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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보이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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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15살 "나"는 중환자실에서 혼수상태에 빠져있다가 깨어났다. 깨어나 처음 본 사람인 권대령은 나에게 희망의 마스코트가 되었다고 말했다. 트럭 운전을 하던 아빠가 제 한 몸 희생해 무장간첩이 탄 차를 정면으로 들이받아 즉사시킨 훌륭한 일을 했다는 게 알려져 국민들은 내가 깨어나길 간절히 바랐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자신이 나를 돌볼 것이라 말하며 나를 "원더보이"로 만들었다.

 

사고가 날 당시 눈부신 빛을 봤던 나는 깨어난 이후 사람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내가 느끼는 감정을 다른 사람이 격하게 공감하게 만들 수도 있었고, 누군가의 물건을 만지면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을 알게 되기도 한다.

 

 

 

유일한 가족인 아빠를 잃은 끔찍한 사고로 믿을 수 없는 능력을 얻게 된 나, 김정훈의 갑자기 바뀐 인생에서 시작되어 격동의 80년대 사회로 이야기가 확장되었다. 처음엔 졸지에 고아가 된 김정훈의 인생이 안타까웠고, 권대령 때문에 송년특집 방송에 나가 입이 거친 이만기를 만나는 등의 에피소드는 조금 웃기기도 했다. 그러다 사람들을 고문하고 자백하게 만드는 목적으로 김정훈의 능력을 사용하게 되면서 내용에 이전과는 다른 무게가 실렸다.

 

아직 세상에 대해, 삶에 대해 알기엔 너무나 어린 나이였던 15살의 소년이 사는 80년대는 타인의 아픔에 공감해서는 안 되고, 그 아픔을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죄가 되어 쥐도 새도 모르게 붙잡혀가 사형 판결을 받을 수 있는 시대였다. 처음엔 권대령이 하는 일이 뭔지 자세히 알지 못했지만, 왠지 그가 싫었던 김정훈은 능력이 없어진 것처럼 행동해 그의 통제하에서 벗어난다.

그 후 군 병원에 있을 때 자신을 돌봐주며 갈 곳이 없어지면 찾아오라던 간호병 선재 형을 만나고, 그에게서 강토 형을 소개받아 부조리한 이 시대에 대해 깊이 알게 된다. 여자인 정희선이 왜 남자인 강토로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됐는지, 재진 아저씨는 왜 사람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내려고 하는지 깨달아가고, 김정훈은 피부로 생생히 느끼는 이 시대 속에서 아빠에게 죽었다고만 들었던 엄마가 살아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찾기 위해 애를 쓴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지만 지금의 자유로운 시대는 국민이 싸워서 찾은 것이고 그건 몇 십 년도 채 되지 않았다. 그 시대를 살아가는 선재, 강토, 재진 아저씨와 같은 사람들은 부당한 것을 부당하다고 말하며 싸우고 또 싸웠다.

그들이 그런 행동을 하게 된 것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시대라서 그런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상실을 경험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희선이 강토로 살아갈 수밖에 없게 만든, 이수형이라는 남자와 관련된 사연은 중반에 등장했다가 후반에 훅 치고 들어와 가슴을 무너지게 했다. 정희선은 부조리한 세상, 부당한 세상에 맞서기 위해, 그리고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는 마음에 남자의 외형으로 살아가고자 했던 것 같다.

 

아빠가 돌아가셔서 허망한 어린 김정훈에게 슬퍼하면 너 혼자 울게 될 거라고 말하던 권대령이 참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하지만 김정훈의 특별한 능력과 관련해 사람들이 함께 우는 몇몇 장면에서 권대령마저 눈물을 흘리는데 유일하게 대통령만은 울지 않으며 사람들의 반응에 의아해했던 것은 말 그대로 독재 정권을 보여주는 게 아니었나 싶다. 타인의 감정과 아픔에 공감하며 그를 이해하는 것은 큰 힘이었고, 그것에 공감할 수 없는 사람은 반드시 무너지게 되어있다.

 

이 모든 일이 벌어지는 시대 속에서 원더보이 김정훈은 초반엔 어리기 때문에 세상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도 있지만, 외적인 세상보다 유일한 가족인 아빠를 잃고 고아가 되어 세상에 홀로 떨어진 막막한 내적인 감정에 골몰한 탓이 크다고 여겨졌다.

