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으로 가는 문
로버트 A. 하인라인 지음, 김창규 옮김 / 아작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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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12월.
천재 공학자이자 발명가인 댄은 앞길이 막막해져 좌절했다. 그토록 믿었던 친구이자 동업자 마일스와 회사 회계를 맡은 담당자이면서 약혼녀였던 벨이 댄의 뒤통수를 친 것이었다. 벨과 약혼을 하면서 주식 일부를 선물로 준 게 화근이 되어 대표이사였음에도 주주총회에서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고 회사는 물론이고 주식, 그가 직접 설계하고 만든 발명품까지 모조리 빼앗겼다. 댄에게 남은 건 오랜 친구인 말하는 고양이 피트뿐이었다.
그들에게 복수하고 싶었지만 이렇다 할 방법이 없었던 댄은 냉동 수면을 받기로 한다. 30년 뒤인 2000년에 깨어나 서른 살의 나이로 늙은 벨을 마주하면 복수가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댄은 복잡한 절차를 밟아 고양이 피트와 함께 냉동 수면을 받기로 하지만, 불미스러운 사고가 일어나 혼자 냉동 수면을 받게 된다.

2000년.
냉동 수면 요청 기간이 끝나 성소에서 눈을 뜬 댄은 병원에서 환자 케어에 사용되고 있는 자신의 발명품을 맞닥뜨린다. 이후 마일스와 벨에게 빼앗긴 회사와 그 외의 발명품들에 대해 확인해보지만, 현재 그들은 회사와는 관련이 없었다. 자신의 발명품들을 되찾아오고 싶었던 댄은 해당 제품을 판매하는 회사의 문을 두드려 창립자라는 걸 인정받아 명예연구기술자로 일하게 된다. 그곳에서 만나 가까워진 수석기술자 척에게서 시간 여행이 가능하다는 말을 듣는다.



제목이 왠지 감성적이라 SF 소설이라 느껴지지 않았던 이 책은 시작부터 말하는 고양이가 등장해 장르 소설이라는 걸 확인시켜줬다. 그리고 주인공 댄이 1970년대에 로봇을 발명해 가사도우미로 판매하고 있다는 점 또한 SF 소설다웠다.
그런데 그 두 가지의 설정을 제외하면 냉동 수면 전까지 약간 정신이 없었다. 회사를 설립한 대표이사와 뒤통수를 친 친구, 약혼녀와의 대립각을 이루며 주식과 양도, 특허 관련 등의 평소에 접할 일이 없는 주제를 가지고 계속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생소한 단어가 여러 번 등장해서 초반에는 조금 집중이 힘들었다. 치정 싸움으로 댄이 많은 면에서 배신을 당했다는 사실이 핵심이라는 것만 되새기고 책을 계속 읽었다.

댄이 자의로 냉동 수면을 신청했지만 마음이 바뀌어 하지 않으려 했는데, 이후엔 타의에 의해 강제적으로 냉동 수면을 받게 됐다. 앞날을 조금이나마 예측했기 때문인지 댄은 자신에게 남은 주식을 마일스의 의붓딸 리키에게 남긴다는 증서를 작성했다. 벨 사건 이전에 마일스와는 그럭저럭 괜찮은 관계였고, 의붓딸 리키와는 너무나 사이좋은 삼촌과 조카 같은 관계였기 때문이다. 열한 살 리키는 서른 살 댄 삼촌에게 결혼하자고 했을 정도로 그를 따랐었다. 마일스가 배신을 했어도 리키는 그런 것과는 전혀 무관했다. 그래서 고양이 피트 외에 사랑하는 존재인 리키를 위해 재산을 남긴 것이었다.
하지만 2000년에 깨어났을 때 회사와 발명품은 물론이고 리키에게 남긴 재산까지 공중분해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이유 때문에라도 댄은 어서 빨리 새로운 시대에 적응해 모든 것을 되돌릴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그러다 시간 여행이 비밀리에 존재하고 성공했다는 사실을 듣게 된다. 일종의 수동적 시간 여행인 냉동 수면은 미래로만 갈 수 있다는 단점이 있었고, 그것에 큰 영향을 받은 게 댄이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인 댄 앞에 갑작스레 등장한 시간 여행의 존재가 좀 뜬금없긴 했다. 사람을 냉동 수면을 시켜 깨우는 일이 빈번한 세상에 기술적인 시간 여행 또한 존재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타난 시점이 정말 기가 막힌 우연이었다. 어찌 됐든 작가의 마음이니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아무튼, 댄은 시간 여행의 실재를 알게 된 후에 그것을 발명한 박사에게 거짓으로 접근해서 도발한 후에 자신이 살았던 과거, 발명품이 세상에 나오기 전의 1970년의 5월로 되돌아간다. 이때부터 댄의 똑똑한 두뇌가 발휘되어 복수를 향한 흥미진진한 여정이 시작됐다.
그 과정에서 냉동 수면과 시간 여행이라는 설정이 주를 이뤘고, 다중 우주 역시 잠깐 스치고 지나갔다. 기니피그로 복잡하게 설명하는 부분이 있어서 잠깐 머리가 터질 뻔했으나 그럭저럭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SF를 표면에 내세운 소설이지만 본질은 그게 아닌 복수와 나름의 로맨스였다. 가만 생각해 보면 댄이 결국에 결혼한 사람과의 관계를 이성적으로는 조금 납득할 수 없는데, 어찌 됐든 냉동 수면을 통해 비슷해졌으니 상관없다고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선의에는 선의로 대갚음하는 걸 보면 역시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하는 것 같다.

아이작 아시모프, 아서 C. 클라크와 함께 "SF 문학계의 빅 3" 중 한 사람이라 불리는 로버트 A. 하인라인의 책을 처음으로 읽어봤다. 아시모프의 책은 아직 못 읽어봤고 클라크의 책은 두 권 정도 읽었다. 하인라인의 책 중에서 이 소설이 가장 유명하다는데 왜 그렇게 인기를 끌었는지 알 것 같다. 복수와 로맨스는 시대와 장르를 불문하고 흥미진진한 소재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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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속 계절은 겨울이었고 나는 ‘여름으로 가는 문‘을 찾고 있었다. - P13

"상식이란 게 있거든 현 상태를 돌아본 다음 결정하세요. 문제점을 내버려 두고 도망 칠지… 아니면 용감하게 맞서 싸우든지." - P33

"난 문제가 많은 구식 시간 여행으로 여기에 왔어. 여기란 건 ‘지금‘을 말하는 거야. 문제라는 게 뭐냐 하면, 돌아갈 수 없다는 점이야. 그런데 내 걱정거리들은 전부 30년 전 과거에 있어. 난 돌아가서 진실을 파헤치고 싶다고. 만약에 진짜 시간 여행이라는 게 가능하다면 말이지." - P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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