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복어 문학동네 청소년 70
문경민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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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공고 2학년 김두현은 이름보다 '청산가리'라는 별명으로 유명했다. 단어 자체만으로도 무시무시한 별명이 붙은 건 두현이가 불량 학생이라서 그런 건 절대 아니었다. 7년 전 엄마가 청산가리를 먹고 죽었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아버지는 사업과 관련된 문제로 교도소에 들어가게 되어 그들의 자식인 두현이는 자극적인 걸 좋아하는 아이들의 놀림을 받으며 졸지에 청산가리라는 별명이 붙은 것이었다.

정신적으로 견디기 어려운 때였지만 그럼에도 두현이는 괜찮았다. 복집을 운영하시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두현이를 거두어주셨고, 초등학교 때부터 친했던 준수가 있었기에 학교생활을 견딜 수가 있었다.


하지만 엄마가 세상을 떠나고 아버지가 교도소에 간 10월이 되면 두현이는 굉장히 예민해졌다. 평소라면 그저 흘려 넘겼을 청산가리라는 단어가 같은 울타리 안에 있는 인문계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아이의 입에서 들려오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 단어를 입에 올린 녀석이 초중 동창인 형석이라는 걸 알자 더욱 참을 수가 없었다. 반 단톡방에 엄마와 아버지에 대한 기사를 올려 두현이에게 청산가리라는 별명이 붙게 만든 장본인이었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어린아이가 아무것도 모를 거라고 생각한다. 부모끼리 어떤 대화를 하거나 싸웠다고 해도 아이들은 금세 잊어버릴 거라고, 아이들 앞에서 누군가의 욕이나 해서는 안 될 말을 해도 내용이나 맥락을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여긴다. 하지만 그건 절대 아니었다. 아이들은 은근히 많은 걸 기억하고 있고 또 깊이 새겨져 지워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두현이가 바로 그런 것처럼 보였다. 내가 7년 전에 뭘 했는지 떠올려 보면 생각이 안 나는 게 당연하지만, 이제 고등학교 2학년이 된 두현이는 7년 전 과거의 어떤 부분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직접 겪어서 기억한다기보다는 자극적인 기사로 접한 가족의 비극이었기에, 그리고 그 기사를 같은 반 아이들이 알게 되었기에 두현의 마음에는 그 과거가 상처처럼 새겨져 있었다.

그랬기에 형석이가 하굣길에 제 친구들에게 청산가리를 운운하는 걸 듣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공고에 다니는 애라서 허세를 부리는 듯한 껄렁한 말에 형석과 친구들은 잔뜩 움츠러들어 꼬리를 내뺄 수밖에 없었다. 비록 두현의 속은 시원해지지 않았지만, 그 비열한 놈의 기를 조금이나마 꺾어줬다는 후련함은 조금 있었다. 형석이가 살해 협박을 당했다고 학교에 신고하기 전까진 말이다.


소설은 두현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긴 하지만 그의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도 보여주며 여러 상황에 놓인 청소년들이 어떤 마음으로 현재를 살아가는지 보여주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두현이의 든든한 편이 되어준 준수는 바쁘게 맞벌이를 하시는 부모님을 대신해 어린 두 동생들을 돌보며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러는 와중에 한국전력에 입사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자격증을 여러 개 취득했고, 실습 또한 착실히 해냈다.

갑자기 두현과 준수에게 다가와 친하게 지내자고 한 재경은 인문계에서 기계공고로 전학 온 특이한 케이스였다. 그녀는 오빠 재석이 공장에 실습을 나갔다가 크게 다쳐 몸보다 마음이 더 아픈 상황에 안타까움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공장의 사장이자 학교의 운영위원회인 장귀녀에게 오빠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라는 시위를 했었고, 체육대회 때 소동을 벌이기도 한다.

아직 한창 응석을 부릴 나이이고 부모에게 기대도 괜찮았는데, 준수와 재경이는 자신만의 눈으로 세상을 보며 지켜야 할 게 무엇인지, 미래를 향해 어떤 길로 나아가야 할지 벌써부터 계획을 세워두었다. 그게 참 대견하면서도 안쓰럽게 보였다. 아직은 어른의 보호를 받아도 괜찮은 아이들이 너무 빨리 어른이 된 것 같았기 때문이다.

준수, 재경이와는 다르게 두현이는 과거에 얽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엄마의 죽음과 감옥에 간 아버지는 웬만한 사람도 견디기 힘든 일이라 당연하게만 보였다. 두현이는 그저 준수를 따라 기계공고에 왔을 뿐 뭘 좋아하는지, 학교를 졸업하면 뭘 하고 살아야 할지 아무런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러다 살해 협박 건으로 무료 급식소에서 봉사를 하게 되면서 두현이는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던 것 같다. 담임에 대해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됐을 때가 그 계기였고, 아버지를 닮은 아저씨와 대화를 하게 되면서 이전까지의 사고가 조금은 달라졌다. 준수와 재경이에게 털어놓은 후에는 든든한 응원을 받기도 해서 두현이는 멈춰있던 그 자리에서 한 걸음 발을 뗄 수 있었다.

그 발걸음이 이전과는 다르게 완전히 가벼워진 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두현은 이전과는 확실히 달라졌다. 지워낼 수 없는 비극의 과거를 계속해서 되새기며 음울한 나날을 보내기보다 과거는 담아두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앞으로 나아가려는 모습으로 말이다.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 조부모님과 친구들이 있었기에, 그리고 자신을 그 누구보다 사랑했을 엄마가 있었기에 두현은 조금은 성장할 수 있었다.


소설 <나는 복어>는 이전에 <훌훌>로 한 번 접했었던 문경민 작가의 신작이다. 이번에도 청소년 소설로 만나보게 되었는데, 상처 입은 아이들이 자신만의 방법으로 앞으로 향해가는 과정이 재미있고 따스하게, 그러면서도 대견하게 진행된 이야기였다. 누구도 쉽게 떨쳐낼 수 없을 과거로부터 빠져나온 두현이가 정말 기특했다. 깎인 만큼 단단해졌을 두현이의 앞날에 응원을 보내고 싶다.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그 상상은 내게 독이었다. 청산가리보다 치명적이고 복어의 독보다도 더 진한 검붉은 마음이 김을 모락모락 피어올리며 혀를 날름거렸다. 너는 절대로 벗어날 수 없어. 그런 생각이 독을 품은 이슬처럼 내 마음 어두운 곳에 맺혀 있다는 걸 나는 알았다. - P56

복국이 먹고 싶었다. 그래. 바로 이거다. 삶이 온통 회색빛이었기 때문인지 하고 싶다, 되고 싶다, 먹고 싶다, 같은 모든 욕심이 나는 반가웠다. - P57

그동안 엄마를 충분히 그리워하지 않아서 미안했다. 나는 그곳에서 그리워할 것들을 실컷 채웠다. 엄마가 사랑했고 엄마를 사랑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앞으로는 엄마의 마지막이 아닌, 좋았던 기억으로 이지연이라는 한 사람을 떠올리고 싶었다. - P179.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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