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번의 일
김혜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통신회사 현장팀에서 26년 동안 일한 "그"는 한 달 전에 새로 온 부장의 호출을 받았다. 부장은 그가 저성과자로 분류되어 재교육 대상자가 되었다는 말을 꺼냈다. 이번까지 세 번째 재교육 대상자가 되었다는 것은 사실상 퇴직 제안이나 마찬가지라는 걸 그도 알고 있었지만, 다시 교육을 받기로 결심했다. 재개발 예정지에 대출을 끼고 산 주택의 이자를 부담해야 했고, 아들 준오가 아직 고등학생이었다. 양가 어르신들의 노환으로 정기적으로 나갈 병원비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재교육을 받고 난 이후에 그의 행동을 일일이 기록한 보고서가 부장의 손에 들어간 것을 보니 회사에서는 아무래도 그가 나가길 바라는 눈치였다. 그럼에도 그는 버티고 또 버텼다. 출퇴근을 하기엔 너무나 멀어 사택에서 거주해야 하는 지역에 발령이 나도 그는 묵묵히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렇게 시간이 계속 흐르고 흐르다 보니 자신이 왜 이렇게까지 하면서 버티고 있는지 알 수 없게 된다.

 

 

 

50대쯤 되었을 주인공 "그"의 이름은 처음부터 끝까지 등장하지 않았다. 그의 아내는 물론이고 아들, 조카, 그만둔 동료들의 이름은 모두 등장했는데, 마지막까지 그의 이름만은 밝혀지지 않았다. 아마도 우리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가장으로 보편화하려고 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름보다는 회사의 직급, 누구의 아빠로 불리는 게 이제는 익숙해진 사람의 모습이었다. 청춘이라 불릴 한창나이는 지났지만 그렇다고 노인이라고 하기엔 젊은, 그래서 퇴직을 하기엔 아직 이른 남자를 이 소설을 통해 들여다볼 수 있었다.

 

요즘엔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희미하다. 나만 해도 한 직장에 계속 다니기보다 좋은 조건으로 이직을 하거나 나를 좋게 본 사람의 부름에 여러 번 응답하기도 했었기 때문에 소설 속 그가 계속 직장에 남으려고 하는 걸 조금은 이해할 수 없었다. 나이가 있기 때문에, 그리고 20년이 넘도록 다닌 직장이기 때문에 애사심이 남다른 건가 싶기도 했다.

배움에는 나이가 없기에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무슨 일이든지 새롭게 시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내가 아는 사람에게 부탁해 이력서를 넣어볼 기회가 있었고, 퇴사 후에 부동산으로 대박이 났다던 동료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자리를 마련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계속 남아있고자 하는 회사에서 굴욕과 모욕을 느끼는 것보다 한순간 쪽팔리고 마는 게 훨씬 나았을 터였다. 그가 지방으로 발령이 나서 원래의 업무가 아닌 일을 떠맡고 이런저런 일로 인해 그곳의 책임자에게 추궁을 당하는 일의 연속은 읽고 있는 내가 다 스트레스였다. 그런데도 그는 계속해서 버텨냈다. 나중엔 오기로 남아있는 거라 느껴지기까지 했다.

 

왜 그렇게 한 직장에만 매달려야 했을까. 처음에 퇴직과 재교육 중에 선택을 했더라면 적당한 퇴직금을 받아 새로운 무언가에 도전해볼 생각을 했을 수도 있는데, 왜 굳이 버텨야만 했는지 솔직히 나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대출금, 나이 든 부모의 병원비, 아들의 교육 자금 등을 방패 삼아 새로운 도전을 회피하려는 것만 같았다. 그가 조금은 고지식한 면이 있었던 탓인 듯하다. 아마도 평생을 그렇게 곧게 살아왔을 그의 인생이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버티는 그를 이해할 수는 없었으나 소설이 진행되면서 자신보다 나이 어린 사람에게 꾸중을 듣고 자꾸만 더 먼 곳으로 좌천되는 그의 심정만은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내색하진 않았지만 낭떠러지에 밧줄 하나에만 의지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그가 안쓰럽게 느껴졌다. 회사가 시키는 일이 부당하다는 걸 스스로 알고 있으면서도 곧이곧대로 하는 그가 요령이 없는 것 같다가도 한편으로는 어쩔 수 없는 입장이라는 두 가지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그가 끝까지 버티고 버틴 끝에 아들 준오의 대학 합격 소식을 듣게 되면서 비로소 자신이 외면했던 회사의 실체를 마주하게 된 결말이 왠지 모르게 조금은 슬펐고, 한편으로는 섬뜩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동안 본인의 의지로 버텼다기보다는 내면의 무언가가 그를 버티게 만들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이유 때문에 마지막이 되어서야 조금은 후련하기도 했다.

 

소설을 읽으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의 상황에 자꾸만 빠져들어 가슴이 답답해질 지경이었다. 책을 읽는데 이렇게 부정적인 감정에 몰입되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단순한 문장은 건조함이 물씬 풍겼는데,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그게 그렇게 괴로울 수가 없었다. 소설 속 캐릭터가 살아있다고 느끼는 경우는 드물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은 살아있는 것 같지 않으면서도 왠지 현실적이라 생생하게 느껴졌다.

가장의 어깨에 놓인 책임감의 무게를 새삼스레 생각해보게 됐다. 자존심이 상하고 모욕을 느끼는 데도 그들을 참게 하고 버티게 하는 무언가의 가치 때문이 아닌가 싶다.

 

 

 

여기 와서 아무것도 할 줄도 모르는 바보 천치 등신이 됐어요. 그게 왜 내 탓이야? 그게 내 잘못이에요? 바보 천치 등신이 되라고 사람을 이런 곳에다 처넣은 인간들 잘못 아니에요? - P170

그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한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럼에도 자신이 왜 이 일을 지속하려고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왜 매번 오기가 살아나고 끝장을 보려는 심정이 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을 점점 다른 사람처럼 만들어버리는 것의 정체를 알고 싶었다. - P169

그가 회사에 기대한 건 마땅히 자신에게 주어져야 하는 것들이었다. 존중과 이해, 감사와 예의 같은 거창해 보이지만 실은 너무나 당연한 것들을 바란 것뿐이었다. - P16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