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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블린 휴고의 일곱 남편
테일러 젠킨스 레이드 지음, 박미경 옮김 / 베리북 / 2023년 5월
평점 :
절판
남편 데이빗과 이혼을 앞두고 있는 모니크는 입사한 지 1년밖에 되지 않은 잡지사에서 말단 기자였기 때문에 자신이 쓰고 싶은 기사를 쓸 수가 없는 상황이다. 한 마디로 모니크는 현재 일도, 사랑도 바닥을 치고 있다고 봐야 했다.
이런 상황에 79살이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늘 화제가 되는 배우 에블린 휴고가 모니크를 콕 집어 단독 인터뷰를 하겠다고 했다. 모니크는 유명하다는 것만 알지 에블린의 영화를 제대로 본 적도 없는 입장이라 왜 자신에게 인터뷰를 맡기는 건지 이해할 수 없지만, 일단 잡지사에서 시키는 대로 한다.
그렇게 에블린을 인터뷰를 하기 위해 그녀의 집에 찾아간 모니크는 에블린의 드레스 자선 경매에 대한 주제가 아니라 그녀가 그 어디에도 밝힌 적 없는 일곱 명의 남편과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다는 말을 듣게 되는데...
50년대 할리우드의 아이콘이었던 에블린 휴고는 현재 79살의 나이였지만 여전히 이슈가 되는 배우였다. 41살이던 딸 코너가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난 뒤에 유방암 연구 기금을 모으고자 드레스를 경매에 내놓겠다고 알려지자 너도나도 그녀를 인터뷰하고자 했으니 말이다. 아름다운 외모와 섹시한 매력으로 남녀노소 모두를 사로잡은 에블린은 천생 배우였기에 오스카를 수상하기도 했다. 배우로서의 이미지뿐만 아니라 사생활이 큰 이슈가 됐는데, 그녀가 결혼을 일곱 번이나 했었고 20살이나 어린 하원의원과 바람을 피우기도 했었기 때문에 기자들에게는 그녀의 모든 것이 노다지였을 게 당연했다. 자선 경매에 관한 인터뷰 요청은 그저 명분이었을 것이다.
에블린은 은퇴한 지 한참이 지난 배우지만 여전히 세기의 아이콘이었기에 원하는 기자를 불러 인터뷰를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가 선택한 사람은 잡지사의 말단 기자 모니크였다. 모니크는 아버지가 오래전에 영화 촬영장에서 사진 기사로 일했었다는 점을 제외하면 에블린과의 접점이 없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에블린의 사진을 찍었는지도 잘 몰랐고, 유명한 배우들과는 잘 어울리지 않았다고 엄마는 전했다. 그래서 모니크는 에블린이 마음껏 주무를 수 있는 말단 기자인 자신을 지목한 거라 여겼다.
하지만 에블린의 집에 찾아가 그녀를 마주한 모니크는 자선 경매에 관한 얘기가 아니라 자신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겠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된다. 거기에 에블린은 한 술 더 떠서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내서 경매에 부쳐 가장 비싼 값을 부르는 사람에게 판권을 판매하라고까지 했다.
어디에도 속 시원하게 밝힌 적 없는 세기의 아이콘의 사생활이라면 어마어마한 금액을 손에 쥘 수 있는 기회였다. 하지만 한편으로 모니크는 에블린이 왜 자신에게만 그런 이야기를 하려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의아함에도 모니크는 이 인터뷰로 인해 많은 게 달라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잡지사에는 비밀로 하고 그녀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에블린은 쿠바 출신 이민자 부부의 딸이었다. 11살 때 엄마가 돌아가신 이후, 에블린은 줄곧 집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18살이 됐을 때 첫 결혼을 하고 할리우드로 향했다. 그곳에서 에블린은 자신이 가진 가장 큰 자산인 외모를 통해 돈을 벌고자 했다. 바로 배우가 되는 것이었다. 그 방법으로 단역과 조연을 맡긴 했지만 스타라고 불리기엔 부족했다. 그래서 그녀는 할리우드의 유명 배우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돈 아들러와 두 번째 결혼을 강행했다. 에블린과 돈 두 사람에게 윈윈할 결혼이었지만, 결혼한 지 두 달 만에 돈이 에블린을 때리기 시작하면서 결혼생활은 뒤틀리고 있었다.
