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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거 1992
조장호 지음 / 해냄 / 2017년 3월
평점 :
품절
1992년.
13살 소년 양형식은 엄마를 잃었다. 교통사고로 허망하게 세상을 떠난 아빠를 잃은 슬픔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던 엄마를 본 이웃집 아줌마가 교회에 데리고 간 이후 형식에게 엄마는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됐다. 거기다 엄마는 휴거에 빠져서 교회에만 매달렸고, 10월 28일 휴거가 일어나지 않게 되자 목을 매 자살을 했다.
현재.
형식은 경찰이 되어 실력을 인정받고 있었지만 그의 내면에는 아내에게도 말하지 못한 어두운 과거가 상흔으로 새겨져 있다. 그런 그가 이번에 새로 맡게 된 사건은 묻어버린 과거를 다시 파헤치는 것이었다.
1년 전 실종됐던 한 소년이 갑자기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전화가 걸려온 위치를 추적한 결과 교외의 산속으로 밝혀져 최진혁 형사와 윤지원 형사가 찾아갔다. 두 사람이 목적지에 도착해 차에서 내렸을 때 웬 교회가 눈에 들어왔다. 교회 안에 들어간 두 사람은 100구가 넘는 시체를 발견하고 큰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놀랍게도 전화를 건 소년이 그들 가운데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걸 발견한다.
어렸을 때 휴거 사건이 큰 이슈였다는 걸 당시에는 몰랐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여러 매체를 통해 접한 정보로 알게 되었다. 아무래도 당시에는 좀 어렸을 때고 지금도 그렇긴 하지만 종교적인 것과는 무관하게 지냈기 때문에 몰랐던 것 같다. 뉴스를 챙겨 볼 나이가 아니기도 했고 말이다.
소설은 휴거 사건으로 엄마를 잃은 과거를 묻은 형사인 형식이 다시금 비슷한 사건을 마주하게 되는 내용이었다. 또한 나쁜 놈들을 가만히 두고 보지 못하는 열혈 형사 진혁과 피해자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는 형사 지원도 주요 캐릭터 중 하나였다.
본격적으로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른 건 사라진 중학생 민재가 1년 만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면서부터였다.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부모에게도 관심을 받지 못했던 민재가 사라진 이후 매일 지옥을 살았던 엄마는 아들을 어떻게든 다시 찾아야겠다는 마음에 경찰서로 달려갔다. 마침 연락을 받은 진혁과 지원이 현장으로 출동했는데, 형사 생활을 그렇게 오래 했지만 충격에 말을 잇지 못할 정도로 처참한 광경을 보고 말았다. 그건 비단 진혁과 지원에게만 그런 게 아니라 냉철한 수사과장인 형식은 물론이고 수사 1팀 팀장인 오주연, 심지어는 서장 이치도까지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100구의 시체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민재는 곧장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말을 잃어 사건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없었다. 그런데 다행히 시체들 사이에서 숨이 붙어 있는 이혁세를 찾아내 수술을 했고, 놀라운 회복력을 보여 당시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의 입을 통해 전해 듣게 된다.
이때까지만 해도 소설은 사이비 종교를 중심으로 흘러갈 거라 예상했다. 제목에 휴거라는 단어가 들어갔기에 다시금 휴거로 사람들을 현혹시킨 사이비 종교의 교주가 모든 걸 꾸몄을 거라 여겼다.
그러다 점차 소설은 범죄에 오컬트 분위기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생존자 중 한 명인 이혁세는 금고털이범으로 전과 7범이었는데, 처음에 그는 사이비 종교에 빠진 척하다가 그들이 유명 인사들과 부유층에게 거둔 헌금을 찾아내 도망칠 작정이었다. 하지만 함께 일을 도모한 동료가 어느새 그들의 교리에 빠져들어 계획은 물거품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 과정을 이혁세가 형사들에게 설명하는 과정이 이어지던 한편, 아무 말도 하지 않던 민재는 자신을 오매불망 기다리던 엄마에게 죽으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쳤고, 나중엔 상처를 내기도 했다. 마치 민재의 몸에 악마라도 들어간 듯한 느낌이 들어 섬뜩했다. 목격자 중 한 명은 뭐에 씐 듯하고, 다른 한 명은 중심부에서 조금은 벗어나 맴맴 도는 기분이었다.
이 사이에 형사들은 사건을 여러 각도에서 파헤쳤다. 그러다 마침내 형식의 과거와 관련된 비밀이 드러나 그는 평소의 냉철함을 잃고 감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이어진 소설은 이 끔찍한 상황을 만든 게 누구이고, 표면에 드러나진 않았지만 계획한 건 누구인지 밝혀졌다. 결국 종교가 사람을 미치게 하고 변하게 만든 것이었다.
어쩌면 마음의 문제에서 비롯되는 게 아닌가 싶다. 헌금을 훔쳐 달아나려는 범죄를 계획한 이혁세 일당도 그렇고, 사이비 종교에 맹목적으로 빠져든 사람도, 그리고 사이비 종교의 임창도 목사나 모든 걸 계획한 진짜 범인, 그리고 에필로그의 인물까지 병든 마음으로 인해 이기적으로 행동했고 상황을 비극으로 몰아갔다. 종교가 없는 사람이라 그런 부분은 좀처럼 이해하기 어렵긴 해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결말이 조금 찝찝하게 끝나서 개운하지가 않은 느낌이다.
이 교회에 온 사람들 중 행복한 사람은 없었다. 모두들 견딜 수 없는 고통에 휩싸여 있었다. 어쩌면 이 사람들도 이 모든 것이 거짓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냥 믿고 싶었을 것이다. 희망을 가질 수 있다면, 그 무엇이라도 믿었을 것이다. 거짓임을 알지만 그들에게 확신을 주는 그것을 믿고 싶었으리라. 믿지 못한다면 냉정하고 생생한 진실에 직면해 고통과 마주해야 하니, 그보다는 위안을 주는 거짓을 택한 것이다. 그들은 무엇이든지 기대고 믿을 대상이 필요했던 것이다. - P86
내 이야기를 들어줘요. 하지만 아무 대답도 들을 수 없었다. 아무도 모른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 그저 혼자 감내해야 했다. 무섭다. 하지만 이 사람이라면, 아니, 이분이라면 알 것도 같다. 내 고통. 내 아픔. 그에게 모든 걸 말하고 싶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이 사람이라면, 이 사람이 말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믿고 싶다. 그리고 어디든 따라갈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바로 이 순간을 위해 살아남은 것 같았다. ‘그분이 내게로 오셨다.‘ - P28.29
그 사람들 중 나쁜 사람은 없었다. 다만 절박할 뿐이었다. 지푸라기라도 잡지 않으면 금세 쓰러져 버릴 것만 같던 사람들. 남들보다 마음이 약하고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당당하게 세상과 맞서 싸우지 못했을 뿐이었다. 고통을 받아들어야 했다. 죽을 것 같지만, 견딜 수 없을 것 같지만 살아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하고 거짓 믿음 속으로 도망갔다. - P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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