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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 있는 서점
개브리얼 제빈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10월
평점 :

매사추세츠 주 남쪽의 항만 도시에서 페리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앨리스 섬에는 서점이 딱 하나 있다. "아일랜드 서점"이라는 이름의 그곳은 39살의 A. J. 피크리가 혼자 경영하고 있다. 서점은 베스트셀러나 유명한 작가의 책을 들여놓는 게 아닌 오직 주인 에이제이의 취향에 맞는 책들만 있었다. 정말이지 너무 까다로운 사람이라 그곳을 처음 찾은 출판사 영업사원 어밀리아는 질색하며 그곳을 떠났다.
책 취향만큼이나 성격도 까탈스러운 에이제이는 에드거 앨런 포의 희귀 시집을 잃어버린 뒤, 은퇴를 포기하고 열심히 서점을 운영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다. 건강도 챙기기 위해 달리기를 시작한 에이제이는 열쇠가 딸랑거리는 게 싫어서 문을 잠그지 않고 뛰고 온 어느 날, 서점 안에 웬 아기가 있는 걸 발견한다. 25개월 된 마야라는 이름의 그 아이는 아이의 엄마가 잘 키워달라는 편지와 함께 서점에 두고 간 것이었고, 곧바로 그녀는 등대 근처에서 시체로 발견되어 아이는 사회복지사를 통해 입양을 가야 할 처지가 된다.

작은 섬에 하나뿐인 서점이라는 배경은 흥미를 불러일으켰는데, 서점 주인 에이제이의 모습 때문에 서점에 대한 기대가 뚝 떨어지고 말았다. 이건 나뿐만이 아닌 출판사 직원 어밀리아도 마찬가지였다. 에이제이는 책 취향만큼이나 까칠한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는 사람이었다.
이런 그에게도 사정이라는 게 있었다. 1년 반 전, 임신 두 달째이던 아내 니콜이 섬으로 들어가는 페리를 타기 위해 차를 몰고 오다가 호수에 빠져 사망했다. 에이제이의 성격이 원래 그랬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영향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인스턴트로 끼니를 때우고 매일 술을 마시셨고, 아내 없이 아내가 태어난 곳에서 살며 서점을 운영하는 게 그에게는 몹시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여차하면 희귀본 시집을 경매에 팔고 떠나려고 했는데, 도둑을 맞아버렸으니 그냥 살아야겠다고 마음먹게 된다. 그 후 갑자기 생긴 아기 마야로 인해 에이제이의 성격이 조금씩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렇게 차가운 사람이 생전 처음 보는 아기와의 만남으로 달라진다는 게 조금 의아하긴 했지만, 마야의 등장 이후의 에피소드들이 재미있어서 웃으면서 읽었다. 그리고 때로는 뭉클하고 따뜻하기도 했다. 아내 없이 혼자 남겨진 에이제이와 엄마가 버리고 간 마야가 낯선 서로에게 적응해가고 진짜 가족이 된 이후,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도 이전과는 달라졌기 때문이었다. 에이제이가 마야를 위해 서점에 동화책을 들여놓고, 여러 사건으로 가까워진 경찰 램비에이스를 위해 경찰 스릴러도 구비해두며, 그렇게 싫어하던 북클럽도 후원한다. 한 사람, 그것도 이제 겨우 말을 시작한 작은 아기로 인한 기적 같은 변화였다. 아무래도 같은 상처를 가진 두 사람이라 변화시킬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소설은 가족이 되는 에이제이와 마야의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에이제이가 어밀리아에게 어느새 사랑을 느끼게 된 모습과 죽은 니콜의 언니 이즈메이 부부에 관한 비밀도 후반에 드러났다. 그리고 도둑맞은 희귀본 시집의 행방 역시 후반에 알 수 있었다.
후반에 등장한 비밀들이 꽤나 놀라운 것들이라 읽는 내내 당황했었다. 이게 뭔가 싶어서 계속 놀랐었는데, 진짜로 놀라야 할 일은 마지막에 하나 더 있었다. 이렇게 끝을 내는 게 너무나 안타까웠었다. 굳이 이렇게 해야 되나 하는 생각도 했다.
근데 생각해보면 주인공은 사람이 아닌 서점이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섬에 딱 하나 있는 서점, 휴가철에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서점, 마을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게 된 서점이었다. 장소가 모든 것을 추억하는 의미의 결말이었다.
서점이 배경이라 책에 대해 말하는 부분이 많이 등장하는데, 가끔씩 읽은 책이 언급되면 반갑고 재미있기도 했다. 까탈스러운 책 취향의 에이제이가 요 네스뵈의 "해리 홀레 시리즈"를 인정한 부분이나 경찰과 도넛에 관한 클리셰가 그랬다.
시대가 발전해 사람들이 종이책보다 전자책 단말기를 선호한다는 부분은 왠지 씁쓸했다. 나도 전자책은 한 번도 안 읽어봐서 에이제이에게 공감이 됐다. 전자책이 편리하고 가지고 다니기에도 편하겠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많은 애서가들이 단말기로 읽는 전자책보다는 종이의 질감을 느끼며 책을 읽을 수 있는 방식을 더 선호하지 않을까 싶다.
아쉬운 부분이 있기도 했지만 행복을 주는 따뜻한 에피소드 덕분에 즐겁게 읽었다.
"세상 참 재미있어요, 그죠? 어떤 놈은 책을 훔쳐 가고, 또 어떤 놈은 아기를 두고 가고." - P70
인간은 홀로 된 섬이 아니다. 아니 적어도, 인간은 홀로 된 섬으로 있는 게 최상은 아니다. - P296
이런 서점들이 있는 한, 출판업은 오래도록 이어져갈 거라고 확언한다. - P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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