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가장 위험한 곳, 집 앤드 앤솔러지
전건우 외 지음 / &(앤드)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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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건우 × 누군가 살았던 집   '나'는 여자친구 J와 고향에서 도망쳐 서울로 올라왔다. 아는 형의 친구가 주식으로 대박이 났다는 말에 가족, 친구는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에게서 돈을 빌려 자신도 부자가 되게 해달라고 맡겼다가 사기를 당했기 때문이다.
모텔방을 전전하던 나는 절반도 안 되는 가격에 나온 원룸 오피스텔에 들어가게 된다. J와 함께 하는 생활이 마치 신혼 같아서 즐거웠던 찰나가 지나고 집에서 수상한 분위기를 느끼기 시작했다. J가 먼저 알아챈 화장실 환풍구의 이상한 냄새가 배수구를 타고 올라왔고, 나중엔 누군가가 바라보는 것 같은 시선이 뒤통수에 꽂혔다. 알고 보니 이전에 그 집에서 살던 여자가 모든 걸 두고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걸 알게 된다.


정명섭 × 죽은 집   고등학교 동창 혜영과 유진은 각자 결혼생활을 하다 남편들의 바람으로 이혼을 했다. 유진이 재산분할 받은 돈으로 특수청소업체를 차렸고, 딱히 할 일이 없던 혜영이 직원으로 함께 일하기 시작했다. 대체로 고독사한 사람들의 흔적을 치우는 일은 고됐지만, 산 사람이 더 무섭다는 걸 현장에서 경험했기에 두 사람은 서로를 지지하며 묵묵히 일을 해나갔다.
그러다 혜영이 빌라왕 때문에 전세 사기를 당하게 됐다. 같은 빌라 사람들과 공인중개사를 찾아가도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없어 평소처럼 일을 하던 그녀는 쓰레기를 버리지 않고 모아두는 남자의 집을 청소하던 중에 그 집에 사는 사람이 자신의 전세금을 떼먹은 빌라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래서 유진과 함께 놈을 잡기로 하는데...


정보라 × 반송 사유   양현은 남편 오섬이 박사 논문 심사에 통과한 후 강의 때문에 이사를 하게 된다. 외진 곳에 있는 그 집은 버스도 드물게 다녀서 고립되어 있었다. 양현은 가계를 위해 일을 구하려고 하지만 쉽지 않고,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 자꾸만 낚싯바늘이 떨어져 있어 다칠 뻔하기도 한다.
양현을 언니라고 부르며 잘 따르는 김혜와 메일을 주고받으며 안부를 묻는데, 어느 순간부터 양현에게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반려묘가 낚싯바늘을 삼켜 세상을 떠났고, 집에 놀러 온 김혜가 찍은 사진은 모두 까맣기만 했다. 그걸로도 모자라 양현은 이상한 내용의 메일을 아는 사람들에게 보내게 되는데...


정해연 × 그렇게 살아간다   식도암으로 오랜 투병 생활 끝에 진혜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집을 떠나 살고 있는 오빠와 언니가 장례를 치르러 돌아온 후 집에 남은 사람은 간병으로 지친 진혜와 엄마뿐이었다. 어느 날부터 진혜는 삐쩍 마른 몰골을 한 아버지가 소름 끼치게 웃으며 같이 가자고 하는 악몽을 꾸게 되어 병원에 갔더니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그리고 불면증에 시달리는 엄마 역시 선잠이 들었을 때 아버지가 등장하는 악몽을 꾼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러던 중에 아버지의 물건을 정리하던 진혜는 창고에서 아버지가 맞던 빈 수액 팩에 남은 액체가 갈색, 붉은색을 띠고 있는 걸 발견한다. 진혜가 그걸 들여다보고 있는 걸 발견한 엄마는 무서운 표정으로 자신이 치우겠다고 말해서 의문이 들게 한다.



