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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형은 제시카 ㅣ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15
존 보인 지음, 정회성 옮김 / 비룡소 / 2020년 6월
평점 :
절판
샘은 어렸을 때부터 형 제이슨을 존경하고 좋아했다. 제이슨은 난독증이 있어서 책을 잘 읽지 못하는 샘을 위해 인내를 가지고 도와줬고, 학교에서는 가장 인기 있는 남학생이었으며 축구도 너무 잘 해서 아스널 FC 유소년 팀에서 입단을 하라고 할 정도였다.장관인 엄마와 엄마의 보좌관인 아빠는 늘 바빠서 형제의 얼굴을 마주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샘의 곁에는 늘 제이슨 형이 있었고, 그래서 부모님보다 형이 훨씬 더 좋았다.
그런데 제이슨 형이 18살, 샘이 14살이 되었을 때 여름휴가라 웬일로 집에 가족 모두가 있던 날 형은 자신이 샘의 형이 아니라 누나인 것 같다는 고백을 했다. 안 그래도 샘은 이전부터 형이 이상하다고 느끼고 있었던 터라 당황했고, 너무 바빠서 자식들과 얘기를 나눌 시간이 없었던 엄마와 아빠는 말도 안 되는 소리 취급을 했다. 제이슨의 나이에는 한 번쯤 성 정체성에 대해 고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제이슨이 자신이 여자라는 뜻을 굽히지 않으며 머리를 길러 포니테일로 묶고 다니자, 엄마와 아빠는 병원에 데려가 고쳐달라고까지 한다.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으로 충격을 안겨준 존 보인 작가의 최근작인 이 소설은 제목에서부터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건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남자의 몸으로 태어났지만 10대가 되어 자신의 정체성을 깨달은 제이슨 형을 곁에서 지켜보는 동생 샘의 시선으로 소설이 진행됐다.
제이슨은 동생 샘에게는 물론이고 학교 친구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다. 자세한 묘사가 있지는 않았지만 잘생긴 외모를 가졌던 것 같고, 축구까지 잘했기 때문에 당연히 학교 최고의 스타였다. 정말 예쁜 여자친구와 사귀기도 했다. 그런 형에 비해 샘은 축구는 영 젬병이고 책도 잘 읽지 못하는 난독증이라 같은 학교 선생님들이 더러 실망을 표할 때도 있었지만, 형을 질투하기는커녕 너무나 좋아했다.이런 멋진 사람이 자신의 형이라 자랑스러웠던 샘에게 제이슨의 고백은 핵폭탄 급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거부하고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정체성에 대해 이해하기엔 샘이 조금은 미성숙했던 탓도 있었다. 부모님은 처음엔 그럴 수 있다는 듯, 그저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원래의 멋진 아들 제이슨으로 돌아올 거라고 여겼다. 하지만 제이슨의 생각을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자 그게 병이라도 되는 것처럼 고치려고만 들었다.
소설은 동생 샘의 시선으로 진행됐지만 제이슨에게 마음이 더 기울었다. 늘 곁에 있던 동생에게마저 외면을 당했기 때문이었다. 가장 가깝다고 생각한 사람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제이슨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샘의 입장도 이해가 됐다. 같은 성별의 형제라서 유대감을 느꼈던 부분이 많았을 텐데, 갑자기 형이 아니라 누나로 취급해 주길 바란다면 질색팔색하게 될 것 같긴 했다. 내가 샘의 입장이었더라도 그랬을 것이다. 게다가 샘은 제 나이보다 왠지 조금은 어린 것 같았기 때문에 시간이 좀 필요했다.
샘의 반응은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할 수 있었지만 부모의 반응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제이슨이 남자의 몸으로 태어난 여자라는 고백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정치적 입지를 더 우려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장관인 엄마는 차기 총리감으로 주목을 받고 있었다. 최근 들어서 현직 총리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에 엄마는 준비를 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잡음이 있어서는 안 됐다. 그래서 엄마와 아빠는 아들의 성 정체성에 대한 폭탄 같은 고백을 외면하다 나중엔 전기 충격 따위로 고쳐보려고 들었다. 부모가 등장할 때마다 어찌나 화가 났는지 모르겠다. 인정할 수 없으면 차라리 내버려 두기라도 했으면 좋았을 텐데, 자꾸만 제이슨을 자극하고 힘들게 만들었다.
가족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와중에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해 제이슨의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여줬다. 제이슨에 관한 사실이 학교에 소문난 이후, 샘이 싫어하는 같은 반 데이비드는 이때다 싶어서 샘을 놀려대기 시작했다. 제이슨은 트랜스젠더인데 데이비드는 그게 그거인 줄 알고 샘의 형이 동성애자라고 놀렸고, 샘은 뭐가 됐든 참을 수 없어서 치고받고 싸우기도 했다. 심리 상담사는 처음으로 제이슨을 지지해 줬고, 다소 의외였던 건 제이슨의 축구 코치의 반응이었다. 제이슨이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으니 축구는 계속하라며 설득하는 편견 없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엄마와 사이가 안 좋은 동생 로즈 이모는 제이슨이 가족에게서 기대했던 반응을 보였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가지각색이라 다양한 반응을 보였지만, 중요한 건 자신의 생각이 어떻든 상대방을 무조건 비방하고 잘못됐다는 식으로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만으로도 충분히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을 사람을 꺾어 부러뜨리지는 말아야 한다. 이해가 안 되고 싫으면 그저 아무 말 없이 지나가면 될 일이다.
소설이 전체적으로 제이슨에게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렀지만, 결국엔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형 제이슨이 아닌 누나 제시카로 받아들이는 결말을 보여줬다. 소설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유쾌해서 당연히 해피엔딩을 예상하긴 했는데, 결정적인 장면에서 샘이 한 말은 괜스레 뭉클해졌다. 참 다행인 결말이었고 마지막엔 진짜 남매 같은 반응을 보여서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주제가 다소 무겁긴 했지만 어린 샘의 시선으로 가볍게 풀어가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제이슨, 우린 너를 도우려는 것뿐이야. 네가 여자가 되기를 바라지 않는 게 그렇게 잘못된 거니?" "전 여자가 되려는 게 아니에요. 전 원래 여자예요." - P148
"너 방금 내가 낫기를 바란다고 했니?" "응. 그 말이 어때서?" "그러니까 넌 내가 아프다고 생각하는구나. 그렇지? 내가 어떤 병에 걸렸다고 말이야." - P112
"제가 생각하는 ‘나 자신‘이 되는 방법, 그리고 저에게 맞는 방식대로 제 삶을 꾸려나갈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싶어요. 제이슨으로 지내는 지금의 삶은 하루 스물네 시간 내내 거짓으로 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에요. 전 정직하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요." - 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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