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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브 (반양장) ㅣ 창비청소년문학 111
단요 지음 / 창비 / 2022년 5월
평점 :
2057년, 세상은 온통 물에 잠겨 있다. 지구의 모든 얼음이 녹기 시작해 해수면이 상승했고 마침내 땅을 뒤덮었다. 평평하고 낮은 땅에서 건물이나 아파트에 살던 사람들은 산으로 올라갔다. 그렇게 여러 산들을 터전 삼아 살기 시작한 지 벌써 15년이 지났다.
그렇게 산에서 모여사는 사람들 중 '물꾼'이라고 부르는 이들은 깊은 물에 잠수해 세상이 이렇게 되기 전에 썼었던 여러 물건을 구해오기도 했다. 그러던 중 노고산 물꾼인 선율과 남산 물꾼 우찬이 시비가 붙어 내기를 하기로 한다. 각자 어떤 것들을 걸고 보름 동안 물속에서 더 쓸 만한 물건을 건져오기로 한다.
물에 잠긴 어느 건물에 들어간 선율은 멋진 물건을 찾다가 여러 큐브가 쌓인 걸 본다. 놀랍게도 그 안에는 기계 인간이 있었고, 그중 하나를 가지고 물 위로 올라온다. 선율의 잠수 파트너인 지오와 기계 인간을 깨울지 말지 고민을 하다가 내기 생각이 떠올라 일단 깨우게 된다.
그렇게 깨어난 소녀 채수호는 자신이 왜 기계 인간으로 깨어난 건지 아주 잘 알고 있는 듯했다. 선율에게서 내기에 대해 듣고서도 별다른 반응이 없다. 다만 수호는 자신이 잃어버린 몇 년 간의 기억을 찾고 싶다고 하며 내기에 응하는 대신 선율에게 부탁했다.
빙하가 녹기 시작하면서 세계는 물에 잠기게 됐다. 아파트처럼 높은 곳에 살면 괜찮을 것 같기도 했지만, 그러면 삶을 이어갈 수 없다는 데에 생각이 닿았다. 땅이 물에 잠기면 당연히 전기는 들어오지 않을 테고, 그렇게 된다면 아파트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감옥이나 다름없었다. 그걸 사람들은 경험으로 깨달은 모양인지 산으로 가서 터를 이뤘다. 땅이 조금이나마 남아있는 곳이라면 적어도 먹을 수 있는 식물들을 키울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터를 이루고 사는 사람들은 자연스레 구역에 따라 나뉘게 됐고, 각자 하는 일들도 있었다.
선율은 또래 남자아이인 지오와 아직 어린아이들, 그리고 삼촌이라 부르는 어른과 함께 노고산에서 살았다. 삼촌은 기계를 잘 다루는 사람이라 지오에게도 이것저것 알려주었고, 때로는 다른 산에 사는 사람의 부탁을 받고 기계를 고쳐주기도 했다. 하지만 선율이 기계 인간 수호를 데리고 왔을 땐 다른 산에 가 있었기에 선택은 오로지 두 아이의 몫이 되었다.
기계 인간은 어떤 사람의 기억을 온전히 집어넣어 만든 존재였다. 외형까지 사람과 다를 바가 없어서 얼핏 보면 구분하지 못할 만큼 정교했다. 그래서 선율의 선택에 따라 깨어난 수호는 진짜 사람 같았다. 하지만 수호는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아팠다는 것과 부모님이 자신을 기계 인간으로라도 만들고 싶어 했다는 걸 기억하고 있었다.
살아있는 사람과 다르지 않은데 자신이 기계라는 걸 쉽게 인정하는 수호의 담담함이 내게는 오히려 더 아프게 다가왔다. 수호를 찾아내서 깨운 선율마저도 그 상황을 안타깝게 받아들이고 있는데, 정작 본인은 아파하지 않았기에 기억에서 지워진 과거가 궁금해지기도 했다.
수호가 잃어버린 기억을 채 찾기도 전에 삼촌과의 과거 인연이 드러났고, 남산으로 간 우찬과 삼촌이 왜 사이가 나쁜지도 밝혀졌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호가 잃은 기억을 되찾게 되면서 삼촌의 행동에 대한 이유를 가늠할 수 있었다.
아주 먼 미래를 배경으로 포스트 아포칼립스와 같은 상황인 디스토피아 소설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부족함 없던 시절이라고 추억하게 된 과거와 수몰 이후가 더 익숙한 세대의 현재를 기계 인간 수호의 등장으로 융합하는 과정을 보여줬다. 이유를 묻고 싶었지만 차마 묻지 못했고, 그런 상대에게 변명도 하지 않았던 과거를 향해 이해와 위로를 말했다. 그 누구보다 인간다움을 가지고 있던 수호로 인해 오랫동안 묵혀두었던 앙금이 풀어진 것이었다. 누군가와의 앙금은 물론이고 홀로 좀먹던 응어리까지 풀어지게 했다.
그 과정을 덤덤하지만 올곧은 방향으로 그려내고 있던 소설이었다.
청소년 소설이지만 성인이 읽어도 깊이 와닿는 이야기였다. 세상이 물에 잠겨버렸어도 사람들은 다른 이를 향한 따스한 마음을 잃지 않는 모습이 참 좋았다.
닿지 못할 행복은 생생한 만큼 슬픔이 되고,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은 그대로 남아 후회가 된다. 살아가다 보면 지나간 순간을 다시 볼 기회가 생기지만 그 반대의 일도 얼마든지 일어난다. 과거가 오늘을 옭아매는 것이다. - P159
지오는 끝내는 일에 대해 생각했다. 그건 아마도 마음의 힘일 것이다. 뾰족뾰족한 기억 위에 시간을 덧붙여서, 아픔마저도 다른 것으로 바꿀 수 있다는 것. 고통을 지우는 게 아니라, 잊는 게 아니라, 피해 가는 게 아니라, 그저 마주보면서도 고통스럽지 않을 방법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건 다시, 다른 시간의 발판이 된다는 것. - P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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