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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블론드 1~2 - 전2권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엄일녀 옮김 / 복복서가 / 2022년 8월
평점 :
노마 진 베이커는 할머니 델라와 함께 살았었다. 노마 진의 어머니 글래디스는 가끔씩 그녀를 보러 왔고, 그럴 때면 노마 진은 긴장과 동시에 기쁜 마음이 들었다. 그러다 노마 진은 글래디스와 살게 되어 행복한 나날을 기대했지만, 글래디스는 좀처럼 감정을 통제할 수 없는 사람이었기에 노마 진 역시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다.
글래디스가 병원에 실려가게 되면서 노마 진의 인생은 종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렀다. 보육원에 맡겨졌던 노마 진은 조금 자라 위탁가정에 보내지면서 평범한 행복을 꿈꿨다. 하지만 모든 남자들이 노마 진을 좀처럼 가만히 놔두질 않았다. 그렇게 노마 진의 삶은 위탁모의 속행으로 16살에 첫 결혼을 하게 됐고, 이혼 역시 빠르게 이루어졌다.
노마 진이 여성 노동자로 잡지에 실린 이후, 그녀의 미모를 알아본 이들로 인해 더 넓은 세상으로 나오게 됐다. 그렇게 노마 진은 자신의 이름이 아닌 '매릴린 먼로'로 짧고 굵은, 다사다난한 삶을 살아간다.
매릴린 먼로는 짧은 영화 인생, 그리고 너무나 짧다고 말할 수 있는 삶을 산 배우다. 금발의 아름다운 외모와 육감적인 몸매로 유명해진 그녀의 본명이 노마 진 베이커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할리우드의 배우들이 대체로 그렇듯 여러 번의 결혼과 이혼을 했다는 사실, 그리고 대통령과의 염문설이 있었고 죽음이 묘했다는 사실 또한 알았다.
그런데 그 외의 것들에 대해, 매릴린 먼로가 아닌 노마 진 베이커에 대해 아는 건 없었다. 이 소설은 어느 정도 사실을 바탕에 두고 픽션을 더한 노마 진 베이커의 삶에 대한 장대한 이야기였다.
아버지의 부재가 노마 진의 삶에 미친 영향은 아주 컸다. 또한 어머니의 정서적 불안감이 딸에게 고스란히 전해져 어릴 적부터 예민하며 습관처럼 눈치를 보게 된 것 같았다. 그래도 그런 어머니가 곁에 있어줬다면 좋았겠지만, 아버지도 모자라 어머니까지 어린 노마 진의 삶에서 모습을 감추게 되면서 노마 진의 삶은 보육원과 위탁가정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태어나서 가장 먼저 만나는 일종의 사회인 가정에서부터 사랑받지 못했다는 감정이 쌓인 탓에 노마 진은 다른 이에게 사랑을 받으려고 애를 쓰는 듯 보였다. 그로 인해 위탁모의 이기적인 결정으로 버키와 16살에 결혼하게 됐다는 건 너무 안타까운 일이었다. 물론 함께일 때에는 좋았지만 그게 노마 진의 행복을 충족시켜주진 않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노마 진의 10대 삶은 버키와의 결혼 생활로 이어지다 잡지에 사진이 실리게 되면서 우리가 아는 매릴린 먼로의 이름에 서서히 다가서게 되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여자 배우가 세상에 알려지려면 성접대 따위는 필수였다. 지금도 그렇겠지만 당시에는 더 심했을 것이다. 갑작스럽고 수치스러운 치욕에도 불구하고 매릴린 먼로에게 또렷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건 분노할 만한 일이었다. 결국 그녀는 이제 막 이름이 알려지려고 할 때 가명으로 누드캘린더를 찍게 됐고, 후에 그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매릴린 먼로의 이름이 세상에 알려진 이후에는 스캔들과 결혼생활들에 대해 이어졌고, 우리가 아는 그녀의 마지막으로 다가서고 있었다. 그때가 됐을 땐 생기 넘치는 아름다움을 뽐내는 블론드 배우가 아니라 속이 썩어 문드러졌는데도 웃어야만 하는 가련한 노마 진만 남아 있었다.
모두가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 매릴린 먼로의 삶을 비극적으로 그려낸 소설이었다. 살아 있을 때보다 오히려 세상을 떠난 이후에 더욱 유명해진 배우, 금발 여배우를 떠올리라고 하면 영원토록 첫 번째로 손에 꼽힐 매릴린 먼로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조금은 알게 된 것 같다. 비록 사실에 허구를 더했다고는 해도 어느 정도는 그녀의 삶이 투영되어 있기 때문인지 읽는 내내 마음이 좋지 않았다. 특히 소설이 후반으로 가면서는 매릴린의 정서적인 불안이 문장에 투영된 것 같아 읽는 게 버겁기까지 했다. 여러 모로 안타까웠다.
세상을 떠나고서도 잊히기는커녕 여전히 세기의 아이콘으로 남아 있는 배우 매릴린 먼로가 출연한 작품을 한 번 찾아봐야겠다.
노마는 타고난 배우였어. 천재가 진짜로 있다면, 노마가 천재였지. 왜냐면 노마는 자기가 누군지 전혀 감도 못 잡았고, 그래서 제 속의 빈 공간을 채워야 했으니까. 출연할 때마다 자신의 영혼을 창조해야 했어. 다른 사람들은, 우리는 그냥 텅 비어 있어. 사실 모든 영혼은 비어 있을 거야, 그런데 노마는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이었지. 1권 - P687
그가 이날 찍은 ‘매릴린 먼로‘라고도 알려진 노마 진 베이커의 이 누드사진들은 역사상 가장 유명한, 아니 가장 악명 높은 누드 캘린더가 된다. 그에 대한 대가로 모델은 50달러를 벌고, 다른 이들은 수백만 달러를 벌게 된다. 남자들이. 1권 - P465
"‘매릴린‘은 이해할 필요도 없고 생각할 필요도 없어. 젠장, 안 해도 된다고. 매릴린은 존재하기만 하면 돼. 매릴린은 아찔한 절세미인이고 재능이 있고 아무도 그 감미로운 입에서 고통스럽고 은유로 가득한 헛소리가 나오길 바라지 않아." 1권 - P520
왜 사람들은 먼로를 사랑하지? 먼로의 삶은 발톱에 찢긴 비단처럼 갈가리 찢어졌는데 왜? 먼로의 삶은 박살난 창문처럼 산산조각났는데 왜? 2권 - P496
"매릴린을 별로 안 좋아해서요. 하지만 부르면 대답은 할 수 있어요. 이젠 그게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를 부르는 이름이죠.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2권 - P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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