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개의 고양이 눈 - 2011년 제44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최제훈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차례 및 간략한 내용

 

여섯번째 꿈 연쇄살인범에 대해 말하는 인터넷 카페 "실버 해머" 회원 중 운영자 "악마"의 특별한 선택을 받은 여섯 명이 어느 산장에 모였다. 눈이 내리기 시작할 무렵 뒤늦게 도착한 마지막 사람까지 여섯 명 모두가 산장에 모이자, 할 게 없었던 그들은 산장에 있는 온갖 비싼 술을 마시며 살인자에 관한 토론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밤이 늦어 다들 여섯 개의 방으로 흩어져 잠에 빠진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어떤 비명을 들은 사람들은 어느 남자 회원의 방 앞에 모이게 된다. 남자 회원의 뒤통수는 함몰되어 있었고 베갯잇에는 새빨간 핏자국이 있었다. 사람들은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들이 가져온 차 배터리는 모두 방전되었고 바깥은 눈보라가 휘날리고 있다. 거기다 어젯밤에는 잘만 되던 핸드폰은 통화권 이탈이라는 표시만 떠 있다.

어쩔 수 없이 산장에 남아있게 된 다섯 사람은 하나둘씩 죽음을 맞이하는데...

 

복수의 공식 침대에 누워있는 사내의 곁에서 어떤 남자가 그에게 근육 이완제를 주사했다고 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남자의 아버지는 간질로 발작을 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에게도 간질 증상이 있었기 때문에 걱정이 된 어머니는 남자의 쌍둥이 여동생에게 엄마가 일하는 동안 오빠를 잘 보살펴야 한다고 주의를 줬다.

성인이 되어 남자는 의대에 진학하고, 여동생은 배우가 되기 위해 오디션을 보러 다닌다. 여동생이 산장을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두 번째로 죽는 여자 역할을 맡게 되어 기뻐하던 날 밤, 집에 도둑이 들었다. 여동생은 강간당했고, 남자는 하필이면 그때 간질 발작이 일어나는 바람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얼마 뒤, 여동생은 자살을 했다.

 

π 일본 소설을 번역하는 M은 아무도 모르게 단어를 하나씩 바꾸곤 했다. 소설 주인공이 마시는 커피를 밀크티로 바꾸는 사소한 것이었다.

그런 그가 어떤 여자와 동거를 하게 된다. 지갑을 깜빡한 그의 술값을 대신 내준 아름다운 여자에게 돈을 갚겠다고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말하자, 그녀는 그의 집에 들어와 살게 된다.

한동안 일이 끊겼었던 M은 오랜만에 일본 미스터리 소설 시리즈의 번역을 맡게 된다. "실버 해머"라는 인터넷 동호회의 회원들이 외진 산장에 모인 이야기였다. 함께 사는 동안 M의 책장에 있는 책을 모두 다 읽은 그녀는 이젠 그가 번역하는 족족 출력된 A4 용지를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날 밤부터 그녀는 M에게 아주 긴 이야기를 들려준다. 폐쇄된 미로에 빠진 남자에 대한 이야기였다.

 

일곱 개의 고양이 눈 도서관에서 책을 읽던 남자는 서가 쪽으로 기어가는 송충이 한 마리를 바깥에 내보내주려다가 송충이의 선택을 받은 책을 읽게 된다. 미스터리 클럽 Q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이라는 책이었고, 저자는 "π"라고만 되어 있었다. 남자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연극배우 유미미는 공연을 끝내고 술을 마시고 빗길에 운전을 하다가 어떤 남자를 들이받게 된다. 남자는 세게 부딪치지 않았다면서 병원에 가자는 그녀의 말을 한사코 거절했다. 남자가 병원 대신 자기 집까지 태워다 달라고 말하기에 유미미는 뒷좌석에 태우고 그가 말하는 곳으로 향한다.

 

 

 

읽을 책을 메모해둔 어플에 오래전부터 담아둔 목록을 내가 정한 순서에 맞게 읽어나가던 중, 다음 차례인 이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왔다.

작가의 책은 딱 한 권, <퀴르발 남작의 성>만 읽었다. 아마 그 책을 정말 재미있게 읽고선 이 책도 읽어보겠다고 메모해둔 것 같은데, 그게 벌써 4년 전이었다. 재미있게 읽었다는 기억만 있고 내용은 가물가물 잘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인지 이 책도 별 기대 없이 읽기 시작했다.

 

단편인데 옴니버스인 것 같기도 하고 연작소설인 것 같기도 했지만, 메타픽션에 가까웠다. 내가 읽은 책 중, 다니엘 켈만의 <명예>, 정세랑 작가의 <피프티 피플>과 비슷했다. 두 소설 모두 정말 재미있게 읽었던 터라 이 소설도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드라마 장르였던 두 작품과는 달리 이 소설은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라서 읽는 동안 몇 번이나 소름이 돋고 오싹했다.

 

첫 번째 이야기인 <여섯번째 꿈>의 내용은 알 수 없는 살인이 일어나는 내용이었지만, 다른 소설에서도 많이 접했던 분위기라 별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두 번째 이야기인 <복수의 공식>에서부터 내게 익숙했던 소설 형식이 완전히 파괴되어 희열을 느꼈다. 이란성 쌍둥이, 간질에 관한 설정을 비롯해 앞서 등장한 이야기의 캐릭터에 관한 사소한 내용이 언급되어 소설의 늪에 빠지고 말았다. 그런가 하면 <π>에서 역시 앞에서 읽은 설정들이 등장했고, 동거하는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그야말로 빠져나올 수 없는 미궁이었다.

 

어떻게 이런 소설을 쓸 수가 있는지 정말 놀랍다. 시간순으로 흐르거나 과거 회상 정도가 등장하는 평범한 소설이 아닌, 앞의 내용을 찾아보게 만드는 이야기이자 빠져나올 수 없어서 두려워야 하는데 도리어 재미있기만 한 미로였다. 여태까지 이 소설을 왜 안 읽고 목록에 저장만 해뒀는지 나 자신이 실망스럽기까지 했다.

 

형식을 파괴하는 소설은 1년에 한 권정도 읽는 것 같은데, 드물게 읽어서 그런가 정말이지 너무 재미있게 읽었다. 아무 정보도 없는 상태에서 읽어야 이 소설을 더욱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도 최소한의 줄거리만 썼는데, 꽤 많이 쓴 것 같지만 저건 일부에 불과하다고 말하고 싶다. 이 소설은 직접 읽어야 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올해는 작년보다 많은 책을 읽었지만 독서 목록 중 베스트로 뽑은 책이 열 권이 채 되지 않은데, 세밑에 한 권 더 추가할 수 있어 정말 기쁘다. 취향에 맞는 좋은 책을 읽어서 기분이 좋다.

폐쇄된 미로에 갇힌 사람은,
얼마나 헤매어야 그 미로가 폐쇄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될까? <π> - P170

"혼란스러웠어. 자신을 둘러싼 모든 걸 의심해야 했으니까. 그렇게 의심하는 나 자신까지도 의심해야 했으니까." <π> - P266

"누구든 상관없어. 그 여자는 이야기를 만들어줄 숙주가 필요할 뿐이거든.
(……중략)
그녀가 원하는 건 오직 하나뿐이야. 완성되는 순간 사라지고, 사라지는 순간 다시 시작되는 영원한 이야기." <π> - P257.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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