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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의 말 - 작고 - 외롭고 - 빛나는
박애희 지음 / 열림원 / 2023년 6월
평점 :
어린이의 열렬한 팬이자 응원하는 마음으로 책을 쓴 박애희 작가는 원래 메인 방송사들에서 일하며 삶과 사람을 관찰하여 글을 썼다. 그러다 가장 가깝게 살아 숨쉬는 어린이인 아들 덕분에, 동화와 청소년 소설을 섭렵하고 그들의 반짝이는 말들을 모았고 지금의 어른이 된 자신에게 여전히 유효한 말들임을 보여주려 한다.방송작가였던 이력 답게, 생활 속에 만나는 아이들을 관찰하고 나눈 대화들이 오롯이 그녀가 읽었던 글귀들과 함께 소개 된다.
<빨간 머리 앤>의 질문은 '세상을 알기 위한 꼭 필요하지만, 아주 많고 아주 길다...어린이의 질문을 받은 어른의 태도, 답하는 태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어떤 어른들은 질문 자체를 막기도 하지만, 앤은 질문을 해야 세상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양은 버겁지만 기발한 질문의 질에 감탄하게 되는 매튜 아저씨 같은 어른도 있기에... 지금 이 순간 세상을 배울 아이들의 질문을 막지 않는 그런 어른이 되어보자고, 작가처럼 결심한다.
그밖에 어린 왕자, 삐삐 흔하지만 그만큼 지키기 어려운 동심에 대하여 그리고, 내가 어릴 적 사랑해마지 않던 '피너츠 친구들'이야기도 등장한다. 피너츠의 스누피가 개집 위에 그 귀여운 귀를 늘어뜨리고 하늘을 향해 누우면, 그 앙큼한 검은 코와 게으른 아저씨와 같은 튀어나온 배를 가진 장면이 떠오른다. 찰리와 스누피 콤비는 인간과 동물이 달라서 비현실적인 것이 아니라, 너무나 비슷하거나 어린이의 마음과 행동을 닮은 강아지라는 사실 때문에 그 옛날 내 마음을 사로잡았었다. 소심하고 운이 나쁜게 찰리랑 꼭 닮았다고 스스로 말하는 아들에게, 사나운 루시의 빈정거리는 성격도 모두 작가 찰스 슐츠의 여러가지 면을 나타내는 것, 누구든 보여주는 얼굴과 고정된 이미지 말고 타인이 알지 못하는 면면이 있는게 아닐까하고 현명한 일화를 이야기 한다. 악인도 선인도 그 모습이 단편적이고 일률적이지 않다는 입체적 사실을 고난이도의 표현이 아닌 쉬운 말로 하고 있는 것이다.
나도 즐겨보는 유퀴즈 온더 블럭tvn 예능의 유재석 조세호의 인터뷰이 중 어린이가 나온적이 있었나보다. 작가는 태권도 학원을 향하는 유림이가 한 말 중 행복이 뭐냐는 엠씨 아저씨들의 질문에 답을 듣고, 아들을 대입시켰다.
우리 특히 부모들이 아이가 놀고 있으면 오늘 해야할 일을 읊어주고, 더해서 내일 일정까지 세세히 챙기고 잔소리를 한다. 왜냐? 행복을 만끽하는 자식들이 무아지경으로 노는 모습이 우리를 불안하게 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나에겐 함께 사는 어린이가 있어 일단 그가 혼자 노는 모습을 관찰하기로 한다. .. 흥얼거리는 콧노래 소리를 따라 욕실에 가보니
아이는 지금 무한 변신 중이다. 변신을 마치면 몸의 곳곳에 거품을 잔뜩 바르고는 한바탕 댄스를 춘다.
나조차 세명 아이중 첫째가 어릴때 동생들이랑 거품으로 욕실에서 장난치고 웃고 떠들때 행복이 전이돼 휴대폰 영상으로 남겨두었었다. 하지만 막내가 그렇게 놀고 있으면 지구를 아프게 하지 말라며, 물을 아껴야 한다~얼른 씻고 나와라~나와서 거울을 보며 춤추는 아이를 혼내기 바쁘다. 어른이 엄마도 첫아이 때 다르고 다음 아이, 그다음 아이때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으니 '슬픈 웃음'이 난다. 학교를 가지 않으면 어떻게 되냐? 공부를 안하면 안돼냐? 묻는 내집의 어린이들도 엄마나 아빠 중의 한 명이 감옥에 가야한다는 비약을 듣고 슬픈 표정으로 학교를 매일 다니겠다고 대답하고 있고 아는 집들은 대부분 그렇다.
아이의 세상이라고 해서 언제나 꽃밭만 펼쳐지는 건 아니구나. 이 작은 존재들도 현실을 견디기 위해 애쓰고 있구나. 그래도 다행인 것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 세상을 향해 싸울 아이들의 무기가 다름 아닌 '상상력'이라는 것이다.
공상의 세계에서 아이들은 힘을 얻는 것 같다는 생각에 동의한다. 그래도 그렇지...
엄마가 자신들을 혼낼 때 엄마를 빨래처럼 무지막지하게 짜는 상상을 하고, 쓰레기장에 갖다버리고 싶다..는 말을 지들끼리 한다는 것이다. 아마 내 아이들도 지금도 현재진행일 속마음일까 생각하면 괘씸하지만, 어른이 내뱉는 추악한 말들을 실행해 옮기지 않는 어린이들은 물리적 힘은 없지만 상상이라는 힘을 가진 더 고차원적인 존재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아이와 아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지켜보다 보면, 놀림과 공격과 피해와 상처가 난무하는 어린이의 세계에서도 아이들이 여전히 웃을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아이들은 어느 순간에 고착되지 않고 지나난 일은 묻고 언제나 빠르게 지금 순간으로 돌아온다. ...
작가는 놀라운 자가 치유력을 가진 유연한 존재가 어린이, 문제는 과거에 휘둘리고 약해 빠진 못난 어른이다. 세상을 알아가는 과정에 있는 어린이들이야 말로 '어른의 약'같은 존재라고 말한다. 그녀가 이야기하는 어린이는 한명이 아니지만 모두 하나같이 '반짝이고 외로운 존재'이다. 새롭거나 특별하지 않을 것 같은 주변 꽃들을 가까이서 보고 '풀꽃'을 노래했던 나태주 시인의 추천사로 나의 마지막 말을 대신한다.
아이들은 어른이 되면서 시를 잃어가지만 원래 당연하고 아름다운 시인들의 말을 정성스럽게 기록하고, 글로 남기는 작가의 이 책은 특별하다.
이 리뷰는 열림원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