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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감각
김보영 지음 / 아작 / 2022년 2월
평점 :
지구의 하늘에는 별이 빛나고 있다 특수기면증에 걸린 누나가 동생에게 편지를 보낸다. 규칙적으로 의식을 잃는 증상을 가지고 있던 누나는 이 섬에 들어온 이후에 사람이 누울 만한 크기로 나무 상자를 잘라 창문과 숨구멍을 내고 그 안에 들어가 의식을 잃는 동안 타인의 방해를 받지 않으며 자신을 보호했다.
땅 밑에 지하 미로를 탐사하는 '하강자'인 이윤형은 '나락'의 새로운 루트를 발견했다는 민석의 연락을 받는다. 아내는 땅 아래로 내려갔다가 사흘 만에 발견되어 폐수종으로 죽기 직전까지 갔었던 윤형을 말리지만, 뼛속까지 하강자인 그는 죽음을 무릅쓰고 길을 나섰다. 하강 도중 팀원 몇 명이 다쳐 아래로 내려갈수록 인원이 점점 줄었고 민석 역시 포기하자는 말을 했지만, 윤형은 마지막까지 아래로 내려가는 걸 포기하지 않는다.
촉각의 경험 뇌신경학 연구소 이진우 박사가 그토록 구매하고 싶어 하던 '뇌파공명기'를 연구소를 소유한 제약회사 사장인 유시헌이 사주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시헌은 스스로가 첫 번째 피험자가 되겠다고 하며 조건을 걸었는데, 자신의 클론과 뇌를 연결해 그의 꿈을 보고 싶다고 했다.
다섯 번째 감각 감각이 유난히 예민했던 언니 채세연은 동생 채연주와 함께 있다가 아이 대신 달려오는 차에 치여 죽었다. 세연은 죽을 때까지 연주를 향해 습관처럼 입을 오물거리는 걸 멈추지 않았다. 언니가 죽은 이후 이해할 수 없는 문장이 쓰인 편지가 도착한 이후, 경찰들이 연주를 찾아와 언니에 대해 물었다. 언니가 스스로를 초능력자라 믿는 사이비 종교에 빠졌다는 이야기를 했다. 경찰의 말을 믿을 수 없었던 연주는 편지를 보낸 것 같은 사람들을 찾아 나섰다.
우수한 유전자 스카이돔에서 키바 시민을 찾아온 '키바 복지회'의 지훈은 그들의 생활 환경 전반을 향상시켜주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들은 좀처럼 지훈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유전자 판별기로 태어난 사람들로만 구성되어 있는 완벽한 외모의 200살의 수명을 가진 스카이돔 사람들과 과거의 생활방식을 유지하며 50살 정도까지밖에 살지 못하는 키바인들이 서로를 이해할 리가 없는 게 당연했다.
마지막 늑대 주인에게서 도망친 애완동물 알비노, 일명 알비는 집인간이라 불렸다. 그는 늑대를 찾아 도망친 것이었는데, 늑대라 불리는 노파를 만난 이후에는 자신을 데리고 가달라고 부탁한다.
스크립터 엄청 오래된 게임을 인수한 회사에서 게임 속 사냥꾼 차림의 남자를 설득하기 위해 직원을 파견한다. 사냥꾼은 이 게임의 초기 이벤트 당첨자이고 평생 무료 사용권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게임에 특이한 계약 조건이 붙어 있었다. 한 명이라도 이 게임을 계속하는 사람이 남아 있다면 서비스를 중지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거울애 늦은 시간에 강태호의 집 문을 전 연인이자 정신과 의사 연정이 두드렸다. 끝까지 열어주지 않으려고 했던 문을 열자, 연정은 열댓 살로 보이는 소희라는 여자애와 함께 집안으로 들어왔다. 연정은 태호에게 소희를 맡기면서 어딘가로 데리고 가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면서 사람이 많은 곳에 가지 말고 대중교통도 이용하면 안 되고, 무엇보다 소희의 곁에서 떨어지지 말라고 했다. 태호는 그녀의 부탁을 들어줄 생각이 없었지만, 누군가에게 칼에 찔려 이내 세상을 떠난 사람의 유언을 무시할 수 없었다.
노인과 소년 예배당을 지은 늙은 목공이 쓰던 의자에 앉아 쉬던 늙은 사제에게 어린 사제가 놀라 다가왔다. 잠깐 잠이 든 듯했던 사제에게 소년은 같은 얼굴을 가졌지만 서로 다른 인생을 살았던 여러 사람에 대해 묻는다.
몽중몽 '여몽'은 어제 죽고 오늘 다시 태어났다. 꿈에는 '명일'이 늘 나와서 형일 때가 있었고, 약사일 때도 있었다. 여몽은 언제나 꿈을 기억하며 꿈을 꾸고 또 꾸는 생을 반복한다.
열 편의 단편이 실린 소설집에서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표제작인 <다섯 번째 감각>과 <거울애>였다.