이후 에블린은 돈과 이혼하고 여러 사람과의 염문설을 뿌려댔고, 철저하게 비밀에 부친 계약 결혼 등을 이어나갔다. 에블린이 그렇게까지 하게 된 이유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사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에블린이 사랑한 사람의 존재는 지금 시대엔 충격이 아니지만, 그녀가 한창 활동을 할 때에는 물어뜯기다 못해 생매장을 당할 정도의 큰 파문이 일어날 사건이었다. 그래서 에블린은 사랑하는 사람과 자신의 커리어를 지키기 위해 여러 번의 결혼을 했던 것이었다. 그녀가 지금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싶어 너무 안타까웠다. 심지어 지키려고 한 노력이 사랑하는 이를 지쳐버리게 했기에 에블린과 그녀의 사랑 모두 가여웠다.
어디에도 밝힌 적 없는 에블린의 회고는 현재라는 끝을 향해 나아갔고, 마침내 그녀가 왜 모니크를 원했는지 밝힘으로써 다시 한번 놀라게 했다. 이 부분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에 모니크와 마찬가지로 나 역시 너무 큰 충격을 받았다. 모니크가 받은 충격, 거기에 고통까지 더해져 그녀가 에블린에게 더 큰 상처를 줘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모니크는 그동안 에블린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녀의 인간적인 매력에 푹 빠졌기에, 그리고 그녀가 왜 그랬는지 이해할 수 있었기에 용서할 수 있었다.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았지만 정작 자신의 사랑을 제대로 지키는 건 너무 어려웠던 에블린 휴고의 이야기가 몰입감 있게 펼쳐졌다. 처음에 이 책의 제목만 봤을 땐 배우의 스캔들에 관한 이야기로만 봤는데, 그 이면에는 빛나는 스타의 아픈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그래서 읽는 내내 이야기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이 소설은 넷플릭스에서 영화로도 제작될 예정이라고 한다. 역시 재미있는 소설이라 영화화되는 건가 보다. 남자와 여자를 모두 홀렸던 에블린을 누가 맡게 될지 기대된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진실을… 가리느라 급급했어. 이제 와서 해체작업을 하려니 쉽지 않네. 그동안 진실을 가리는 걸 너무 잘해 왔거든. 아직은 진실을 어떻게 말할지 확신이 서지 않아. 경험이 별로 없어서. 지금까지 내가 살아남은 방식과 너무 달라서 말이야. 하지만 기어이 해낼 거야." - P57.58
자신의 출신 성분을 기꺼이 부정하고 자신의 몸을 상품화하며 선량한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해야 한다고 말해줄 생각이었어. 남들의 이목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희생시켜야 하고 자신의 본 모습 대신 남들이 선망하는 거짓된 모습으로 살다가 결국엔 자신이 누구로 시작했는지 혹은 애초에 왜 그렇게 시작했는지도 잊어버려야 한다고 말해줄 생각이었어. - P464.465
에블린 휴고는 사람들이 그 이름을 잊어도 상관하지 않는다고 전해. 에블린 휴고라는 사람이 살았다는 사실을 잊어도 상관하지 않는다고 전해. 에블린 휴고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고 전하면 더 좋아. 그녀는 내가 그들을 위해 만들어낸 인물이야.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도록 창조한 인물에 불과해. 내가 아주 오랫동안 사랑이 뭔지 잘 몰랐다고 전해. 하지만 이젠 잘 알기에 그들의 사랑이 더 이상 필요치 않다고 전해. - P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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