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분마다
리사 스코토라인 지음, 권도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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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병원의 정신과 과장 에릭 패리시는 그 누구보다 환자들에게 열정적인 의사다. 병원 한편에 격리되어 있는 정신과 병동 소속 의사들과 간호사들, 일하는 직원 모두 그를 좋아하고 존경한다. 심지어 그는 잘생긴 외모까지 가지고 있어서 뭇 여성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조금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혼 협의 중인 케이틀린과는 딸 해나의 양육권 문제로 다투고 있다. 현재 해나는 함께 살던 집에서 엄마와 지내고 있지만, 변호사를 통해 케이틀린이 집을 팔았다는 얘기를 들어서 더욱 딸을 자신이 키우고 싶은 마음이다.

그러던 어느 날, 에릭은 의대 시절부터 친구인 응급의학과 로리의 연락을 받고 환자를 만나게 된다. 암 말기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할머니의 10대 손자 맥스 자보우스키가 정신적으로 불안한 상황에 처해 있었기 때문이다. 아빠는 아기 때 집을 나가고 엄마는 알코올중독인 맥스에게 유일한 가족이라고 볼 수 있는 할머니마저 곁을 떠날 것 같다는 생각에 아이는 정서적으로 힘들어하고 있었다.
맥스를 만난 뒤 에릭은 자신의 집 한편에 딸린 상담실에서 아이를 만나 대화를 나누며 상담을 이어갔다. 맥스와의 상담을 통해 아이가 굉장히 똑똑하지만 불안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러면서 맥스가 좋아하는 여자아이인 르네를 죽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맥스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맥스가 실종된다. 에릭은 불안감에 경찰에 신고를 하고 맥스를 찾으러 헤매지만 찾을 수가 없다.




마음이 불안한 사람들을 보살펴주고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정신과 의사 에릭은 자신의 직업 정신에 투철한 사람이었다. 헌신적으로 보이기까지 했을 만큼 사명감이 있었다.
그래서 그의 입장에서 주로 진행되던 소설을 읽기 시작하면서 연이어 벌어지는 사건으로 인해 안타까운 마음을 느꼈다. 맥스의 상담을 시작하기 이전에 양육권 문제로 골치 아픈 상황에 놓여 있었던 에릭은 상담을 시작한 이후 병원에서 실습 중이던 의대생 크리스틴을 성추행 했다는 혐의가 제기되어 병원 법률팀의 호출을 받았다. 그리고 정신 병동에 입원 중이던 한 환자의 아내에게서는 고소를 하겠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이런 여러 문제들에 맥스가 언급했던 여학생 르네가 살해당하면서 상황은 더욱 급박하게 이어졌다. 에릭 입장에서는 실종된 맥스가 무슨 일을 벌였을지 몰라 찾아야만 하는 입장이었는데, 경찰 측에서는 에릭을 이상한 시선으로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맥스가 실종된 이후 에릭은 르네가 아르바이트를 하는 가게에 찾아갔고, 퇴근 후에는 미행을 했다는 걸 이웃들이 알려줬기 때문이었다. 에릭은 맥스가 르네를 해칠지도 모를 우려로 때문에 한 행동이었지만,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엔 아무리 봐도 용의자로만 보였다.

이 사건으로 에릭은 병원에서 정직을 당하고 딸 해나를 볼 수 없게 됐다. 정신과 의사로서 환자의 비밀유지 의무로 인해 도리어 자신이 곤란해진 것이었다.
이 부분을 읽으며 에릭이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법적으로는 환자의 상담 내용을 비밀로 해야 했지만, 환자가 다른 사람을 해칠 우려가 있을 때는 경찰에 알려야 할 의무가 있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의무에도 불구하고 에릭은 무조건적으로 맥스를 믿으며 그가 상담 중에 무슨 말을 했는지 경찰에 알려주려고 하지를 않았다. 심지어 르네의 엄마가 개인적으로 찾아와 애원하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런 말도 하지를 않았다. 에릭 역시 딸을 키우고 있는 아빠이고 딸을 너무나 사랑하는데도 딸을 잃은 슬픔에 지옥을 살아가는 부모의 마음을 헤아려주지 않았다.
소설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여러 사건으로 힘들어하는 에릭을 안타깝게 여겼지만, 가면 갈수록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라 그에 대한 안타까운 감정이 사그라들었다. 실종됐던 맥스가 나타났을 때 엄청나게 큰 사건을 벌이고 있었는데, 그 사건 이후에 에릭은 자신의 처지가 더욱 곤란해졌는데도 맥스를 향한 신뢰를 굳건히 지켰다는 게 이해가 되질 않았다.

이렇게 주인공에 대한 감정이 무미건조해지면서 범인이 나타나고 번복되어 진범이 다시 나타나는 등의 나름 반전이 있었다. 그 반전을 읽어나가면서도 별다른 감정이 일지 않았다. 최종적으로 밝혀진 범인을 보며 너무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종종 등장한 범인의 시점에서 이야기했던 것과는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밝혀진 범인보다는 에릭이 마지막에 만난 이가 범인이라고 보는 게 더 합리적이었다. 물론 에릭은 처음부터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자신이 믿고 싶어 하는 것만 보는 주인공 에릭에게 공감이 안 되니 영 짜증만 났던 소설이었다. 술술 잘 읽히긴 했는데 좋은 감정을 남기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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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정신과 의사로서 많은 사람들이 가면을 쓰고 있으며,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어도 세상에는 하나의 얼굴만 보여준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더 잘 알았어야만 했다. - P603.604

"그 애는 거짓말쟁이예요. 당신네들 말로 병적인 거짓말쟁이예요. 그 애를 믿으면 안 돼요." - P260.261

"정신과 의사들이 환자들을 배신하지 않고 비밀을 지켜준다는 확신이 없다면 자신들의 생각과 두려움, 감정들을 털어놓을 수 없을 겁니다. 패리시 선생님은 비밀유지 조항을 지키겠다는 서약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환자들을 아끼고, 공익을 중시하기 때문이죠." - P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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