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속 천문학 - 미술학자가 올려다본 우주, 천문학자가 들여다본 그림 그림 속 시리즈
김선지 지음, 김현구 도움글 / 아날로그(글담) / 202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학교 다닐 때, 수학 쪽으로는 두뇌가 발달되지 못해 문과를 가긴 했으나, 기본적으로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은 배웠었다. 대체로 문과반 아이들은 과학 과목을 별로 안 좋아했던 것 같은데 나는 상당히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생물은 암기만 잘 하면 돼서 잘했고, 수학과 별반 다르지 않게 계산과 공식 위주였던 물리나 화학도 나쁘지 않은 점수를 받았다. 그중에서 관심 있어서 좋아했던 과목은 지구과학이었다. 별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는데, 태양계 행성을 배울 땐 정말 재미있어 했다. 물론 문과라 가볍게 배운 탓도 있을 듯하다.

 

그래서 이 책을 도서관에서 발견했을 때 냉큼 집어 들었다. 최근 몇 년 동안 드물게 미술 관련 책을 재미있게 읽었는데 그림과 관련된 천문학 이야기라니 흥미로웠다.

 

 

 

PART 1 그림 위에 내려앉은 별과 행성: 그리스 로마 신화 속 태양계 이야기

 

 

태양계 행성의 이름은 그리스 로마 신화의 12주신의 이름에서 따왔다. 행성 중 가장 큰 목성은 그리스 로마 신화의 주신 주피터(Jupiter, 제우스), 달에 이어 두 번째로 밝은 금성은 미의 여신 비너스(Venus), 태양계 행성이었다가 2006년에 퇴출된 왜소행성 명왕성은 올림포스 12주신에도 들지 못하는 지하세계의 신 플루토(Pluto)이다. 움직임이 느린 토성(Saturn)은 늙은 신 사투르누스(Saturnus, 크로노스)의 이름을 붙였다. 푸른빛이 아름다운 해왕성은 넵튠(Neptune, 포세이돈), 토성보다 먼 행성인 천왕성은 크로노스에게 쫓겨난 우라노스(Uranus)가 떠오른다는 이유로 이름이 붙여졌다. 행성 중 공전주기가 88일로 가장 짧고 평균 궤도 속도는 48킬로미터인 수성은 머큐리(Mercury, 헤르메스), 산화철 때문에 붉게 빛나는 화성은 서양에서 피가 떠오른다 하여 전쟁의 신 마르스(Mars)라 불린다.

그리고 지구의 위성인 달은 자유롭고 독립적인 여성의 이미지를 가진 디아나(Diana, 아르테미스)로 지칭된다고 한다. 태양은 올림포스 12주신 가운데 제우스를 제외하고 가장 강력한 신인 아폴로(Apollo)의 이미지를 부여했다.

 

각 행성의 특징을 뽑아내어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들 이름을 붙인 게 기발했다. 행성들의 영문 명칭은 알고는 있었으나 이렇게 설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도 있어서 재미있었다.

 

 

비너스는 미의 대명사라서 이 여신을 주제로 한 회화와 조각은 셀 수도 없이 많다. 하지만 시대마다 사조가 다르고, 화가 역시 표현하는 방법이 저마다 다르기 때문에 그림 속 비너스의 모습 역시 다양하다.

여러 그림에서 발견할 수 있는 특징은 시대에 따라 비너스의 몸매 또한 다르다는 것이다. <메디치 비너스>나 <우르비노의 비너스>처럼 풍만한 몸매의 비너스가 있는가 하면, <밀로의 비너스>와 <비너스의 탄생>과 같이 현대의 미적 기준에 가까운 비너스가 있기도 하다.

남성 화가들이 그린 회화만을 주로 접했던 것 같은데, 책에 실린 여성 화가의 비너스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미의 여신이라는 명칭을 내세워 나체로 아름다움을 뽐내거나 상대방을 유혹하는 듯한 관능을 보여주는 게 아닌,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기만 하는 남자를 거부하는 그림을 그린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비너스는 신선했다.

 

 

토성은 지구 시간으로 29.5년에 한 번씩 태양을 돌기 때문에 대략 7년마다 계절이 바뀐다고 한다. 반면에 자전은 매우 빨라서 토성의 하루는 10시간 40분에 불과하단다. 공전은 느리고 자전은 빠르다니, 만약 토성에 외계인이 산다면 어떤 느낌일까 상상해봤다.

 

로마 신화에서 사투르누스는 농경신인데, 그리스 신화에서 시간을 다스리는 크로노스와 동일시되는 신이라고 한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관한 책을 읽은 적이 있어서 크로노스가 아버지 우라노스를 거세하고 쫓아냈던 일화가 떠올랐다. 하지만 크로노스 역시 제 자식에게 왕좌를 빼앗길 거라는 예언에 제우스를 비롯해 헤라, 포세이돈 등등의 신을 잡아먹었다.

그 신화에서 비롯된 그림이 루벤스와 고야가 각각 그린 <아들을 먹어치우는 사투르누스>이다. 다른 미술 책에서 여러 번 봤던 고야의 그림은 이미지 자체가 너무 강렬해서 인상에 남았다. 광기 어린 표정이 혐오스러울 지경이다. 루벤스의 그림은 이번에 처음 본 것인데, 사투르누스의 표정보다 뜯기는 아기의 가슴팍 살점과 고통스러워하는 표정이 리얼해서 끔찍하다.

 

 

해왕성은 지구처럼 아름다운 푸른색이지만 실은 지옥의 행성이나 다름없다. 표면이 고체와 액체 상태의 질척한 메탄으로 이루어진 바다가 끝도 없이 펼쳐져 있을 거라 추측한단다. 표면 위에는 1000기압 이상의 두터운 대기가 있어 햇빛이 전혀 통과할 수 없는 어두운 메탄 바다가 출렁이고, 초속 수백 미터의 태풍과 번개가 끊임없이 쳐댄다고 한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이미지에 왠지 딱 들어맞는 느낌이다.

