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석 화백과 장요세파 수녀의 만남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고 한다. 수녀님의 수도생활 초기, 잊고 싶어 꼭꼭 눌러둔 것들, 기억조차 나지 않는 시절의 기억들, 떠오르기야 하지만 감당이 안되는 것들, 혹은 자신조차 모르는 것들 등 밑바닥이라고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뒤집혀 올라오는 시기를 겪습니다.
장요세파 수녀는 이와 비슷한 예술의 과정을 함께 합니다. 마찬가지로 화백의 그림을 보며 도시풍경, 역사화, 인물화, 가족화, 동물 곤충, 몽골 사람들과 자연, 초상화, 종교화로 이어지는 작가가 보여주는 일련의 그림들이 마치 끝없는 섬을 따라가는 여정 같다고...
이런 여정에 들 때 우리 마음은 생기로 가득하게 마련, 생기 에너지는
그동안 봐왔던 정해진 틀을, 자신의 편견의 틀을 넘어 새로운 빛을 보게 해줍니다.
머리글에서.
또다른 그림에세이 <수녀님, 서툰 그림읽기>, <수녀님, 화백의 안경을 빌려 쓰다>, <그림이 기도가 될 때> 와 맥을 같이 하는 이 책은 지나치게 아름다움만 강조되는 그러한 신비의 세계를 발견하지 못하며 예쁘고 곱고 고상하고 우아하고 아름다운 것만을 계속 찾다 보면 구부러지고 못나고 일그러진 것은 자꾸 배제하게 된다. 장애인, 사회 저변의 불우한 이들, 난민을 배제하면서 외면하게 된다. 요세파 수녀에게 자신을 잡아당겨 세우는 그림은 생명, 자유, 용서, 사랑, 초월적인 것, 인간의 내면을 표현하는 것, 종교적인 것들을 표현하는 그림들이다.
우선 화가의 삶이 그 안에 녹아 있고, 더 들어가면 화가 자신마저 넘어 저 먼 어떤 것, 인간의 눈에 희미한 어떤 것 혹은 실재가 우리 앞에 턱 놓이는 체험을 하게 되는데, 이것은 어떤 종교체험보다 훨씬 강렬하게 인간을 초월적 실재 앞에 놓아주며 형식적인 예배, 틀에 박힌 기복적 기도로는 가까이 가보지도 못할 세계를 열어준다고 말했었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2019, 종이에 수묵채색) 을 보며 비록 봉쇄수녀원에서 기도와 독서, 노동으로 수도하는 저자는 바깥 세상에서 일정 거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적 팬데믹인 코로나 시대를 살고 있기에 '바이러스에 갇힌 세상'을 말한다. 비대면으로 친구를 사귈 기회조차 빼앗긴 어린 학생들을 생각하며 지구에 살아남는 생명이 모두 사라지고 인류가 망해도 혼자 살려 하지 말고, 함께 끝까지 노력해야 한다는 단상을 가졌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