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티투바, 세일럼의 검은 마녀
마리즈 콩데 지음, 정혜용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17세기 무렵, 바베이도스로 가는 배 안에서 아베나는 선원에게 강간당해 임신한다. 목적지에 도착해 어느 대농장으로 팔려간 아베나는 안주인의 시중을 드는 일을 하다가 임신 사실을 들켜 흑인 노예 오야에게 떠넘겨진다. 선량한 오야는 아베나를 아껴줬고, 태어난 아이에게 티투바라는 이름을 직접 붙여줬다.

가족으로 맺어진 한때의 즐거움도 잠시, 아름다운 아베나를 범하려던 주인에게 칼을 휘둘렀다는 이유로 그녀는 목이 매달렸고, 오야는 다른 농장에 팔려가는 길에 자살한다. 농장에서 쫓겨난 7살 티투바는 보이지 않는 존재들과 교감하는 만 야야가 거둬 키우게 된다.

 

어느새 세월이 흘러 사랑을 알 나이가 된 티투바의 앞에 존 인디언이 나타나 그녀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만 야야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티투바는 존과 결혼하기 위해 바베이도스를 떠나 그의 주인 엔디콧 마님이 있는 곳으로 향한다.

 

 

 

 

 

 

태생부터 평범하지 않았던 티투바의 삶이 평탄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순식간에 고아가 되었지만 다행히 그녀를 가엽게 여기는 사람의 손에 자라났으나, 남자와 함께 살기 위해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은 몸을 누군가에게 예속되는 삶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갔다. 어머니와 계부가 노예이긴 했지만 쫓겨났기 때문에 자유로이 살 수 있었던 티투바였는데, 내 눈에는 사랑 때문에 망치게 된 것처럼 보였다. 흑인 노예의 삶이 얼마나 고되고 고통스러운지 여러 기록을 통해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직 어린 그녀의 선택이 안타까울 수밖에 없었다.

 

존의 주인 엔디콧 마님의 집에서 친절과 핍박의 모호한 경계를 오가다가 그녀가 죽자, 목사 새뮤얼에게 다시 팔려간다. 새뮤얼은 목사라는 직업에 어울리지 않은 인간이었지만, 다행히 그의 아내와 딸은 티투바에게 친절했다. 하지만 새뮤얼이 세일럼 교구의 목사 자리를 맡게 되면서 티투바의 고난은 시작됐다.

티투바가 만 야야에게 배운 것들 때문인지, 아니면 애초부터 그녀가 어머니의 환영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런 이유들과 어느 순간부터 티투바만 보면 자지러지게 발작을 하며 우는 아이들의 행동이 더해져 그녀는 마녀로 낙인찍히게 된다.

그렇게 감옥에 갇힌 티투바 앞에 나타난 여인의 정체가 정말 놀라게 만들었다. 그야말로 깜짝 등장이라 이전까지는 멍하니 읽다가 유명한 소설이자 나도 읽었던 책의 주인공 이름이 언급되면서 갑작스레 흥미진진해지기 시작했다. 감옥 선배(?)이자 당시 여성으로서는 파격적인 캐릭터였던 그녀의 혜안이 티투바에게 어느 정도 도움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소설은 대체로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흘러갔다.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는 흑인 여성, 그보다 더욱 힘들었을 마녀 낙인으로 고된 삶을 보여주리라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티투바는 위기를 잘 모면했다. 행운이 따랐다고 볼 수 있었다. 마녀로 낙인찍혔을 때, 함께 감옥에 간 다른 여자들은 이미 목이 매달렸는데 티투바는 살아남아 생을 이어가고, 그토록 바라던 고향 바베이도스에 가게 되기도 했다.

이렇게 보면 진취적 여성의 삶이라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티투바는 남자 없이는 살 수 없는 여자였다. 남편이 된 존과의 쾌락에 빠져들었고, 마녀 사건 이후 감옥을 나와 많은 자식을 둔 홀아비 유대인에게 팔려갔을 때도 그와의 잠자리에 몰두했다. 그런가 하면 아내가 여럿인 흑인 남자와의 관계에 몰입했고, 결말엔 또 다른 관계도 생겨났다. 남자나 사랑보다는 쾌락에 빠져있었다고 볼 수 있었다. 그게 이상하다거나 나쁜 건 아니지만, 줏대가 없어 보여서 주인공임에도 마음이 가질 않았다.

 

당시에 실존했던 흑인 마녀에 대한 기록에서 시작된 픽션이라고 하는데, 작가의 상상력을 덧붙인 이야기가 내 취향과 맞지 않았다. 인종 차별이나 성차별에 대한 소재가 있긴 하지만 그렇게 인상적으로 느껴지지 않았고, 마녀 취급을 받은 흑인 여성의 삶에 대한 고찰을 기대했던 나 같은 사람에겐 아쉬울 소설이었다.

 

나를 노예로, 고아로, 최하층 천민으로 만든 이 사람들은 대체 뭐지? 내 동족으로부터 나를 떼어놓은 이 사람들은 대체 뭐지? 대체 누가 나와 같은 언어를 말하지 않고 나와 같은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과 어우러져, 친절과 호의라고는 찾아볼 길 없는 이런 고장에서 살아가게 만들었지? - P85

법원에서 노예의 말, 더욱이 해방 노예의 말은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가 목청이 터져라 외쳐도, 사탄이 누구인지 모른다고 주장해도 소용없을 거다. 그 누구도 우리 말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테니까.
스스로를 보호해야겠다는 결심을 한 것도 바로 그때였다. - P51

어머니는 내가 사내아이가 아니어서 울었다. 여자의 운명이 남자의 운명보다 더욱더 고통스럽게 여겨져서 그랬다. - P17

"너의 그 가련한 나리 이야기는 꺼내지 말지! 네 남자도 내 남자보다 더 나을 거 없어. 그치도 여기 와서 너의 고뇌를 나눠야 하는 거 아니야? 백인이든 흑인이든 남자들에겐 삶이 너무 잘 대해줘!" - P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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