<다섯 번째 감각>은 언니의 죽음 이후 의문스러운 사람들의 방문으로 인해 언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되짚어보는 동생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SF 장르의 소설집이긴 했으나 주어진 문장으로 소설 속 초반 상황을 판단할 땐 대체로 자기 자신을 기준으로 삼게 되는 것 같다. 언니가 대체 왜 죽었는지, 습관처럼 입을 오물거렸으며 죽을 때까지도 동생을 향해 왜 그런 행동을 했던 것인지 초반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다 언니가 초능력자라고 믿는 사이비 종교에 빠졌었다는 경찰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을 직접 찾아 나서게 되면서 이 이야기의 설정이 반전처럼 다가왔다. 입을 오물거리는 행동이 무슨 뜻인지, 듣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음악이 사람에게 얼마나 큰 기쁨과 감동을 주는 것인지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그래서 비밀이 어느 정도 밝혀진 이후에는 깊은 울림을 느끼며 뭉클해졌었다.
<거울애>는 제목만 보고 무슨 내용일지 유추했는데, 얼핏 들어맞았던 작품이었다. 정신과 의사인 전 여자친구의 마지막 부탁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던 남자와 의문스러운 소녀의 동행을 통해 마주친 사람들의 마음을 아무런 티가 묻지 않은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 무섭기도 했고, 어떨 땐 안쓰러운 감정이 들기도 했다. 감정을 바깥으로 오롯이 표출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지만, 어떤 사람들은 강태호처럼 스스로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타인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온전히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과 의사인 연정은 자기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태호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충분히 알고 있었기에 소희를 맡길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촉각의 경험>은 생각의 틀을 넓혀준 작품이라고 기억할 것 같다. 클론의 꿈을 보고 싶다는 제약회사 젊은 사장의 바람 덕분에 박사는 그토록 연구하고 싶었던 기구로 이 일에 착수한다. 외부와 철저하게 차단된 클론은 아기와 흡사한 상태였기에 도무지 꿈을 꿀 수가 없었는데, 연결된 뇌파를 통해 사장 본인의 경험에서 비롯된 듯한 꿈을 꾸었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사장과 클론 둘 모두의 상태가 나빠졌다는 게 문제가 됐다.
백지상태나 다름없는 존재가 어떻게 꿈을 꿀 수 있나 의아했다. 그러다 마지막에 이유가 밝혀지며 뭔가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인공지능이나 클론의 존재를 단순히 여겨서는 안 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았다고 느껴졌다. 더불어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기 마련이라 사장의 씁쓸한 마음도 이해가 되었다.
<우수한 유전자>는 스스로를 진화한 인간이라 여겼던 존재의 맹점을 말하고 있었고, <마지막 늑대>는 겉모습이 타인과 다른 존재에 대한 시선을 독특하게 풀어가고 있었다. 아쉽게도 게임을 전혀 하지 않아서 <스크립터>를 읽을 땐 좀처럼 집중이 되지 않았다.
원래 단편집, 소설집을 읽을 땐 수록된 작품 전부가 마음에 들기 어렵고, 또 SF 장르라는 특수성 때문에 취향을 타기도 해서 더욱 그렇지만, 그래도 생각보다는 좋았던 작품이 여럿 있었다. 그래서 작가의 다른 작품도 한 번 찾아서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소리를 들어요. 귀를 기울이면 알 수 있을 거예요. 그게 길을 인도해줄 거예요. 위험한 일이 생기면 이 말을 떠올려요. 연주 씨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요. 당신 주위는 소리로 가득 차 있어요.」 <다섯 번째 감각> - P173
"사람들은 눈으로는 생각하는 것을 다 쏟아부으면서, 입만 열지 않으면 자신의 생각은 온전히 자신의 것이라고 믿고 싶어 해. 책 속에는 뭐가 있는지 알 수 없다고 하면서 첫장을 펼쳐볼 생각도 하지 않아. 하지만 마음은 몸 안에만 있지 않아. 경계선이 좀 더 바깥에 있지. (……중략) 읽을 수 없는 건 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야. 잘못 읽는 것은 상대를 읽는 대신 상대의 눈에 비친 자기 자신을 읽기 때문이야." <거울애> - P338.339
"난 지금 인간이 선천적으로 가진 정보에 대해 말하는 겁니다." 유시헌은 엄숙하게 말했다. "세계와 접촉하지 못한 정자와 난자의 유전자 다발에 들어 있는 몇십억 년에 걸친 생물의 진화정보에 대해서요. (……중략) 클론은 외부의 정보로부터 완전히 차단된 인간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클론의 꿈을 보게 되면, ‘오직 선천적인 정보‘ 이외에는 없는, 사회적인 정보는 아무것도 없는, 순수 무결하게 ‘선천적인 정보만 있는‘ 사람의 꿈을 보는 겁니다." <촉각의 경험> - P7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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