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훌 - 제12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57
문경민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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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2학년 18살 서유리는 담임 선생님과 상담을 하던 도중에 할아버지에게서 전화가 걸려온다. 상담 중이라 전화를 받지 않고 상담을 끝내고 친구 미희, 주봉과 학교를 나올 때 다시 한번 할아버지에게 전화가 왔다. 이렇게 연락을 자주 할 분이 아니라서 의아한 마음으로 전화를 건 유리는 할아버지에게서 정희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할아버지의 딸이자 유리를 입양한 엄마인 서정희 씨를 말하는 거였다.
서정희와 유리는 고작 3년 동안 함께 살았고, 이후에는 할아버지에게 맡겨졌다. 자신이 입양아라는 사실을 알고 있던 유리는 서정희를 원망하고 있었고, 10년이 넘도록 함께 산 할아버지와는 보이지 않는 벽을 두고 살았다.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이 집에서 나가 살 계획을 세워두고 공부에 전념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그녀의 죽음에 어떠한 감정을 느낄 새도 없이 장례식을 치르고선 서정희를 닮은 초등학생 아들 연우를 데리고 와 함께 살게 됐다. 이런 와중에 할아버지는 여행을 다녀오겠다며 며칠간 집을 비울 거라고 유리에게 통보하듯 말했다.



18살 고등학생 유리는 남들에게 말하지 못하는 상처를 꾹꾹 눌러 담아 가지고 있었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친하게 지냈다는 미희와 주봉이에게까지 자신이 입양아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두 친구를 못 미더워해서 그런 게 아니라 자신의 치부이자 상처인 사실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건 유리가 살아온 환경의 영향 때문이라 여겨졌다. 유리를 입양한 서정희는 3년 동안만 함께 살고선 할아버지에게 그녀를 맡겨버렸고, 명절 때만 보러 왔다. 그것도 8살 때가 마지막으로 본 것이었다. 그리고 함께 산 할아버지는 각자 벽을 세우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2층에서, 유리는 1층에서 지냈고, 체크카드에 돈을 넣어두고선 알아서 생활하라는 듯 유리에게 그다지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입양한 엄마와 함께 사는 할아버지마저 유리에게 어떠한 믿음을 주지 않았으니 친구들에게도 하지 못하는 말이 있는 게 어쩌면 당연해 보였다.

이런 상황에 유리는 초등학교 4학년 된 연우를 떠맡게 됐다. 요즘 부쩍 쇠약해진 것 같은 할아버지는 장례를 치르고선 여행을 떠나겠다는 미심쩍은 말만 남기고 집을 비웠기에 유리는 그다지 내키지는 않지만 연우를 보살펴야 했다.
연우는 유리와 달리 서정희가 낳은 아들이라는 게 분명한 듯 닮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로 인해 유리는 마음이 좀 껄끄러웠다. 입양한 아이와 배 아파 낳은 자식에 대한 심적 차이로 자신은 이렇게 할아버지에게 맡겨지게 되었나 싶어서 말이다. 유리는 자라온 환경으로 인해 나이에 비해 성숙한 아이이긴 했어도 그런 마음을 감출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아직 어린 연우를 살갑게 대하지 못했던 것처럼 보였다.

이 묘한 관계가 달라진 건 연우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면서부터였다. 연우가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말도 잘 하지 않으며, 돌봄교실 아이의 얼굴에 상처를 내는 등의 일로 유리는 골칫덩이를 떠안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연우에게 어떤 상처가 있는지 알게 되면서 유리는 자신의 상처 역시 돌아보게 된다. 아이들에게는 잘못이 없었다. 어떤 부모에게서 태어나고 혹은 입양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그런 학대와 무관심의 대상이 되는 건 너무 부당했고 화가 나는 일이었다. 주어진 환경으로 인해 아이가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느껴져서 마음이 아팠다. 다행히 연우의 상처를 보며 유리는 사람이 마땅히 보여야 할 측은지심을 보였고, 아이에게 좀 더 마음을 쓰게 되면서 이전과는 달라진 마음가짐을 갖게 됐다.
그리고 같은 반 세윤이가 가지고 있던 비밀에도 영향을 받았고, 자신의 과거를 알게 되면서 혼란을 겪고, 담임 선생님의 조언을 새겨들으며 시나브로 변화했다. 더욱 놀라운 건 마음이 달라진 유리로 인해 할아버지와의 관계 역시 달라졌다는 것이었다. 정을 주지 않으려는 듯했던 할아버지는 유리가 다가온 한 걸음에 놀라 주춤했지만, 이내 꽁꽁 묶어뒀던 마음을 풀고 유리를 대했다. 그리고 연우에게도 조금은 살가운 할아버지가 됐다.

어른스러운 아이였던 유리는 이제 홀로 세상을 살아갈 계획을 세우기보다 연우, 할아버지와 함께 굴곡 없는 삶을 살아가기를 꿈꾸는 고등학생이 될 것 같은 엔딩이었다. 미워했던 엄마 서정희로 인해 맺어진 이 관계는 어색함이라는 벽을 깨부수고 어쩌면 서로에게 진짜 가족이 되어줄 수도 있을 듯해서 뭉클해졌다.

선입견을 깨준 청소년 문학으로 인해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입양아와 아동 학대, 가족이라는 의미를 되새기며 다른 누군가의 상처를 들추지 않고 위로해 준 소설이라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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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느끼는 고통은 각각 다른 것 같더라. 감당해 낼 여건도 다르고. 설령 나와 비슷한 상황에서 죽음을 선택한 사람이 있다고 해도 함부로 말할 수는 없을 거야.
(……중략)
살아온 길이 저마다 다르니까 함부로 판단할 수는 없을 것 같아. 나는 그 사정을 알 수가 없잖니." - P207

할아버지와 나 사이의 거리는 일종의 안전장치였다. 우리는 그 안에서 안전했다. 어떤 상처도, 어떤 부대낌도, 어떤 위태로운 기대나 상처가 되고 말 애정도 할아버지와 내게서는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이 집을 훌훌 떠나면 됐다.
(……중략)
할아버지와 나 사이의 빈 공간에 연우가 들어왔다. 연우와도 거리를 둘 수 있을까, 거리를 두어야 할까, 연우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연우 아빠를 찾을 수 있을까, 할아버지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나 하는 질문들이 올라왔고 마음이 어지러웠다. - P172

나는 초등학교 정문 옆에 서서 운동장을 바라보았다. 평평하고 넓은 운동장을 바라보는데 까닭 없이 마음이 편안했다. 앞으로의 삶은 저 운동장처럼 평평했으면 했다. 나의 삶이나 할아버지의 삶이나 연우의 삶도 큰 굴곡 없이 평탄했으면 했다. 큰 욕심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프지 않고 돈에 쪼들리지 않고 적당한 공간을 깨끗하게 관리하며 살고 싶었다. -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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