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누군가는 더 검은 밤을 원한다
우다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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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이에 칼이 있었네   사람들은 어릴 때 알파와 오메가로 분리되어 각각 알파, 오메가 지역에서 따로 자랐다. '트윈'이라 불리는 상태에서 성인식을 치르고 나면 분리됐던 알파와 오메가가 다시 하나가 되는데, 기억은 온전히 갖게 되어도 신체적 특징 같은 건 무작위 선별된다.

성인식 전날 밤 '나' 알파의 오메가가 지역에서 무단이탈해 도망쳤다가 잡혀왔다. 그래서 다시 성인식을 준비하는 동안 한동안 알파와 오메가는 할머니와 함께 살아야 했다. 알파는 오메가의 모든 것이 마음에 안 들고 몰래 알파 구역으로 온 오메가의 친구들까지도 너무 진절머리가 난다. 하지만 오메가의 친구를 좋아하게 되면서 오메가와 조금씩 가까워졌고 이해하게 된다.


태초의 선함에 따르면   사모아제도에서 발견된 풀 '아즈깔'에 중독되면 과거의 생 전부를 기억하게 된다. 그들을 '각성자'라 불렀는데, '나'는 그런 각성자들이 모든 것을 기억하는 삶에 대해 인터뷰하고 인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한다.


긴 예지   전 세계적으로 유행을 한 어떤 게임으로 인해 효주는 예지에 대해 알게 된다. 돌보던 쌍둥이 자매 중 한 명인 솔이가 그 게임을 너무나 잘했는데, 어느 날 솔이를 정부기관이라던 이들이 데리고 갔다. 그 후에 솔이를 생각하며 게임을 하던 효주에게 그 정부기관 사람인 도경이 찾아와 그녀 역시 데리고 갔다. 알고 보니 그 게임은 닥쳐올 미래 예지를 위해 만든 것이었는데, 그 확률 게임을 잘하는 사람들에게 예지 능력이 있음을 판단하고 보호 조치하는 것이었다.

그곳에서 솔이를 다시 만나 함께 생활하던 효주는 자신의 예지 능력이 여러 사람의 예지 능력에 못 미친다는 걸 알게 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에 그녀의 예지 능력이 어떻게 발현되는지 깨달으며 세계를 구하고자 마음먹는다.


기도는 기적의 일부   어릴 때 수해 지역에서 기적을 보여준 '메시아' 유리에게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성인이 된 그녀가 워킹홀리데이를 떠났을 때 바다에 유출된 기름을 다시 배로 돌려보낸 일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그녀의 존재를 모든 사람들이 알게 되었다.

이후 그녀를 찾아오는 사람이 많았지만 유리는 인적은 드물지만 도움이 필요한 곳마다 나타난다.


그러나 누군가는 더 검은 밤을 원한다   시스템 매기 안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영화를 보며 모든 지식을 익힌 '나'는 영화를 만드는 혜경을 알게 되고, 그녀가 만든 캐릭터 승용과 합치되면서 혜경에게 기나긴 편지를 보낸다.



소설을 읽는 동안에는 저마다 다른 다섯 가지 이야기지만, 어느 정도 관통하는 주제가 있을 텐데 그걸 미처 헤아리지 못했었다. 그러나 소설을 다 읽고 곱씹다 보니 말하고자 하는 의미가 어느 정도 보였다. 타인에 대해, 더러는 자신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불특정 다수, 혹은 인류에게 마음을 쓰는 내용이라고 말이다. <긴 예지>와 <기도는 기적의 일부>가 인류를 위한 이야기가 깊이 담겨 있었다.

<긴 예지>에서 효주가 베이비시터로 돌보던 아이 솔이와 가까운 사이가 된 도경을 위해 종말을 피할 수 없는 미래를 바꾸려고 과거를 보는 일을 시작했었다. 모든 기억을 끌어안고 살아온 수십만 번의 삶은 마침내 인류를 향한 깨달음으로 이어졌다.

<기도는 기적의 일부>를 통해 피할 수 없는 위기에 직면한 지구 환경에도 희망은 있다는 걸 보여줬다.



<우리 사이에 칼이 있었네>와 <태초의 선함에 따르면>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불가결한 관계에 대해 말했다. 한 사람이 알파와 오메가로 나뉘어 10대를 보내고 난 후 성인식 때 다시 합쳐지는 내용을 담은 <우리 사이에 칼이 있었네>에서 한 사람이지만 완전히 다른 나를 인식하고 이해하는 이야기를 했다. <태초의 선함에 따르면>은 모든 생을 기억하게 된 각성자가 나타나면서 그 사람과 주변 사람과의 관계가 모든 생에서 겹쳐지고 반복되는 이야기를 했는데, 이 관계들이 더러는 섬뜩하면서도 어느 한편으로는 애틋하게 다가왔다는 게 독특한 느낌을 남겼다.


처음 읽어보는 우다영 작가의 SF 단편집은 여태껏 내가 읽은 SF와는 느낌이 사뭇 달랐다. SF인데도 왠지 현실적인 느낌이 많이 들었다는 게 기이하고 묘했다. 매 이야기가 시작할 땐 너무나 건조했는데 마지막에는 은은한 온기를 남겼다.

"한 아이를 구하고 싶다는 마음. 그런 강하고 놀라운 마음이 사람을 찾아올 확률은 몇 퍼센트일까요? 이 무질서한 세상에 그런 질서정연한 선함이 드러나는 순간이요." <긴 예지> - P163.164

"하나의 생을 과연 한 사람만으로 설명하는 게 가능할까? 당연히 그 생에서 맺고 있던 관계들을 말해야 그 삶을 설명할 수 있는 건데." <태초의 선함에 따르면> - P92

수많은 생의 수많은 순간 중에 하나의 장면을 깊은 의식 속에서 길어 올려 들려주는 오래된 영혼의 마음을 나는 가끔 상상해본다. 찰나의 표정과 평범한 하루와 작은 약속을 기억하는 마음이란. 어떻게 이토록 사소한 기억이, 먼지 같은 이야기가 흩어지지 않고 마음에 남았을까? <태초의 선함에 따르면> - P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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