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스노볼 1~2 (양장) - 전2권 소설Y
박소영 지음 / 창비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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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이상으로 평균 기온이 영하 40도쯤 되는 세상에서 거의 모든 사람들은 발전소에서 일을 하며 살아간다. 거대한 쳇바퀴에 들어가 발로 구르거나 팔로 돌리는 일을 해야만 미약하게나마 각 가정에서 전기와 온수 등을 사용할 수 있다.
워낙 활동하기 어려운 날씨가 일상인 사람들에게 유일한 즐거움을 주는 건 '스노볼'이라는 곳에서 만들어낸 드라마다. 매년 스노볼 바깥세상에서 액터 오디션을 열어 재능 있는 사람들을 안락한 스노볼 안으로 데리고 가 각자의 드라마를 만들어 스노볼 바깥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한다. 각본 없는 리얼리티 드라마에 출연해 인기를 얻는 액터는 추운 바깥과 달리 스노볼 안에서 따뜻하고 부유한 삶을 보장받을 수 있다. 24시간 동안 자신의 삶을 촬영하는 것을 견디면 말이다.

스노볼 바깥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16살 전초밤은 액터보다는 디렉터가 되고 싶다. 그래서 필름 스쿨에 지원하지만 번번이 떨어져 어김없이 발전소에 출근을 한다.
그러다 스노볼 액터 출신으로 사람을 9명이나 죽이고 쫓겨난 조미류를 도와준 날, 스노볼에서 가장 유명한 디렉터인 차설이 초밤을 찾아온다. 초밤과 매우 닮은, 스노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액터인 고해리의 드라마를 담당하고 있는 디렉터였다. 차설은 초밤에게 고해리가 자살을 했으니 초밤이 대역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1년 동안 해리의 삶을 성공적으로 살아낸다면 초밤의 가족은 지금보다는 훨씬 안락한 삶을 살 수 있을 테고, 초밤이 나중에 필름 스쿨에 입학하는 걸 도울 수 있다고 제안했다. 갑작스럽기도 하고 믿기지 않는 제안에 초밤은 짧은 갈등을 끝내고 차설 디렉터를 따라 스노볼로 향한다.



뉴스에서 종종 보도되기도 하는 기후 위기 현상을 소설에서는 배경으로 설정했다. 기후에 큰 변화가 생겨 사계절 내내 혹한의 추위가 몰아치는 세상으로 말이다. 그로 인해 생존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다른 직업 없이 발전소에서 일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발전소의 쳇바퀴를 24시간 교대로 쉴 새 없이 돌려댔다. 그런 초반 설정을 읽으며 아직 16살밖에 되지 않은 초밤이 현실보다 이르게 학교를 졸업하고 쳇바퀴의 삶을 살아가는 게 안타깝기만 했다. 온수가 잘 나오지 않아 긴 머리카락은 꿈도 꿀 수 없어서 짧은 헤어스타일을 가지고 있었고, 얼굴은 추위 때문에 언제나 튼 상태였다. 또한 옷이라는 건 예쁜 게 아니라 따뜻함이 우선이라는 것도 씁쓸하기만 했다.
그럼에도 초밤은 쌍둥이 오빠 온기와 치매 할머니, 엄마와 함께 밝고 단란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마을에서 투명 인간 취급을 받는 조미류를 아무렇지 않게 대할 정도로 따뜻한 성정을 지녔다.

그렇게 바깥세상에서 여느 또래 아이들과 별다를 게 없는 삶을 살아가던 초밤의 인생이 달라진 건 차설 디렉터가 찾아오면서부터였다. 이전에도 초밤은 스노볼에서 최고로 인기 있는 액터인 고해리와 닮았다는 표현이 등장했었는데, 스스로도 닮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건지 초밤은 자신과 같은 날에 태어나 인기를 끄는 해리가 나오는 드라마를 빠짐없이 챙겨 볼 정도로 좋아했다. 그런데 그런 해리가 자살을 하는 바람에 대타를 세우기 위해 차설은 초밤을 어떻게 찾아낸 것이었다. 아무리 봐도 뭔가 꺼림칙한 구석이 있었다. 스노볼에서 가장 인기가 많고, 바깥세상에서 사랑받는 소녀의 죽음으로 슬퍼할 사람들에게 실망을 안겨주고 싶지 않아서 대타를 세운다는 게 이상하기만 했다. 초밤 역시 그 부분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자신 또한 해리를 사랑했고 만난 적이 없고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긴 했어도 어떤 공감대를 가지고 있었기에 차설의 제안을 받아들이게 됐다. 제안을 받고 스노볼로 향해 가던 여정의 시작부터 잘못됐다는 걸 눈으로 직접 보게 되었어도 돌이킬 수는 없었다.