시간이 흐르면서 주변 사람들에 의해 세상을 보고 느끼면서 소년은 성장했고 시대 역시 싸운 만큼 성장을 했다. 소년의 성장 소설이면서 시대의 발자취를 담은 소설이기도 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요? 국가는 왜 자기 안에 고통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을 적으로 간주하는 건가요? 그게 아니라면 가난하고 핍박받는 사람들의 고통에 공감하는 사람들을 이적행위자로 몰 이유가 없지 않나요? 우리에게는 이런 국가 말고 다른 국가를 선택할 권리가 없는 건가요?" - P190.191

"행복은 이토록 훤히 드러나는데, 고통은 꼭꼭 감춰져 있어요. 때리고, 부수고, 가두고, 불태우는 이유가 거기에 있죠. 어둠 속에 밀어넣고 감추기만 하면 되니까. 지금 우리는 차갑게 식어가는 캄캄한 밤 안에 있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보이지 않으면 우리는 없다고 생각하죠. 그러니 그들의 고통도 이 세상에 없는 거예요. 신부님, 과연 이 고통이 사람들에게 보여질 수 있을까요?" - P285.286

"이해란 누군가를 대신해서 그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 그리고 그 이야기를 통해서 다시 그들을 사랑하는 일이야." - P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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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호수 아르테 한국 소설선 작은책 시리즈
정용준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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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빈 대학의 한국학과에서 나의 단편 시나리오를 번역해 각색과 연출까지 하겠다는 수업에 초청을 받아 번역원 직원 겸 가이드를 맡은 민영 씨와 빈에 왔다. 빈의 숙소에 도착해 호텔 팸플릿의 지도를 보다가 장크트갈렌에 산다던 무주가 생각이 났다.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며 7년 전 갑자기 나를 떠나 그 남자와 결혼해 스위스로 떠난 연인이었다.

 

무주는 절대 연락하지 말라고 했지만 나는 무심결에 메일을 보냈고, 답장 없는 메일에 자책을 하며 빈에서의 일정을 소화하다가 가까우니 올 수 있으면 오라는 무주의 답장을 받는다. 일정을 조율하고 장크트갈렌에 도착한 나는 역으로 마중 나온 무주와 그녀의 딸 유나를 만난다.

 

 

 

 

 

 

절대 연락하지 말라고 했던 전 여자친구에게 7년 만에 보낸 메일로 인해 그녀와 만났던 시간과 헤어짐의 순간, 그리고 현재에 이르러 과거 그 시절에 대해 말하는 소설이었다.

그리 많은 말을 하지는 않았던 짧은 소설이었지만,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건지 느낄 수 있었다.

화자인 "나" 한윤기는 시나리오 작가 겸 감독이었는데, 오래전 단편 시나리오로 국제 영화제에서 수상한 이후 손을 대는 것 족족 망해 이제는 밥벌이를 위해 전국을 돌며 강의를 하는 처지였다. 그런 그가 오스트리아에서 한국어로 쓴 자신의 시나리오를 독일어로 번역하는 수업에 참관해 애매한 단어의 뜻에 대해 말하는 부분에서 나라마다 언어의 차이가 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시나리오에 쓴 "친구"에 대해 그냥 친구는 없다며 남자친구인지 아니면 여자친구인지 말해주길 바랐고, "저만치"의 거리가 어느 정도인지 하는 것을 알고자 했다.

다른 언어로 진행된 그 수업 외에 같은 나라 사람인 윤기와 민영이 "세계의 호수"에 대해 말하는 장면과 4년이나 만났던 윤기와 무주마저도 대화를 할 때 잘못 전달되고 때로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의 차이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윤기가 쓴 시나리오에 대해 말하는 부분이나 그가 "그냥"이라는 말을 자주 썼다는 정보를 통해 윤기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무주와 만날 때부터 이미 그는 애매모호함이라고 정의 내릴 수 있는 표현을 즐겨 썼고, 무주가 시나리오를 읽어주며 적절하게 고쳐줬다. 언어를 사용하는 것에서부터 그런 모호함이 몸에 배어있었으니 감정에 대해서도 당연히 그러지 않았을까 싶다. 윤기를 너무나 잘 아는 무주가 그의 감정을 느끼고 안간힘을 쓰다 결국 비참해질 동안 모호함으로 직접적인 표현을 피해왔던 윤기는 이유도 채 깨닫지 못한 채 이별을 통보받아야 했다.

