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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일런트 페이션트
알렉스 마이클리디스 지음, 남명성 옮김 / 해냄 / 2019년 5월
평점 :
품절

결혼한 지 7년째 됐을 때, 앨리샤는 남편 가브리엘을 총으로 쏴 죽였다. 총성을 들은 이웃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현장에서 본 것은 거실 의자에 손목과 발목이 묶인 채 얼굴에 여러 발의 총을 맞아 엉망이 된 가브리엘이었다. 그리고 앨리샤는 양 손목에 난 깊은 상처로 많은 피를 흘리고 있었는데 그녀를 살리려는 경찰에게 격한 저항을 했지만 살아남았고, 그 후로는 말을 하지 않았다. 정신질환 범죄자 감호 병원 그로브에서 지내게 된 앨리샤는 6년의 시간이 흘러도 입을 열지 않는다.
앨리샤의 사건에 처음부터 관심을 갖고 있던 범죄 심리상담가 테오는 그로브에 공석이 나서 지원을 하고 그곳으로 옮겨 일을 시작한다. 책임자 디오메디스의 동의하에 앨리샤와 상담을 시작한 그는 말은 물론 반응도 전혀 없는 그녀에게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며 어떻게든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하려고 애를 쓴다.

남편을 죽인 게 분명한 사건 현장에서 체포되었으나 그 어떤 자기변명도 하지 않고 입을 닫아버린 앨리샤였다. 대신 그녀는 화가답게 그림을 하나 그렸는데 제목이 그리스 신화의 "알케스티스"였다. 남편 아드메토스 대신 죽은 알케스티스를 헤라클레스가 살려냈지만 말을 하지 않았다는 내용이 인용되어 있었다. 이야기는 들어봤으나 이름을 몰랐었는데, 알케스티스가 앨리샤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는 결말에 밝혀졌다.
몇 년이 지나도 입을 열지 않는 앨리샤에 대한 언론의 관심은 꺼졌지만, 테오는 그녀와 상담을 하기만을 고대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로브로 옮기게 된 후에 상담을 시작하지만, 앨리샤는 약 기운 때문에 멍한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담당 의사 크리스티안에게 약을 줄여달라 부탁을 했고, 그 후의 상담에서 앨리샤는 테오의 목을 졸랐다. 그래도 테오는 앨리샤를 포기하지 않으며 그녀의 변호사이자 남편 가브리엘의 형 맥스, 그림 관련 대리인이자 친구인 장 펠릭스, 사촌 폴 등을 만나며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한편으로는 테오의 개인적인 이야기도 상당 부분 등장했다. 아내 캐시와 관련된 것과 심리상담가임에도 마리화나를 몰래 피운다는 것, 그리고 아버지에게 학대당한 어린 시절에 대한 내용이었다.
사건과 깊이 관련 있는 앨리샤가 말을 하지 않아서 사건 발생 전에 쓴 그녀의 일기가 중간중간 등장했다. 앨리샤가 부모와 관련하여 겪은 끔찍한 사건으로 정신적으로 힘든 때가 있었고, 사건 직전에는 누가 집을 염탐하고 있다는 말 때문에 정신과 의사를 만나게 되기도 해서 앨리샤의 경험이나 생각을 온전히 믿을 수는 없었다. 그런데 앨리샤는 그렇다 쳐도 테오조차 믿을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마리화나를 피운 테오가 목격하거나 행동하는 것들이 실제로 일어났던 일인지 아니면 환각이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신뢰할 수 없는 사람들이 이끌어가는 내용에는 당연히 반전이 있었는데, 사실 어느 정도 눈치는 챘었다. 소설이 중반을 넘어간 후, 어떤 부분에서 저 사람이 앨리샤의 사건과 관련된 인물이 아닐까 싶었는데 적중했다. 특정 소재에 집중하면 금세 눈치챌 수 있는 부분이긴 했다.
그래도 입을 닫았었던 앨리샤가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바뀌어 결말이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었다.
다 읽고서 생각해보니 앨리샤가 참 안타깝고 가여웠다. 부모부터 시작해서 남편과 남편의 형에다가 친척, 친구, 이웃까지 모두 그녀를 힘들게 했으니 말이다. 시점에 따라 앨리샤에 대한 평가도 각양각색이라 그녀를 나쁜 년이라고 부른 사람도 있었지만, 마지막에는 앨리샤를 가엽게 여길 수밖에 없었다. 인복이 참 없었다.
작가의 데뷔작이라는 이 책은 역시나 영화화가 될 예정이라고 한다. 그것도 브래드 피트의 제작사인 "플랜 B"에서 말이다. 왠지 영화로 보면 더 재미있을 것 같은 소설이라 기대가 된다.
우리는 스스로 상처를 입었기 때문에 이런 직업에 끌렸다. 스스로를 치료하기 위해서 심리학을 공부한다. 이런 점을 인정할 준비가 되었느냐 여부는 또 다른 문제다. - P29
그렇게 오래 약물을 복용했는데, 그렇게 많은 짓을 저지르고 참아낸 앨리샤의 파란 눈은 여름날처럼 맑고 구름 한 점 없었다. 그녀는 미치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떻게 된 거지? 그녀 눈에 보이는 표정은 뭐지? 뭐라고 설명해야 옳은 걸까? - P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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