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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약국
니나 게오르게 지음, 김인순 옮김 / 박하 / 2015년 11월
평점 :
파리의 센 강 위에는 커다란 화물선을 개조한 서점 '종이약국'이 있다. 서점 주인 장 페르뒤 씨는 손님이 원하는 책을 판매하기보다는 손님의 현재 마음 상태를 파악해 치료가 되고 위로가 될 만한 책을 권유해 판매하고 있다. 이 독특한 서점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은 페르뒤 씨의 행동이 의아하겠지만, 그의 책 처방이 마음에 든 고객은 종이약국을 다시 찾게 된다.
다른 이의 마음을 잘 파악해 처방을 내리는 페르뒤 씨는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마음을 치유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20년 전 그의 곁을 갑자기 떠나버린 마농을 아직까지 잊지 못하며 그리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아파트 이웃에 이사를 온 카트린에게 쓰지 않는 식탁을 가져다준 이후 일어난 사건으로 싱숭생숭해졌다. 카트린이 식탁 서랍에서 페르뒤 씨 앞으로 온 편지를 발견했다고 했을 때 그는 보지 않아도 마농이 보낸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애써 외면을 했지만, 카트린과의 사이에서 이제 막 피어난 애정으로 인해 과거의 사랑을 마무리 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편지를 읽은 뒤 페르뒤 씨는 아주 오랫동안 정박해있던 종이약국을 몰고 센 강을 따라가기 시작한다.
강 위에 떠 있는 화물선을 개조한 서점이라는 설정부터 독특했는데, 원하는 책을 마음대로 살 수 없다는 점 또한 신선했다. 종이약국이라는 서점 상호에 걸맞게 복용하는 약이 아니라 마음을 치유해 주는 종이로 된 책을 처방해 준다는 부분은 굉장히 기발했다. 사람의 심리를 꿰뚫어보는 점잖은 주인 페르뒤 씨의 혜안 덕분이었다. 그래서 나도 페르뒤 씨에게 책을 처방받고 싶은 마음이 가장 먼저 들었다.
소설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페르뒤 씨의 서점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질 거라 예상했지만, 중이 제 머리는 못 깎는다고 페르뒤 씨의 마음에 남은 아픔을 해결하기 위한 여행기로 흘러갔다.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기에 앞서 지난 사랑을 제대로 끝맺음하고자 떠난 여행에 의외의 동반자가 생겼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젊은 작가 막스 조당이었다. 페르뒤 씨는 조당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이미 출항한 배에 오른 뒤였기 때문에 강에 버려두고 갈 수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함께 여행을 시작하게 됐다. 종이약국에 사는 고양이 카프카와 린드그렌도 함께였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여행 탓에 종이약국에는 먹을 게 고양이 사료와 캔 뿐이었기에 여기저기 경유를 하며 먹을 것과 처방 책을 교환했다. 그리고 그 여행 중에 페르뒤 씨처럼 오래전 연인을 잃어버리고 그리워하는 쿠에노를 만나 함께 여행을 하게 된다.
사실 마농이 페르뒤 씨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소설 초반 편지에서 밝혀졌다. 그리고 그런 그녀가 페르뒤 씨와 왜 결혼할 수 없었는지에 대한 이유 또한 등장했다. 그 부분을 읽으면서 내 안에 가득한 유교적인 면으로 인해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다. 지나친 욕심이 욕망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아는데도 마농을 사랑했던 페르뒤 씨가 가엽게 느껴졌고, 페르뒤 씨와 처지가 같으면서도 달랐던 캐릭터에게도 연민을 느꼈다.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기에 앞서 제대로 된 이별을 하기 위해 시작한 페르뒤 씨의 여행은 예상했던 대로 모두가 행복한 결말로 끝을 맺었다. 주인공 페르뒤 씨는 물론이고 카트린, 조당, 쿠에노 등을 비롯해 페르뒤 씨의 부모님까지 그들 나름의 행복한 결말이었다. 어떻게 보면 사랑이 가득한 소설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처방해 주는 서점 종이약국의 설정이 신선해서 읽게 됐는데 의외인 부분이 더러 있었다. 그래도 뭐, 나름 잘 마무리된 소설이었기에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다.
"저는 의사들이 결코 진단하지 못하는 감정들, 고통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감정들을 치유하고 싶었어요. 너무 사소하거나 이해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치료사들이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 그런 모든 감정이요." - P33
어떤 책이 나를 구해줄까? 그 대답이 생각났을 때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올 뻔했다. "책들이 많은 걸 할 수 있지만 모든 걸 할 수는 없어요. 중요한 일들은 직접 살아봐야 해요. 책으로 읽지 말고. 나는 내 책을…… 직접 체험해야 합니다." - P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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