이별에 정확한 수순이라는 게 있는 건 아니지만 감정을 피하기만 하다가 무주를 잃은 윤기도, 혼자 마음을 정리하고 이별을 고한 무주도 괜찮은 행동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4년이나 만난 연인과 헤어지게 됐을 땐 각자의 이유로 정말 고통스러워했을 것이다. 혼자 깨닫고 아파했던 무주가 그랬고, 7년 동안이나 이유를 몰랐던 윤기가 그랬듯 말이다.

 

무주의 집에 머무는 동안 윤기는 그의 성격처럼 직접적인 의문을 표하지 않다가 마지막에서야 무주에 의해 그 이유를 알게 된다. 작가의 말처럼 쓰인 후기에 이별과 작별에 대해 언급한 문장을 통해 윤기는 작별에서 비로소 이별을 맞이하게 된다. 7년 만에 비로소 감정을 털어낸 윤기는 후련해지고 조금은 편안하게 무주를 대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감정에 대한 언어, 표현, 번역 등을 소재로 한 이 책을 읽으니 사람들 각자에겐 바벨탑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은 적당한 말과 행동을 취하고 있다고 여길지도 모르지만, 상대에겐 진정한 의미가 닿지 않아 다른 뜻으로 오해하기도 하는 표현의 차이와 다름이 있을 거라고 말이다.

오랜 시간 사귀고 만나온 친구, 연인이라도 한 사람을 깊이 이해하는 건 도무지 어려운 일인 것 같다.

 

 

 

* 이 리뷰는 아르테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만나고 싶고 만나고 싶지 않다. 잊었지만 잊지 않았다. 보고 싶지 않지만 보고 싶다. 만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동시에 왜 만나면 안 되는 건지 의문을 품고 있다. - P40

한국엔 있고 오스트리아엔 없거나 반대로 이곳엔 있고 저기엔 없는 것이 있을 것이다. 같은 단어를 쓰지만 사실은 다 다른 언어들. 쉬운 단어일수록 단순한 진술일수록 난해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 P24

무주는 목소리, 눈빛, 한숨, 웃음만 보고도 내 마음의 모양을 알았다. 어제의 문장과 오늘의 문장의 다름과 뉘앙스의 차이를 짚어냈고 원래 쓰려고 했던 것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어서 내 마음에 맞게 문장과 이야기를 고쳐주기도 했다. - P3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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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우맨 (리커버 에디션)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7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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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결혼해서 아이가 있는 유부녀들이 사라지는 사건이 연속으로 일어난다.

비르테 베케르는 남편이 다른 도시에서 강의를 하기 위해 밤 비행기를 타고 다른 도시로 간 날 한밤중에 집에서 사라졌다. 새벽에 일어난 아이는 엄마가 집에 없다는 걸 알아채고 바깥으로 나갔을 때, 집 앞에 누군가 만들어놓은 눈사람이 엄마의 목도리를 두르고 있는 걸 본다.

그리고 며칠 뒤, 집 헛간에서 손도끼로 닭의 목을 자르던 쉴비아 오테르센은 누군가에게 쫓겨 숲으로 달아나다 그에게 잡힌다. 쌍둥이 딸들과 집에 돌아온 남편이 경찰에 신고를 해 해리가 현장에 오게 됐고, 숲을 돌아다니다가 눈사람 위에 쉴비아의 잘린 머리가 얹어진 것을 발견한다.

 

사건은 연쇄살인일지도 모른다는 전제하에 수사를 시작하지만, 비르테와 쉴비아는 연관 지을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러다 두 사람의 아이들이 같은 병원에 다녔다는 사실을 알아내 병원을 찾게 된다. 성형수술과 특수수술 전문이었던 원장 이다르 베틀레센이 비서도 모르게 특별한 유전 형질에 관한 진료를 한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5년 전에 제일 처음 읽었던 요 네스뵈의 해리 홀레 일곱 번째 시리즈를 다시 읽었다. 시리즈를 처음부터 찾아 읽으면서 이 소설은 건너 뛸 수도 있었지만, 읽는 김에 다시 읽었다.

 

소설의 시작은 1980년 어느 겨울에 엄마가 아이를 차에 남겨 두고 어떤 집에 들어가는 모습이었다. 다른 남자와의 정사를 위해 찾은 곳에서부터 스노우맨의 살인은 시작되었다. 그리고 1992년 겨울, 스타 형사로 유명세를 얻었지만 피해자의 장신구 및 물건을 훔치다 걸려 명성이 떨어진 게르트 라프토가 재기를 꿈꾸며 난도질 된 시신 사건을 조사하는 모습도 잠깐 등장했다.

