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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측 죄인
시즈쿠이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6월
평점 :
품절
70대 노부부가 자택에서 칼에 찔려 잔인하게 살해된 사건이 일어난다. 부부를 살해하는 데 사용된 칼은 날이 잘려 부인의 등에 박혀 있었고 손잡이 부분은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부부의 신변을 조사한 결과, 근방에 세를 준 집에 집세를 직접 받으러 다녔고 여러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며 차용증을 썼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부부가 현금을 집에 보관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면식범의 소행이라 보고 경찰은 수사를 시작한다.
베테랑 모가미 검사는 검사가 된 지 몇 년 되지 않은 오키노 검사를 보조로 두고, 노부부 살해 사건에 관한 조사 자료를 살펴보다가 어쩐지 익숙한 이름을 발견한다. 노부부에게 돈을 빌린 차용증에 쓰인 "마쓰쿠라"라는 이름이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던 모가미는 그가 23년 전 자신이 대학생 때 살던 기숙사 관리인의 딸을 목 졸라 살해하고는 증거 부족으로 풀려난 바로 그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때부터 모가미는 공소시효가 끝나 처벌할 수 없는 마쓰쿠라를 이번 사건의 범인으로 만들려고 한다.
마쓰쿠라에게 살해당한 유키는 당시 중학교 2학년의 나이로 모가미가 기숙사에 살 때 공부를 봐주며 예뻐했던 아이였다. 그 아이가 살해됐다는 게 밝혀진 뒤, 기숙사에 함께 살았던 같은 과 선배들과 슬퍼하면서 분노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오키노에게 취조를 받던 마쓰쿠라가 공소시효가 끝난 당시 사건을 인정했다는 걸 알게 된 모가미는 치를 떨지만, 법으로만 범인을 처벌하는 일을 하고 있는 그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도 그는 이번 사건의 범인을 반드시 마쓰쿠라로 만들어야 했다. 다행히 모가미가 그 기숙사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수사진들 중에는 없었다. 당시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이 이번 사건에도 합류하게 되면서 모가미는 티 나지 않게 그 경찰을 부추기며 마쓰쿠라를 범인으로 몰고 가는 데 동조하게 했다.
일본도 우리나라와 법체계가 비슷했다. 우리나라는 2015년 살인죄 공소시효가 폐지됐는데, 일본은 조금 앞선 2010년에 폐지가 됐다.
그런데 공소시효가 만료된 이전 사건의 범인을 이제서야 잡게 됐다면 어떨까. 최근 화성연쇄살인범이 밝혀졌지만, 이미 만료가 된 사건이라 어떻게 처벌을 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 소설이 흥미로우면서 한편으로는 분통을 터트리며 읽었다.
마쓰쿠라라는 이 쓰레기가 반성의 기미를 보였다면 이 정도까지의 감정은 들지 않았을 텐데, 그는 유키 사건을 자백하면서 어린 소녀를 상대로 더러운 소리를 지껄이며 태생부터가 재활용이 불가능한 쓰레기라는 것을 스스로 보여줬다. 이런 놈이 당시엔 끝까지 억울하다는 말을 하며 증거나 알리바이 때문에 풀려났다니 욕도 아까울 지경이었다. 내가 이런 감정을 느끼는데 사건의 아이와 관련 있던 모가미가 이 인간을 처벌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게 당연했다.
처음엔 그에게 혐의를 두고 주요 용의자로 몰아가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진짜 범인이 나타나면서 손이 더러워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검사로서 해서는 안 될 짓까지 저지르고야 만다. 모가미가 그런 행동을 하는 게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법으로 먹고사는 검사라 그 누구보다 법의 판결을 따라야만 했지만, 감정은 그렇게까지 딱 잘라낼 수 없었다. 어린 여자아이를 성폭행하고 얼마 뒤에 죽여놓고선 억울하다고 호소하다가 그 어떤 처벌도 받지 않고 법망을 빠져나가 공소시효 때문에 이제는 처벌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면 얼마나 분통이 터질까. 돈만 있다면 킬러라도 고용했겠지 싶다.
법이 정의로워야 하는데 이런 경우를 보면 정의롭지 않다 못해 허점 투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허점이 있다는 걸 아는데도 쉽게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억울한 사람들만 늘어날 뿐이었다.
비슷한 상황이 지금 우리나라에 일어나고 있으니 읽는 내내 답답했다. 그래서인지 모가미의 행동이 조금은 이해가 됐다.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었지만, 노부부 살인자와 마쓰쿠라 두 사람 모두 어떻게 해서든 벌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결말은 답답함에 돌덩이를 더 얹어주고야 말았다. 사람의 인성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준 것도 모자라 안타까움에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누구를 위한 법인지 도통 모르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살인자는 사람이 아니니 인권에 기초한 법이 아닌 죄 그 자체에 무게를 두는 법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다. 미국처럼 감옥에서 몇 백 년 동안 나올 수 없는 판결을 내리던지, 아니면 어느 나라처럼 교도소를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만들던지, 그것도 아니면 사형제도를 집행하던지 했으면 좋겠다!!!
너무 짜증 나고 화딱지 나는 내용이었지만 소설은 재미있었다. <불티>도 재미있게 읽었는데 작가가 글을 참 잘 쓴다.
"마쓰쿠라와 누명을 쓴 보통 사람의 다른 점은 그가 과거에 살인 사건을 저질렀다는 거예요. 게다가 시효가 성립되어 처벌을 받지 않았죠. 그래서 이 녀석이라면 죄를 뒤집어씌워도 상관없겠다는 마음이 든다는 것, 그게 마쓰쿠라의 약점인 것 같아요." - P385
"자네들은 손에 검 한 자루를 들고 있어. 법률이라는 검이지. 그건 아주 잘 드는 진검이야. 법치국가에서는 최강의 무기라고 봐도 돼. 조폭 두목도 그 칼끝을 보면 벌벌 떨지. 법조인은 그 검을 무기 삼아 사람을 심판하는 일을 해. (……중략) 방심은 하지 말 것. 자네들이 의지하는 그 검이 만능이라는 생각은 버리는 편이 좋아. 극악한 괴물을 상대하면 어찌해야 할지 모를 때도 있을 거야. 그렇지만 두려워만 해서는 아무 결과도 나오지 않지. 검을 든 자는 용자여야 해. 싸워야 하지." -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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