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톡 7 - 안녕, 조선 패밀리 조선왕조실톡 7
무적핑크 지음, 와이랩(YLAB) 기획, 이한 해설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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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보니 <조선왕조실톡> 시리즈 6권을 작년 봄에 읽었다. 소설이든 아니든 시리즈로 된 책은 도서관 신간 코너에서 눈에 띄면 곧장 대출해서 읽는 편인데, 이 시리즈는 후반으로 가면서 읽을 마음이 조금 사그라들었다. 조선의 마지막이 비극으로 끝난다는 걸 국사를 배운 모든 사람이 알기 때문이었다. 알고 있긴 해도 패망의 역사를 되도록이면 미뤄두고 싶은 마음이었다.

물론 마지막 시리즈를 읽지 않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성격상 무지하게 재미가 없지 않는 이상은 끝까지 봐야 한다는 이상한 고집이 있어서 1년 반이 지나서야 마지막 이야기를 읽었다.

 

 

 

순조(1800~1834년 재위)

헌종(1834~1849년 재위)

철종(1849~1863년 재위)

 

 

 

정조는 세자를 김조순의 딸과 혼인을 시키기로 약조하였는데, 그 사이에 정조가 세상을 떠나고 만다. 그래서 김조순은 혼약이 취소된 줄 알았지만 정순왕후는 주상의 마지막 뜻이라며 일을 진행시킨다. 왕가에서 벌어지는 흔한 혼인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이 혼인의 특이점은 김조순이 그 유명한 안동 김씨, 즉 세도정치가 이 사람으로 하여금 시작됐다는 점이다. 혼인 정도는 취소해도 됐었을 텐데 아깝다.

 

위대하신 세종대왕님 다음으로 존경받는 정조는 백성을 사랑했다. 노비까지도 제 자식이라며 끌어안는 포용력은 임금이라면 당연히 갖추어야 할 덕목과도 같지만, 조선 임금 중에 자기만 아는 인물들이 꽤 돼서 그런가 세종과 정조의 애민사상은 정말이지 대단하다.

세종은 아기를 낳은 노비 부부에게 출산 휴가를 줬었는데, 정조는 공노비와 사노비를 혁파했다. 정조가 훙하고 난 뒤에 수렴청정을 했던 정순왕후가 노비안을 불태우라고 지시한 것은 정말 화끈하시다.

 

 

홍경래의 난과 김삿갓이 이렇게 연결될 줄은 몰라서 이 부분을 읽으며 깜짝 놀랐다. 국사 시간에는 홍경래를, 문학 시간에는 김삿갓을 배워서 서로 연결을 못 시켰나 보다. 아무튼, 과거 급제를 했는데 때려치우고 방랑을 하셨다는 김병연, 일명 김삿갓의 결단력과 의지가 대단하다.

 

세종에겐 장영실이 있듯, 정조의 짝꿍이나 마찬가지인 정약용은 거의 20년가량 유배를 갔었다. 근데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 성격에다 궁금한 걸 참지 못하고, 기록하는 것도 좋아했던 덕분인지 유배 생활 동안 500권 이상의 분량이 되는 책을 남겼다고 한다. 잡학다식의 대명사였다.

근데 특이한 건 실록에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비슷한 예로 세종대왕님만큼이나 존경을 받는 이순신 장군님이 실록에 남겨진 기록이 없다는 것과 비슷한 이치라고 볼 수 있단다.(아... 선조 정말...) 그래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알려져서 참 다행이다.

 

 

열녀비가 짜여진 각본이라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다. 죽은 남편을 따라서 죽는 여자들이 그렇게 많았을 리가 없는 게 당연했다. 오직 여자에게만 이렇게 정절을 강요하게 된 것은 잘못된 유교사상의 말로였다. 열녀비가 세워진 고을에는 세금 감면 혜택이 있었다고 하니 이런 뭐 같은 경우 때문에 살고 싶었던 여자들이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고 자결로 알려졌다는 게 원통하다.

그리고 죽었어야 하는데 아직 안 죽은 사람을 미망인으로 부른다. 이게 무슨 개 짖는 소리인가 싶다. 단어의 뜻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소설 같은 걸 읽을 때 해당 단어가 표시되면 리뷰를 쓸 때 그대로 지칭하기도 했었는데 앞으로는 그러지 말아야겠다.

 

 

 

고종(1863~1907년 재위)

흥선대원군(1820~1898년 생몰)

명성황후(1851~1895년 생몰)

강화도령 철종이 후사 없이 사망한 후, 신정왕후는 정조의 이복동생으로 제주도에 유배를 가서 죽은 은신군의 양자이자 인평대군의 후손인 흥선군 이하응의 둘째 아들을 다음 왕으로 지목해 그가 고종이 되었다. 인평대군이 언제 적 인물인지 검색해보니 1600년대 중반으로 나왔다. 왕가에 대를 이을 사람이 얼마나 없으면 그렇게 거슬러 올라가야 했을까 싶다. 물론 철종의 이복형제가 있긴 했지만 말이다.

 

 

병인양요로 인해 외규장각 의궤가 프랑스에 도둑맞은 사건은 알고 있어도 뼈저리게 안타깝다. 우리의 문화재산인데 프랑스 소유라 영구 대여를 해왔다니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나마 박병선 역사학자가 아니었다면 찾아내지도 못했을 것이다. 나라가 나서서 한 일이 아니라 개인이 나선 일이라니 더 대단해 보인다.

 

이후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여러 사건들을 나열하면서 그 속에 숨어있던 일화들을 보여주었다.

 

 

동학으로 만난 김구 선생님과 안중근 의사의 만남도 어디선가 봐서 알고 있었으나, 역시나 인연은 인연이다 싶다.

 

 

 

 

비극으로 끝이 날 줄 알았는데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책이 끝나서 다행이었다. 물론 그 이후엔 일제강점기라는 분노와 서글픔으로 점철된 역사가 이어졌긴 하지만 말이다.

 

역사에 만약이라는 건 이루어질 수 없는 희망일 뿐이지만 조선 후기를 읽으면 언제나 만약을 생각하게 된다. 정조가 더 오래 살았더라면, 효명세자가 왕위에 올랐더라면 하는 것들이다. 비극적인 사건을 되짚어보며 역사가 번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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