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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미술관 - 가볍고 편하게 시작하는 유쾌한 교양 미술
조원재 지음 / 블랙피쉬 / 2018년 8월
평점 :
품절
왠지 요즘 자주 읽는 것 같은 미술에 관한 책을 읽었다. 여태 읽은 관련 주제의 책과는 달리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화가들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화가가 겪은 사건이나 사람, 사랑으로 인해 화풍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프리다 칼로의 인생은 어릴 때부터 평탄하지 않았다. 소아마비로 성장이 멈춘 오른발을 가지고 있었고, 열여덟 살에 사고를 당해 온몸의 뼈가 으스러져 아기를 가질 수 없게 됐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사고로 의학 공부를 접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그래서 디에고를 만나게 됐다. 그걸 불행이라고 해야 할지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다. 당시 멕시코의 국민 화가라던 디에고 리베라는 희대의 바람둥이였다는데, 외모는 전혀 아니라서 대체 어떤 매력이 있길래 여자들이 그 남자에게 빠져들었는지 알 수 없다.
21살의 프리다 칼로는 43살의 디에고 리베라와 결혼한 후, 가정생활의 불행을 그림으로 남겼다. 아기를 가져보려고 애를 썼지만 사고 후유증으로 번번이 유산을 했고, 디에고는 프리다의 여동생과 불륜을 저질렀다. 프리다가 아기를 잃은 고통을 그림으로 표현한 걸 보며 디에고가 평론가처럼 말한 부분이 정말 어이없었다. 프리다를 사랑하긴 한 건가 싶을 정도였다.
그래도 남편 디에고의 유명세 덕분에 프리다가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화가가 될 수 있었던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빈센트 반 고흐가 33살의 나이에 예술을 발견하고자 파리로 향했는데, 당시 파리에서 가장 유행을 떨치던 것은 "녹색 요정"이라 불리는 술 압생트였다고 한다. 알코올 도수가 굉장히 높은 독주이고, 잡초처럼 잘 자라는 향쑥이라는 허브를 주원료로 만들었단다. 거기다 저렴하기까지 했으니 가난한 예술가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술이었을 터. 동생 테오의 후원으로 예술가 생활을 하는 가난한 고흐가 압생트에 중독되지 않을 리 만무했다.
그런데 여기서 전혀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됐다. 고흐의 그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색깔은 당연히 노란색이다. 고흐가 그 노란색을 많이 사용한 까닭은 압생트 때문이었단다. 향쑥의 주요 성분인 "산토닌(Santonin)"은 과다 복용 시 황시증이 나타난다는 부작용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고흐는 모든 사물들이 노랗게 보이는 그대로 그림으로 그려냈다.
그리고 또 다른 사실은 향쑥의 "튜존(Thujone)"이라는 성분은 뇌세포를 파괴하고 정신착란과 간질발작을 일으킨다는 것이었다. 알코올 중독이 됐을 정도였던 고흐인데, 그림을 노랗게 그리는 것도 모자라 정신착란으로 안타까운 죽음까지 이어져서 그런지 압생트가 큰일을 저질렀구나 싶다. 고흐의 마지막을 파괴한 악마 같은 술이었다.

구스타프 클림트는 황금빛으로 빛나는 그림 "키스"가 가장 유명하기 때문에 왠지 처음부터 그런 스타일이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완전히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클림트는 어릴 때부터 가난하게 살았지만 미술에 천재적인 재능이 있어서 14살의 나이에 오스트리아 최고의 명문 빈 미술공예 학교에 입학했다고 한다. 그런데 너무 가난해서 자퇴를 하려고 하니 교장이 장학금을 주며 말렸단다. 그 시기에 그린 그림이 바로 "목가"이다. 괜히 천재라고 불린 게 아닌 듯싶다.
이런 재능으로 주문을 받아 그림을 그려주는 회사를 차려 승승장구하지만, 동생과 아버지가 같은 증세로 사망을 한 이후 고전적인 화풍을 버리고 반항기가 시작됐다고 한다. 화풍을 그렇게 완전히 바꾸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 천재라 그런지 뭔가 다르긴 하다.


야수주의 앙리 마티스와 입체주의 파블로 피카소가 같은 시대, 같은 공간에서 살며 서로를 잘 알고 의식했다는 사실이 왠지 재미있었다. 서로의 아이디어도 빼앗아 그림을 그렸다. 마티스가 패턴 그림을 그리면 피카소가 패턴을 오려 붙인 그림을 발표했으니 참 유치한 것 같은데 자존심 때문에 굉장히 치열하게 경쟁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당연히 사이도 안 좋았지만, 세월이 약이라 나이가 들면서는 둘도 없는 절친이 됐다고 한다. 서로에게 윈윈이었던 동시대 라이벌인 것 같다.

바실리 칸딘스키 역시 클림트와 마찬가지로 초기 화풍은 내가 알고 있는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추상주의라고 하는 사조에 걸맞게 색과 선으로 이루어진 그림은 무얼 말하고자 하는 건지 한참을 봐야 하고, 제목을 보고 봐도 모를 때가 많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그러나 초기엔 역시나 무난하다고 할 수 있는 그림을 남겼다. 제자인 가브리엘레 뮌터와 연인으로 지내면서 연작처럼 그림을 그렸다.
문제는 칸딘스키가 유부남이었기 때문에 두 사람이 결혼할 수 없었다. 그러다 결국 이혼을 한 칸딘스키는 8년 동안 곁에 둔 뮌터를 버리고 러시아로 돌아가 51세의 나이에 24살짜리 여자랑 결혼을 했다는 점에 충격을 받았다. 저명한 예술가지만 사생활은 그랬구나 하는 생각을 참 많이 했다.
화가들의 개인적인 이야기, 화풍의 변화 등을 알게 된 책이었다. 야사를 읽는 것처럼 재미있게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