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색 히비스커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황가한 옮김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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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지리아의 부유한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난 캄빌리는 독실한 신자인 아버지의 뜻에 따라 살고 있다. 식전 기도를 20분씩이나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저녁엔 가족 모두 모여 기도를 하며, 일요일에는 성당에 가는 것 또한 그녀에겐 평범한 일상이다. 아버지에게 사랑을 받기 위해 듣기 좋은 말과 하느님을 섬기는 말을 하며, 학교에서도 반드시 1등을 해야 하는 강박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는 여자가 어떻게 남자 옷을 입을 수 있냐는 생각을 가진 아버지로 인해 바지 한 벌 없이 온통 치마만 있다.

그리고 그런 삶을 사는 것은 어머니와 오빠 자자 또한 마찬가지였다. 결혼했을 때부터, 태어났을 때부터 그런 아버지와 살았기 때문에 그들은 그 생활을 당연하게 여겼다.

 

그러다 다른 지역에서 사는 아버지의 동생 이페오마 고모의 집에 며칠간 머물면서 오빠가 완전히 달라졌고, 캄빌리 또한 마음의 변화가 조금씩 생기기 시작한다.

 

 

 

독실한 가톨릭 가정에서 자랐다는 것은 어느 정도의 제약이 있을 테지만, 캄빌리의 일상은 그런 제약을 훨씬 뛰어넘어 여느 10대 소녀와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었다. 아버지 때문에 자유시간, 개인 시간 따위가 전혀 없었다. 아버지가 직접 일과표를 짜서 캄빌리와 자자에게 주고 따르라고 지시했고, 방학 때는 또 다른 일과표를 건네줬다. 심지어는 닷새 동안 고모네 집에 가는데도 꼭 지키라며 수정한 일과표를 줬을 정도니 아버지란 인간이 얼마나 숨 막히게 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캄빌리는 그게 억압이라는 걸 깨닫지조차 못하고 있다는 게 충격이었다.

캄빌리는 어렸을 때부터 모든 것을 통제했을 아버지로 인해 떠오르는 대로 말하기보다는 오랫동안 생각하고 말하며 아버지가 듣고 기분이 좋아질 말만 했다. 어머니나 오빠가 한 말을 자신이 했더라면 하는 생각을 할 때도 많았다. 그러나 밖에서나 학교에서,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 있을 땐 말을 더듬을까 봐 걱정되어 아예 말을 하지 않기도 했다. 아버지의 억압의 결과가 그런 식으로 캄빌리에게 나타나고 있었다. 자유롭게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에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조차 몰랐다. 심지어는 이페오마 고모의 딸 아마카가 캄빌리를 보며 일부러 도발하고 비꼬는데도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신문사와 공장을 몇 개 가지고 있을 정도로 부자인 아버지 덕분에 좋은 가톨릭 학교에 다니고 있지만, 아버지란 작자는 그걸 생색내기를 좋아했다. 자신이 어렸을 때는 공부가 하고 싶어도 가난해서 하지를 못했다고 하면서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살면서 공부를 하면 당연히 1등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그런 사고방식은 다른 데에서도 드러났다. 학교나 성당에 기부금을 많이 내고 신부가 그걸 신도들 앞에서 대놓고 말하는 것을 흐뭇해했고, 크리스마스마다 가는 별장에 마을 사람들이 찾아오면 음식을 가져가게 하고 직접 돈을 주기도 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베푸는 모습이 너무 노골적이긴 했지만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거부감을 느끼지는 않았다.

하지만 가톨릭 외의 이교도가 관련되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 자신의 아버지가 다 쓰러져가는 집에서 가난하게 살고 먹는 것도 영 시원치 않은 것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오래전 부족 생활에서부터 시작됐을 전통적인 것을 숭배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캄빌리와 자자에게도 할아버지 집에 가서 15분 이상 머물지 말고, 할아버지가 주는 그 어떤 음료, 음식을 먹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렇게 사는 걸 당연하게 여겼던 캄빌리가 고모의 집에서 고모의 아이들과 어울리며 고모 가족과 가까운 신부님을 통해 새로운 것들을 몸소 체험하면서 달라졌다. 그녀에게도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기회가 보이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이후 아버지가 생각보다 더 끔찍한 인간이었다는 걸 알 수 있는 사건이 몇 차례 등장했다. 자식들을 벌주는데 그건 벌이 아닌 고문이었다. 그리고 병원에 실려갈 때까지 맞고 밟히기도 했으며, 어머니는 더 끔찍한 일을 겪었다. 모든 걸 하느님의 이름을 빌려서 하고 있다는 게 어이가 없었다. 아버지란 작자의 하느님은 그에게 그런 권한을 주지도 않았고 줄 수도 없었을 텐데 말이다. 신의 대리인인 양 행동하는 게 너무나 혐오스러웠다.

 

그리고 아버지의 모습은 시대를 특정하지 않은 나이지리아 사회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권을 잡은 독재자가 입맛에 맞지 않는 기사를 쓴 기자를 잡아가고, 폭탄을 소포로 보내고, 교수형에 처한 시신에 산성 용액을 뿌리고 매장했다는 건 실제로 나이지리아에서 일어났던 사건이라는 설명이 있었다.

아버지는 민주주의에 대한 기사를 싣는 기자를 보호해주고 사람들에게 베풀고 후원하는 등 대외적으로는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으나, 가정 내에서는 독재자나 다름없었다. 마치 외국에는 좋은 면을 보여주려고 하면서 내부적으론 곪아서 문드러진 사회의 축소판이라 느껴졌다.

 

이런 사회, 사람의 마지막은 언제나 정해져 있다는 게 당연했지만, 모두에게 좋은 결말은 아니라서 씁쓸하게 만들었다. 선택은 하나뿐이었고 그 방법 외에는 아버지란 사람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는 게 안타까웠다.

 

그렇게 해서 얻게 된 자유를 아직은 제대로 누리지도 못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조금씩 달라질 것 같다는 점에서 캄빌리와 오빠 자자, 어머니에게도 희망적인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캄빌리의 성장은 주변에서 먼저 시작되어 그녀 스스로 깨달아가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벗어난 이후에도 여전히 정신적인 성장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다른 성장 소설의 주인공들과 달랐다.

하지만 희귀한 보라색 히비스커스 꽃처럼 언젠가는 예쁘고 자유롭게 활짝 피울 인생을 살게 되지 않을까 싶다.

"네가 원하는 건 뭐든 할 수 있어, 캄빌리." - P290

"파파은누쿠는 이교도가 아니야, 캄빌리. 할아버지는 전통주의자란다." 이페오마 고모가 말했다.
나는 고모를 빤히 쳐다봤다. 이교도든 전통주의자든 무슨 상관인가? 파파은누쿠는 가톨릭이 아니었고, 그거면 충분했다. 할아버지는 신자가 아니었다. 할아버지는 영원한 지옥 불에서 고통받지 않도록 개종하라고 우리가 기도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 P107

"고학력자들, 잘못된 것을 바로잡을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떠나. 약자들을 남겨 두고 가지. 독재자들은 계속 군림해. 약자들이 저항하지 못하니까. 너는 이게 순환 고리란 걸 모르니? 대체 누가 이 고리를 끊겠어?" - P296

지금 내게 오빠의 반항은 이페오마 고모의 실험적인 보라색 히비스커스처럼 느껴졌다. 희귀하고 향기로우며 자유라는 함의를 품은. 쿠데타 이후에 정부 광장에서 녹색 잎을 흔들던 군중이 외친 것과는 다른 종류의 자유. 원하는 것이 될, 원하는 것을 할 자유. -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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