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를 삼킨 소년
트렌트 돌턴 지음, 이영아 옮김 / 다산책방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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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살 엘리 벨의 가족은 남들이 보기엔 이상하고 특별해 보일 테지만, 엘리에겐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엄마 프랜시스는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었으나 가정 환경으로 인해 그렇게 되지 못했고 지금은 마약을 한다. 엄마에게 마약을 대줬던 애인 라일 아저씨는 밉지만, 엄마가 마약을 끊게 해준 사람 역시 라일 아저씨이기에 엘리는 그를 사랑한다. 그리고 6살 때 이후 말을 하지 않고 허공에 글씨를 써서 하고픈 말을 하는 형 오거스트는 엘리에겐 너무나 특별한 사람이다. 또한 가족은 아니지만 엘리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베이비시터인 슬림 할아버지는 전설의 탈옥왕이라 불리는 멋진 사람이다.

이렇게 특별하고도 평범하게 살아가던 엘리는 라일 아저씨에게 마약을 대주는 지역 업계의 마약왕 타이터스 브로즈의 마약을 어느 정도 빼돌렸다가 들키는 바람에 상상하지 못했던 길로 접어든다. 라일 아저씨는 타이터스의 수하에게 끌려가 행방불명됐고, 엄마는 이 사건에 연루됐다는 판결을 받아 감옥에 갔다. 거기다 엘리는 타이터스의 충직한 부하 이완 크롤에게 오른손 검지를 잘렸다. 그 후 엘리와 형은 공황장애를 안고 있는 아빠에게 보내져 함께 지내게 된다.

12살 소년 엘리의 가족과 주변엔 독특한 사람들이 가득했다. 마약에 빠진 엄마와 라일 아저씨는 독특하다기보다 짐짓 무책임한 사람이었으나 이내 제대로 된 부모 노릇을 했다. 그러는 사이에 베이비시터인 슬림 할아버지가 엘리와 오거스트를 돌봐줬는데, 그 사람이야말로 정말 굉장히 특별했다. 사람을 죽였다는 이유로 감옥에 갔다가 몇 번이고 탈옥하고 붙잡히기를 반복한 슬림 할아버지는 단순하게 보면 나쁜 사람이었다. 하지만 슬림 할아버지가 진짜로 사람을 죽인 것은 아니라는 뉘앙스가 있었기에 억울하게 누명을 썼다고 보였다. 자신이 처한 상황으로 인해 혼란에 빠진 엘리를 바른길로 이끌어주려고 애를 썼던 슬림 할아버지는 좋은 사람이었다. 덕분에 엘리가 엇나가지 않고 옳은 일을 하는 사람이 되려고 했다.

하지만 타이터스로 인해 독특하지만 평온했던 엘리의 일상이 산산이 조각났다. 형을 제외한 가족이 뿔뿔이 흩어진 건 물론이고 미운 구석이 있긴 해도 좋아했던 라일 아저씨는 어떻게 됐는지 알 수가 없었다. 거기다 엘리에게 특별했던 오른손 검지가 잘리고 말았으니 최악의 최악만 남은 셈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일어날 일이긴 했다. 마약왕의 마약을 라일 아저씨가 빼돌렸으니 말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사실을 밀고한 사람의 정체였다. 처음엔 엘리와 같은 학교에 다니는 베트남계 오스트리아인 대런 당의 엄마 빅 당이 그런 줄 알고 있었는데, 한참 후에 밝혀진 사실은 치가 떨리게 만들었다. 그로 인해 엘리가 복수를 해야 할 대상이 한 명 더 늘게 되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아직 어렸던 엘리였기에 갑작스레 나타난 누군가의 도움을 받긴 했는데, 그건 전적으로 과거의 친절한 엘리 자신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후 소설은 엘리의 성장과 가족과의 재회로 이어지며 복수를 위해 차근차근 계단을 밟아가는 내용도 곁들였다. 고작 12살의 나이에 갖은 경험을 해야 했던 어린 엘리는 18살이 되어 자신의 뜻을 이룰 수 있을 만큼 겉과 속이 단단한 성인이 되었다. 엘리의 곁을 지키며 믿어주던 오거스트 형이 있었고, 헤어졌던 엄마와 아빠가 있었던 덕분이었다. 그리고 어릴 때 만나 마음을 빼앗긴 이후 오랫동안 그 마음을 지키며 바라봤던 케이틀린 스파이스도 엘리를 믿어줬기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된 타이터스와 마주했을 때 엘리는 두려웠지만 꿋꿋하게 뜻을 밀고 나갔다. 그로 인해 엘리와 같은 신세가 될 뻔한 어린 소년의 구원자가 되었고, 정당하게 복수를 성공시켰다. 그 과정이 긴박하게 진행되어 후반엔 깊이 몰입했다.

초반엔 무슨 소설인가 싶어 집중이 잘되지 않았는데, 어느 정도 지나고 난 후에는 엘리의 성장과 어마어마한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두께가 있는 책이지만 금세 읽을 수 있었다.

"난 좋은 사람이야." 슬림 할아버지가 말한다. "하지만 나쁜 사람이기도 하지. 누구나 다 그래, 꼬마야. 우리 안에는 좋은 면도 나쁜 면도 다 조금씩 있거든. 항상 좋은 사람이 되는 건 어려워. 그런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안 그렇지." - P223

"그날 병원에서 네가 좋은 사람, 나쁜 사람에 대해 물었지, 엘리. 나도 그 생각을 해봤다. 아주 많이. 그저 선택의 문제라고, 그때 말해줬어야 하는데. 네 과거도, 엄마도, 아빠도, 네 출신도 상관없어. 그저 선택일 뿐이야.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 되는 건 말이다. 그게 다야." - P351

난 좋은 사람이 하는 일을 할 거예요, 슬림 할아버지. 좋은 사람은 무모하고, 용감하고, 본능적인 선택으로 움직이죠. 이게 내 선택이에요, 할아버지. 쉬운 일이 아니라 옳은 일을 하는 거죠. - P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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