그런데 반전은 해왕성의 바다가 알고 보면 다이아몬드로 가득하다는 것이다. 메탄이 엄청난 고온과 고압으로 인해 분해되어 탄소로 바뀌고, 다시 고온과 고압의 영향을 받아 다이아몬드로 변신한다고 한다. 빛의 속도보다 빠르게 갈 수 있는 우주선 기술이 개발된다면 가장 먼저 머나먼 해왕성으로 향하는 게 목표가 되지 않을까 싶다.

 

 

지구에서 육안으로 가장 크게 보이는 달은 과학기술이 발전하기 이전에는 신비로운 존재였을 것 같다. 물론 지금도 밤에 둥그렇게 뜬 보름달을 보면 그런 느낌이 들긴 한다.

 

이런 신비로운 이미지 때문인지 각 시대를 살아가던 유명한 여자, 마담, 정부(情婦)들은 자신을 디아나로 그린 회화와 조각상에 열광했다고 한다. 화가, 조각가의 작품 속에서나마 여신 디아나가 되고 싶은 열망이 이해가 된다.

 

 

태양계 내에서 진정한 의미의 별은 바로 태양이다. 내부 핵융합을 통해 스스로 빛을 내는 태양 덕분에 외의 모든 천체가 반사해서 빛을 내기 때문이다. 태양의 질량은 지구의 약 33만 배로, 태양계 전체 질량의 99.9%를 차지한다. 태양 외 나머지 행성을 모두 합해도 0.1%가 되지 않는다.

재미있는 사실은 지구에서 태양까지의 거리가 약 1억 5천만 킬로미터인데, 태양에서 출발한 빛은 8분 20초 후에 지구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태양 내부에서 핵융합을 통해 만들어진 빛이 반사되면서 태양 표면까지 도달하는 데는 대략 10만 년 이상이 걸린다고 한다. 그 얘기는 우리가 지금 보는 태양빛은 약 10만 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뜻이다. 놀랍고 경이로운데, 한편으로 생각하면 왠지 모르게 공포스러운 느낌도 든다.

 

아폴로는 이성과 지성을 겸비한 존재로 여겨지기 때문인지 미술 작품 속에 표현된 그는 잘생긴 꽃미남이 대부분이다. 그런 이유로 여자들에게 디아나가 로망이었다면, 남자들의 로망은 태양신 아폴로였다. 가장 유명한 건 스스로를 "태양왕"이라 칭한 루이 14세다. 아폴로 마니아로 궁정에서 공연을 할 때 아폴로 역할을 맡기도 했단다. 그리고 왕족 일가를 고대 신화 속 주인공들로 그린 그림을 보면 자아가 어지간히 강했던 것 같다.(뭐, 왕이니까.)

 

 

 

PART 2 그림 속에 숨어있는 천문학: 별, 우주, 밤하늘을 그린 화가들의 이야기

 

 

지금으로부터 까마득히 먼 과거에 그려진 그림들 속에서 UFO의 흔적이 발견되어 신기하기만 했다. 우주선을 탄 사람을 그린 그림이 있는가 하면, 성모 마리아의 머리에 광선 같은 것을 쏘는 비행접시 그림도 있었다.

책을 쓴 저자는 현대의 시선으로 그림을 보기 때문에 UFO로 보일 수 있지만, 그림이 그려졌을 당시의 시선으로 본다면 다른 의미일 거라고 말했다. 현대를 살아가는 내 눈엔 영락없이 UFO로만 보인다.

 

 

르네상스를 지나 현대에 가까이 오면서 화가들의 그림 역시 상당히 바뀌었다. 신화와 종교적인 그림이 아닌, 과학의 발전에 걸맞게 그림도 조금은 과학적이었다.

 

소개된 그림 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루벤스가 그린 <달빛 풍경>이라는 그림의 밤하늘에 담긴 별자리였다. 그림 속에 담긴 별자리는 루벤스가 살았던 플랑드르 지방에서 같은 날 밤에 동시에 볼 수 있는 건 아니었다고 한다. 루벤스는 자신이 눈으로 본 별자리를 기억해뒀다가 한꺼번에 그려 넣었다.

이렇게 별자리의 모양을 정확하게 그릴 수 있었던 이유는 루벤스가 아마추어 천문학자와 교류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신의 집에 사설 관측소를 만들 정도로 천문학에 빠져 있던 니콜라 페이레스크가 천체를 관측하다 오리온성운을 발견해 루벤스에게 알려주었고, 덕분에 오리온성운을 그렸다는 일화가 흥미로웠다.

 

 

밤과 별을 유난히 사랑한 고흐 역시 등장했다. 미술 관련 책을 읽을 때마다 빠지지 않던 고흐라 이제는 그의 그림이 너무나 익숙했지만, 해류의 움직임을 이미지화한 그림이나 우주의 자기장 촬영 사진을 보니 뭔가 색다른 느낌이 들었다.

 

 

 

관심이 있는 천문학과 그림을 말하는 이 책은 읽는 내내 즐거웠다. 좋아하는 천체에 아직은 조금은 낯선 그림이 접목되어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행성 이름에 관한 것에서부터 그리스 로마 신화의 주신들, 그림이 그려지던 시대에 관한 부분까지 모두 흥미로웠다. 이 책처럼 좋아하는 분야에 낯설지만 알고 싶은 분야가 접목된 책이 있다면 읽고 싶을 만큼 만족스러웠다.

 

지식의 1+1 느낌이 나는 책이라 좋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