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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경사 바틀비·선원 빌리 버드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50
허먼 멜빌 지음, 이삼출 옮김 / 민음사 / 2024년 9월
평점 :
필경사 바틀비 필경사를 두 명이나 둔 변호사는 업무가 한창 바빠져서 또 다른 필경사 바틀비를 채용한다. 기존의 필경사들이 감정 기복이 좀 있었던 것에 비해 바틀비는 그러지 않고 차분했고, 글씨도 단정해서 일을 맡기면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서로 적응을 해나가던 어느 날, 변호사는 필사한 서류를 검토하기 위해 바틀비를 불렀는데, 그는 그러지 않는 편이 좋겠다고 하며 거절을 했다. 변호사가 잘못 들은 줄 알고 재차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같았다. 이후 바틀비는 필사 대조 작업은 물론이고, 그의 주 업무인 필사도 하지 않게 되었고, 사무실을 떠나달라는 말에도 그러지 않는 편이 좋겠다고 대답하게 되는데...
선원 빌리 버드 선원 빌리 버드는 영국 해군 전함 벨리포텐트 함에 강제로 징집되어 갔다. 생각보다 적응을 잘해나가는 빌리 버드는 동료들에게 '멋쟁이 선원'이라고 불릴 만큼 인기가 좋았고, 골치 아픈 녀석들까지도 그의 말이라면 순한 양이 되었을 정도다.
하지만 선임 부사관인 클래거트만은 빌리 버드를 좋게 보지 않았다. 음흉한 속내를 숨기고 있던 클래거트는 빌리 버드를 적군의 스파이라고 비어 함장에게 보고를 하고, 함장에게 불려 온 빌리 버드는 당황스러워한다. 그러다 클래거트가 앞에 나서면서 돌이킬 수 없는 사고가 일어나고 만다.
각 소설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바틀비와 빌리 버드는 주인공이었지만, 그들이 자신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그들을 지켜본 자의 시선을 통해 두 사람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처음엔 두 사람에 대한 평가는 사뭇 달랐던 게 눈에 들어왔다.
변호사의 필경사로 채용되어 조용히 자기 일을 하던 바틀비였으나 어느 순간부터 본인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그렇다고 그만두지도 않으면서 사무실에 계속 있었고, 나중엔 그 무엇도 하지 않게 된 사람이라 솔직히 너무나 답답했다. 화자인 변호사는 훨씬 더 답답하고 그 상황 자체가 어이가 없었을 텐데, 그럼에도 그는 바틀비를 이해해 보려는 노력을 기울인 사람이었다. 마지막까지 이해가 안 되었을 텐데도 끝까지 바틀비를 찾았던 걸 보면 양심의 가책을 심하게 느끼는 사람, 어쩌면 책임감의 무게를 지고 있는 성격이라고 보였다.
클래거트의 고발로 인해 빌리 버드와 대화를 하게 된 비어 함장은 주변의 평판이 그러하듯 빌리 버드를 좋게 봤었다. 그런데 불려 온 그의 갑작스러운 행동으로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게 되어 이성과 감성의 판단이 흐려지는 태도를 보였다. 군법으로 봤을 때 빌리 버드는 명백한 죄인이었으나 비어 함장이 보지 않은 이면은 어떨지 알 수 없었기에 혼란스러워했다. 그런 혼란에도 불구하고 빌리 버드는 전함 내에서 죄를 지은 죄인이었기에 군법의 처벌을 받아야만 했다.
왜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건지 알 수 없는 바틀비를 마지막까지 바라보던 변호사와 억울하게 누명을 쓴 빌리 버드가 취한 행동을 바로 앞에서 보고 그의 운명을 결정 내릴 수밖에 없었던 비어 함장의 시선을 통해 스스로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타인의 삶을 좌지우지할 수도 있음을 보여줬다. 바틀비와 빌리 버드가 끝에 다다른 과정은 달랐지만 결과는 같았기에 변호사와 비어 함장은 책임을 통감하지 않을 수 없었을 터였다. 그로 인해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의 의미가 사무치게 다가왔다.
<모비 딕>의 저자로 유명한 허먼 멜빌의 소설<필경사 바틀비·선원 빌리 버드>를 읽었다. 처음 읽는 작가의 소설은 짧은 이야기들이라 읽기 어렵지 않았는데,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책 뒤편의 설명과는 다르게 내게 와닿았다. 타인을 이해하는 건 지극히 어려운데 그들의 삶을 나로 인해 바꿀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끔찍하게 다가와 두려움을 남겼다.
저로서는 바틀비 군의 육체에는 자선을 베풀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바틀비 군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육체가 아니었습니다. 고통받고 있는 것은 바틀비 군의 영혼이었죠. 영혼은, 저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필경사 바틀비> - 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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