 했던 것을 이제야 알겠다. 자식을 위해 죽는 엄마는 좋은 엄마가 아니다.
좋은 엄마란 자식을 위해 살인도 불사하는 엄마다. - P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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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노후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2
박형서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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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미래.
대한민국은 초고령화 사회가 됐다. 80세 이상 노인이 국민의 40%를 상회하고 있었기에 노인을 부양하는 청년 세대의 부담이 커졌다. 지하철 무임승차를 하는 노인들의 비중이 늘어 지하철 요금은 어느새 밥값을 넘어선 지경이 되어 청년들은 대중교통도 이용하지 못한다. 사회가 이런 상황이다 보니 연금 수급자의 비중은 당연히 크기에 세금 충당이 어려운 실정이다.
그래서 국민연금공단에는 '외곽 공무원'이라 불리는 노령연금TF팀이 있다. 연금을 과다 수급하는 노인들, 일명 '적색 리스트'에 오른 이들을 찾아가 자연사인 듯, 노화로 인한 자연스러운 흐름인 듯 보이게 죽음으로 이끄는 사람들이다.

70세가 된 장길도는 얼마 전까지 외곽 공무원으로 일하다 퇴직해 이제 막 백수가 됐다. 그는 9살 연상의 아내 한수련과 함께 여생을 평안하게 보낼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런데 오래전부터 폐가 좋지 않아 현재는 요양원에 있는 한수련에게 노령연금 100% 수급을 축하한다고 적힌 카드와 꽃다발이 왔다. 국민연금에 가입할 필요가 없다고 했던 장길도의 말을 한수련이 듣지 않았던 것이었다. 장길도는 자신의 아내가 외곽 공무원의 타깃이 되었음을 직감하고 그녀를 지키기 위해 움직인다.



작품 해설과 작가의 말을 제외하고 내용은 137페이지인 짧은 소설답게 빠른 전개를 보였다. 연금과 외곽 공무원이라는 간단한 설명으로 소설 속 상황이 단번에 이해가 됐고, 그게 너무나 현실적이라 두려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소설은 자신이 몸담았던 조직에 대해 너무나 잘 아는 장길도가 아내 한수련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이라고 말할 수 있다. 외곽 공무원으로 일했던 만큼 그들이 얼마나 빠르고 전문적으로 움직이는지 잘 알고 있었기에 아내를 부정 수급자로 만들어 연금 지급 자격을 박탈하게 만들 작정이었다. 그래서 장길도는 같은 팀이었던 국희에게 먼저 연락을 취하는데, 그들은 어느새 성큼 다가와 아내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었다.
장길도가 아내를 지키기 위해 움직이는 과정 사이사이에 여러 노인들의 죽음이 언급됐다. 몇 달이 지나 발견된 노인, 치매에 걸린 노모를 망치로 때려죽인 늙은 아들, 뺑소니를 당하고도 집에 들어와 손녀에게 아침밥을 차려준 뒤 의문스러운 죽음을 맞이한 이, 유난히 사이가 좋았던 아내를 떠나보낸 뒤 목숨을 끊은 남편 등이 있었다. 소설 중반을 넘어가면서 이들의 죽음에 대한 비밀이 밝혀졌을 때 깜짝 놀라 책장을 앞으로 넘겨 다시 확인하게 만들었다.

짧은 책을 읽는 내내 두려움을 느꼈던 건 너무나 현실적인 느낌이 들어서였다. 그래도 아직까진 아니라고 말할 수 있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나라는 초고령 사회가 될 거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태어나는 아이들은 점점 줄어들고 노인의 비율은 늘어가는데, 의학 기술의 발전으로 수명은 연장되고 그로 인해 연급 수급자는 늘어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청년 세대의 부담은 커질 테고, 세금은 점점 바닥을 보이게 되는 과정으로 이어질 터였다.
나이가 들면 병이 들고 그렇게 되면 죽는 게 당연한데, 그 당연한 일이 당연하지 않게 되어 외곽 공무원들로 하여금 노인을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일이 슬프면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여겨졌다. 미래를 짊어지고 나라를 이끌어야 할 세대의 젊은이들이 살기 어려운 현실로 인해, 그리고 세금 문제로 인해 이러한 미래가 도래했다는 소설 속 설정이 마냥 설정으로만 느껴지지 않아서 무서웠다.

언젠가는, 머지않은 미래에 실현될지 모를 현실적인 문제를 너무나 극적으로 꼬집고 있는 소설이었다. 나 역시 젊다고 할 수 없고, 나이가 든 축에 가까운 편이어서 그런지 여러 번 등골이 서늘했다. 그렇다고 노령 사회를 해결할 현실적인 방안이 있지 않아 더욱 답답했다.

여러 면에서 무서운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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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안 죽어? 응? 늙었는데 왜 안 죽어! 그렇게 오래 살면 거북이지 그게 사람이야? 요즘 툭하면 100살이야. 늙으면 죽는 게 당연한데 대체 왜들 안 죽는 거야! 온갖 잡다한 병에 걸려 골골대면서도 살아 있으니 마냥 기분 좋아?
(……중락)
하는 일이라고는 영혼이 떠나지 않도록 붙들고 있는 게 전부인 주제에 당신들 대체 왜 우리 사회에 아직 남아 있는 거야!" - P126.127

"시간이 노인의 편이 아닌 것처럼 젊은이의 편도 아니지. 시간은 결국 살아 있는 모두를 배신할 걸세. 싸우다 고개를 들어보면 어느덧 자네들도 맥없이 늙어 있을 테니까." - 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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