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마지막에 본 것은 그날, 너는 무엇을 했는가
마사키 도시카 지음, 이정민 옮김 / 모로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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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이브 밤에 빈 건물 1층에서 여자 시신이 발견되었다. 노숙인처럼 보이던 여자는 추운 날씨에도 외투를 입고 있지 않았는데, 성폭행 시도가 있었는지 옷이 흐트러져 있었고 머리에는 무언가로 맞은 흔적이 있었다. 다도코로 가쿠토 신입 형사와 괴짜로 유명하지만 출중한 능력을 자랑하는 미쓰야 슈헤이 형사가 사건을 맡았다.

이틀 뒤 두 형사는 히가시야마 리사의 집을 찾았다. 리사의 남편 요시하루는 지난 8월에 집 근처 공원에서 살해된 채 발견됐는데, 현장에서 채취한 지문 중 여자 노숙인의 지문이 있었기 때문에 둘 사이의 관계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리사를 찾은 것이었다. 리사는 형사들이 내민 노숙인의 사진을 보고는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다. 남편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에 잠겨 있던 그녀에게 더는 캐물을 게 없어서 두 형사는 집을 나섰다.
그런데 미쓰야가 리사의 집 창문에 놓여 있던 꽃꽂이가 이상하다고 말했다. 가쿠토는 뭐가 이상한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었던 게 당연했다. 하지만 그 꽃꽂이가 계속 마음에 걸렸던 미쓰야는 리사를 예의주시하기 시작했다.



추운 겨울, 그것도 크리스마스이브라는 특별한 날 밤에 여자 노숙인의 시신이 발견된 건 소설일 뿐인데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 더군다나 그 겨울에 외투도 없이, 옷매무새도 흐트러져 있었다고 하니 더욱 씁쓸할 따름이었다. 보통 사람들보다 가진 게 더 없을 노숙인이라고 생각하면 그 죽음은 서글프기만 했다.
이후 신원이 밝혀진 노숙인 마쓰나미 이쿠코를 죽인 사람이 누구인지 밝히는 게 형사들의 목적이었지만, 소설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다. 물론 처음엔 그 목적으로 움직이긴 했으나 몇 달 전에 일어난 히가시야마 요시하루 살인 현장에 남겨진 이쿠코의 지문으로 인해 관계를 밝히는 게 우선이 됐다. 그 후 두 건의 살인사건 뒤에 여러 사람이 얽혀 있는 게 드러나면서 소설의 초점은 살인보다는 삶의 행복에 관해 조명했다.

이쿠코는 아이 없이 남편과 함께 단란하게 살고 있었다. 형편이 어렵긴 했어도 부부는 서로를 의지하고 아끼고 사랑하며 살아갔다. 하지만 삶이라는 게 늘 밝은 면만 있는 게 아니듯 부부에게도 이겨낼 수 없는 시련이 찾아왔다. 이쿠코가 갱년기장애로 일을 하지 못하게 된 게 시작이었고, 이후 사기를 당한 건 큰 타격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동안 남편이 다니던 회사가 어려워져 월급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절망은 성큼 다가왔다. 그리고 그 절망 한가운데에 이쿠코를 떨어뜨린 건 남편이 세상을 떠난 사건이었다.
이쿠코의 사정이 밝혀지며 어찌나 괴롭고 답답했는지 몰랐다. 착하게 살던 부부에게 신의 자비란 없는 듯 자꾸 벼랑으로만 내몰아서 가슴이 꽉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의지할 데 없는 이쿠코가 결국 혼자 남게 됐을 땐 왜 모든 걸 버리고 길거리를 떠도는 선택을 하게 됐는지 이해가 됐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쿠코가 남편의 죽음 이후 바로 노숙인이 된 건 아니었다. 우연한 사건으로 인해 후드 소년을 만나게 됐고, 그 아이를 집에 데리고 와 머물게 하고 밥을 먹이는 등의 사건이 꺼져가던 인생의 불씨를 되살렸다. 이후 이쿠코는 소년에게 집 열쇠를 건네주며 오고 싶을 때 와서 쉬고 가라고 하기까지 했다.

