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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첼의 죽음으로부터
플린 베리 지음, 황금진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5월
평점 :
절판
런던에 사는 노라는 금요일을 맞이해 시골에 사는 언니 레이첼의 집으로 향한다. 기차를 타고 역에 도착한 노라는 마중을 나오지 않은 언니가 바쁜 것 같아 집까지 걸어간다. 언니의 차가 진입로에 주차되어 있는 걸 보고 집 안으로 들어간 노라는 계단 꼭대기 난간 기둥에 언니의 개가 밧줄에 목이 매달려 있는 걸 본다. 그 밑으로는 피가 고여 있었다. 너무 놀라 소리도 지르지 못한 채 계단을 올라간 그녀는 복도 가득한 핏자국 너머로 쓰러져 있는 언니를 발견한다. 셔츠가 검붉은 색이 되도록 젖어있던 언니는 숨을 쉬지 않았다. 노라는 제정신이 아니었지만 어떻게든 신고한 덕분에 구급차와 순찰차가 도착했다.
갑작스러운 사건으로 노라는 언니가 사는 동네에 한동안 머물러야 했다. 살인사건 현장이라 언니의 집에 머물 수는 없었기에 동네에 하나뿐인 여관에 묵으며 장례 준비를 해야 했고, 사건을 맡은 모레티 경위를 종종 만나며 언니가 요즘 누구를 만났는지, 달라진 게 없는지 등을 말해주며 범인을 잡는 데 협조해야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경찰이 언니를 죽인 사람을 잡지 못하자 노라는 의심스러운 사람들을 직접 찾아보기 시작했다.
언니 레이첼이 살해당한 사건을 목격한 동생 노라의 시점으로 진행된 소설은 시작부터 왠지 모를 스산함이 느껴졌다. 문체 자체가 건조한 탓도 있겠지만, 노라가 뿜어내는 분위기가 뭔가 묘했다. 소설이 흐를수록 그런 느낌은 더욱 강해져서 노라의 시선을 따라가긴 했으나 그녀를 믿지는 않았다. 믿을 수 없는 화자에게 뒤통수를 맞은 적이 몇 번 있었기 때문이다.
레이첼 살해 사건이 벌어진 현재를 주로 보여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과거가 종종 등장했다. 10대 시절 레이첼은 노라와 함께 친구네 파티에 가서 술을 마시며 놀고선 동틀 무렵에 혼자 집으로 돌아가다가 낯선 사람에게 폭행을 당해 팔이 부러지고 복부와 가슴, 심지어는 얼굴까지 엉망이 됐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범인은 잡을 생각도 하지 않고 폭행당한 언니에게 원인이 있다는 듯 굴었다.
당시에 술에 취해 친구네 집에서 자느라 언니를 집에 혼자 가게 했다는 생각에 죄책감이 든 노라는 범인의 얼굴을 본 레이첼과 함께 그를 찾기 시작했다. 비슷한 범죄를 다시 저지를 거란 생각에 주변 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신문을 통해 접했고, 어떨 땐 법대생이라 속이고 재판에 참석하기도 했다.
오랫동안 그 일을 했음에도 범인을 찾지는 못했었다. 그래서 노라는 당시 폭행범과 현재 언니를 살해한 범인이 동일 인물일 수도 있고, 그가 언니를 찾아다녔을 수도 있으며 마을 사람들 중 한 명일지도 모른다는 여러 생각을 가졌다.
오래전 경험으로 경찰에 대한 신뢰를 잃어 혼자 범인을 찾던 노라는 마을에 사는 배관공 키스를 의심했고, 이후 경찰에게서 레이첼이 노라에게조차 말하지 않고 이사를 하려고 했던 사실을 듣게 된다. 그리고 중반 이후에는 노라가 의심되는 개인적인 문제와 사건이 등장해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만들었다.
노라가 내내 이상했고 레이첼을 죽일 동기도 있었기 때문에 의심했었는데, 한 번 언급된 것 외에 드러나지 않던 사람이 범인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좀 당황스러웠다. 여기저기에 의심될만한 폭탄을 심어두고선 전혀 다른 데서 폭발이 일어난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예상과는 다른 결말이라 그런지 실망하기도 했다. 소설 분위기만 보면 일관성이 있기는 했지만 썩 마음에 드는 결말은 아니었다. 소설 뒤편에 <나를 찾아줘>가 언급됐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하는데, 혹시나 했다가 역시나로 끝났다. 인기를 끌었던 소설이 언급되면 대체로 실망하게 된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시켜줬다. 아무래도 내가 반전이 있을 거라고 예상하고 읽은 탓도 있는 것 같다. 전체적으로 잔잔한 소설이라 반전이 짜잔 하고 등장할 리 없었는데 말이다.
그보다는 과거의 사건으로 자매를 잠식했던 불안과 불행, 레이첼이 살해당한 사건으로 이제는 그것을 끊어내려고 하는 노라의 몸부림 정도로 보면 좋을 듯싶다. 하지만 이 와중에 당최 이해가 가지 않았던 레이첼의 행동이 있긴 했지만, 예전에도 그런 적이 있다고 하니 그런가 보다 싶다.(나 같았으면 머리털 다 뽑고도 남았을 텐데.)
내가 찾고 있는 건 어쩌면 각기 다른 남성 세 명일지도 모른다. 스네이스에서 언니를 공격했던 남자, 산등성이에서 언니를 지켜보았던 남자, 그리고 언니를 살해한 남자. - P164
나는 그때 우리가 알아낸 사실들을 우리 둘 다 잊었으면 싶었다. 지난 5년 동안 나는 정말로 우리가 그 사실들을 잊었다는 듯이 굴었고, 그렇지 않다는 징후들은 모조리 무시해왔다. 언니가 저먼셰퍼드를 데리고 왔다는 것도, 내가 혼자서는 절대로 택시에 타지 않는다는 것도. - P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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