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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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자 아줌마의 집에 사는 모모는 아줌마가 매월 받는 우편환 때문에 자신을 돌보고 있다는 사실을 7살 때 알게 된다. 함께 살고 있는 아이들은 창녀가 일을 하는 동안 아줌마에게 돈을 주고 맡긴 자기 자식이고, 그 아이들은 모두 엄마가 만나러 오는데 자신을 찾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도 슬프지만 알게 된다. 거기다 자신이 몇 살인지조차 모르는 모모는 정확한 나이를 알게 되기 전까지 10살인 줄로만 알고 있다.

 

기억이 희미하게 남아있는 아주 어릴 때부터 자신을 돌보던 로자 아줌마는 이제 너무 뚱뚱해져 버렸고, 나이도 많은 할머니가 됐다. 심지어 아줌마는 몸이 안 아픈 데가 없을 정도라서 엘리베이터가 없는 7층을 오갈 수 없어 모모가 대신 심부름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로자 아줌마는 너무 아파 정신을 놓을 때가 있는데, 모모는 아줌마를 그 어디로도 떠나보내고 싶지 않다.

 

 

 

 

 

 

11년 전쯤 읽었던 책을 다시 꺼내 읽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읽은 책이라 그런지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아서 마치 처음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예전엔 별생각 없이 읽어서 더 그런 것 같다.

 

유대인 창녀였던 로자 아줌마가 나이가 든 뒤, 창녀들을 위한 탁아소 비슷한 일을 시작했다. 그곳에 가장 오래 있었던 모모는 다른 아이들처럼 입양을 가지 못하고, 그렇다고 가족이 찾아오지도 않아 반항기에 접어들었다. 집 안 아무 데나 똥을 쌌고, 밖에서는 물건을 훔쳐 가게 주인에게 뺨을 맞기도 했다. 그런 행동을 하면 로자 아줌마나 낯선 누군가가 자신에게 관심이 있는 것 같았기 때문에 일부러 그런 짓을 계속하고 다녔다.

너무 어릴 때부터 자신이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것, 심지어는 자신의 몇 살인지도 모르고 찾아오는 엄마조차 없다는 것을 깨달은 아이는 몸은 작을지언정 아이라고만 할 수 없었다. 작은 몸으로는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일부러 어린애처럼 굴면서 속을 끓이는 게 너무나 안타까웠다.

 

속은 어른이어도 어린아이 흉내를 낼 수 있었던 모모의 시간은 짧기만 했다. 대충 10살이라고 알고 있는 시기부터 모모는 로자 아줌마를 돌봐야 했다. 10살이란 나이는 어른에게 아직 보호받아 마땅했지만, 모모는 돈이 끊겨도 자신을 돌봐준 로자 아줌마가 늙고 병이 들어 이제는 자신을 돌볼 수 없다는 이유로 버리고 떠날 수 없었다. 모모에게 유일한 가족이나 마찬가지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유대인으로 아우슈비츠에 끌려갔다가 프랑스에서 불법체류자로 살며 몸을 팔고 생계를 이어갔던 로자 아줌마와 아랍계 창녀의 아들로 마음속에 늘 공허를 안고 살았던 모모가 기댈 곳은 서로뿐이었다. 모모가 백화점에서 만난 아름다운 금발 여인 나딘이 그를 위해 모든 것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모모는 혼자될 로자 아줌마를 떠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로자 아줌마의 곁을 지키며 그녀가 원하는 생의 마지막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이었다. 평생 외롭게 살았을 아줌마가 마지막까지 쓸쓸하게 병원에서 홀로 죽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다.

 

겉으로는 초라하고 외로운 삶이었을지라도 모모와 로자 아줌마는 마지막까지 서로가 곁에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말하지 않아도 원하는 걸 알 수 있었기 때문에 마음만큼은 쓸쓸하지 않았다. 비록 생을 가르는 죽음으로 인해 이제는 떨어질 수밖에 없었더라도 말이다.

 

오로지 모모의 시선으로 진행된 소설이라 때로는 너무 말썽을 부려 로자 아줌마를 힘들게 하는 그가 얄미웠다. 하지만 그런 행동은 자신에게 관심 좀 가져달라는 몸부림이라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사랑받아본 적이 없어서 이렇게라도 사랑을 받고자 하는 모모가 가여웠다.

하지만 키운 아이들 중 모모를 가장 사랑했을 로자 아줌마가 있었고, 이후엔 나딘이 모모를 사랑해 줬을 것 같아 이제는 더이상 외롭고 쓸쓸하지 않은 삶을 살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난 뭘 하기에 너무 어려본 적이 한 번도 없잖아요, 아줌마." - P255

매일 아침, 나는 로자 아줌마가 눈을 뜨는 것을 보면 행복했다. 나는 밤이 무서웠고, 아줌마 없이 혼자 살아갈 생각을 하면 너무나 겁이 났다. - P83

나는 로자 아줌마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서라면 무슨 약속이라도 했을 것이다. 아무리 늙었다 해도 행복이란 여전히 필요한 것이니까. - P203

"하밀 할아버지, 사람은 사랑 없이도 살 수 있나요?" -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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