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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어느 계절에 죽고 싶어
홍선기 지음 / 모모 / 2023년 6월
평점 :
수려한 외모, 세계에서 손꼽히는 젊은 부자 케이시는 평범한 회사의 회계 담당자이자 친구인 가즈키에게 묻는다.
가즈키, 너는 어느 계절에 죽고 싶어?
이 소설의 배경은 주요인물 케이시가 런던에서 자선파티를 열어 미국에서 일을 도왔던 제임스의 지인으로 함께 온 가즈키라는 친구를 만나면서 시작된다. 젊은 20,30 대의 사랑의 모습은 어떠할까? 우리나라 혹은 미국과 같은 곳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도 많을 텐데 작가 홍선기는 왜 하필 이 시점에 일본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하는가? 일본 남녀의 MZ세대의 사랑은 또 어떠한 모습일까?
프롤로그에서처럼, 모든 것을 다 가진 누구나 원하는 삶, 파이어족으로 일찍 사업에 성공해 은퇴해버린 케이시라는 남자의 질문에서 일종의 삶에 허무함, 권태감을 느낀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독자들이 사는 삶은 일찍이 성공하지도 못했으며 내일을 다음달을 향후 몇 년을 어떻게 살 것인지를 고대하고 계획하지 '어느 시점인 몇 살 혹은 계절'을 궁금해하거나 예상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역시나, 케이시는 평범하지 않은 현재의 삶에 버금가는 과거를 지녔다. 자신은 예기치 않은 불의의 사고로 지켜주고 싶던 여동생 카나에를 잃었고, 자신의 책임도 있다는 죄책감으로 살게 된다. '괜찮치 않았지만 괜찮은 척' 연기를 하고 착하고 아무 문제없는 케이시를 살지만, 가즈키와 하츠네의 만남의 과정을 지켜보며 자신의 사랑의 방식이 잘못에 대해 인지하게 된다. 어떤 여성(정말 다양하고 많은 여자들이 등장한다)을 만나고도 지속가능한 만남을 추구하지 않으며, 그렇다고 신사적이지 못한 일도 저지르지 않으며 그야말로 안전하게 단발적인 만남을 이어가고... 그러다 해마다 여동생을 추모하며 찾는 뉴욕에서 여동생과 너무도 닮은 여성을 만나게 되고 사랑에 빠진다. 그의 정착하지 못하는 사랑은 드디어 이번에는 지속 가능할까?
케이시는 서른한 살로 적당히 젊고, 키가 크고 아주 잘 생겼다. 모델 일을 할 때 같이 촬영했던 다른 남자 모델들과 비교해도 전혀 뒤떨어지지 않을 만큼 잘생겼다. 게다가 문학에 대한 지적인 깊이가 마음에 들었다. ...그는 역시 닛토(한량)였다. 남들 한창 일 할 평일 오후에 드라이브를 하자니. 아아, 자기 회사의 서비스를 해외 광고까지 할 정도의 글로벌함은 이제 사라진 것인가?
노르웨이의 숲. 유메
결혼을 약속한 유메와 이별을 하고만 케이시,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가즈키는 안타까운 마음에 데이팅 어플리케이션을 케이시에게 권했는데 하츠네와 만남이 건강했고, 미래까지도 아주 건강하게 가꿀 줄 알았기 때문이다. 사실 하츠네도 처음부터 가즈키를 마음에 둔 것은 아니었고, 3년 간 사귀었던 남자친구 료타(만화가지망생)의 미래가 불투명했으므로 이제는 이별해야겠다는 찰나에 우연히 데이팅 앱에서 가즈키라는 성실한 남자를 만난 것이다. 갈등했던 하츠네 그리고 고등학교 졸업 후 왕래없이 살던 아빠가 갑자기 딸의 자취방에 들러 예기치 않은 어떤 일로 가즈키와 마주치게 된 것이었고, 가즈키의 오해와 진심으로 사과하고 시간을 둠으로써 어른스럽게 해결하는 과정에 성숙한 연인 관계가 된 둘.
요즘 들어 삶의 의미라는 게 있기는 한 걸까. ...나이가 지극히 든 어른들이 말하잖아. 인생은 코앞만 보고 살면 안 된다고....나는 그 멀리가 어디인지 도대체 가늠을 못 하겠어.
사람의 인생을 가장 멀리까지 바라보면 결국 죽음뿐이잖아.
죽음을 항상 이야기하는 케이시에게 진심으로 걱정하는 가즈키는 그가 병원에 계속 다니고, 약을 챙겨먹기를 바랬다. 그리고 하츠네와 행복한 결혼식을 곧 치르고 케이시의 아낌없는 축하를 받았다. 선물같은 아이를 임신한 하츠네와 가즈키의 행복은 그렇게 계속될 것만 같았다.
딸기 파르페를 먹어야겠어. 알고 있지? 이건 내가 먹고 싶은 게 아니라 우리 아기가 먹고 싶다는 거야.
더없이 화창한 봄날이다. 떠나기로 결심하자 세상의 모든 게 새롭게 인식되었다. 나뭇가지는 봄의 선봉에 서서 새파랗고 아름다운 잎을 만개하고 있었다. 햇살은 적당히 따뜻했고, 꽃과 나무들이 발산하는 산의 내음은 정신을 맑게 해 줬다. ...유서 같은 건 쓰지 않기로 했다. 세상에서 도망치는 주제에 그 심정을 뭐 하러 남기겠는가.
자신을 세상에서 떠밀고, 케이시는 죽기로 결심하던 순간 또다른 아픔이 될 상처가 다가온다. 정말 행복한 삶은 어디에서 오는가? 아니 행복의 본질은 무엇이고 물질적인 풍요나 가족의 존재자체가 '나의 행복'의 대부분의 영역일까?
작가 홍선기는 공유플랫폼 애스크컬처의 설립으로 서른한 살이 된 해 문화체육관광부와 함께 한국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광고를 뉴욕 타임스 스퀘어에서 진행했다는 작가소개를 보았다. 자본력이 다를지라도 행보에서 작중 케이시는, 작가 자신의 일부의 모습을 하고 있다. 뉴욕 타임스 스퀘어 광장 광고는 극중 케이시가 처음 스타트업을 운영할 때 꿈을 꾸었고, 결국에 이루어낸 하나의 큰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저마다의 상처를 딛고, 성장하고 꿈꾸는 젊은이들의 이야기 <이태원 클라쓰>의 박새로이도 생각나지마는 서른한 살 눈부신 젊음을 버리고 죽음을 택하려했다는 케이시와는 다르다. 우울함의 끝을 경험하고 바닥을 치고 올라오는 결말이 온다. 이 시대의 돌덩이(이태원 클라쓰의 OST, 국카스텐의 노래)처럼 부서지고 깨지지만 희미한 그들의 삶에서, 가즈키가 우연히 목격하는 별똥별에서 재빠르게 소원을 빌듯 "그래도 세상은 살만하다" 고 말하는 소설이라 평가하고 싶다.
이 글은 모모출판, 컬처블룸을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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