 

여러 사건이 일어나며 용의자도 이쪽저쪽으로 포인트가 맞춰졌지만, 어째서인지 범인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추리에 약한 내가 범인을 맞힌 몇 안 되는 소설이기 때문이었다.

범인을 알고 있더라도, 그리고 두 번째로 읽는 책이었을지라도 사건이 전개되며 수사를 진행하는 모습은 처음 읽는 것처럼 흥미진진했다. 특히 결말에 이르렀을 때 해리가 여전히 사랑하는 라켈이 범인의 표적이 되어 잘못하면 목이 잘릴 수 있는 위험천만했던 상황은 어떻게 될지 아는데도 손에 땀을 쥐게 했다. 정말 위험한 도구로 기발하게 덫을 놓아서 조마조마했다. 그리고 범인과의 마지막 대결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시리즈의 범인이 늘 그랬듯 이 소설의 범인 역시 정말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고 느꼈다. 그 이유는 불륜을 저지른 건 백번 잘못한 일이지만, 그걸 본인이 판단하고 벌을 내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불륜을 저지른 여자는 죽였으면서 남자는 죽이지 않은 것도 모순이고 말이다. 아무튼 미친 인간이다.

 

시리즈를 처음부터 읽으며 해리의 인생이 어땠는지 알게 된 후에 다시 읽은 이 책에 대한 느낌은 조금 다르다.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 모르고 읽었을 때는 그런가 보다, 했는데 다시 읽으니 해리가 안간힘을 쓰며 버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술을 마시긴 하지만 이전 시리즈와는 다르게 마시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게 눈에 띄었다.

그리고 라켈을 향한 감정이 얼마나 애달프고 깊은지도 알고 있었기에 마지막에 그렇게 필사적이었던 모습에서 해리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만약 라켈이 잘못됐더라면 해리 홀레 시리즈는 이 소설에서 끝났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라켈은 살렸지만 다시 만날 가능성에 대해서는 알 수 없는 관계와 이제는 손가락도 하나 없어진 해리에게 어떤 사건이 일어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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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리 어게인 - 내 삶의 목적
W. 브루스 카메론 지음, 이창희 옮김 / 페티앙북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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냇가 근처에 사는 떠돌이 어미 개가 네 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그중 한 마리는 자기 자신을 인식하고 형제들을 관찰하며 어미 개에게서 떠돌이 생활을 배운다. 그러다 어떤 사람들에게 붙잡혀 가게 되어 많은 개들이 있는 곳에서 한동안 편하게 살지만, 그곳을 찾은 다른 사람들에 의해 이내 생을 마감한다.

 

하지만 이게 웬걸, 개는 다시 강아지로 태어났다. 이번에 태어난 곳은 많은 개들이 가둬진 곳에서 어미 개가 새끼를 낳는 일만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강아지 공장이었다.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다시 태어난 강아지는 지난 생의 어미 개가 문 손잡이를 열고 나갔던 방법을 이용해 강아지 공장을 빠져나온다. 그러다 어떤 사람에게 붙잡혀 한동안 더운 차에 갇혀 괴로워하다가 그곳에서 그를 구해준 여자와 함께 가게 된다. 그녀의 집에서 어린 소년 에단을 만난 강아지는 단번에 그와 사랑에 빠진다.

 

 

 

 

 

 

이전 생의 기억을 가지고 윤회를 거듭하는 개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을 영화로 먼저 만나봤었다. 동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는 대체로 비슷하게 흐르기 마련이지만, 뻔한 이야기임에도 항상 좋았기 때문에 영화를 정말 즐겁게 봤었다. 사랑스러운 개들이 똑똑하고 연기도 잘해서 정말 예뻤고 웃음과 감동을 줘서 좋았던 영화였다.

영화를 보고 잊고 있다가 원작이 궁금해져서 뒤늦게 읽었다.

 

첫 생에서 떠돌이 개로 살다가 처음으로 사람의 손길을 탔을 때, 토비라 불리게 된 그는 단번에 사람이 좋아졌다. 마치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말이다. 토비가 사람에게 붙잡혀 온 곳의 "세뇨라"라고 불리는 여자는 떠돌아다니는 개가 불쌍해서 마구 데려오고 예뻐해 주긴 하지만, 허가받지 않은 일이었고 이웃 등에게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에 개들은 안락사를 당하게 됐다. 너무 짧은 생이었다.

