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에게도 말하지 마
할런 코벤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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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전.
25살의 엘리자베스와 벡은 결혼한 지 겨우 7개월 된 신혼부부였다. 그들은 7살 때부터 서로를 소울메이트로 여기며 오랜 시간 한결같은 사랑으로 곁을 지켜왔다. 그리고 그 시간만큼이나 많은 추억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들의 첫 키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에겐 특별한 첫 키스를 기념하기 위해 벡과 엘리자베스는 매년 추억의 장소인 할아버지의 호수를 찾았고, 그날 역시 같은 이유로 그곳에 있었다. 두 사람에게 로맨틱한 기념일이었던 그날 엘리자베스는 누군가에게 납치되었고, 비명을 듣고 아내를 찾으려던 벡은 머리에 야구배트를 맞고 기절했다.
벡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동안 엘리자베스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당시 유명한 연쇄살인범이었던 킬로이의 낙인이 엘리자베스의 뺨에 찍혀 있었다.

현재.
소아과 의사가 된 벡은 하루하루를 그저 살아가고 있을 뿐이었다. 엘리자베스가 떠난 뒤 벡에겐 즐거운 일도 슬픈 일도 없었다. 벡은 견디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엘리자베스와의 첫 키스 기념일을 앞둔 어느 날, 그에게 의문의 메일이 하나 도착했다. 분명 자신과 엘리자베스만 알 수 있는 암호로 쓰인 내용의 메일이었다. 정확한 시간에 메일 속 링크를 클릭한 벡은 어느 도시의 CCTV 화면 속에서 살아 있는 엘리자베스를 보게 된다. 화면 속 엘리자베스는 벡이 지켜보고 있다고 확신한 듯 그에게 입모양으로만 말을 했다.
그때부터 벡은 엘리자베스의 죽음과 관련된 8년 전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영혼의 단짝이었던 아내를 연쇄살인범에게 잃고 살아가는 남자 벡은 겉으로는 살아서 숨을 쉬고 있을 뿐 영혼은 죽은 거나 다름없었다. 워낙 어릴 때부터 함께했던 엘리자베스였기 때문에 그녀의 빈자리는 그 누가 와도 메울 수 없게 되어버렸다. 데이트를 해보기도 했지만 엘리자베스의 흔적만 더욱 짙어지는 것 같았다.
그러는 와중에 벡에게 온 메일은 그를 깊은 수렁에서 건져줌과 동시에 의문이 꼬리를 물게 되었다. 엘리자베스가 살아 있다는 것도 놀라웠는데, 그렇다면 왜 8년 동안이나 죽은 사람처럼 지내야 했는지가 궁금했다. 그래서 그때부터 벡은 엘리자베스의 죽음과 관련된 사건을 뒤늦게 파헤쳤다.

그런데 문제는 전혀 예상치 못한 데서 발생했다. 엘리자베스의 죽음 이후 괴로움으로 인해 연락을 끊었었던 그녀의 친구 레베카를 8년 만에 찾아가 만났었는데, 벡이 다녀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레베카가 총에 맞아 죽었다. 경찰은 물론이고 FBI까지 개입되어 벡을 살인 용의자로 특정한 뒤에 쫓기 시작했다. 레베카를 만나기만 했을 뿐인데 졸지에 살인자가 되어버린 벡은 도망을 칠 수밖에 없었다.
1인칭 시점으로만 진행됐다면 벡을 의심했을 수도 있겠지만, 또 다른 사람의 시점이 등장해 벡에게 누명을 씌우고 있다는 게 명백하게 밝혀졌다. 그리핀 스코프라는 노인은 자선 사업을 하는 이였는데, 그가 이 모든 걸 꾸미고 있다는 게 금세 밝혀졌다. 물론 그 이유는 한참 지난 후에야 공개되긴 했지만 말이다. 그리핀은 부유한 사람이었기에 그의 일을 돕는 전문가들이 있었다. 사람을 죽이는 건 예삿일이었고, 증거 조작으로 벡에게 누명을 씌우는 일 또한 식은 죽 먹기였다.
소아과 의사일 뿐 선량하게만 살아온 벡이 과연 이런 무서운 사람들을 당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다행히도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한 덕분에 벡에게 언젠가는 꼭 보답을 하겠다고 한 아이의 아빠 타이리스가 큰 도움이 되었다. 마약상이긴 했지만 그래도 선한 자의 편에 선 타이리스 덕분에 벡은 몇 번이고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또한 벡에게 씌워진 단서의 맹점을 파악한 FBI 요원 칼슨이 있었던 것도 의외였고, 다행이기도 했다.

이렇게 벡에게 살해 누명을 씌우려는 스코프와 도망치는 벡, 그리고 사위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엘리자베스의 아버지 호이트까지 등장해 이들의 관계와 비밀들이 밝혀지면서 본격적으로 사건을 바로잡는 과정으로 흘렀다. 그런 와중에 위기가 발생하기도 했고 뒤통수를 맞을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안도할 만한 결말로 끝을 맺었다. 그러면서 다시금 비밀을 밝혀 놀라움을 안기긴 했지만 말이다.

몇 년 만에 읽은 할런 코벤의 소설은 흥미로웠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작년에 재미있게 읽은 어떤 책이 떠올랐다. 흡사한 부분이 많아서 그런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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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 속 엘리자베스는 분명 나이 든 모습이었다. 최소한 8년 정도는. 유령은 머리 스타일을 바꾸지도 않는다. 나는 달빛 아래서 봤던, 등까지 내려오던 아내의 땋은 머리를 똑똑히 기억한다. 그런데 방금 본 그녀는 유행하는 짧은 머리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눈. 일곱 살 때부터 틈날 때마다 들여다본 아내의 눈.
엘리자베스가 틀림없었다. 아내는 살아 있다. - P69

익명의 이메일, 암호, 경고. 아내가 그토록 깐깐하게 예방책을 마련해둔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엘리자베스는 두려웠던 것이다. 나는 그 무엇 하나 제대로 풀지 못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아내는 너무나도 두려운 나머지 수수께끼 같은 방법으로 소통을 시도했던 것이다. 아내는 공포에 떨고 있었다. - P277

그래서 왜 갑자기 벡이 범인이라는 추측에 의심을 갖게 됐지?
사건이 너무 깔끔하게 정리되고 있어서. 모든 증거가 그들의 이론에 딱딱 맞춰 줄을 서고 있어서. 어쩌면 그의 의심이 ‘직감‘만큼이나 신뢰할 수 없는 무언가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 P297

"그럼 우리도 맞서야죠." 나는 애써 용기를 내어 말했다.
"아까 내가 한 말 못 들었나? 목을 벨수록 더 많은 머리가 돋아나는 괴물 얘기 말이야."
"하지만 결국에는 영웅이 괴물을 물리치는 법 아닙니까." - P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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