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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 비늘
조선희 지음 / 네오픽션 / 2020년 10월
평점 :
바다를 면한 별어마을에서 배를 타고 가면 나오는 섬 백어도에는 순하의 어머니 정심이 묻혀있다. 아버지에게 살해당하던 어머니가 곁에서 지켜보던 아들 순하에게 피를 쏟아내며 유언으로 남긴 것이었다. 그러면서 어머니는 기일이 아니어도 좋으니 1년에 한 번만이라도 가족 모두 자신을 보러 백어도에 와달라고 했다. 오지 않으면 뭍으로 보러 가겠다는 무서운 말까지 남겼기에 순하는 교도소에 간 아버지, 서울로 올라간 누나 대신 어머니를 백어도에 묻었다.
하지만 유언은 3년 동안 지켜지지 못했고, 4년째 되던 해에 조업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던 마을 사람이 정심의 무덤 위에 하얀 형체가 떠있는 걸 목격한다. 그 사건으로 인해 마을 사람들은 순하를 설득해 정심의 무덤을 이장하기로 한다. 마을 남자들이 모두 모여 백어도에 있는 정심의 무덤 뚜껑을 열었을 때, 순하는 어머니의 몸이 새하얀 비늘로 덮여있는 걸 보게 된다. 곁에 있던 사람들도 보고 깜짝 놀라자, 순하는 이장을 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바꾸며 무덤 뚜껑을 덮으려고 했다. 그때 어머니의 손에 덮여있던 하얗고 날카로운 비늘 몇 개가 순하의 손에 쥐여졌다. 마치 어머니가 주는 것인 듯 말이다.
용보는 마리를 처음 보자마자 한눈에 반했다. 그래서 만난 지 몇 달 되지 않았을 때 청혼을 했다. 친구도, 가족도 없는 마리는 용보의 청혼을 받아들이며 새하얀 비늘을 하나 주었다. 용보와 결혼하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라고 하며, 자신이 준 이 하나 외에 다른 것을 탐내면 큰일이 난다고 경고를 했다. 용보는 당연히 귓등으로 들으며 알겠다는 대답을 했다.
두 사람이 결혼을 하고 딸 섬이 태어난 뒤, 용보는 회사를 때려치우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하다. 그러던 중 어느 바닷가 마을에서 심하게 훼손된 시체 두 구가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보다가 '백어석'을 언급하는 걸 보고 눈이 번쩍 뜨였다. 마리에게 청혼했을 때 용보가 받은 게 바로 백어석이었기 때문이다. 희귀한 백어석은 부르는 게 값이라는 걸 알게 된 용보는 마리가 벽화를 그릴 때 재료로 쓰는 그것을 훔쳐 소금 사업을 하는 친구 준희에게 팔아 엄청난 돈을 손에 넣는다.
인어에 대한 이야기는 안데르센의 <인어공주>가 가장 유명하다. 왕자님을 보고 첫눈에 반해 마녀에게 목소리를 주는 대신 다리를 얻은 인어공주는 그를 만나기 위해 육지로 나가게 된다. 하지만 말을 하지 못하는 인어공주는 왕자에게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결국 그는 다른 나라 공주와 결혼하는 바람에 인어공주는 물거품이 되고 만다.
<인어공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유럽의 인어 설화 '운디네'는 새드 로맨스라기보다는 스릴러 느낌을 준다. 그래서인지 이 소설을 읽는 동안 인어공주보다는 운디네가 더 많이 떠올랐다.
소설에서 인어 대신 백어라 불린 존재는 온몸이 소금 비늘로 덮여있었다. 그들은 사람이 되기를 희망하곤 했는데, 물에서 나와 처음 보게 된 남자를 따라가야 한다고 했다. 그 남자를 따라갈 땐 자신의 소금 비늘 한 개를 징표로 주면서 말이다. 이 소금 비늘은 오묘한 빛을 내 계속 보게 되면 홀리게 만드는 묘한 성질이 있었다. 그래서 백어석을 계속 보면 자연스레 탐하게 되고, 백어의 비늘을 훔치면 큰 화를 당한다.
순하의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살해를 당한 것도 그를 죽이지 않으려다 벌어진 일이었다. 그리고 용보 역시 마리의 백어석을 훔치기 시작하면서 나쁘지 않던 인생이 내리막길로 기울었고, 나중엔 마리가 그를 죽일 수 없어 떠났는데도 찾아가고 만다.
사람을 홀리는 빛을 내는 소금 비늘, 부르는 게 값인 백어석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건지 체감은 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 그런 걸 테지만, 소설 속에 등장한 대부분의 인물들이 저도 모르게 홀리게 된 걸 보면 굉장한 물건임에 분명했다. 그리고 이 백어석으로 인해 앞으로 모든 사건이 일어날 거란 사실도 확실했다.
소설은 어머니의 무덤을 열어본 뒤에야 자신이 백어의 자식이라는 걸 깨달은 순하와 인간과 사는 걸 택했지만 자신의 비늘을 탐낸 용보를 떠나는 마리, 그리고 용보와 마리를 소개해 준 준희의 시점을 오갔다.
자신의 비늘을 훔친 자를 죽일 수밖에 없는 백어의 운명을 타고난 마리가 뒤늦게 자신이 백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순하가 만나 보여주는 이야기는 조심스럽게 이어져 애틋한 분위기까지 느껴졌다. 사람들 사이에서 외롭게 살아온 존재였기에 둘의 인연이 이대로 끊어지지 않기만을 바랐다.
용보는 탐욕스러움이 짙어져 제발 마리를 붙잡지 않기를 바랐는데, 백어석에 홀린 탓인지 떠난 마리를 찾으려고 애를 썼다. 준희가 말리고 또 말렸지만 말을 듣지 않으며 죽음의 가장자리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사실 용보는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별로 좋게 본 캐릭터가 아니었기 때문에 인과응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겉으로는 냉정한 척하던 준희가 마지막에 제 속셈을 드러내는 걸 보며 그게 백어석의 환영인지 아니면 그의 진심인지 헷갈렸었는데, 역시나 용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백어라 불리는 인어와 인간의 탐욕을 결합한 독특한 판타지 미스터리 소설이었다. 안데르센의 <인어공주>로 인해 그동안 갖고 있던 인어에 대한 애틋한 이미지를 이 소설이 조금은 무시무시한 것으로 바꿔놓았다. 설정이 흥미로워서 재미있게 읽었다.
"백어의 비늘은 백어가 처음 한 번만 주는 거야. 그것만 행운이고 나머지는 전부 불운을 가져오지. 백어의 비늘을 훔치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화가 난 백어가 자기 비늘로 소금 도둑의 목을 뎅강 잘라." - P63
인어가 사람이 되려면, 혹은 사람으로라도 환생하려면 먼저 영혼을 얻어야 해. 그 영혼을 얻는 데는 조건이 있어. 사랑, 모든 저주를 풀 마법의 열쇠. 그래서 사람이 되고자 하는 모든 이야기는 사랑을 얻거나 얻지 못하는 것으로 끝나. 그 아이는 얻지 못했어. 공기와 함께 기약 없이 떠돌던 그 아이는 훗날 후회한다고 말했지. - 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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