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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천대루
천쉐 지음, 허유영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5년 1월
평점 :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초고층 아파트로 유명세를 떨쳤던 '마천대루'는 분양을 시작했을 때부터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타이베이에서는 절대 살 수 없는 가격의 아파트를 몇 채씩 사들일 수 있었고, 눈에 띄고 고급스러운 외관으로 인해 그곳에서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이제는 지은 지 오래되어 낡아가는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마천대루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거주하며 그곳에 산다는 자부심을 안고 있었다.
바로 그 마천대루의 원룸에 살며 카페 매니저로 일하는 미모의 젊은 여성 중메이바오가 살해된 채 발견된다. 본인의 원룸에서 하얀 원피스를 입고 마치 인형처럼 침대 위에 앉아 있던 그녀의 목에는 누군가가 조른 흔적이 남아 있었다. 경찰은 곧바로 용의자를 잡기 위해 마천대루 곳곳에 설치된 CCTV를 확인했다.
그리고 마천대루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그곳을 자주 드나들었던 사람, 상가 주인 등 여러 사람들은 죽은 메이바오에 대해 말하며 자신의 인생 또한 이야기한다.

단지가 꽤 컸던 마천대루의 1층 아부카페가 유난히 성업이었던 이유는 매니저인 메이바오의 아름다운 외모를 보고자 한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남자들만 좋아하는 게 아닌 여자들도 흠뻑 빠질 정도의 미모를 가지고 있었다. 화려하게 아름다운 게 아니라 단정하고 수수한데 아름다웠기 때문에, 그리고 메이바오의 성격이 너무나 좋았기 때문에 인기였고, 덕분에 카페까지 잘 되었던 것이다. 메이바오의 미모에 반해 고백을 하는 남자는 물론이고 여자도 있었을 정도지만, 그녀는 모두에게 정중하게 거절했다. 메이바오에게는 결혼을 약속한 남자친구인 리유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성격까지 좋았던 메이바오가 마천대루의 자기 집에서 살해된 채 발견되면서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슬퍼했다. 카페 아르바이트생 루샤오멍과 경비원 리둥린은 경찰과 함께 그녀의 죽음을 처음 목격한 사람이라 소문만 들은 이들보다 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메이바오의 남자친구 리유원, 메이바오와는 이부 남매인 옌쥔은 그녀와 아주 가까운 사이였기에 그녀의 죽음에 괴로워했다. 또한 메이바오와 깊은 관련이 있던 남자들이 CCTV의 동선 확인을 통해 밝혀졌고, 그들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메이바오와 가깝게 지냈던 사람들 중 이웃에 살며 광장공포증을 가진 소설가 우밍웨와 그녀의 집에 매일 와서 집안 일과 바깥 일을 대신해 주는 예메이리, 그리고 경비원 셰바오뤄는 메이바오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랐다. 우밍웨는 과거에 평범한 직장 생활을 하는 여자였지만, 어떤 끔찍한 사고를 눈앞에서 목격한 이후 집 밖으로 단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그녀의 처지를 이해해 주는 예메이리 덕분에 우밍웨는 바깥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고, 덕분에 메이바오를 만나 또래와 어울리는 기쁨을 누렸다. 셰바오뤄 역시 평범한 삶을 살던 남자였으나 신호위반을 해 자신의 차를 들이받은 오토바이 운전자가 사망하자 스스로 자책하며 인생을 고통에 밀어 넣고 괴로워하며 살았다. 그러다 메이바오가 일하는 카페에 그녀와 대화를 나누며 서로에게 깊은 공감을 느끼게 되었고, 소박한 행복까지 꿈꾸게 됐다.
