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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평화 1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53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연진희 옮김 / 민음사 / 2018년 6월
평점 :
베주호프 백작의 사생아 피에르는 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아버지 쪽 친척 관계인 바실리 공작의 집에서 지내고 있다. 그는 페테르부르크에서 안나 파블로브나가 운영하는 귀족 살롱의 야회에 처음으로 참석하게 된다. 유학 생활을 오래 한 피에르는 귀족 사회에 대해 잘 모르는 탓인지 그곳에 모인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그가 하는 말은 때로 폭탄이 되기도 한다. 거기다 사생아라는 소문이 파다했기에 그를 제대로 대접해주는 사람도 별로 없다.
그러다 베주호프 노백작이 임종에 가까워지면서 마지막으로 작성한 유언장에 피에르에게 유산을 몽땅 물려준다고 적혀있다는 걸 알게 된 바실리 공작과 피에르의 사촌인 카티시가 유언장을 빼돌리려고 한다. 마침 그 사실을 눈치챈 안나 미하일로브나 공작 부인의 재빠른 행동으로 그 일은 무마되고 피에르는 사생아에서 정식 아들로 인정받아 모든 유산을 상속받는다.
안드레이 볼콘스키 공작은 친구 피에르와 단둘이 있을 때 절대로 결혼하지 말라는 말을 한다. 그리곤 안드레이는 임신한 아내를 아버지와 여동생이 사는 시골집에 맡겨두고 몇 번째인지 모를 전쟁터로 떠난다.
바실리 공작에게 아들을 근위대에 넣어달라고 부탁한 어머니 안나 미하일로브나 덕분에 보리스 역시 전쟁터로 떠나고,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니콜라이 로스토프 백작 역시 참전하게 된다.
읽겠다고 메모해놓은 <전쟁과 평화>를 드디어 읽기 시작했다.
한국 소설보다는 외국 소설을 더 많이 읽는 편이고, 가끔씩 고전도 읽긴 하지만 러시아 문학과는 정말 안 친하다. 책에 관심을 갖고 독서를 취미로 삼은지 15년은 된 것 같은데 단 두 권의 러시아 문학만 읽었다.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과 <지하로부터의 수기>이다.
왜 러시아 문학을 가까이할 수 없었는지는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새삼 알 수 있었다. 이름에서 오는 어마어마한 장벽 탓이었다. 이름이 길고 발음하기 어려운데 부칭과 서너 가지 정도 되는 애칭까지 있어서 한 사람을 부르는 이름이 여러 가지이고, 등장인물의 이름이 겹치다 보니 헷갈려서 소설 앞에 등장인물 소개 페이지를 뒤적이며 읽어야 했다. 거기다 이름은 두 글자인데 애칭이 네 글자까지 되어 왜 그런지 이해할 수 없게 만들었다. 줄여 부르는 게 애칭일 텐데 당최 왜 네 글자나...
아무튼 소설 초반을 읽으면서 이놈의 이름 때문에 포기하고 싶었던 적이 10번은 넘었는데 읽다 보니 적응하게 됐다. 그리고 등장하는 모든 인물에 집착하는 경향을 좀 내려놓으니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
1권일 뿐인데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등장해 저마다의 시점으로 상황을 보여주곤 했지만, 주요 인물은 피에르와 안드레이, 니콜라이, 보리스 정도인 것 같다. 안드레이를 제외하고 비슷한 연령대인 20살 안팎의, 각각 다른 환경에서 자란 남자들이었다.
피에르는 사생아라는 태생의 결함이 있으나 오랜 유학 생활 탓에 다소 분위기 파악을 못 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폴레옹이 러시아를 비롯한 여러 나라와 한창 전쟁 중인 와중에 그를 칭송하는 말을 했으니 말이다.
귀족들은 이런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비웃기도 했으면서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아 젊은 백작이 된 이후에는 180도 다른 행동을 보였다. 지위와 돈이 그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게 현실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비굴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특히 바실리 공작이 자기 딸과 결혼시키려고 안달을 하는 모습이 어이없었다.
이런 와중에 아무것도 모르는 피에르는 찜찜한 것 같으면서도 바실리의 딸 엘렌의 아름다움에 반해 등 떠미는 대로 가게 된다. 이 젊은 백작이 얼마나 휘둘릴지 벌써부터 암울했다.
피에르에게 결혼하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전쟁터로 향한 안드레이는 아내를 대하는 태도와는 다르게 전쟁터에서 자신이 맡은 의무에 충실했다. 성격상 결혼보다는 일에 더 잘 맞는 것 같았다. 1800년대 초를 배경으로 있고, 어느 정도 가부장적인 공작의 아들이기 때문에 안드레이는 결혼을 피할 수 없었을 터였다. 그래서 잘 안 맞는 결혼생활을 피하기 위해 국가에 충성한다는 대의를 내세워 전쟁터로 계속 향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재미있던 것은 안드레이의 아버지 볼콘스키 노공작이 딸 마리야의 결혼에 대해서는 의외의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매일같이 정해진 시각에 딸을 공부시키고 억압하는 모습을 보였던 그는 아버지 바실리에게 떠밀려 마리야에게 청혼을 하겠다고 찾아온, 놀고먹으며 여자를 좋아하는 아나톨을 싫어했는데, 딸에게 여자는 스스로 남편을 선택해야 한다는 말을 했다. 여성에 대한 보수적인 시각이 만연한 시대에 의외의 인물이 보여준 의외의 생각이었다. 그래서 좀 놀라웠다.
공작이지만 가난했던 보리스는 어머니가 비굴하게 청하여 근위대로 들어간 후, 출세에 대한 욕망을 드러냈다. 높은 사람의 곁에서 조금 더 중요한 일을 하기를 바랐던 보리스는 안드레이 덕분에 장군을 만나긴 하지만, 상황이 급변하여 아직까진 있던 자리에 만족해야 했다.
그리고 로스토프는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않았다. 보리스와 친구라는 점과 안드레이가 로스토프를 싫어한다는 점이 밝혀졌다. 그리고 군주에 대한 충성심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는데, 행동은 재빠르지 않은 걸 보면 약간 우유부단한 것 같으면서 또 어떤 사건을 보면 성격이 좀 있는 것 같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