 

하지만 다시 태어난 생에서 개는 영원히 기억할 첫 주인 에단을 만나 베일리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그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된다. 학교를 제외하곤 어디든지 함께 다녔고, 놀 때도 잘 때도 당연히 에단의 곁에는 베일리가 있었다. 슬플 때나 기쁠 때 함께 했고, 에단이 위험할 때는 목숨을 걸고라도 지키는 한결같은 친구였다. 베일리의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럽고 예뻤는지 모르겠다. 때로는 사고를 치기도 했지만 착한 개라고 불렸던 것처럼 베일리는 정말 똑똑하고 충성스러웠다.

하지만 개는 사람보다 짧은 삶을 살기 때문에 베일리는 늙어서 세상을 떠나고, 어김없이 다시 태어나고 또 태어나 엘리, 베어라는 이름 등으로 불려도 언제나 에단을 기억했다.

 

책을 읽으면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도 동물을 대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다양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에단처럼 어릴 때부터 친구로 지내며 늙어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고, 떠돌아다니는 개가 불쌍하다며 무작정 데리고 오는 세뇨라처럼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런가 하면 남자친구에게 강아지를 선물 받고 집에서 혼자 지내게 하다가 나중엔 돌볼 수 없으니 엄마에게 맡기는 여자와 개 때문에 벌금을 낼 수 없다며 차에 태워 멀리 데려가 버리는 남자가 있었다.

말 못 하는 동물을, 그것도 사람을 너무나 사랑하는 동물에게 어떻게 그렇게 대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예쁘다는 이유만으로 강아지를 데려왔다가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쳐 짖지도 못하게 하고 나중엔 버리기까지 하다니, 정말 나쁜 사람들이다. 천벌을 받았으면 좋겠다. 세상에 나쁜 개는 없고 나쁜 사람이 있다는 소설 속 문장이 정말 와닿았다.

 

영화를 먼저 봤기 때문에 내용이 어떻게 흐를지, 이후에는 어떤 사건이 등장할지 대충 알고 있었지만 베일리의 사랑스러운 모습에 웃음이 절로 나왔고 어떨 땐 뭉클해져서 눈물이 찔끔찔끔 나기도 했다. 그러다 마지막엔 갑작스러운 모습에 놀라서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베일리의 삶의 목적은 어떤 주인을 만나느냐에 따라 달랐지만, 결국은 처음으로 자신에게 사랑을 주고 자신이 몇 번의 생을 사는 동안 기억했던 에단을 향한 사랑이었다. 첫 주인을 영원히 사랑하며 기억하는 삶이었고, 그에게 행복을 주는 게 목적인 삶이었다. 이런 개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어린 강아지부터 성견, 늙은 개의 행동을 생생하게 보여주며 마치 개의 입장에서 쓴 것 같다고 느껴졌다. 개를 좋아하는 사람, 특히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이라면 개의 행동에 공감하며 웃고 행복해질 수 있는 소설이었다.

 

내 삶의 목적은 에단을 사랑하고 에단에게 사랑받고 에단을 기쁘게 해 주는 것이 전부였다. - P220

내가 그렇게 착한 개라면 왜 나는 내 주인에게 버림받는 걸까? - P345

"세상에 나쁜 개는 없어. 나쁜 사람이 있을 뿐이지. 개들은 사랑이 필요할 뿐이라고." - P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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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읽다, 쓰다 - 세계문학 읽기 길잡이
김연경 지음 / 민음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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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러시아 문학을 번역한 번역가 겸 소설가인 김연경 작가님의 책에 관한 에세이를 읽었다. 몇 주 전에 읽은 <세계문학 브런치>가 문학을 소개하는 입문서 느낌의 책이었다면 이 책은 조금 더 깊이 들어간 심화편이었다.

 

안 읽어봤지만 작가와 대강의 내용을 알고 있는 <돈키호테>를 시작으로 7개의 챕터로 나누어 각각의 주제에 맞게 여러 책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내가 유독 많이 읽은 고전소설이 밀집되어 있던 챕터가 있는가 하면, "실존과 부조리"라는 부제를 단 챕터의 책은 단 한 권도 읽지 않았다는 놀라움을 줬다. 작가의 이름에서부터 어려움이 팍팍 느껴져서 왠지 안 읽고 싶지만 읽으려고 목록에는 담아둔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이 대표적인 예였다.