반면에 메이바오를 향해 비틀린 감정을 가진 인간들도 있었다. 어릴 적 첫사랑이었던 남자는 오로지 욕정만을 위해 메이바오를 찾았고, 그 첫사랑보다 더 끔찍하고 역겨운 인간도 있었다. 그들은 메이바오를 사랑한다 여겼지만, 그건 절대 사랑이 아니었다. 더러운 욕망이고 상대의 마음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이기적인 쓰레기 감정일 뿐이었다.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가 번갈아가며 등장하면서 그들의 사연 속에서 메이바오의 이야기 또한 조금씩 드러나 과거의 퍼즐이 맞춰졌다. 아름다운 외모는 축복이지만 메이바오에게는 벗어날 수 없는 저주와 같았다는 게 너무 애처로웠다. 만약 그녀가 평범한 부모에게서 태어났더라면 아름다운 외모로 유명인이 되어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랑을 받았을 수도 있었을 테지만, 메이바오의 부모는 그녀를 갉아먹고만 있었기에 언제나 숨어서 스스로를 감춰야만 했다. 무한한 사랑을 받아 마땅했던 어렸을 때부터 사랑이나 관심에 대한 비뚤어진 시선을 받아왔던 메이바오였기에 사랑을 믿지 않는 듯했고, 사랑받는다는 것 역시 껄끄러워했던 것 같았다. 안타깝고 애처롭다는 말로는 메이바오의 서글픈 인생을 다 표현할 수 없다. 지독하고 또 끔찍하다. 서글프고 씁쓸하기도 하다.
이렇게 메이바오의 죽음 이후에 여러 사람들의 인생을 이야기를 하는 과정을 통해 모두들 저마다의 지옥 속에서 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소설 속 캐릭터들 중 메이바오의 삶이 가장 안타까웠지만, 셰바오뤄나 우밍웨 등 메이바오를 잘 아는 사람은 물론이고, 메이바오가 누군지 아는 정도였던 사람들 역시 각자의 지옥인 집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천대루라는 휘황찬란한 집들 곳곳에 저마다의 지옥이 있다는 사실이 참 현실적이었고 그 모든 게 인생이라는 점에서 평범한 듯 보이기도 하다.
대만 작가 천쉐의 소설 <마천대루>를 원작으로 한 안젤라베이비 주연의 드라마가 화제라고 한다. 중화권 드라마를 한 편도 본 적이 없어서 몰랐는데, 책을 읽으며 궁금해서 검색해 보니 드라마가 굉장히 잘 나온 것 같았다.
허영심을 시각적으로 채워주는 집이라는 공간에서 보이는 면과 다르게 집집마다 각자의 지옥이 펼쳐지고 있는 게 씁쓸했다. 소설 속에서 메이바오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사랑했던 이들이나마 각자의 집에서, 여러 공간에서 행복했으면 싶은 바람이 남았다.
"그 사람이 죽을 때 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한 사람이 죽었다. 우리가 모두 좋아했던 사람이고, 결코 그런 방식으로 죽어서는 안 되는 여자였다. 셰바오뤄는 자신이 죽였을 거라고 했다. 그렇게 따지면 내가 죽였을 수도 있다. 부검보고서는 아직 나오지 않았고 그녀가 몇 시에 죽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난 알고 있다. 누가 죽였든, 그녀의 죽음이 우리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누구도 무관할 수 없다는 것을. - P202
사랑받는다는 게 반드시 행복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녀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그녀는 결국 비명에 죽었다. - P469
그녀는 다른 예쁜 여자들과 달랐어요. 단정한 이목구비, 피부, 머릿결, 몸매가 모두 ‘아름다움‘이란 단어를 부연 설명하기 위해 존재하는 듯하지만, 세부적인 것들을 모두 합쳐 놓으면 억지로 끼워 맞춘 ‘가면‘ 같은 부조화를 일으켰어요. 어릴 적부터 또래 사이에서 돋보이는 미모로 사랑받고 특권을 누리며 교만해진 사람이 아니었어요. 오히려 자신을 거죽 안에 감춘 채 그 아름다움을 파괴하려고 애쓰거나, 겉에 두른 거죽이 터져 본모습이 드러나지 않도록 꽉 붙잡고 있는 사람 같았어요. 그녀에겐 그렇게 가련히 떨고 있는 아름다움이 있었어요. 우아하고 차분하게 보이지만 내면은 스스로 가누기도 힘들 만큼 지쳐 있었다는 걸 난 알아요. - P30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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