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기술자
토니 파슨즈 지음, 박미경 옮김 / 북플라자 / 2018년 1월
평점 :
절판



1988년.
어딘지 알 수 없는 지하실에서 한 여자가 일곱 소년들에게 몹쓸 짓을 당했다. 폭행을 당해 피를 흘렸고 몸을 제대로 가누기조차 어려웠지만, 그녀는 살고 싶은 마음에 어떻게든 지하실을 빠져나가려고 했다. 마침 소년들이 대마초를 피우느라 그녀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 듯했기에 지금 도망쳐야 했다.
하지만 지하실을 기어 나가려던 그녀를 일부러 두고 본 듯 이내 소년들의 비웃음이 들려왔다. 어떤 소년은 그녀에게 다가와 보내주면 안 된다고 친구들에게 말하기까지 했다. 그녀는 자신을 붙잡은 소년의 눈에 손가락을 박아 넣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뭔가가 터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다친 친구에게 소년들의 주의가 쏠린 사이 그녀는 밖으로 나가 어떻게든 도로로 도망쳤지만, 차를 끌고 쫓아온 무리에게 붙잡혀 영원히 눈을 감았다.

현재.
맥스 울프 경장은 과감하면서도 촉이 좋아 인정을 받고 있다. 그런 그는 휴고 벅이라는 남자가 자기 사무실에서 살해당한 사건을 맡게 됐다. 휴고 벅은 전문가가 살해한 듯 목이 칼로 쭉 찢어진 채 죽었는데, 범인이 남긴 흔적도 없는 듯해서 사건을 수사하기 어려울 거란 예감이 들었다. 사무실 계단 통로에 피로 쓴 '돼지'라는 단어를 제외하면 특이점이랄 게 없는 듯 보였다.
휴고 벅의 가족이나 지인들의 탐문수사를 하던 중, 다음 날 또 다른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잘나가는 은행가인 휴고 벅과는 다르게 살해된 사람은 노숙자였는데, 목이 깔끔하게 찢어졌다는 점이 똑같았다. 거기다 '돼지'라고 쓴 글자가 사체 근처에서 발견됐다.
맥스 울프는 연쇄살인임을 직감하고 휴고 벅의 책상에 놓여 있던 군복 입은 소년들을 주목한다.



소설 초반에 프롤로그로 과거에 일어난 사건을 먼저 보여주었기에 앞으로 일어날 살인은 모두 복수극이라는 걸 예상할 수 있었다. 소년들에게 몹쓸 짓을 당한 여자의 정체는 밝혀지지 않았고 죽었다는 걸 드러냈기에 이 여자의 복수는 가족이나 가족만큼 가까운 사이가 대신했을 거라 생각했다.
보통 스릴러 소설을 읽을 땐 후더닛(범인)이나 와이더닛(이유)에 집중하기 마련인데, 이 소설은 시작부터 두 가지 궁금증이 충족된 셈이었다. 그래서 범인이 어떻게 복수를 할 것인가, 복수에 성공할 것인가, 경찰에게 붙잡히지 않을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읽었다.

맥스 울프가 휴고 벅의 학창 시절에 주목하게 된 건 두 번째로 살해된 노숙자가 휴고 벅과 동창인 아담 존스였다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부터였다. 마침 휴고 벅의 책상 위에 7명의 소년들의 사진이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그들이 다음 타깃이 될 거라고 예상했다. 그래서 그들을 차례로 찾아가 두 사람에게 원한을 품을 만한 사람이나 의심 가는 사람이 있는지 물었지만, 무언가를 회피하는 듯한 의구심을 남겼다.
그러다 그들이 졸업한 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던 가이 필립스가 수업 도중에 학교 근처 숲에서 목이 찢어진 채 뛰쳐나오는 걸 맥스 울프와 빅터 맬러리 경감이 발견한다. 맬러리가 지혈을 하는 사이에 울프가 범인이 있을 곳을 찾아 헤매다가 머리를 맞고 기절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그 후 범인에게 붙잡혀 목숨을 구걸하게 되는데, 나중에 그 상황을 찍은 영상이 인터넷에 유포되어 울프는 곤란한 처지가 됐다.
그런 것보다 울프에 대해 의문이 들었던 건 죽은 휴고 벅의 아내 나타샤와 깊은 관계가 됐다는 것이다. 경찰이라는 양반이 피해자의 아내와 묘한 기류를 주고받고, 결국에는 몸까지 섞는 사이가 되자 울프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다.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에 대한 믿음이 깨지면서 아쉽게도 소설에 흥미를 조금 잃게 됐다. 그럼에도 결말은 봐야 했기 때문에 끝까지 읽었는데, 누가 복수를 한 건지 그 사건 이면에 묻혀 있던 비밀은 무엇인지 드러났지만 그리 인상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현재 일어난 사건의 피해자이자 원흉인 당시의 소년들을 변호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거기다 결말이 그리 속 시원하게 끝나지도 않았기에 마지막까지 찝찝함을 남겼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읽은 책이기는 하지만 상당히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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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으로 누굴 죽이려면, 그러니까 목 옆으로 칼끝을 찔러 앞쪽으로 밀면서 당기려면…." 캐럴이 잠시 뜸을 들이며 경감을 쳐다봤다. "상대를 지옥까지 쫓아가서 죽이고 싶을 만큼 증오해야 할 겁니다." - P129

"그들이 부자라서 죽은 게 아니다. 특권층의 자식이라서 죽은 것도 아니다. 그들은 사회의 부당함을 상징하는 존재도 아니고 도살자 밥과 관련되지도 않았다. 그렇죠?"
"그건 그래. 순전히 자신들의 과거 때문에 죽은 거지." - P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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