이후 소설은 초밤이 스노볼 내에서 적응하는 과정부터 시작되었다. 3대가 유명 액터인 고해리와 엄마 고상히, 할머니 고매령은 해리의 죽음을 알면서도 초밤을 해리의 대타로 세우는 걸 받아들여 카메라 앞에서 자연스러운 연기를 이어갔다. 그런가 하면 스노볼의 시스템을 만든 '이본' 그룹의 차기 후계자 이본회와 만난 뒤에는 해리가 그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물론 해리를 연기하는 초밤은 그 사실을 몰랐다가 조금 지나서야 알고는 아무렇지 않게 대하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초밤이 스노볼에서의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한 뒤에는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았는데, 1권에서는 고해리의 정체에 관한 어마어마한 진실이 밝혀져 굉장한 충격을 줬다. 이 진실은 다른 소설이나 영화에서도 많이 접했던 설정이었지만, 이 소설을 읽으면서 전개에 온전히 몰입하는 바람에 상상도 해보지 못한 것이라 놀랍기만 했다. 그렇게 고해리에 관한 비밀이 밝혀지고 잘 마무리되어 1권이 끝난 후에 2권에서는 초반부터 긴장하게 만들었다. 초밤이 이제는 훨씬 거대해서 도무지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존재와 싸워야 했기 때문이다. 후반으로 가면서 양파를 까듯 겹겹이 진실이 밝혀져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과연 초밤이 어떻게 될지 예상할 수 없을 정도였다.

다행히 소설은 영어덜트 장르라 주인공 초밤은 역경과 고난을 이겨내고 세계의 평화까지 얻어냈다. 용기 있고 정의로운 초밤으로 인해 거의 모든 사람의 행복을 얻게 된 셈이었다. 씩씩하고 긍정적이며 착한 초밤이 주인공이라 정말 좋았다.

소설을 읽는 내내 너무 재미있어서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상상력이 부족한 나에게 상상하는 재미를 안긴 소설이었다. 뒤에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초밤과 여러 친구들이 과연 어떻게 될지 계속 궁금해서 책장이 너무나 잘 넘어갔다. 읽는 동안 이렇게 몰입해서 소설 속 세계에 빠진 건 정말 오랜만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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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했던 소녀는 한 명의 사람이 아닌, 하나의 허상에 불과했다. 1권 - P368

​"너는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기만 하면 돼. 내가 짜 놓은 시나리오에서 벗어나려고도, 너만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려고도 하지 말고, 그저 가만히.
(……중략)
명심하렴. 네가 이 시스템에 위협이 되는 순간, 네 곁에 있는 사람의 목이 죄다 날아간다는 걸. 그게 내 핏줄이든 네 가족이든." 2권 - P132.133

내일의 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허상을 흉내 낼 필요도, 나의 존재를 숨길 필요도 없으며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었다. 내일의 다음 날도, 그다음 날의 또 다음 날도 내가 나로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가슴 뛰게 했다. 1권 - P426

"꼭 행복할 필요는 없어요, 항상 행복할 수도 없고요. 다만 혼자가 되진 말아 주세요. 힘들면 왜 힘든지, 즐거우면 뭐가 즐거운지, 당신의 삶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해 주세요. 남에게 보이기 위한 삶이 아니라, 누군가 당신에게 요구한 삶이 아니라, 그저 당신이 살고 싶은 삶을 살아 주세요." 2권 - P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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