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드뷔시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권영주 옮김 / 북에이드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피아니스트를 꿈꾸는 열여섯 살 소녀 고즈키 하루카는 할아버지와 부모님, 삼촌, 그리고 동갑내기 사촌 가타기리 루시아와 함께 살고 있다. 루시아는 인도네시아에서 부모님과 함께 살다가 1년에 한 번 일본에서 지냈었는데, 그녀가 일본에 온 사이 인도네시아에 유례없는 큰 지진이 일어나 집과 부모님을 모두 잃었다. 졸지에 부모를 잃은 그녀를 하루카의 부모님이 거둬 입양 절차를 밟고 있었다. 하루카는 사촌이지만 자매가 생긴 것 같아 루시아와 단짝처럼 지냈고, 루시아 역시 하루카처럼 피아노를 배우고 있어서인지 둘 사이는 더욱 돈독해졌다.

그러던 중, 부모님과 삼촌이 집을 비운 날, 두 아이는 몸이 불편한 할아버지가 지내는 별채에서 잠을 자게 된다. 하루카는 잠을 자다가 눈과 코, 목 등에서 이상한 통증을 느껴 눈을 뜨게 된다. 아픔을 느낀 하루카는 별채에 불이 나 연기를 잔뜩 마셨다는 걸 퍼뜩 깨닫는다. 휠체어 신세를 지는 할아버지와 자매나 다름없는 루시아가 걱정돼 방 밖으로 나온 하루카는 자신처럼 방을 기어 나오는 루시아를 본다. 그녀가 무사하다는 걸 확인한 하루카는 불이 시작된 것 같은 할아버지의 작업실로 들어갔다가 천장이 떨어져 눈을 감는다.

이후 병원에서 깨어난 하루카는 온몸의 고통을 느낀다. 그녀는 목숨을 구했으나 전신 화상을 심하게 입어 얼굴과 몸 대부분을 피부 이식을 받았지만, 할아버지와 루시아는 목숨을 잃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게 살아난 하루카였지만 두 번 다시는 피아노를 칠 수 없는 손이 되고 말았다. 이식을 받은 손가락 피부가 땅겨 섬세한 연주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천재 피아니스트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미사키 요스케에게 과외를 받게 된다.



하루카의 시점으로 진행된 소설은 피아노와 가족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되었다. 루시아와 함께 살게 된 사연, 사업을 번창시켜 부족함 없는 삶을 살고 있는 할아버지가 하루카와 루시아의 미래에 기대는 희망, 그에 반해 할아버지의 자식인 겐조 삼촌이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빈둥대는 모습, 그리고 은행원인 아버지가 현재 회사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등에 관한 사정이었다. 이 외에도 몸이 불편한 할아버지의 간병인 미치코도 등장했다.

이렇게 초반 설명이 지나고 나자 곧바로 화재 사고가 일어났고, 하루카만 목숨을 구했다는 걸 보여줬다. 하지만 목숨을 구한 것을 마냥 기뻐할 수 없었던 첫 번째 이유는 사랑하는 할아버지와 사촌 루시아를 잃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피아니스트인 하루카가 거의 온몸에 피부 이식을 받았기 때문이다. 목발을 짚고 다녀야 할 정도로 오랜 시간 회복에 집중해야 했는데, 학교에서는 피아니스트 특기생으로 들어온 하루카에게 교칙을 강요하느라 피아노 연습에도 매달려야 했다. 섬세한 연주를 해야 하는 피아니스트의 손가락이 이전과 달라졌다는 건 절망적인 일이었다. 포기하고 싶었던 하루카 앞에 미사키 요스케가 과외 선생을 자처하면서 그녀는 조금씩 조금씩 한계를 늘려나가기 시작했다.

소설은 피아니스트를 희망하는 소녀의 성장물을 표방하고 있었으나 추리 소설이라는 걸 잊지 않으려는 듯 여러 사건이 이어졌다. 할아버지의 유산 상속분 중 절반이 하루카에게, 나머지 절반은 아버지와 삼촌이 나눠진 게 밝혀지면서 하루카는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됐다. 몸이 멀쩡한 사람이라면 다치지 않을 문제였으나 목발을 짚고 미끄럼 방지 스티커를 붙인 계단을 오르내리는 하루카에겐 치명적인 일이었다. 심지어 길에서 누군가가 밀어버리는 바람에 차에 치일 뻔하기도 했다. 사건은 이뿐만 아니라 하루카의 엄마가 신사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세상을 떠난 충격적인 사건도 일어났다.
아무리 봐도 집안사람들 중 한 명이 하루카에게 원한을 품은 게 분명했지만, 그녀로서는 믿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가족들이 자신의 목숨을 위협한다는 사실이 너무 끔찍했기 때문이었다. 유산 분배 유언이 밝혀진 이후 여러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에 당연히 돈 문제 때문이라는 걸 알 수 있었는데, 돈 때문에 가족을 죽이려 한다는 건 무섭고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이런 사건을 하루카의 피아노 과외 선생인 미사키 요스케도 곁에서 지켜보고 추리를 하게 된다. 그는 피아니스트가 되기 이전에 법대에 진학해 변호사가 되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변호사가 되길 그만두고 피아니스트의 길을 걷고 있지만, 피아노를 치는 변호사가 되었다면 굉장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게다가 외모 또한 아름답다는 묘사가 있었기에 더욱 주목을 받지 않았을까 싶다.

어느 정도 사건이 일어난 후에 더 이상 하루카의 목숨을 위협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때부터는 콩쿠르 연습에 매진하는 하루카와 그녀를 혹독하게 가르치는 미사키의 모습이 이어졌고, 마침내 콩쿠르 예선과 본선까지의 이야기를 향해 달려갔다.
하루카가 주인공이기 때문에 콩쿠르에서 어떤 성적을 받게 될지는 예상을 했지만, 사건 이면에 어떤 진실이 숨어있었을지 전혀 예상하지 못해서 깜짝 놀랐다. 물론 하루카를 죽이려고 했던 범인은 예측했다. 하지만 엄마가 왜 사고를 당했는지 밝혀졌을 때 깜짝 놀랐고, 그 기저에 숨은 반전은 뒤통수를 맞은 듯 얼얼했다. 정말이지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던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냥 무조건적으로 믿었기에 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클래식 음악과 추리의 묘한 조화를 보인 소설이었다. 소개된 음악을 찾아 들으며 읽으니 묘사가 참 섬세하다는 걸 느꼈다. 서정적이면서 약간의 스릴, 충격 반전을 곁들인 오묘한 매력이 있었다.
미사키 요스케가 등장하는 시리즈가 계속 이어지던데 차근차근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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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꼭두각시 인형처럼만 움직여지는, 붕대를 칭칭 감은 몸뚱이. 하지만 인형은 음악에 의해 춤을 추기 시작한다. 꼭 살아 있는 양, 자유롭게, 경쾌하게. 만약 또 한 번 그렇게 움직일 수만 있다면 그가 마법사건 악마건 상관없다. 그와 무슨 거래를 해도 좋다. 설사 그 대가가 영혼이라 해도. - P91

"자연히 벗겨진 미끄럼 방지 테이프, 자연히 고장 난 목발. 그 때문에 네가 화를 당해도, 누가 공작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한 예기치 못한 사고로 보일 뿐이야. 언제 어디서 그 일이 벌어지든 상관없어. 아니, 벌어지지 않아도 전혀 상관없지. 그런, 불확실성에 입각한 계획이기 때문에 반대로 들킬 가능성도 크지 않아. 교활하다면 이만큼 교활한 계략도 없는 거야." -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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