리사의 시점 또한 등장해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하면서 이쿠코와는 다른 충격을 안겼다. 외적으로 리사는 나이가 10살가량 많은 남편 요시하루, 고등학생 딸 루미나와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SNS에 행복하다는 걸 과시하며 모두의 부러움을 사는 걸 당연하게 여겼다.
하지만 그녀의 실제 인생은 SNS와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요시하루는 리사가 바람을 피우고 있다고 의심하며 현관에 CCTV까지 설치했는데, 그건 요시하루의 의처증이 아니라 리사가 대학 시절 잠깐 만나던 남자와 재회해 불륜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여기에 딸 루미나는 사춘기 반항이라도 하는 건지 리사를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렇게 살고 있으면서 SNS에는 행복한 척 글을 올렸고, 요시하루가 죽은 뒤에는 동네에서는 남편을 잃은 슬픈 아내 역할을 충실히 하면서 SNS에서는 다른 계정을 만들어 애인과의 행복한 일상을 남겼으니 리사가 한심해 보이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닌데 왜 그러는 건지 나로서는 이해가 되질 않았다.

여기에 다른 사람들이 끼어들면서 두 사람의 인생을 어지럽히게 만들어 인간의 운명이란 도무지 알 수 없는 거라 생각하게 만들었다. 이쿠코의 남편은 교통사고인 듯 보이지만 실은 지주막하출혈로 사망했다. 이 교통사고의 운전자 이자와 유스케와 아내 나루미, 이쿠코의 시신을 발견한 다카하시 교타와 동생 다쿠미, 리사의 딸 루미나가 이들과 얽히면서 왜 두 건의 살인사건이 일어나게 된 건지 알 수 있게 했다.
그러면서 살해되어 세상을 떠난 건 슬프고 안타까운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의 인생이 비극적이지만은 않다는 걸 일깨웠다. 가진 게 없어도 행복하고 풍요로울 수 있었다. 이쿠코가 세상을 떠날 때 그녀 곁에 아무도 없었지만, 늦지 않게 찾아와 그녀의 죽음을 슬퍼해 주고 비참하지 않도록 수습하려 애쓴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로 인해 이쿠코의 죽음은 슬프긴 했어도 삶은 충만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리사와 나루미가 삶을 대하는 태도와 견주며 진정으로 행복한 삶이란 무엇인지 일깨웠다.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공허한 행복보다 낯선 이들이 서로에게 마음을 쓰고 위로하는 다정함이야말로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저 평범한 스릴러 소설인 줄 알았는데 살인사건을 소재로 삶의 행복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서 신선함을 느꼈다. 답답하고 슬프긴 하지만 그래도 여러 사람들 덕분에 마음 한구석에 온기가 느껴져서 좋았던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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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사람을 떠올리며 언제까지고 울기만 한다는 건 그 사람의 삶이 아닌 죽음을 보는 거라 생각합니다. 만약 내가 죽는다면, 죽었다는 사실보다 살아 있었을 때 일을 봐줬으면 좋겠군요. 그런데 그럴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죽었다는 사실에 눈이 가버리는 경우죠. 그 사람이 왜 죽어야만 했는지, 그걸 모르면 남은 사람들은 죽음에서 결코 눈을 떼지 못할 겁니다." - P51

왜 내가 아닐까. 이쿠코는 그렇게 생각하다, 아니, 하고 정정했다.
왜 저기 있는 게 남편과 내가 아닐까.
우리와 저 사람들은 뭐가 달랐을까. 어떻게 했어야 우리가 저곳에 갈 수 있었을까. - P126.127

리사에게 중요한 건 타인의 눈에 자신이 행복해 보이는가 하는 것이었다.
모두가 부러워했으면 좋겠다. 동경의 대상이고 싶다. 리사처럼 되고 싶어, 리사는 좋겠다, 그렇게 여겼으면 좋겠다.
그래서 남들 앞에서는 늘 행복에 찬 미소를 띠고 있었다. - P137

"모두가 마쓰나미 씨를 좋아했습니다. 그녀에 대해 나쁘게 말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더군요. 노숙인이 돼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사람이 마쓰나미 씨를 도우려 하지 않았습니까. 분명히 그녀도 주변 사람을 소중히 여겼던 겁니다. 그런 그녀의 인생을 불쌍하다는 한마디로 결론지어도 되는 겁니까? 물론 슬프고 불합리한 최후였습니다. 그런 죽음이 있어도 될 리는 없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이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고 슬퍼하고 있습니다. 이 또한 그녀의 인생이 풍요로웠다는 걸 말하고 있는 거 아닐까요?" - P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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