장르물에서 자신의 입지를 확실히 다진 전건우 작가의 단편이 도입을 장식했다. <누군가 살았던 집>이라는 제목은 신축 집이 아닌 이상 세상 모든 사람에게 공통된 사실이다. 그러나 소설에서는 누군가가 살았던 집이라는 그 당연함이 주인공 '나'에겐 처음엔 두려움으로, 나중엔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끔찍한 기억으로 남게 되었다. 반의 반도 안 되는 가격에 나온 집이라는 부분에서부터 의심해야 했지만 나와 J는 그러지 않았고, 또 전에 살던 누군가가 모든 짐을 그대로 두고 사람만 사라졌다는 것은 소름 끼치는 점이었으나 그때는 이미 빠져나올 수가 없게 되었다.
정해연 작가의 <그렇게 살아간다>는 사람으로 인해 집이 두려워지는 점이 같았다. 안 그래도 꼬장꼬장했던 성정의 아버지가 아프고 나니 더욱 까탈스럽게 굴었던 건 당연하다. 엄마와 함께 간병의 고됨을 반으로 나누었지만 아버지의 투병과 죽음은 모녀에게 저마다의 죄책감을 남겼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었다. 진혜는 아버지의 임종이 가까워졌을 때 의료진을 부르기를 망설였는데, 그 길로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마음의 짐이 생겼다. 그리고 엄마의 죄책감은 무엇이었는지 소설 후반쯤에 밝혀져 충격을 줬으나 진혜는 물론이고 책을 읽고 있는 나조차도 함부로 질타할 수가 없었다. 오랜 간병이 건강한 사람의 몸과 마음을 해치는 걸 알고 있고, 또 엄마가 아버지로 인해 얼마나 괴로웠을지 세세하게 헤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두 소설은 집이라는 공간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인해 살아있는 사람, 남은 사람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이야기를 했다. 그 상처를 끌어안고 살아갈 사람들이 가여울 뿐이었다.


정명섭 작가의 <죽은 집>은 전세 사기와 특수청소업체라는 두 가지 설정으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네 편의 이야기 중 가장 유쾌한 톤이었는데, 사실 소재 자체가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보니 마냥 가볍게 느껴지지 않는 아이러니함이 있었다.
정보라 작가의 <반송 사유>는 여느 소설과 달리 등장인물들이 메일을 주고받는 형식을 띠고 있었다. 남편이 어느 대학 강의를 맡게 되어 외진 곳에 있는 집에 당분간 살게 된 양현과 그녀를 걱정하는 후배 김혜가 주고받는 메일이 주를 이뤘다. 양현이 사는 집이 기이하다는 건 낚싯바늘이 곳곳에 떨어져 있고 치워도 자꾸만 발견된다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다 김혜가 놀러 왔다 간 이후 집에서 찍은 사진이 모두 새까맣다는 걸 확인하고 양현을 걱정하는 사람들의 메일이 등장했다. 양현 역시 이상한 말이 쓰인 메일을 보냈었는데, 소설 결말에 반전이 밝혀져 뒤통수를 쳤다. 기발한 구성과 반전이 매력적인 이야기였다.


가장 편한 곳이 가장 위험해졌을 때의 공포를 생생하게 느끼게 해준 앤솔러지였다. 짧지만 저마다의 이야기에 매력이 듬뿍 담겨 있어서 재미있게 읽었다.


어쩌면 그때 마지막으로 심폐소생술이라도 요청했어야 했던 걸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죽음을 기다렸던 나를 아버지는 원망했던 걸까? 아니면 나의 죄책감 때문일까?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집으로 돌아온 뒤, 나는 거의 매일 꿈에서 아버지를 만났다. 평화로운 꿈은 없었다. 그것은 악몽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정해연 <그렇게 살아간다> - P182

오래된 집일수록 그 내력을 가늠하기 어렵다. 몇 장의 서류만으로는 그 집에서 정말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다는 말이다. 거기에 도배며 청소까지 새로 해 버린다면 이전 거주자의 흔적은 말끔히 지워진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멀끔히 단장한 채 순진한 이들을 기다리는 그런 괴물 같은 집들이 있다. 전건우 <누군가 살았던 집>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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