 

 

 

 

"근대, 야망"의 챕터는 이성을 제어하지 못할 정도로 인간의 본능적인 모습을 여실히 드러내는 소설을 소개했다.

속물적인 야망이 가득한 <고리오 영감>, 소원을 이뤄주는 악마와의 계약인 <나귀 가죽>, 그리고 상식적으로 이해가 간 되어 읽는 내내 욕을 했었던 <마담 보바리> 등이 있었다. <나귀 가죽>은 아주 오래전에 읽었었는데, 책에 대해 설명하는 글을 읽으니 다시 읽고 싶어졌다. 아무래도 어릴 때 읽어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많았던 것 같다.

 

프리드리히 니체가 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책보다 영화에 삽입되어 유명해진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가 더 익숙했다. 이 부분을 읽고 찾아보니 니체의 책을 읽은 슈트라우스가 영감을 받고 교향시를 작곡했다고 하여 인상적이었다. 니체라는 이름에서 느껴지는 어려움 때문에 막연한 거부감이 들지만, 나중에 먼 훗날 읽어봐야겠다.(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몇 편 소개했는데, <리어왕>에 대한 프로이트의 언급이 재미있었다. 살아 있는 동안 재산을 주지 말라는 명쾌한 답이었다!

 

"소설 이상의 소설" 챕터는 때론 환상적인 문학을 소개했다. <프랑켄슈타인>이라든지, <파리의 노트르담>, <검은 고양이> 등이 있었다. 에드거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는 대략의 줄거리만 읽었는데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챕터 중 가장 많이 읽은 책들은 일상과 가까운 내용을 담은 소설이었다. <제인 에어>와 <위대한 유산>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찰스 디킨스의 책은 두 권밖에 안 읽었지만 작가의 인생에 대해 말하는 부분을 통해 그의 소설과 동화가 왜 항상 해피엔딩, 권선징악인지 알 수 있었다. 작가의 인생이나 품행이 그의 글에 반영되기도 한다는 게 흥미로웠다.

 

제목은 유명하지만 정작 끝까지 읽은 사람은 많지 않다던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대서사시라고 말하며 등장인물이 500명이나 된다는 말에 정말 깜짝 놀랐다. 며칠 전에 어떤 책을 120페이지까지 읽는 동안 등장인물이 40명이 넘어가길래 안 읽겠다고 포기했는데 500명이라니... 거기다 의식의 흐름으로 진행되는 글이라고 알고 있기 때문에 아쉽지만 프루스트의 유명한 소설은 읽고 싶어도 못 읽을 것 같다.

 

어릴 때 누구나 한 번쯤은 읽었을 <어린 왕자>가 동화인지 소설인지 말하는 부분에서 생텍쥐페리가 유일무이한 장르라고 하는 부분은 왠지 뭉클했다. 정말 어릴 때 읽고 안 읽은 것 같은데 다시 읽고 싶어졌다.

 

 

 

 

목차에는 총 71권의 책을 소개하고 있었는데, 헤아려보니 그중 내가 읽은 책은 1/4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현대 소설을 많이 읽는 편이기도 하고, 몇몇 소설은 메모 어플에 저장해놓은 읽을 책 목록에만 아주 오랫동안 담겨있기 때문일 터였다. 그리고 지난번에 인식했던 것처럼 러시아 문학이나 작가의 이름부터가 어려울 것 같은 느낌이 팍팍 드는 소설은 유독 멀리하는 것도 있고.

매번 드는 생각이지만 좀 다양하게 읽어야 할 텐데 그게 참 어렵다. 그래도 올해 초부터는 계획하고 읽은 책들이 있어서 그래도 제법 고전이나 유명한 소설을 몇 편 읽긴 했지만 말이다.

 

이런 독서 에세이는 때론 읽기도 전에 지레 겁먹게 만들기도 하지만, 대체로 좀 더 폭넓고 깊이 있는 독서를 하도록 활기를 불어넣는 것 같다. 올해가 세 달밖에 남지 않았는데 그 안에 이 목록에 있는 책들 중 한 권은 꼭 읽어야겠다고 다짐했다.

 

 

 

* 이 리뷰는 민음사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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