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라고도 넘치는 고요 - 그림의 길을 따라가는 마음의 길
장요세파 지음, 김호석 그림 / 파람북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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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길을 따라가는 마음의 길

김호석 화백과 장요세파 수녀의 만남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고 한다. 수녀님의 수도생활 초기, 잊고 싶어 꼭꼭 눌러둔 것들, 기억조차 나지 않는 시절의 기억들, 떠오르기야 하지만 감당이 안되는 것들, 혹은 자신조차 모르는 것들 등 밑바닥이라고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뒤집혀 올라오는 시기를 겪습니다.

장요세파 수녀는 이와 비슷한 예술의 과정을 함께 합니다. 마찬가지로 화백의 그림을 보며 도시풍경, 역사화, 인물화, 가족화, 동물 곤충, 몽골 사람들과 자연, 초상화, 종교화로 이어지는 작가가 보여주는 일련의 그림들이 마치 끝없는 섬을 따라가는 여정 같다고...

이런 여정에 들 때 우리 마음은 생기로 가득하게 마련, 생기 에너지는

그동안 봐왔던 정해진 틀을, 자신의 편견의 틀을 넘어 새로운 빛을 보게 해줍니다.

머리글에서.

또다른 그림에세이 <수녀님, 서툰 그림읽기>, <수녀님, 화백의 안경을 빌려 쓰다>, <그림이 기도가 될 때> 와 맥을 같이 하는 이 책은 지나치게 아름다움만 강조되는 그러한 신비의 세계를 발견하지 못하며 예쁘고 곱고 고상하고 우아하고 아름다운 것만을 계속 찾다 보면 구부러지고 못나고 일그러진 것은 자꾸 배제하게 된다. 장애인, 사회 저변의 불우한 이들, 난민을 배제하면서 외면하게 된다. 요세파 수녀에게 자신을 잡아당겨 세우는 그림은 생명, 자유, 용서, 사랑, 초월적인 것, 인간의 내면을 표현하는 것, 종교적인 것들을 표현하는 그림들이다.

우선 화가의 삶이 그 안에 녹아 있고, 더 들어가면 화가 자신마저 넘어 저 먼 어떤 것, 인간의 눈에 희미한 어떤 것 혹은 실재가 우리 앞에 턱 놓이는 체험을 하게 되는데, 이것은 어떤 종교체험보다 훨씬 강렬하게 인간을 초월적 실재 앞에 놓아주며 형식적인 예배, 틀에 박힌 기복적 기도로는 가까이 가보지도 못할 세계를 열어준다고 말했었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2019, 종이에 수묵채색) 을 보며 비록 봉쇄수녀원에서 기도와 독서, 노동으로 수도하는 저자는 바깥 세상에서 일정 거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적 팬데믹인 코로나 시대를 살고 있기에 '바이러스에 갇힌 세상'을 말한다. 비대면으로 친구를 사귈 기회조차 빼앗긴 어린 학생들을 생각하며 지구에 살아남는 생명이 모두 사라지고 인류가 망해도 혼자 살려 하지 말고, 함께 끝까지 노력해야 한다는 단상을 가졌다고 한다.

비가 오는데 젖지 않을 사람은 없습니다. 가뭄이든 폭염이든 추위든 뭐든 유례없는 기록이랍니다.

우리는 그 앞에 서서 연대해야 한다고.

사랑의 전달, 생명의 전달.

코로나 감염 후유증으로 언제 세상을 떠날 지 모르는 모친을 그린 그림을 보며 요세파 수녀님은 아들의 애정이 듬뿍 느꼈다고 한다. 설명 필요없이 생명과 생명으로 이어지는 사랑의 전달, 누구나 생명을 받고 물려주고 꽃피우고 열매 맺고 스러지는 이치를 발견, 이런 흐름의 가장 큰 대명사가 바로 어머니이고 화백 자신의 어머니를 그렸다고 보는 것이다.

정신의 생(2020, 종이에 수묵 채색)을 보면서는 지적 능력이나 육체적 힘이 상실하고 쇠퇴해도 결코 스러지지 않을 노년의 경지 '두려움 없는 사랑'을 깨닫는다. 오늘날 딸이든 며느리든 노모를 보살피는 모습은 일반 가정에서 사라지고 있고, 요양병원의 몫이 되어버린 안타까움 그리고 우리가 언젠가 노년에 이르러 비로소 성장하는 인간의 가치있는 이면인 평화 지헤, 품 넓은 사랑이 아직도 존재한다고 믿는 것을 그만두지 않길 바란다.

우리의 성장은 나이가 들면 모든 것이 쇠퇴하고 쪼그라들고 상실만이 남게 된다고 생각하고 그 성장에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저자는 양적인 성장에 촛점을 맞추지 않고 질적인 성장의 측면에서 보면 사람의 행복은 과학과 문명이 발달한 오늘에도 실현되지 못한다고 보았다. 인간이 참되게 해줄 성장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은 인간은 미완성의 존재라는 데서 그 답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미완성이되 미완성인 존재를 끊임없이 초월해 완성을 향하는 데에 진정한 성장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고.

뱀을 독사를 낫으로 찍는 모습의 검은씨앗(2010, 종이의 수묵)이라는 그림과 함께 사유하는 글 '찍어내야 하는 인간 내면의 독사'에서,세상의 악으로 규정된 것들을 이야기한다. 한때 민주주의를 참되게 만들기 위해 싸운 이들에 대해 세상의 악으로 여겨지는 뱀을 찍어냄으로써 그림에 사실성과 함축성을 담았다고 보았다.

...아프고 고독하고 지옥의 바닥 같은 체험이라는 독이 오히려 화백 예술의 치유제를 넘어 승화제가 됨을 봅니다.

2장_향기를 풍기지 않는 향기

종교가 닿고자 하는 곳이 예술이 닿고자 하는 곳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말하고 있다. 한 수도자의 작품평 안에 보이는 길은 익숙함과 새로움이 함께 다가온다. 종교가 지향하는 맑음과 단순함, 비움과 비워짐의 자리는 수묵화와 관통해서일까. 모든 것의 기본 요소로서 점을 그린 세 개의 점은 '만물의 시작' 인 원자가 물질을 구성하는 것, 그 안에 여러 요소가 있고 어떤 움직임이 있으며 양자, 전자, 중성자가 서로 부딪치는 일 없이 흩어지는 일도 없이 궤도를 돌듯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이 바로 한 점 원자의 모습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성한 항아리가 아니라 깨진 항아리요,

냇물에 푹 잠기지 않고는 물을 가득 채울 수 없는 존재인지도 모릅니다.

역사를 통해 자유를 지키려는 강하고 뜨거운 열정이 1980년 광주를 '검은 무심(2022, 종이에 수묵'그림을 통해 읽혀 졌고,

깨진 독에 물붓기에 대한 이야기를 곁들여 깨진 항아리(2022, 종이에 수묵)'그림을 통해 찾는 우리의 한계성도 말하고 있어서 고정된 사고나 경직된 사고가 아닌 화백의 혜안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한다고 말한다.

오직 비움을 통해서만 채워지며, 생명을 건네줌으로써만 생명을 얻는 그 길이 수묵화 안에서 새로운 눈을 얻어 표현되고 있는 그녀의 오래된 수도의 길과 통하는 것 같다.

이 리뷰는 파람북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개인의 주관적 견해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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