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사람들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2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새해 이틀 전, 스웨덴의 어느 조용한 도시에서 인질극이 일어난다.
은행 강도는 스키마스크를 쓰고 은행에 들어가 6천5백 크로나(약 80만 원)를 요구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은행은 현금이 없는 은행이었다. 그 사실을 은행원에게 들은 은행 강도는 당황한 채 은행을 빠져나가다 경찰이 오는 소리에 놀라 가까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 건물에서는 새해 이틀 전에 어울리지 않게 아파트 오픈하우스가 열리고 있었다. 스키마스크를 쓴 채 권총을 들고 현관에 들어선 은행 강도는 아파트를 사기 위해 구경을 온 여덟 명의 사람들을 얼떨결에 인질로 붙잡게 된다.

짐과 야크는 부자 관계이면서 같은 경찰서에서 일하는 선후배 사이이기도 하다. 두 사람은 자주 뜻이 맞지 않았는데, 이번에 벌어진 은행 강도 인질 사건 역시 삐거덕댔다. 은행 강도가 인질들을 무사히 풀어준 후, 아파트에 들어간 그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은행 강도를 찾기 위해 인질들을 한 명씩 불러 조사를 시작한다.



아파트 오픈하우스에서 일어난 인질극 사건을 중심으로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제일 먼저 은행 강도가 왜 은행을 털려고 했는지, 그것도 인생을 역전할 만큼 어마어마한 금액이 아니라 고작 100만 원도 안 되는 돈을 필요로 했는지 먼저 밝혀졌다. 이후에는 인질들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은행 고위 간부인 사라, 은퇴한 부부인 로게르와 안나레나, 임신한 율리아와 로 부부, 딸 대신 집을 보러 온 아흔 살의 에스텔과 뭐든 해주는 회사의 대표 레나르트, 그리고 부동산 중개업자가 있었다. 이들 외에 경찰 부자인 짐과 야크의 이야기가 등장했고, 사라의 심리 상담을 맡은 나디아 또한 한편에 등장했다.
등장하는 인물들이 너무나 많아서 헷갈릴 줄 알았는데, 본격적인 소설이 시작하기 전에 간략한 등장인물 소개가 있었고 워낙 개성이 강한 캐릭터들이라 인물들을 어렵지 않게 구분할 수 있었다.

소설은 인질극이 벌어지는 시점과 각 인물들의 과거 회상 시점, 그리고 인질들이 풀려난 뒤 신문하는 경찰의 시점이 있었다. 그리고 전혀 관계가 없는 이야기인 줄 알았지만, 알고 보니 깊은 연관이 있었던 다리 위에서 투신한 남자와 관련된 사건도 종종 등장했다.
보통 등장인물이 많고 개개인의 사연까지 세세하게 이어지는 걸 별로 안 좋아하는데, 이 소설은 각자의 이야기를 더 많이 알고 싶었을 만큼 그들이 살아온 인생에 대해 궁금증이 일었다. 여러 사건과 현재, 과거를 오가는 시점의 소설이었지만 그렇게 정신없다고 느껴지지 않았던 이유는 작가의 역량 덕분일 것이다. 각 캐릭터에 부여한 사연이 어찌나 좋았는지 모르겠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내가 가진 편견, 선입견을 완전히 깨부수는 뜻밖의 캐릭터들이라 여러 번 놀랐다. 은행 강도부터 시작해서 로와 율리아 부부의 관계도 놀라웠고, 은퇴한 부부인 로와 안나레나 역시 뒤통수를 맞은 듯 얼얼한 충격을 줬다. 할머니 에스텔의 거짓말은 예상되는 부분이긴 했으나 그 또한 뭉클함을 안겼다. 그리고 경찰 아빠 짐은 너무나 따뜻한 사람이라 후반에 눈물이 나게 만들었고, 사라와 나디아의 관계나 야크의 과거 인연까지도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게 밝혀져 소소한 충격을 줬다.

이렇게 캐릭터들에게 어울리는 과거 이야기를 부여한 작가는 인질극이 벌어지는 아파트 내에서의 상황을 통해 웃음과 감동을 줬다. 프레드릭 배크만 작가 특유의 웃음 포인트는 어김없이 이 소설에서도 등장했고, 언제나처럼 읽으면서 미소 짓게 만들었다. 제일 웃겼던 부분은 갑자기 인질이 된 사람들과 원치 않게 은행을 털게 됐는데 어쩌다 보니 인질까지 잡게 된 은행 강도였다. 다른 장르 소설이었다면 이들의 관계는 극도의 긴장감을 느끼게 만들었을 테지만, 언제나 따뜻하고 뭉클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작가의 소설이라 다소 허술한 면이 관계를 다른 방향으로 향하게 해 웃음을 줬다.
새해 이틀 전에 일어난 인질극이라는 기이한 사건이 등장인물의 마음을 허물어지게 만들었는지 서로에게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둔 이야기를 들려주며 감동을 줬다. 등장한 캐릭터들 모두 어른이었지만, 인생을 살아가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심지어 거의 아흔 살이나 된 에스텔 할머니마저 이상적인 어른 같은 삶을 살지 않았다. 이런 점으로 인해 각 캐릭터가 들려주는 고민들에 공감하게 만들었고, 자연스럽게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이었기에 마음을 훈훈하게 만들었다.

찾아보니 국내에 출간된 프레드릭 배크만의 소설과 1권의 에세이까지 모두 읽었다. 매번 책을 찾아 읽게 만드는 이유는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작가의 초기 소설은 얄미운 캐릭터가 알고 보니 너무나 좋은 사람이라는 반전 요소로 감동을 줬는데, 이후 여러 소설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며 희망적인 결말로 감동을 줬었다. 작가의 소설은 뻔하지 않은 매력이 있어서 정말 좋다.
이 소설 또한 읽기 시작했을 때부터 왠지 좋아질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는데, 역시나 푹 빠져서 읽고 말았다. 심지어 소설 후반에는 어김없이 눈물이 나려고 해서 꾹꾹 눌러 참았을 만큼 감동적이었고, 중간중간 위트 있는 상황도 즐거워서 너무 좋았다.
역시 프레드릭 배크만의 소설은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건 은행 강도, 아파트 오픈하우스, 인질극에 대한 이야기다. 하지만 그보다는 바보들에 대한 이야기에 더 가깝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닐 수도 있다. - P151

"당신은 은행 강도로서 실력이 좀 별로야!"
그 말에 은행 강도는 권총을 흔들며 이렇게 소리를 질렀다. "당신 입장에서는 다행이잖아!" - P194

"나는 당신이 이 집으로 들어온 순간부터 당신이 마음에 들었어요. 권총이랑 뭐 그런 걸로 살짝 난장판을 만들긴 했지만 세상에 난장판 한번 안 만들어본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 P435

"우리는 세상을 바꿀 수 없어. 심지어 사람조차 바꿀 수 없을 때도 많지. 조금씩 천천히가 아닌 이상. 그러니까 기회가 생길 때마다 어떻게든 도우면 돼. 살릴 수 있는 사람을 살리면서. 최선을 다해. 그런 다음…… 그걸로 충분하다고 수긍하고 넘어갈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해야지. 실패하더라도 그 안에 매몰되지 않게." - P292.29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