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읽어주는 남자 케이스릴러
라혜원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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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비 오는 밤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사고가 났다. 차가 멈췄을 때 운전석에 앉아 있던 남자는 내게 괜찮냐고 물으며, 위험하니 얼른 내리라고 소리쳤다. 조수석에서 내린 나는 뒷좌석에 놔둔 중요한 물건을 꺼내려다 다시금 사고를 당해 시야가 차단됐다.

내가 눈을 떴을 때 곁에 있던 남자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남자는 나를 하윤이라 부르며 다정하게 걱정했지만, 나는 그 남자도, 나 자신도 누구인지 기억하지 못한다. 오로지 고속도로에서 사고가 났던 그 순간들만 기억에 남아 있었다.
다정한 그 남자는 천재후라는 사람이었고, 나 송하윤의 약혼자라고 했다. 병원이 아닌 재후의 할아버지가 가진 섬의 별장에서 요양을 하면서 건강을 회복하는 데 신경을 쓰는 와중에 나는 자꾸만 다정한 재후가 의심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소설은 하윤이라고 불린, 기억을 잃은 주인공이 차 사고를 당하는 장면으로 시작되었다. 누군가에게 쫓기는 듯 급하게 도망치던 차는 이내 사고가 났고, 운전자인 남자와 함께 차를 빠져나오려다 하윤은 다시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눈을 떴을 때 곁에 있던 잘생긴 남자 천재후는 하윤을 다정하게 부르며 걱정했지만, 그녀는 약혼자라고 하던 그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었다. 오로지 차 사고가 났을 때의 기억만 남아 있을 뿐이었고, 운전을 하던 남자가 재후가 아니라는 것만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렇게 소설은 기억을 잃은 하윤을 중심으로 약혼자인 천재후와 주치의 남우성 박사가 주변 인물로 등장했다. 고립된 섬 안의 별장이라는 공간적 배경으로 인해 왠지 모를 궁지에 몰린 하윤은 재후는 물론이고 남 박사 또한 신뢰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설정에 대한 초반 설명이 지난 후에 소설은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다정하지만 의심스러운 재후와 뭔가 숨기고 있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던 남 박사에 이어 재후의 회사 직원이라고 하는 남자가 새롭게 등장했다. 그 남자는 하윤을 딱딱하게 대하면서도 어떤 낌새를 내비쳤기 때문에 의심에 대한 불씨가 조금씩 타오르게 됐다.
재후에게 부탁해 인터넷을 사용한 하윤은 고속도로에서의 사고를 검색했지만, 이후 다시 검색했을 땐 기사가 감쪽같이 사라진 걸 보고서 불안해졌다. 그래서 재후가 서울에 잠시 다니러 갔을 때 그의 차를 훔쳐 경찰서를 찾아갔지만, 송하윤이라는 이름으로도, 그녀의 지문으로도 신원을 밝혀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서 절망했다. 얼마나 답답할까 싶었다. 내가 누군지 기억을 잃었고, 그 기억을 상기시켜주는 약혼자라는 존재는 100% 신뢰하기 어려운 구석이 있었다. 그렇다고 재후를 떠날 수 없었던 건 사실이었다. 하윤 스스로도 자신이 누군지 전혀 기억나지 않았기에 어쩔 수 없이 그의 곁에 붙어 있어야만 했다.

그러다 재후가 다른 그룹의 딸과 약혼했다는 기사를 회사 직원인 최 비서가 보여주면서 사건은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흘렀다. 2부부터는 하윤의 진짜 실체에 대해 최 비서가 알려주는 내용이었다. 앞서 등장한 의심스러운 상황으로 인해 하윤이 진짜가 아니라는 건 당연히 예상했었다. 재후가 IT 기업의 손자라는 점 또한 그 과정에 뒷받침이 되어주고 있었기에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런데 3부에 접어들고, 결말에 다다랐을 때 다시금 판을 뒤집으며 놀라운 실체를 드러냈다. 파고들면 단서라고 할 수도 있는 장면이 등장했지만, 그 단서를 결말의 실체와 직접적으로 연결하는 건 어려움이 있었기에 당황스러웠다. 그로 인해 소설에 대한 나의 감흥은 시들어갔고, 결말은 제대로 끝을 맺지 않아 아쉬움을 남겼다.

로맨스 스릴러라고 하는데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로맨스가 짙지 않았고, 스릴러스러운 느낌도 부족했던 소설이다. 거기다 어울리지 않는 열린 결말은 실망스럽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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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써 다잡았던 마음이 무너져내렸다. 인간의 몸속에 마음이란 기관은 없다는데, 존재하지도 않는 내 마음은 속절없이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존재하지 않는 기억이 우리를 사랑하게 하는 것처럼. - P360.361

재후가 지금껏 내게 보여주고 알려준 모든 것은 진짜가 아니다. 아름답게 직조해낸 거짓 세계다.
그 씨줄과 날줄을 내가 그에게 가져다주었을까. 아니면 내가 가져온 거짓의 씨줄과 그에게 있던 욕망의 날줄이 만나 이 가짜 세상을 만들어낸 걸까. - P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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