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창을 두드리는 그림 - 수도원에서 띄우는 빛과 영성의 그림 이야기
장요세파 지음 / 파람북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호석 화백의 날카롭고도 예리한 그림 세계를 장요세파 수녀의 따뜻한 시선으로 수려한 글솜씨로 풀어낸 <모자라고도 넘치는 고요>를 읽은 적이 있어, 다른 세계 명작들을 대하는 수녀님의 또다른 이야기가 최신작으로 나왔다는 반가운 소식을 접했습니다.

예수와 성모 마리아 그리고 유다의 배신에 관한 그림이 주를 이루는 1장 저렇게 무력한 이를 따를 것인가? 에서 장요세파 수녀님은 고요한듯 충격에 어떤 그림을 바라보기도 하고 허공 같은 것이 아닌 꽉 찬 것을 느끼는 고요한 체험이었다고 말합니다. 바라보는 이들 혹은 모든 인간들의 고통을 짊어지고 로마군에 끌려갔던 예수를 그린 그림들이 많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특히 부활한 예수를 그리는 그림이 보통 환한 빛을 그리지만, 빛도 없고 아예 어두운 표정의 독특한 <부활의 얼굴>(김호원, 2009)에서 그의 부활은 화려한 빛으로 가득찼다기 보다 왕의 모습이라기보다 평범한 정원지기나 행인의 모습이라는 해석을 떠올리며, 인간의 모습마저 감추고 우리 자신인 듯한 얼굴을 하고 있다고 느끼게 한 그림을 소개합니다. 나뭇가지, 죽어가는 생명체, 버림받은 이들이 예수의 몸을 이루었다는 듯이 말입니다.한 편의 시를 보듯, 덴마크 근대의 대표 화가 빌헬름 하메르스회의 그림에서 수녀의 묵상이 이어집니다. 10년 이상 은둔하며 집의 내부 그리고 자신의 여동생, 어머니, 아내 등을 등장인물로 한 이 화가의 그림이 바로 이 책의 표지에 등장하는 '(창)마음을 두드리는 그림 중의 하나이겠지요?

화려함이 배제된 단순한 건물, 공간 자체가 주인공으로 빈 공간은 침묵으로, 영적인 것은 비어가는 현대인의 정신적 공황을 말하는 것으로 읽어냈습니다. 뒷모습을 많이 그린 것과 달리 여인은 아래를 향해 무엇을 바라보는 모습으로 유일한 그림이라고 하네요. 명암의 대비로 여인에게 머무는 빛은 화가의 집을 비추는 빛 즉 희망처럼 보인다는 것도요... 2장 추락과 상승은 따로 있지 않다, 여기에 가장 처음 등장하는 그림의 화가는 바로 내가 추앙하는 앙리 마티스의 <Dance> 와 <Icarus>입니다. 누구나 이 그들을 보고 단순화된 인체에서 일종의 재미와 자유를 느꼈을 텐데 수녀인 그녀가 느낀 것은 무엇인지 궁금해집니다.

춤을 추는 마음은 충만과 여러 명이 모여 흥을 느끼는 신명 무념무상, 자연 그자체로 서로 손을 잡고 하나의 원을 그리고 있으니 일치, 화합 등을 읽었다고 합니다. 마티스의 이카로스는 추락과 상승, 자유와 얽매임은 서로 배척하지 않으며 중요한 것은 '참된 열정' 내면의 불이므로 넘어져도 좌절하지 않는 인간이어야 함을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이들은 각자의 내면에 하나의 선율, 하나의 마음, 하나의 정신을 품었으리라 짐작합니다.

더 위대한 열을 품겠노라

온갖 장비 갖추고

태양을 향해 돌진하건만

녹아내린 장비에 감싸여 멋지게 추락하네 ...(중략)

내면 창공에 태양 솟아오를 때

하늘 위 높이 날아갈 필요 없지

날개 피요 없지

인간은 날개 없어야 날 수 있으니

3장 따뜻함으로 채워지는 빈자리. 고난과 역경의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도 그녀의 해석이 기대됩니다. <The pink peach tree>에서 뿜어져 나오는 생명력이 어디서 온 것일까에서 목사가 되지 못하고 광산 노동자들을 위해 선교사로 살았던 그의 고통의 시간을 처음 알게 되었고 늦은 나이에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프랑스 인상주의에 영향을 받았지만, 모진 인생에서 일어서기 위한 빛과 생명으로, 색채와 생기로 표현한 그의 그림 탄생이 배경이었다고 알려주고 있는 부분입니다. 생명은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곳에 펄펄 살아 움직임을 포착해 그것을 그려낸 그가 오랜 세월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죽음과 부활의 의미를 알아채길 바라는 수녀님의 해석입니다.

<기억의 빈자리, 2015작>은 전에 본 적이 없는 김호석 화백의 수묵입니다. 붕어빵 두 마리는 서로 다른 곳을 향하고 이처럼 작은 미물도 우리에게 마음 따뜻하게 빈자리를 채울 수 있을 거라고 말합니다. 겨울이 지나고 여름이 되도 그 따끈함은 기억으로 남기 때문이죠. 김호석 화백이 세월호 사건을 염두해 두고 그렸다는 배경도 소개하면서 수녀님은 좀더 다르게 접근하기로 하신 것 같습니다.

수녀님은 여성화가 주디스 레이스테르에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그림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프란스 할스라는 남자 화가의 위조된 서명이 한참 뒤에 레이스테르의 그림으로 밝혀지며 그녀의 그림에 대한 재평가가 있었다고 합니다. 여성이 남성보다 못할 것이라는 선입견으로 두 사람의 화풍이 비슷한 점을 사람들이 오해해 알려지지 못했던 그림과 여성화가의 삶이 재조명 된 것이죠. 삶의 현장을 통찰력과 세심한 관찰력으로 잘 드러낸 그녀의 그림들에서 사회적으로 불리한 여성도 큰 영향을 받지 않고 자기만의 예술세계를 구축했고 기쁨과 사명을 지닌 주체적 여성상을 읽어냅니다.

누군가가 사회적으로 누르려고 해도, 진실은 그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는 깨달음까지 덤으로 얻는 흥미로운 그림들. 알고 있지만 색다르게 해석해내는 수녀님의 성과 속에 대한 단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글들이었습니다.


이 리뷰는 컬처블룸(두드림미디어 출판)을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