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인 3명은 교과서에 나오는 문학의 길을 걷는 책을 기획하고 다양한 작품을 놓고 비교 토론해 이 시대에 가장 울림이 크고 메세지를 잘 전달해줄 작품을 골랐다며 프롤로그에서 밝히고 있다. 이렇게 고민 끝에 엄선한 박완서의 삶과 그녀의 수많은 소설 중, <나목>과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먹었을까>의 배경을 찾아 서울 나들이를 한다. 그리고 큰 별 조세희 작가의 롱스테디 소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지금도 사회 문제작 윤흥길 <아홉 켤레의 구도로 남은 사내>의 배경인 광주 지금은 성남시인 곳, 양귀자 작가의 <원미동 사람들>로 부천을 가기도 하고요.
가난한 삶을 사는 우리의 다른 모습이었던 소시민의 이야기 <괭이부리말 아이들>은 김중미 작가가 그때 그시절 그곳에서 생생하게 사람들의 모습을 소설로 옮겨놓아 더욱 현실감있게 다가오면서도 사라져가는 모습에 아련해지기도 했답니다.
일제 강점기에 생긴 미쓰코시 백화점을 인수한 신세계가 백화점으로 문을 열었던 건물은 한국전쟁 이후 미군 PX로, 박완서가 작가로서 명성을 얻기 전 자전적 이야기의 <나목>을 구상했던 곳이라고 하니 당시 시대적 배경과 함께 남아있는 건물을 돌아본다면 박완서의 초기작들을 다시금 찾아보게 될 거 같다. 그녀의 출신은 이북 황해도로, 자신과 오빠를 유학시킨 홀어머니가 사대문 안의 학교로 보내기 위해 친척집으로 불법 전입을 감행해 서울 현저동이라는 가난한 동네에 상경민들이 살던 곳에 대한 기억을 담은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가 있다. 지금은 새 아파트 촌이 되어 당시 살던 많은 완서네 가족들이 서울 언저리 혹은 그 바깥으로 밀려난 것은 아닌가하는 심상을 떠올리게 된다. 표지의 소녀가 어린 박완서이고 현저동 초입에 서대문 형무소의 '옥바라지 골목'이 자리하고 있어서 전쟁 직후 사람들의 고단한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전달해주고 있다고 한다. 충정로역을 나와 서울역 뒤로 서울 한복판에 자리한 중림동이 난쏘공(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의 배경으로 지금 남아있는 성요셉 아파트 언덕 아래쪽에서는 7층 언덕 위에는 3층으로 보이는 비탈길 아파트가 있다고 한다. 필자도 서울 시민이었던 적은 거의 없어서 서울의 재개발 지역은 용산 부근밖에 몰라, 건물이름도 건물 생김새도 사진을 보고 생소하게 느껴졌다. 지금은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마을의 풍경은 깨끗해지고 젊어지는 중이라고 하니, 옛모습이 없어도 충분히 한번 가볼 만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낙후됐던 구도심이 번성해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 몰리면서, 임대료가 오르고 원주민이 내몰리는 현상)원주민은 쫓겨나듯 떠나지만, 자본주의 도시답게 스스로 변화한 것이 아닌가. 1960년 대 서울을 돌아보는 여정이 있다면, 인천 차이나타운을 찾은 작가들은 어떤 작품과 함께였을까. <중국인 거리>라는 오정희 님의 1979년 발표한 단편 소설이었다고 한다. 차이나타운은 6.25 전쟁 몇 해 뒤 조성된 중국인과 한국인, 미군들이 한데 섞여 '모두가 이방인이 되는 거리'였다고 한다. 전쟁 직후 새로 집을 짓느라 냄새와 탄가루가 날리며 제분공장의 매연도 사람들의 인종만큼 섞여있던 곳, 그곳에 이사온 피란민 가족과 소녀가 이사를 와서 겪게 되는 이야기이다. 여성들의 차별적 삶에서 소녀는 절망과 막막함을 느꼈지만, 아버지의 전근으로 서울로 가게되며 그 시절을 반추하는 작가 오정희의 자전적 성장소설로 가치를 지닌다니 한번 찾아 읽어봐야겠다.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작가 김중미 또한 어리고 가난한 노동자 들의 병원에서 일하다 인천에서 사회 활동을 하게 되며 여성작가로서 이름을 알렸고, 양귀자 작가 또한 자신의 삶이 투영된 곳 부천 원미동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썼다고 한다. 학창 시절, 인천에서 살며 부천을 오갔지만 원미동 사람들의 거리는 가본 적이 없어 '무궁화 연립' 이 대화아파트로 재개발 되어 있고 원미산 원미공원 등도 처음 들어본다. 1980년 대 경제발전과 함께 잘 살겠다는 소시민들의 욕망을 담아낸 소설이라는 사실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지금은 거대 역사가 된 용산역, 얼마전에도 전시장을 다니러 갔었지만 내가 살던 20년 전과 그 이전의 용산의 모습은 너무나 급변한 것 같다. 저자들이 돌아본 용산역 주변은 거대한 빌딩숲이 되어 아쉽다고 말했다. 황석영의 <개밥바라기별>의 주인공 유준과 인호의 무전여행 당시의 풍경이 없어서라고.
문화서울역284가 되기전 서울역은 소설 속에서 새벽녘 광장의 푸르스름한 가로등 밑에서 삶의 이정표를 잃은 시대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데, 필자는 사실 이 건물을 언뜻 지나치기만 했지 드라마 <미생>의 무대인 서울스퀘어빌딩(구 대우그룹 본사)과 예전 서울역의 모습을 간직한 광장만이 기억난다. 네오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진 경성역은 일제강점기 일본의 지배의 상징물로 그 어마한 규모의 내부를 들어가본 적이 없어 에 나오는 카페와 대합실, 역무실 등의 내부구조를 그저 상상할 수 밖에 없다.
벚꽃이 필 무렵 작가들은 모였고 1년간 모든 계절을 통틀어 함께 위의 순간들을 같이 하며 마음에 담은 것들이라고 합니다. 재개발로 없어진 선술집, 포장마차가 아쉽고, 작은 흔적이라도 찾으면 사진으로 남겨두어 오롯이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한 마음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시대를 관통하는 사람들이 만든 이야기, 소설 속에서 살아나 지금의 우리에게도 당신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돌아보게 했다고, 이 문학기행이 즐거웠다고 독자들과 작가와 작품이 '공간'으로 함께 만나는 일임을 증명하고 있는 것 같다.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으나 개인의 주관적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