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다크 플레이스
길리언 플린 지음, 유수아 옮김 / 푸른숲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24년 전, 리비의 엄마 패티, 두 언니 미셸과 데비가 추운 겨울 새벽에 집 안에서 누군가에게 살해당했다. 당시 일곱 살로 형제들 중 가장 어렸던 리비는 엄마 곁에서 자다가 바깥에서 들리는 무시무시한 소리에 놀라 창문 밖으로 달아나 숨은 덕분에 살아남았다. 유일한 생존자이자 거의 목격자로 대접받던 리비는 경찰과 여러 사람들의 추궁으로 인해 첫째인 벤 오빠를 범인으로 지목했고, 나중엔 그게 진짜라고 믿기 시작했다. 리비의 증언으로 열다섯 살이었던 벤은 감옥에 수감되어 아직까지 세상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다.
24년이 지난 현재, 리비는 매일매일 돈에 허덕이며 살고 있다. 한때 가족 중 유일한 생존자 소녀로 알려져 사람들에게 기부금을 받기도 하고 책을 출판한 덕분에 수중에 돈이 있을 때도 있었으나 그녀는 일을 하지 않으며 누군가의 후원에만 기대 산 덕분에 이제는 먹고 죽으려고 해도 돈이 없었다.
그런 리비에게 "킬 클럽"의 멤버라는 라일이 편지를 보내온다. 살인자들과 살인 사건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모인 그 클럽에 와주면 500달러를 줄 것이고, 가족들이 남긴 유품이나 물건을 판매할 수도 있다고 했다. 한 푼이라도 궁했던 리비는 라일이 말한 킬 클럽 모임에 참석한 이후 24년 전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너무 어려서 사리분별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일곱 살 리비가 서른한 살이 되어 비로소 가족에게 일어난 끔찍한 사건을 다시 마주하게 된다. 그녀가 벤 오빠를 감옥에 들어가도록 한 거짓 증언에 대한 회한 때문은 전혀 아니었다. 오로지 돈이 필요했기 때문에 사건을 파헤치기로 한 것이었다.
가족들에게 일어난 사건으로 인해 그녀는 어려서부터 제대로 자랄 수가 없었다. 엄마 패티의 언니인 다이앤 이모가 정성으로 보살폈는데도 불구하고 리비는 이모에게 상처를 줬고, 덕분에 알지도 못하는 친척 집이나 누군가에게 맡겨져 안정적이지 못한 10대를 보냈다. 리비가 평범한 삶을 살 수 없었다는 건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행동이 정당화되는 건 아니었다. 이모에게 엄청난 상처를 주고 누군가에게 후원금을 받을 생각에 서른이 넘도록 일도 하지 않고 지내던 모습들로 인해 리비가 가엽게 여겨지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하다고 느껴졌다. 과거 벤에 대한 증언부터 현재엔 오직 돈 때문에 움직이던 모습을 보며 리비가 사건의 중심으로 이끄는 주인공임에도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었다.
킬 클럽 멤버들을 대신해 라일은 리비와 먼저 만나 모임에 데리고 오지만, 멤버들은 벤이 살인범이 아니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오히려 리비를 거짓말쟁이로 몰아세우자 그녀는 유가족이라는 이점을 이용해 살인사건에 다가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24년 만에 처음으로 감옥에 수감된 벤 오빠를 찾아가기도 했다.
리비 때문에 감옥에 가게 된 벤은 살아남은 유일한 핏줄인 막냇동생을 오랫동안 그리워했는지 자신을 만나러 와준 리비에게 다정했다. 그러면서 리비의 거짓말은 괜찮다고 너그럽게 이해해 줬지만 리비는 속으로 딴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서로에 대해 완전히 다른 생각을 가진 벤과 리비를 보며 마음이 어느 쪽으로 기울게 됐는지는 뻔했다.
소설은 현재 시점에서 사건을 다시 파헤치는 리비와 사건 전날부터 당일까지 벤과 엄마 패티의 시점을 오갔다.
패티는 남편 러너와 이혼 후에 양육비는 물론 받지 못하고 때때로 들른 그에게 돈을 뜯기기도 했다. 부모님이 남겨주신 농장은 빚만 자꾸 쌓여갔고, 그녀는 네 아이들까지 책임져야만 했다. 아직 서른 초반의 그녀에겐 힘겨운 삶이었지만 그래도 패티는 아이들을 굶기지는 않으려고 애를 썼다.
사 남매 중 첫째 벤은 자신이 처한 환경이 힘겨웠다. 가난해서 아이들에게 무시를 당하고 학교에선 잡일을 하며 돈을 벌었고 집에서는 엄마나 여동생들에게 시달렸다. 유일하게 리비와만 사이가 좋았다. 여자친구인지 섹스 파트너인지 모를 디온드라는 벤을 좋아하는 것 같긴 했지만 돈이 많아서 그런지 가난한 그를 은연중에 얕잡아보고 있었다. 거기다 벤은 한창 사춘기쯤이었으니 감정적으로 격해져 있었다.
현재의 리비가 과거 사건과 관련이 있었을 아빠 러너, 벤에게 성추행범이라고 누명을 씌운 크리시, 악마숭배자 트레이, 디온드라까지 만나게 되면서 과거의 진실도 밝혀졌다. 패티, 미셸, 데비의 살인사건의 진실에는 너무나 슬프고 안타까운 이유가 있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분노를 일으키는 원흉도 있었다. 등장했을 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던 캐릭터는 역시나 그 모든 일의 발단이 되었고 현재까지 그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그랬기에 벤이 불쌍하면서도 이해가 되지 않기도 했다. 그리고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누군가의 상황이 너무나 가여웠다. 그렇게 해서라도 잘 살기를 바랐던 마음이었는데 완전히 다른 결과를 초래하게 되어 안타까웠다.
조금 걸리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벤과 리비는 이제 모든 것을 바로잡고 안도할만한 결말을 맞이했다. 그래서 참 다행이었다.
길리언 플린의 소설을 세 번째로 읽은 건데, 처음으로 만난 <나를 찾아줘>가 워낙 좋았던 탓인지 다른 책들은 그에 비해 조금 아쉬운 감이 있는 듯하다. 최근엔 각본이나 각색 작업을 주로 하는지 신간이 안 나오는데 재미있는 책을 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날 아침에 일어났을 때만 해도 누구도 그런 풍파가 닥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테지. 바로 ‘그날‘, 뭔가가 틀어진 게야." - P70
아니, 내가 본 건 정말 본 거야. 늘 버릇처럼 읊조리는 주문이었다. 비록 거짓말이었지만. 사실 나는 본 게 없었다. 이제 속이 좀 시원한가들? 그래, 엄밀히 말하자면, 나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듣기만 했을 뿐. 옷장에 숨어 있었기 때문에 들을 수만 있었다. 내가 쓸모없는 겁쟁이 꼬마였기 때문에 우리 가족이 죽은 것이다. - P77
"난 네가 거짓 증언한 걸 용서했어. 어려서 많이 혼란스러웠을 테니까. 그건 탓하지 않을 수 있어. 하지만 제기랄, 리비, 지금은 어때? 넌 서른 살이 넘었어. 그런데 아직도 피를 나눈 오빠가 그런 짓을 할 수 있다고 믿는 거야?" - P446.44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